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국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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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4]
  1. 한자문화권 국가로 분류되는 동남아시아 국가
  2. 중앙아시아, 북아시아의 일부로 분류되기도 함
  3. 한자문화권 국가로 분류되는 오세아니아 국가
  4. 영토의 일부가 중앙아시아, 남아시아, 동남아시아로 분류되기도 함


영화국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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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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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국
미국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영화국 캐나다 유럽연합(비공식)

G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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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중국 독일 영국
인도 일본 프랑스 이탈리아
영화국 캐나다 러시아 호주
브라질 멕시코 인도네시아 사우디아라비아
튀르키예 아르헨티나 남아프리카 공화국 유럽 연합


영화국
永火国 | Kingdom of Eika
국기 국장
明るい火が天地を照らす
밝은 불빛이 온 세상을 비추리라
상징
국가 영화가
국조
호반새
국화
오얏꽃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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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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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가쿄도
최대 도시
가쿄도
면적
230,958㎢
내수면 비율
1%
인문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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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총 인구
47,508,050명
밀도
205.6명/km2
민족 구성
영화인 94%
영화 원주민 3%
기타 3%
출산율
1.46명
기대 수명
81세
공용어
영화어(사실상)
지역어
영화 제어
공용 문자
한자(영화 표준상용정자), 가나 문자
종교
국교
국교 없음(신앙의 자유)
분포
불교 32%
기독교 29%
영화 신토 20%
기타 및 무종교 19%
군대
영화국 국군
하위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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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역행정단체
1도 4주 1부 10현
기초행정단체
n시 n구 n정 n향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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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체제
입헌군주제, 자유민주주의, 의원내각제, 다당제, 양원제, 단일국가
민주주의 지수
8.2점, 완전한 민주주의 (2022년)
국가 원수 (화주)
히노쿠니 미치요리
정부
요인
내각총리대신
아이자와 시노부
참의원의장
카마도 이치로
민의원의장
이타가와 에이코
대심원장
가네하라 메이슈
입법부
영화국 국회(·하원)
여당
영화민주당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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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체제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체제
GDP
(명목)
전체 GDP
$2,135,977,052,680
1인당 GDP
$44,960
무역
수입
$6,756억
수출
$7,114억
예산
세입
$6,409억
세출
$6,824억
외환 보유고
$3,870억
신용 등급
무디스 Aa2
S&P AA
Fitch AA-
화폐
공식 화폐
영화 엔
ISO 4217
EKY
단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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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연호
슈에이(朱榮)
시간대
UTC +9 (영화 표준시)
도량형
SI 단위
ccTLD
.ek
국가 코드
333, EIK, EK
전화 코드
+83
위치

개요

영화국(永火国), 약칭 영화(永火)는 오세아니아의[1] 영화 제도에 위치한 입헌군주제 국가이다.

영화국은 역사적으로 일본인 계통의 이주민들이 수립한 봉건제 군주정을 장기간 유지하다가 1906년 미국의 보호령이 된 뒤 점진적으로 정치 제도를 개혁해 오늘날의 의회제 민주주의를 토대로 한 입헌군주국으로 체제를 전환하였다. 1946년에 미국으로부터 주권을 회복한 이후로는 냉전 시기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가 공산화된 상태일 때 자유 진영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비약적인 경제 성장을 이룩하였다. 현재에 이르러 영화국은 세계 10위권 안에 드는 경제대국이자 다수의 국제기구가 공인한 선진국이며 외교적으로 봤을 때도 G20의 공식 참가국, G7 회원국 중 유일한 아시아권 국가, 영미상호안보조약을 통한 미국의 주요 군사동맹임과 동시에 준수한 국방력과 소프트 파워를 지닌 지역강국이라 볼 수 있다.

외치 시대를 거쳐 구축된 현 영화국의 정치 체제는 양원제를 채택한 국회에서 행정부 수반에 해당하는 내각총리대신을 선출하는 전형적인 의원내각제에 해당하며 영화국의 군주인 화주는 명목상 국가원수로서 형식적인 권한만을 행사한다. 현재 영화국의 화주는 히노쿠니 미치요리가 재위 중에 있고 내각총리대신은 아이자와 시노부영화민주당의 당수로서 단독정부를 구성해 재임하고 있다.

상징

국호

영화국이라는 명칭은 영화국 헌법에서 규정된 공식 국호로 보통 이를 줄여서 영화라 부르는데 이는 과거 영화국을 창건한 다이코 오키미가 해의 신(日の神)의 축복을 받았다며 나라를 건국했을 때, 그 신을 기리고자 나라의 이름을 영화(永火)로 지은 데에서 기원한 이름이다.

영화국의 국호를 영화어나 일본어로 읽을 시에는 그 한자를 음독한 에이카(えいか)로 독음하는게 원칙이다. 영화의 한자를 훈독해서 부르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영화국의 영문 국호 역시 이를 음차하여 Eika로 일컬어지고 대다수 국가는 영어처럼 영화의 음독인 에이카를 그대로 따라 부른다.

한편으로 영화라는 호칭 이외에도 영화국을 가리키는 비공식적인 이름들은 꽤 있다. 예를 들어 불의 나라라는 뜻의 히노쿠니(火の国)라던지[2] 엔코쿠(炎国), 해동화국(海東火国), 화본국(火本国) 같은 불을 매개로 한 바리에이션들이 역사적으로 영화국을 의미하는 별명들이었다.

국기

영화국의 공식 국기
단리백선양홍기丹李白線両紅旗
단리기丹李旗
제작 시기 1858년
제정 시기 영화국 조정(1858년)[3]
재영화 미국 고등판무관부(1906년)
영화 자치령 자치정부(1935년)
영화국 정부(1946년)
지위 공식 국기
근거 법령 영화국 헌법공식 규범
영화국 국기·국가법세부 규범
제작자 쇼켄 오키미
비율 3 : 2
유니코드 EK

영화국의 국기, 단리백선양홍기(丹李白線両紅旗, 단리하쿠센료코키)는 붉은 바탕을 가운데 백색 선이 양단하며 좌측 중앙의 적색 원에 영화국 왕실의 상징인 오얏꽃 문양이 하얗게 새겨진 깃발이다. 여기서 붉은 바탕은 번영과 풍요를 기원하는 만세의 불꽃, 하얀 직선은 올곧게 이어질 무결한 영화국의 미래, 오얏꽃 문장은 영화국을 이끄는 히노쿠니 왕실을 상징한다. 문양 부분이 약간 오른쪽으로 기울어진 이유는 해가 뜨는 동쪽을 가리키기 위함이라 한다.

구 영화국의 상선기

단리기는 화주 쇼켄 오키미가 직접 창안한 도안에 바탕을 두어 제작된 것으로 깃발이 마련된 초창기엔 오얏꽃 무늬가 현재처럼 90도 각도로 회전돼 있지 않았고 가로의 백색 선이 좌측에 치우쳐 세로로 깃발을 양분하는 차이점이 있었다. 또한 원래 단리기는 국기로 쓰일 목적으로 만들어진게 아니라 19세기에 문호개방을 단행한 영화국의 상선기로 이용하려 제정된 것이었다.

그러나 1906년, 미국령 영화국 정부가 출범하자 단리기는 기존에 국기로 쓰이던 왕실기를[4] 대신해 보호령 정부의 상징으로 지위가 급격히 격상되었으며 이후 영화국이 미국의 보호령에서 자치령으로 승격한 뒤에도 영화를 대표하는 상징으로 이어졌다. 훗날 1946년 주권 회복이 이루어졌을 때도 디자인만 현재와 같은 모양새로 약간 바뀐 채 독립국가 영화국의 공식 국기로서 계승되었다. 법적으로는 영화국 헌법에 그 존재가 대강 명기돼 있고 1947년에 별도로 성립된 국기·국가법에서 국기의 색감이나 규격 등 상세한 사항을 정한다.

국가

영화국의 공식 국가
영화가永火歌
지위 법률상 국가
채택 시기 영화국 조정(1905년)
영화국 정부(1946년)
근거 법령 영화국 국기·국가법
작사자 히노쿠니 아야코
작곡자 프란츠 에케르트
구세모토 우타(편곡)
언어 영화어
링크 유튜브 링크

영화국의 국가인 영화가(永火歌)는 독일인 작곡가 프란츠 에케르트가 작곡하여 영화인 음악가 구세모토 우타에 의해 편곡된 노래로 가사는 히노쿠니 아야코 공주가 신원 미상의 작가를 포함한 여러 시인들이 공동 편찬했던 시집 영가만요집(永歌萬要集)에서 내용을 따와 작사하였다.

영화가가 작곡된 계기는 1904년부터 근대 아시아 국가들의 국가 제정에 영향을 받은 선대 영화국 조정이 궁정 아악단과 에케르트의 합작으로 국가 도입을 추진한 것이었다. 조정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1905년 여름에 영화가가 완성되어졌고 직후 같은 해에 치러진 영화가의 시범 연주에서 화주 닌세이 오키미가 긍정적인 반응을 내비치며 영화가를 공식 국가로 삼았으나 이로부터 불과 1년 만인 1906년 제2차 아리에 조약으로 인해 영화국이 미국의 보호령으로 전락당하면서 영화가는 국가로 제대로 기능하기도 전에 그 지위가 위태로워졌었다. 그러나 40년이란 시간이 흘러 1946년 주권 회복과 함께 영화국이 정상국가로 복귀하여 영화가 또한 공공연히 그 존재가 격하당한 외치 시기를[5] 벗어나 국가의 지위를 완전히 회복했다.

가사 전반이 영화국의 건국 과정과 깊이 연관된 '불'을 찬양하는 내용을 주제로 담았다. 불의 밝음과 영원함을 찬미하는 구절이 곡의 처음과 끝에 배치돼 수미상관을 이루며, 불을 예찬하면서도 그 예찬의 대상인 불과 영화국을 연결시킴으로써 간접적으로 자국을 찬양하는 뜻으로 가사가 해석될 여지를 남겼다.[6]

음악의 분위기는 다소 어두운 편이지만 구카쿠(宮楽)에 기반한 영화 전통의 궁중 음악 선율과 서양적 색채의 곡조가 적절한 조화를 이루어 듣는 느낌은 상당히 좋다. 이는 에케르트가 유럽식 악풍을 베이스로 작곡했던 기존 영화가의 선율을 후일 주권 회복을 앞두고 1946년에 수석 궁정음악가 구세모토 우타가 편곡을 하는 과정에서 영화의 전통 음계에 맞게 수정을 가함에 따라 만들어진 부분이다.

법정 국가로서 왕실 행사, 전승절을 비롯한 국경일 행사, 외교 행사 등 주요 국가 행사에는 의무적으로 영화가의 제창이 실시되며 학교 행사 같은 각종 민간 행사에서도 제창을 권고하는 법제가 있다. 허나 국가 제창 권고를 거부했다 하여 행사 주체 측에 특별한 법적 처벌이 부과되지는 않는다.

가사


영화가
永火歌
明るい空の火は永遠で
아카루이 소라노 히와 에이엔데
환한 하늘의 불빛은 영원하며
万邦を守る火は高潔で
반포오 마모루 히와 코케츠데
만방을 수호하는 불빛은 고결하고
大地を堅固に照らす火は
다이치오 켄고니 테라스 히와
대지를 견고히 비추는 불빛은
千代に栄えるわれらと一緒だ
치요니 사카에루 와레라토 잇쇼다
천대에 번성할 우리와 같다
火は万歳にわたって
히와 이치만사이니 와탓테
불빛은 만세토록
変わらず世界を助けるから
카와라즈 세카이오 타스케루카라
변함없이 세계를 도우리니
天地を照らす火は無限に明るい
텐치오 테라스 히와 무겐니 아카루이
천지를 비추는 불빛은 무한히 환하다

국장

영화국의 비공식 국장
이화문李花紋
이명 오엽기표이화문(五葉基標李花紋)
이화어문(李花御紋)
이화문장(李花紋章)
채택 시기 영화국 왕실(1907년)
지위 법률상 왕실 문장
관습상 국장
근거 법령 영화국 왕실전범왕실 문장 규정
제작자 다이코 오키미

오얏꽃 무늬를 문양화한 이화문(李花紋)은 영화국의 관습상 국장이자 영화국 왕실의 공식 문장으로 다방면에서 영화를 상징하여 부착된다.

대표적으로는 각국의 국장을 표시해야 한다는 영화국의 여권 표지에 이 오얏꿏 문장이 들어가 있고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 최고기관들의 로고가 이화문으로 되어 있다.[7] 게다가 군·경의 계급장과 훈장 및 포장 또한 오얏꽃 문양이 쓰여진다. 또 영화국의 공식 국기인 단리기에도 이화문이 존재한다. 사실상 뚜렷한 성문화만 안 되어 있을 뿐이지 이화문이 왕실의 상징인 것을 넘어 실질적으로 영화국이란 한 나라를 대변하는 국장의 기능을 수행 중인 것을 알 수 있다.

이화문이 역사에 드러난 최초의 시기는 영화국이 건국된 14세기로, 왕실의 고문헌을 통해 이화문의 사용 흔적이 나타난다. 영화국이 건국된 초기부터 영화국 왕실은 붉은 자두 과실이 자라나는 자두나무를 신성시 여겼으며 그 자두나무에서 생장한 오얏꽃을 국가와 왕실, 특히 왕실의 상징으로 삼아 국정 사무, 예술, 건축 등 여러 방면에서 두루 이용했다. 이렇게 약 600년 간 이화문은 영화국의 국장 겸 왕실 문장의 기능을 명확히 수행하였고 대다수 국민들도 오얏꽃을 사실상 국화로 인식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1907년에 미 고등판무관부의 주도로 왕실전범이 제정되는 과정에서 이화문을 공식적인 왕실 문장으로 규정하는 조항이 전범에 삽입되었지만, 왕실의 영향력을 견제하던 고등판무관부의 방침 때문에 이화문이 국장이 되거나 오얏꽃을 국화로 지정하는 법령은 검토되지 않은 채 지금까지도 관습상 국장으로서만 지위가 유지되고 있다.

역사

이시즈카 시대

기원전 2000년경 전까지 오늘날 영화국이 위치하게 될 영화 제도에는 대륙과의 분리로 인류의 이주가 이루어지지 않아 오랫동안 문명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기원전 약 2000년대부터 카누를 타고 태평양을 유랑하던 오스트로네시아족의 한 분파가 제도 남부의 난카이 군도를 시작으로 영화섬에 상륙하게 되는데 이들이 바로 영화국의 선사 시대를 열게 되는 영화 원주민이었다.

아리에주에 위치한 이시즈카 고분의 모습

이후 입도 500년 만에 영화섬의 최북단 지역인 아이타현에이토부까지 다다른 오스트로네시아족계 이주민 세력은 영화 제도 전역으로 퍼져나가 원시적인 수렵·채집 문화을 발전시키고 애니미즘, 토테미즘에 기반한 토속 신앙을 숭배하며 제도 곳곳에 돌을 산처럼 쌓아 올려 만든 무덤 이시즈카(石塚)를 축조했다. 이시즈카는 규모나 종류 등 여러 면에서 매우 방대하고 다양했기에 영화국의 선사 시대를 대표하는 매우 중요한 고분 유적이었다. 이런 까닭에 역사학계에서는 영화 원주민들이 구축한 이 문명을 이시즈카 문화로 명명하기도 하였다.

난요 지방을 중심으로 발전한 이시즈카 문화영화 제도에 인류가 유입된 기원전 초창기부터 기원후까지 이어지며 수천년에 걸쳐 영화 원주민의 생활 양식에 근간을 이루었지만, 섬 바깥의 사람들이 국가를 태동시킬 때까지 이시즈카 문화권은 대륙과의 단절로 문명의 진보가 점차 정체하였고 그로 인해 영화 원주민들은 원시적인 부족 체제 하에서 기나긴 시간을 후진적인 석기 시대에 머물게 되었다.

시로즈카 시대

허나, 시간이 흘러 서기 11세기경에 이르자 선사 문화만을 영위해온 영화 제도에도 큰 변곡점이 찾아왔다. 헤이안 시대 연간의 정치적·사회적 불안이 닥친 일본에서 영화 제도로 사람들이 이주해온 것이었다. 혼란을 피해 영화섬으로 도래한 이들은 야마토인(大和人)으로 불리며 농경과 철제 기술 등의 각종 선진 문물을 제도에 전파하고 에이토부를 거점으로 시토 지방에 자리잡게 되는데 이러한 야마토인의 도래는 원주민 중심의 이시즈카 문화가 쇠퇴하고 시로즈카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분수령이 됐다.

본격적인 일본에서의 이주가 시작된 11세기 초중반에야 시토 일대에 정착했던 야마토인들은 도래 이후 불과 약 200년 만인 13세기 초에 이르러 섬 최남단의 고메이현까지 진출하며 급속도로 영화섬을 장악하기 시작하였다. 반면에 기존 영화섬의 주인이었던 영화 원주민들은 도래인이 창궐시킨 천연두에 의해 인구가 급감하면서 난요 지방으로 세력권이 급격히 위축되어버렸고 그 결과 야마토인들이 점차 원주민 계층의 인구를 압도하게 되어 시로즈카 시대를 전후하여 야마토인이 영화 제도의 주류 민족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우에미치현의 중형 시로즈카인 도쇼 고분(桃上古墳)

야마토인이 영화섬 전역을 석권하는 과정에서 시로즈카 시대의 문화 발전도 본격화되었다. 투박하게 돌을 쌓아올려 무덤을 만드는 이시즈카 양식이 사장되고 대신 영화 제도 각지에 권력자의 상징으로 시로즈카(城塚)라는 마치 성처럼 정돈된 외관을 지닌 고분들이 출현하며 이시즈카 문화 하에서는 볼 수 없었던 발달된 주거 유적과 철제 도구의 흔적이 등장하였다. 특히 시로즈카의 등장은 당시 농경 생활이 보편화된 영화 제도에 계급 사회가 형성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주요한 요인이었다. 이윽고 계급제의 발생으로 사회 지배층이 성립되자 제도의 평야 지역에선 수십개의 소국들이 발생하기 시작하였다. 이 제소국들은 12세기 후반부터 13세기 동안 각각의 다양한 시로즈카 양식을 개발하고 고유한 문화들을 발전시키며 성장하였지만 비옥한 농토 지대를 놓고 국가 간 세력 다툼이 치열해진 끝에 14세기에 이르러서는 대부분 5개의 주요 국가들로 통합되었다. 누대에 걸쳐 영화섬을 분할한 이 다섯 개의 나라들은 복속한 소국들의 고유한 시로즈카 양식을 엄격히 금하고 자국의 정형화된 양식을 강요했기에 제소국 지배층의 지원으로 수백년간 번성했던 시로즈카 문화도 멸망한 소국들과 함께 쇠퇴, 소멸의 길을 걷는다.[8]

고코쿠 시대

고코쿠 시대의 국가 간 판도

시로즈카 시대가 막을 내린 이후 영화 제도에서는 영화국, 양한국, 성신국, 경운국, 사경국으로 이루어진 주요 5국이 영화섬의 지배권을 차지하기 위한 패권 경쟁에 돌입하며 고코쿠 시대(五国時代)를 열었다. 제일 먼저 기나이 지방에 자리잡아 교역의 요지인 섬의 중심부를 평정한 양한국은 북부의 성신국, 남부의 경운국을 압박하면서 영토를 확장, 1388년에 즉위한 고에이 오키미의 치세에 전성기를 맞이해 5국 통일을 이룩할 뻔했다가 1402년을 전후하여 고에이 오키미의 급사로 빚어진 왕위 계승 다툼과 무리하게 일으켰던 정복 전쟁의 부담을 감당하지 못하며 동란기에 접어든다. 한편, 세이신의 풍부한 천연자원을 바탕으로 성장한 성신국과 게이운 지역의 비옥한 세이난 평야에 기반해 군사력을 육성했던 경운국은 국력 면에서 압도적 우위를 점한 양한국을 상대로도 나름 비등한 전쟁 구도를 성립시킬 수 있는 국력을 지녔었지만 장시간 이어진 양한국의 정복 전쟁으로 인해 성신국과 경운국의 국토까지 피폐해지면서 두 국가 또한 양한국과 유사한 시기에 내부 쿠데타로 인한 내분에 빠져들었다.

이렇게 기나이 지역을 중심으로 기존 영화 제도의 패권 분쟁을 주도하던 양한국과 성신국, 경운국이 일련의 내우외환을 겪으며 국력이 크게 약화되자 제도 통일의 주도권은 이제 섬의 중심부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던 시토 지방의 영화국에게로 옮겨지기 시작하였다. 타국들에 비해 비교적 늦은 1320년에 건국됐던 영화국은 명확한 패권 분쟁의 후발주자였으나 창업군주 다이코 오키미부터 쇼토쿠 오키미에 이르는 여러 명군들의 노력으로 패권 분쟁의 화마로부터 평화를 지키며 국력을 비축, 15세기 무렵엔 타국과 대등한 정치·군사적 입지를 갖추는데 성공한 상태였다. 이런 배경 속에서 1406년에 쇼토쿠 오키미의 뒤를 이어 영화국의 왕위를 계승한 쇼무 오키미는 우선 내란에 휩싸인 양한국을 속전속결로 정벌해 섬의 중심부를 장악하고 기나이에 잔재한 성신국, 경운국의 영향력을 축출한 다음 도읍을 에이토에서 기나이의 가쿄로 천도시켜 5국 통일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여문공 하루나가의 영화군과 하진-제성 연합군의 운명을 가른 나카가와 전투

이렇게 영화국의 세력이 급속도로 커지자 뒤늦게나마 1460년대부터 성신국의 후신인 하진국경운국의 후신인 제성국, 그리고 양한국의 잔당 세력이 연합하여 주슈쿠 오키미의 즉위로 영화국이 혼란스러워진 틈을 타 이들을 견제하려 시도했지만 여문공 하루나가의 활약에 연합의 공세가 돈좌되면서 영화국의 우위를 뒤집을 마지막 기회는 이때를 끝으로 사라져버린다. 이후 고켄 오키미의 선정을 통해 내부를 재정비한 영화국이 고분 오키미의 친정 아래 정복 전쟁을 재개하면서 하진국이 오랜 항전 끝에 영화에 복속되었고 농민 봉기로 붕괴된 제성국의 후신인 서부 열국과 사경국을 멸망시킨 영화 원주민이 세운 남양국이 차례대로 영화국에 병합됨에 따라 마침내 1533년, 고코쿠 시대가 끝을 맺으며 선대 영화국영화 제도 전역을 통일하여 지배하게 되는 통일 영화국 시대가 열린다.

통일 영화국 시대

덴카에 호황 연간에 문전성시를 이루는 상가의 모습

길고 길었던 고코쿠 시대를 종식시키고 영화 제도를 통합하는 데에 성공한 영화국은 그렇게 얻은 방대한 영토와 높은 인구수를 통해 덴카에 호황으로 불리는 경제 호황을 누리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에는 부를 축적한 각계각층이 예술과 학문을 지원하면서 하나야마 문화가 발달하고 일본인과는 구별되는 영화인의 뚜렷한 정체성이 점차 확립되었으며 정치적으로도 쇼세이 오키미쇼닌 오키미, 쇼에이 오키미로 대표되는 명군들의 활약으로 정국이 안정화될 수 있었다. 허나 이 과정에서 경제적 번영에 편승한 신흥 상인 계층들과 통일 이후 전국적으로 행해진 양전 사업에 의해 확대된 자영농 계층이 성장하며 정치적 발언권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신흥 상인 계층은 귀족들과 결탁한 기성 상권의 시장 독점을, 자영농 계층은 귀족 세력의 사회적 기득권과 불법적인 대토지 소유를 규탄하였고 이러한 대립 구도는 덴카에 호황의 이면에서 급속도로 커져갔다. 그러던 도중 쇼에이 오키미의 치세를 끝으로 경제의 활황 국면이 막을 내리자 신흥 상인들과 자영농 계급이 연합한 평민파, 귀족 중심의 기득권 세력인 귀족파 간의 갈등 구도가 본격적으로 부상하였다.

개항기

외치 시대

미정시기

일치시기

현대

지리

영화국은 일본 열도의 이즈 제도 이남에 자리하고 있는 영화 제도 전역을 영유하며 제도의 총면적은 230,958㎢로 한반도나 일본의 혼슈섬보다는 약간 더 크다.

인문환경

인구

민족

언어

종교

공공서비스

행정구역

영화국의 행정구역
기나이(畿内) 시토(始都)
가쿄도
火京都
아리에주
有江州
에노코주
惠農庫州
하루야마현
明山県
에이토부
永都府
아이타현
藍田県
우에미치현
上道県
고카쿠현
交客県
산코쿠(三国) 세이신(星新)
시나노주
信農州
미즈히네주
水火根州
에이키현
英基県
레이토현
嶺登県
고메이현
光明県
에이노현
栄能県
신치쿠현
新竹県
나카시로현
中城県
* 위 구분은 영화국 정부 내각부 산하 국토기획·이용본부에서 제정한 기준으로 관점에 따라 지역 분류가 바뀔 수 있다.
* 지방권역별특화정비법에 따라 산코쿠시나노주미즈히네주게이운 지방으로 분리하고 에이키현, 레이토현, 고메이현기나이하루야마현과 합쳐 난요 지방으로 묶기도 한다.

영화국의 행정구역은 최상위에 도주부현(都州府県)이라는 광역행정단체를 두고 그 산하에 시정향(市町郷)의 기초행정단체를 설치하는 구조다. 시정향 예하의 하급 행정 단위는

주요 도시권

정치

화주


화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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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주(火柱)는 영화국의 군주로서 국가원수에 해당한다. 현 영화국은 1999년 5월 1일에 즉위한 제24대 화주인 히노쿠니 미치요리가 재위 중에 있으며 연호는 슈에이(朱榮)다.

내각


영화국 내각총리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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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정당과 선거

정당

영화국 국회
원내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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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자와 3기 내각
(2021 ~ )
여당

영화민주당
90석 · 218석
야당

영화사회당
61석 · 110석

자유혁진당
24석 · 42석

영화 퍼스트
10석 · 10석

신정 영화
4석 · 4석

신당 미도리
2석 · 3석

사민당
2석 · 3석

여명당
2석 · 2석
무소속 4석 · 6석
재적 199석 · 398석공석 1석 · 2석
왼쪽은 참의원(상원) 의석 수, 오른쪽은 민의원(하원) 의석 수

영화국의 정계는 크게 보수주의 우익 정당으로서 1936년 결당 이래 2023년 현재까지 87년간 정부를 구성해온 영화민주당과 1980년대부터 제1야당 지위를 공고화한 사회주의 좌익 정당인 영화사회당이 양분하고 있으며 사회당 이전에 영화국의 제1야당 자리를 유지했었던 자유주의를 표방하는 중도 자유혁진당, 기성 정치권을 비판하며 등장한 우익대중주의 성향의 영화 퍼스트가 제3지대로서 주류 정치권으로 분류된다. 이밖에 강경한 정치개혁을 요구하면서도 이념적으로는 온건한 신정 영화나 녹색 정치를 공식 이념으로 내세운 신당 미도리, 사회당과는 차별화된 중도좌파 사민당, 명련종에[9] 바탕을 둔 중도보수 여명당 같은 군소 정당들도 어느정도 정치적 발언권을 지닌 채 존재한다.

선거

영화국의 주요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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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류 최근 선거 다음 선거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 29회
2023년 7월 5일
30회
2026년 7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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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회 · 30회
민의원 의원 총선거 28회
2021년 10월 24일
29회
2025년 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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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 · 2회 · 3회 · 4회 · 5회 · 6회 · 7회 · 8회 · 9회 · 10회 · 11회 · 12회 · 13회 · 14회 · 15회 · 16회 · 17회 · 18회 · 19회 · 20회 · 21회 · 22회 · 23회 · 24회 · 25회 · 26회 · 27회 · 28회 · 29회
전국통합지방선거 19회
2022년 8월 3일
20회
2026년 8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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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회 · 20회
중대공직 보궐선거 2023년
2023년 4월 26일 · 10월 25일
2024년
2024년 4월 24일 · 10월 30일
[ 역대 선거 펼치기·접기 ]
··· 2023년 · 2024년

영화의 선거 제도는 크게 중앙의 국회를 구성하는 국정선거와 지방의 자치행정단체를 조직하는 지방선거로 구분된다. 국회 양원의원과 자치행정단체장 등의 각 선출 대상은 모두 직접 선거로 뽑히고 만 18세 이상의 영화 국민이 평등하게 투표를 할 수 있는 보통선거제가 시행 중이며 피선거권 또한 만 18세 이상 영화 국민이라면 선거권과 마찬가지로 누구든지 부여된다. 정상적인 임기 만료가 이루어진다는 전제 하에 국회의원 선거참의원의원이 선출 정원을 절반씩 교체하며 3년, 민의원의원이 4년을[10] 주기로 시행되고 지방선거 같은 경우에는 전국의 모든 자치행정단체가 전국통합지방선거에 병합돼 4년마다 도주부현지사 선거와 자치의회 선거를 일괄로 치른다.

사법

경제

사회

문화

군사

외교

  1. 지리적으로는 오세아니아 지역에 위치하지만 문화권 자체는 일본의 영향으로 동아시아 쪽에 훨씬 가까운 편이다.
  2. 이 명칭은 영화국 왕실국성이기도 하다.
  3. 상선기로서 공포된 연도
  4. 왕실기는 흰색 바탕의 정중앙에 황색 또는 적색으로 칠해진 오얏꽃 문장이 위치한 깃발로 영화국 조정이 문호개방을 전후하여 본격화된 외국과의 외교 활동에 쓰일 국기로서 이 왕실기를 사용했었다가, 현재는 단리기에게 국기의 자리를 내주고 왕실을 상징하는 공식 깃발로만 남아 있다.
  5. 일본 치하에서는 아예 영화가가 국가의 지위를 박탈당했었고 미국의 보호를 받던 시기에도 고등판무관부 측이 새롭게 도입한 섬의 노래(島の歌)라는 곡과 미국의 국가 'The Star-Spangled Banner'가 공식 행사에서 영화가에 비해 더 자주 제창되는 차등 대우가 있었다.
  6. 다만, 네번째 구절의 잇쇼다(一緒だ)를 '같다'가 아닌 '함께 하다'로 해석할 경우엔 이런 의미는 다소 누그러지고 불꽃을 찬송하는 이미지가 강해진다. 한데 국기·국가법에도 정확한 해석이 명시돼 있지 않아 어느 쪽으로 해석을 해야 하는지 학자마다 의견이 공분하는데 대중적인 해석은 전자인 편이다.
  7. 한데 내각에서는 단풍나무 문양을 활용한 영화국 정부상징을, 국회는 의사당 건물을 본딴 국회 미디어 마크, 대심원은 정의의 여신 디케를 형상화한 문장을 더 애용하는 편이다.
  8. 시로즈카가 본격적으로 사라진 시기는 고코쿠 시대 초중반부터 각국이 박장령을 선포한 시점인데 사경국남양국에선 영화 원주민들을 중심으로 망국 직전까지 근근히 시로즈카를 축조했던 흔적이 남아 있다.
  9. 명련종은 17세기에 승려 메이렌(明蓮, 1599년~1670년)이 영화의 토착 신앙과 불법(仏法)의 가르침을 융합시킴으로써 창시한 신흥종교로 신자수는 약 60만명 정도다.
  10. 민의원의원 총선거는 총리가 민의원을 해산하여 조기 총선을 치룰 때가 빈번한 탓에 4년 주기를 꽉 채워서 시행하는 경우를 보기 힘들다. 지금까지 있었던 29번의 민의원 선거 중 3분의 1을 밑도는 9번만이 통상적으로 치러진 임기 만료에 따른 총선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