네우게르마니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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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네우게르마니엔의 명칭은 왕가의 민족적 배경과 관련있다. 게르만 배경의 베르겐슈타인 왕가는 자신들이 정착한 행성을 '새로운 게르마니아'이라는 뜻으로 노이게르마니엔(Neugermanien)이라고 지었고, 시간이 흐르면서 발음이 네우게르마니엔으로 변화했다. 역사건국과 성장서기 8790년, 당시에는 연방의 가장 외곽에 있던 무인행성인 GWZ-8R43K에 스벤 베르겐슈타인과 그의 가족이 탄 작은 우주개척선이 착륙했다. 스벤과 그 가족은 강을 낀 평원에 거주지를 짓고 정착했으며, 이전에는 단순한 일렬번호로 불리던 행성의 명칭을 노이게르마니엔(네우게르마니엔)으로 정했다. 이후 네우게르마니엔에 여러 정착민들이 도착하면서, 스벤과 그 가족은 새 개척자들의 정착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이 과정에서 스벤은 정착민들의 지도자격이 되었다. 8813년, 게르마니엔 정착지의 인구는 수천으로 불어났고, 스벤의 통치 하에 정착지는 평화를 누리며 점차 부유해져 갔다. 하지만 돈의 냄새를 맡은 해적이 무방비 상태의 정착지를 약탈하기 위해 모여들었다. 네우게르마니엔 근처에는 그들을 지켜줄 연방군조차 주둔하고 있지 않았다.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스벤은 정착민들을 이끌고 기적적으로 해적을 격퇴했다. 이에 정착민들은 스벤을 '네우게르만인들의 왕'으로 추대했고, 네우게르마니엔은 군주정 행성이 되었다. 스벤 1세가 된 스벤 베르겐슈타인으로부터 여러 세대동안 베르겐슈타인 왕조는 왕위를 세습하며 현명한 통치로 행성에 평화와 번영을 가져왔다. 초기에는 행성의 광물자원 수출로 연명하던 경제는 광업에 대한 투자에 힘입어 점차 성장했고, 조정은 광물 수출로 벌어들인 돈을 학문과 인프라 건설에 아낌없이 투자했다. 네우게르마니엔의 경제구조는 점차 다각화되어갔으며 끊임없이 팽창했다. 이러한 경제성장은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냈고, 수많은 외부인이 행성에 이주하였다. 네우게르마니엔의 인구는 이민을 통한 계속된 유입과 준수한 출산율에 힘입어 94세기에 들어서는 1억 명을 넘어서게 되었다. 조정은 문화와 종교 그리고 교육의 힘을 통해 새로 불어난 인구를 끊임없이 통합했고, 덕분에 네우게르마니엔은 그 백성의 다양한 출신배경에도 불구하고 단일한 정체성을 이루며 군주의 지도 아래에 하나로 통합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세력확장 시도와 좌절98세기 말, 네우게르마니엔은 눈부신 번영을 구가하고 있었다. 인구는 20억에 근접해가고 있었고, 학문과 경제는 황금기를 맞이했다. 행성은 경제적으로나 인구적으로나 인근 행성들 중 최강의 국력을 자랑했다. 그러자 당시 네우게르마니엔의 왕이었던 카를 1세는 강대한 네우게르마니엔의 힘을 행성 너머로 보이고 싶어했다. 카를 1세는 막대한 재정을 동원해 네우게르마니엔 행성 인근의 무인행성과 위성들에 여러 우주식민지를 건설하여 네우게르마니엔의 통치 하에 두는 한편, 그의 왕국을 방위하는 네우게르마니엔 왕립군[3]의 규모를 크게 확대하였다. 덕분에 네우게르마니엔 왕립군은 일대 지역에서 가장 강력한 행성군을 보유한 행성이 되었다. 모든 함선을 새하얀 색으로 도색한 왕립함대는 수십 척의 중소형 함선들로 구성되어, 행성 인근의 해적단들을 소탕하며 그 위용을 과시했다. 김남양 연방조정부 공사가 왕을 접견해 급격한 군비확장의 이유를 묻자 왕은 단순 자위용이라고 답했다.[4] 카를 1세는 단순히 왕국의 위용을 과시하는 데서 그치고 싶지 않았다. 그는 인근의 자치행성들을 굴복시켜 네우게르마니엔의 봉신행성으로 삼고, 자신은 황제에 즉위해 네우게르마니엔 제국을 건국하고자 하는 원대한 야망을 가지고 있었다. 이에 카를 1세의 조정은 인근의 여러 행성들 당근과 채찍을 동원해 네우게르마니엔의 세력권에 편입시키고자 했다. 그는 네우게르마니엔에 대한 무역의존도가 높은 인근 군소행성들에, 자신의 계획에 협조하면 무역 특혜를 제공하고 협조하지 않으면 높은 관세를 부과하겠다며 양면으로 압박했고, 왕립함대를 동원해 해당 행성들 근처를 순회하게 하는 무력시위도 벌였다. 네우게르마니엔이 연방정부의 허락도 없이 다른 행성에 식민지를 건설한 것을 연방이 제지하지 않았기에, 왕은 이번에도 연방이 그의 계획을 방관하리라 판단했다. 하지만 그것은 왕의 오판이었다. 무역에 대한 제재와 타 자유행성에 대한 무력시위는 각 행성에 광범위한 자치권을 부여하는 연방정부조차도 단호히 반대하는 사안이었다.[5] 연방정부는 즉시 공사관을 통해 네우게르마니엔 조정에 경고 메세지를 보내고, 상당한 규모의 함대를 파견해 네우게르마니엔을 압박했다. 또한 네우게르마니엔이 계획을 실행에 옮길 시 연방 단위의 경제제재를 실시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연방의 의지를 확인한 카를 1세는 물러설 수밖에 없었고 계획을 폐기했다. 한편 이 사건으로 인해 인근의 군소 자치행성들은 네우게르마니엔에 악감정을 품기 시작했다. 총력전연방과 적의 총력전은 네우게르마니엔의 입지를 더욱 흔들어놓았다. 그동안 네우게르마니엔의 내정에 불간섭 기조를 유지하면서 무역세와 인두세을 징수하는 것에만 관심을 보였던 연방정부가, 네우게르마니엔에 총력전에 협조할 것을 연방조정부 공사관을 통해 요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연방은 연방군애서 복무할 인력 징병과 연방의 전쟁수행을 도울 각종 자원 공출 그리고 악화일로의 재정상황에 숨통을 트여줄 전시채권 판매를 원했다. 연방은 변방계 행성들에 요구조건 수용을 압박하기 위해 여러 함선을 동원해 무력시위를 하였다. 당시 네우게르마니아의 왕이었던 카를 2세는 그의 신민이 입을 피해를 우려해 연방의 요구를 거부하려고 했지만 결국에는 이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행성이 구가한 번영은 연방의 자유무역체제 안에서 일궈진 것이었으며, 연방의 요구를 거절한다면 발생할 무역의 단절과 연방의 토벌을 감당해낼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조정이 연방정부에 굴복함에 따라 연방방위부는 네우게르마니엔에 전쟁준비위원회를 설치하고 징병과 공출을 실시했다. 총력전 첫 해에만 120만 명의 청년이 징집되어 전선으로 보내졌다. 네우게르마니엔의 신민들은 처음에는 왕의 명령에 따라 영광스러운 전쟁에 참여하기 위해 밝은 표정으로 자진해서 모병소를 찾았다. 하지만 총력전이 장기화되고 사상가자 날마다 폭증하자 전쟁에 대해 회의적인 기류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카롤 2세는 연방 조정부에 네우게르마니엔의 부담을 줄여줄 것을 여러 차례 요청했지만 연방은 이를 번번히 거부했다. 게르마니엔 조정은 신민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대주교를 통해 이 총력전을 성전으로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마침내 총력전이 휴전기에 접어들기 전까지 네우게르마니엔은 청년층의 15%가 전사하는 뼈아픈 피해를 입었다. 휴전 직후, 격무에 시달리던 카를 2세가 승하하였고, 카롤 2세의 장남인 스벤 3세가 그의 뒤를 이어 네우게르마니엔의 왕으로 즉위하였다. 스벤 3세와 그의 충성스러운 조정은 곧 재개될 총력전에 대한 대응책과, 징병 및 공출로 인한 행성적 피해를 복구할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왕실
베르겐슈타인 왕가(Königshaus Bergenstein)는 네우게르마니엔의 왕가이다. 네우게르마니엔의 개국군주인 스벤 1세를 시조로 하며, 스벤 1세부터 지금까지 천 년이 넘는 기간동안 네우게르마니아의 왕작을 세습하고 있다. 베르겐슈타인 왕가의 본궁은 수도 베르겐슈타트에 있는 베르겐슈타인 궁전이다. 왕가는 여러 왕실재산을 소유하고 있다. 베르겐슈타인 궁전과 기타 여러 별궁 그리고 여러 숲과 벌판과 섬들이 대표적인 왕실 소유 부동산이다. 또한 조정이 거두어들이는 조세의 10%는 왕실의 내탕금으로 편입된다. 왕실 내탕금은 온전히 왕의 의중대로 사용할 수 있으며 그 사용처를 의회에 보고할 의무가 없다. 이러한 왕실재산은 집사장(Meisterkämmerer)이 관리한다. 왕가 구성원의 지위와 신체는 신성불가침이기 때문에, 이를 보호하는 법이 제정되어 있다. 왕실존엄법에 따르면, 왕가 구성원에게 고의로 신체적 상해를 입히는 자는 30년 이상의 강제노역형이 선고되며, 왕가 구성원이 죽거나 중상을 입을 경우 사형에 처해진다. 특히 왕에 대해서는 법이 더욱 엄격한 처벌이 규정되어 있다. 왕에게 고의로 신체적 상해를 입히는 자는 사형에 처해지며, 미수에 대해서도 무기징역이 선고된다. 과거에는 왕실 구성원에게 상해를 입히는 자는 연좌제로 죄로 물었지만, 5년 전인 11246년에 스벤 3세가 추밀원의 반대를 무릎쓰고 연좌제를 완전히 폐지하여 현재는 왕실 구성원에게 상해를 입히더라도 죄인의 가족에게 연좌제가 적용되지 않는다. 왕실예법에 따르면, 남성 왕족의 아내와 자식은 왕족이지만, 여성 왕족의 자식은 왕족으로 보지 않는다. 따라서 왕녀는 왕족의 일원이지만, 왕녀의 부군과 자식은 왕족이 아니다. 왕족은 정기적으로 열리는 왕족회의에 참여하여 왕가의 사무를 돌봐야 하는 의무가 있다. 마땅한 이유 없이 왕족회의에 지속적으로 불참하는 왕족은 왕족의 자격이 제한될 수 있다. 다만 공적인 외교업무나 연방군 복무, 혹은 건강 등의 문제로 인해 참석하지 못하는 경우는 정당한 결석사유로 인정된다. 모든 왕족은 적당한 수준의 품위유지비와 경칭, 그리고 경호 특혜를 제공받는다. 이중에서 경호는 3촌 이내의 가족 중에 왕족이 있는 평민에게도 제공된다. 왕네우게르마니엔의 왕(König der Neugermanien)은 네우게르마니엔의 국가원수이자 군주이다. 사실상의 전제군주로 군림하며 네우게르마니엔을 통치한다. 네우게르마니엔의 왕위는 장자상속제를 원칙으로 승계된다. 혼외관계로 낳은 자식은 아들이라 하더라고 왕위계승권이 없으며 왕자로 인정되지도 않는다. 적장자을 제외한 다른 왕자들은 모두 연방군에 입대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다. 이에 대해 네우게르마니엔 조정은 공식적으로는 "왕자를 연방군에 보냄으로써 연방에 대한 왕국의 헌신을 보이는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왕위계승권자를 행성 밖으로 보내 왕위 계승에서 일어날 수 있는 분쟁을 예방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로 인해 연방군에 입대한 왕자는, 기존의 계승권자가 모종의 이유로 계승권을 박탈당하기 전까지는 다시는 행성으로 돌아올 수 없다.[7] 왕의 장남은 12세가 되는 날에 왕세자로 책봉되며 왕세자의 장남 역시 12세가 되는 날에 왕세손에 책봉된다. 왕이 양위하거나 사망하면 그 즉시 왕세자가 국왕에 즉위하게 된다. 만약 왕이 아들이 없다면 왕위는 왕과 촌수로 가장 가까운 남자 왕족에게 계승된다. 왕의 대관식은 본궁인 베르겐슈타인 궁전에서 거행되며, 이후 의회에서 즉위선서를 하고 베르겐슈타트 광장에서 백성 앞에 나아가 백성들의 환호를 받는다. 왕은 사실상 무제한의 권력을 가진다. 이는 네우게르마니엔이 사실상의 전제군주국이기 때문이다. 명목상의 입법부인 추밀원이 존재하지만 추밀원은 자문기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에 왕을 견제할 수도 없고, 애초에 추밀원 의원들이 그럴 의지조차 가지고 있지 않다. 왕은 재상과 여러 대신들의 조언을 듣지만 결정은 온전히 왕의 몫이다. 그 권한은 적어도 내우게르마니엔의 통치권이 미치는 범위 안에서는 무한하기에, 왕의 칙서가 곧 타 행성의 헌법과 맞먹는 권위를 지닌다. 그렇다고 해서 네우게르마니엔의 왕들이 오직 자신의 기분에 따라 절대권력을 마구 휘두르는 폭군은 아니다.[8] 왕은 결정권자인 동시에 그에 대한 책임을 지는 사람이기에, 왕은 대신들과의 회의를 거쳐 신중히 칙서를 내린다. 또한 대주교와 교회를 통해 민심을 읽고 이를 보살펴야 하며, 스스로가 왕국의 가장 신실한 신자로서 교회 윤리를 지켜 만백성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 현재 네우게르마니엔의 왕은 카를 2세의 장남인 스벤 3세이다. 11227년에 선왕인 카를 2세의 사망으로 즉위하여 현재까지 제위 중이다. 스벤 3세의 부인이자 왕비는 그레타 베르겐슈타인으로, 네우게르마니엔의 명문가 중 하나인 샤이데만 가문 출신이다. 스벤 3세는 왕비와의 사이에 두 아들과 세 딸을 두고 있다. 장남인 디트리히는 왕세자의 신분으로, 장차 왕위를 계승할 후계자이다. 차남 루트비히와 삼녀 베르티나는 현재 연방군 장교로 복무중이다. 네우게르마니엔의 왕은 다음과 같은 작위를 보유하고 세습한다.
정치
네우게르마니엔은 겉으로는 입헌군주정을 지향하지만 실제로는 전제군주정과 다를 바 없는 통치구조를 가지고 있다. 헌법은 존재하지 않으며, 군주의 권력은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것이라고 믿는 왕권신수설을 공인하고 있다. 따라서 일반적인 민주공화국이라면 분리되어 있어야 할 입법·사법·행정 3권이 모두 왕에게 집중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왕이 국정을 혼자서 처리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또 연방정부에 행성이 민주적으로 운영된다는 것을 표면적으로나마 보여줄 필요가 있기 때문에, 여러 국가기구가 구성되어 있다.
주요 관직
지방행정네우게르마니엔의 지방행정제도는 기본적으로 주현제이다. 왕국 직할에 주(Herzogtum)가 있으며, 그 밑에 현(Grafschaft)이 있다. Herzogrum과 Grafschat는 원래는 각각 봉건제의 공작령과 백작령에 대응하는 용어이지만, 철저한 중앙집권 행성인 네우게르마니엔에서 두 용어가 단순히 행정구역의 명칭으로 쓰이기 때문에, 한국어로는 각각 주와 현으로 번역된다. 명목상으로 주와 현의 우두머리는 각각 공작(Herzog)과 백작(Graf)이지만, 그 두 작위는 왕이 겸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지방 행정사무를 처리하는 관직은 각각 후작(Vizeherzog)과 자작(Vizegraf)이다.[9] 후작과 자작은 모두 완전한 임명직으로, 임기가 정해져 있어 정기적으로 교체된다. 자연환경사회·문화종교네우게르마니엔은 네우게르마니엔 신성교회를 국교로 지정하고 있다. 네우게르마니엔 기독교라고도 불리는 신성교회는, 고대 인류의 카톨릭 교회에서 분화된 종파이다. 네우게르마니엔인 절대다수가 신성교회의 신자이며, 교회는 사람들의 생활 속 깊이 연관되어 있다. 성탄절, 부활절 등 신성교회의 축일은 국가공휴일이며, 교육, 결혼, 장례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신성교회는 네우게르마니엔인의 삶을 규정한다. 또한 일반적인 평민의 정치참여가 제한된 네우게르마니엔에서 교회는 평민이 군주에게 의견과 불만을 전할 수 있는 창구의 역할도 한다. 또한 교회는 이웃에 대한 사랑이라는 기독교적 교리를 기반으로 하여 자선과 구휼을 담당하며 사회적 약자를 돕는 자선단체를 겸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왕권신수설을 지지하면서 왕의 전제적 통치를 정당화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신성교회 신자가 이니라고 해서 명시적인 불이익이 생기는 건 아니지만, 교회는 네우게르만인 삶의 일부라, 비신자는 생활에 지장이 있을 수 있다. 교육생활 환경식문화네우게르마니엔이 전반적으로 기온이 낮아 추운 행성이다보니, 고열량 위주의 식단이 발달해있다. 네우게르마니엔 요리에 주로 사용되는 재료는 유제품, 고기, 생선, 버섯이며, 곡물과 채소는 상대적으로 비중이 적은데, 이는 네우게르마니엔의 기후가 농업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은 발전된 기술과 경제 덕에 곡물과 채소를 쉽게 재배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것이 어려웠던 정착 초기에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식재료를 위주로 요리해 먹던 식문화가 그대로 굳어져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10] 네우게르마니엔 요리는 따뜻한 수프의 비중이 큰데, 주로 우유와 버터 등으로 국물을 만들거나 고기육수를 국물로 써서, 거기에 각종 고기나 생선, 채소 등을 넣어 끓여먹는 식이다. 또한 고기와 생선을 훈제하여, 채소 등과 같이 먹는 요리도 많다. 음료류로는 부테르비어(Butterbier), 즉 버터맥주가 유명하다. 맥주에 버터와 계란, 설탕을 넣고 끓여 만드는 따뜻한 음료인데, 끓이는 과정에서 알콜이 날아가 알콜 함량은 극히 낮다고 한다.[11] 네우게르마니엔인들은 부테르비어를 아주 사랑하는데, 성인은 일일 평균 1.7L의 부테르비어를 마신다고 한다. 네우게르마니엔 왕립군의 전투식량에도 부테르비어가 반드시 포함된다. 호밀빵 등 빵 종류도 있지만 이쪽은 든든한 한끼라기보단 길거리에서 파는 간식이나 간딴히 떼우는 끼니 정도의 느낌이 강하다. 외교연방정부네우게르마니엔과 연방정부는 다소 미묘한 관계를 맺고 있다. 기본적으로 양측은 서로에게서 얻을 것이 많다. 네우게르마니엔이 초창기 빠른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연방정부에 의한 자유무역 체제였으며, 현재도 네우게르마니엔은 연방 내부의 행성간 무역을 통해서 큰 이익을 얻고 있다. 연방정부 입장에서는, 네우게르마니엔은 연방 변방계의 몇 없는 주요 거점이자, 동시에 그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인근 해적을 소탕해 주위의 행성간 무역로의 안전을 보장하는 파수꾼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양측은 서로에 대해서 불편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 네우게르마니엔에게 연방정부는 카를 1세가 시도한 영역 확장에 제동을 건 장애물이다. 또한 연방정부가 네우게르마니엔은 관심 없는 총력전을 위해 막대한 양의 물자와 인력을 징발했기 때문에 네우게르마니엔 대중도 연방정부에 대해 상당한 불만을 가지고 있다. 한편 연방정부 입장에서 네우게르마니엔은 자신의 힘만 믿고 변방에서 골목대장 노릇을 하며 주위의 약소 행성들을 겁박하는 문제아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이에 연방정부는 네우게르마니엔을 압박하고 억제할 겸, 인근의 해적도 소탕할 겸, 네우게르마니엔 행성계의 무인위성에 연방군 군관구사령부를 설치하고 소함대를 주둔시켜 놓은 상태다. 연방정부는 110세기부터 네우게르마니엔의 수도 베르겐슈타트에 공사관을 설치해둔 상태다.[12] 이는 영사관조차 변변치 않은 변방계에서는 보기 드문 조치로, 연방정부가 네우게르마니엔의 체급을 높게 평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네우게르마니엔 역시 연방의 수도성인 지구에 대사관을 두고 있다. 이웃 행성들네우게르마니엔은 이웃 자치행성들과도 참 미묘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네우게르마니엔은 변방계에서 손꼽히는 강대한 행성인 만큼 주변 행성들도 네우게르마니엔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다. 경제적으로 네우게르마니엔과의 무역의존도가 높은 건 물론이고 유행이나 미의 기준 등 문화적으로도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 그렇지만 네우게르마니엔과 그 인근 행성들이 사이가 썩 좋은 건 아니다. 네우게르마니엔의 카를 1세가 세력확장 시도를 하면서 인근 행성들을 무력을 사용해서라도 굴복시키려 했고, 그로 인해 이웃 행성들은 네우게르마니엔을 아직까지도 경계하고 있다. 특히 카를 1세에 맞서 군소 자치행성들을 규합하고 연방정부에 적극적으로 도움을 청한 자치행성인 카르마타는 네우게르마니엔에 큰 악감정을 품고 있다. 네우게르마니엔의 확장 시도가 좌절된 이후 카르마타는 유난히 해적들의 약탈에 시달렸는데, 해적의 규모가 평소보다 훨씬 크며, 눈에 띄게 조직화된 움직임을 보였다. 이에 카르마타는 네우게르마니엔이 확장 시도 좌절에 대한 보복으로 해적들의 카르마타 약탈을 사주한 것이라고 의심하여 연방법원에 네우게르마니엔을 고소하기도 했다. 네우게르마니엔은 의혹에 대해 딱 잡아뗐고 연방조정부의 조사 결과도 증거 불충분으로 결론났지만, 카르마타는 여전히 해적 공격의 배후에 네우게르마니엔 조정이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이로 인해 양측의 국민감정도 크게 안 좋다. 기타각주 |
- ↑ 본 행성과 두 개의 위성, 그리고 네우게르마니엔의 통치 하에 있는 인근 우주식민지 포함
- ↑ 변방계에서 인구가 20억 명이 넘는 행성은 아주 드물다.
- ↑ 타 행성의 행성방위군에 해당한다. 고대 미국에도 이와 비슷한 주방위군이라는 조직이 존재했다.
- ↑ 훗날 김 공사는 이 접견에 대해 "네우게르마니엔의 군비 증강의 목적은 행성 자위가 아니라 왕의 자위인 것이었다."라고 평가했다.
- ↑ 자치행성 간의 무역장벽과 행성의 타 행성에 대한 강제적 지배는 연방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 ↑ 행성 휘장과 완벽히 동일하다.
- ↑ 보통 연방군 하급장교로 입대하는데, 명령을 내리는 왕자에서 명령을 받는 하급장교로처지가 변화한 걸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도 빈번했다고 한다.
- ↑ 만약 그랬다면 베르겐슈타인 왕조가 천 이백 년 넘게 이어지지도 못했을 것이다.
- ↑ 두 단어는 직역하면 각각 부공작과 부백작이다.
- ↑ 다만 현재는 요리에 곡류와 채소도 꽤 쓰는 편이다.
- ↑ 네우게르마니엔 당국은 부테르비어를 술이 아닌 음료로 분류한다.
- ↑ 104세기에 설치한 영사관을 승격시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