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칠문필랑
矮七文匹郞
시조천제존영, 사카타 히로시作(1956년)
시조천제존영, 사카타 히로시作(1956년)
지위
제1대 타카마웨
재위 기원전 500년(?) ~ ?
즉위식 기원전 500년(?) ?월 ?일
전임자 ?
후임자 왜토농만(矮討弄卍)
이름
칠문필랑(七文匹郞)/질분힐량(質芬詰亮)
별호 니일관국 왜후(尼逸冠國矮侯)/태존왕(太尊王)
묘호 시조(始祖)
시호 숭극치성태평광요천제(嵩極致聖太平光燿天帝)
능호 아라소지릉(牙羅召旨陵)
신상정보
출생일 기원전 620년 5월 25일(?)
출생지 북도 이미타시(?)
사망일 기원전 ?년 ?월 ?일
사망지 ?
능묘 아라소지릉(牙羅召旨陵)
매장지 이비광현 아라소지군
왕조 왜씨 왕조
부친 왜다곤지비루(矮爹坤址匕累)/예(倪)
모친 오도사가름원(烏度査可澟媛)/희(姬)
배우자 비고노야(比高野也)
자녀 왜토농만

왜칠문필랑(만화어:矮七文匹郞, 기원전 620년(?) ~ 기원전 ?년 )은 이비광의 초대 타카마웨이다. '태존왕(太尊王)'왕호를 후이비광에게서 받았으며, 이후 다마국, 몽야마, 만화국을 거치면서 추존묘호로서 '시조(始祖)'를 받고, 추존시호로서 '숭극치성태평광요천제(嵩極致聖太平光燿天帝)'를 받았다. 역지에 따르면 기록상으로 왜씨 왕조의 시조인 왜다곤지비루오도사가름원의 차남이며, 에리스교의 성전(聖典)중 하나인 대승공윤문지(大承鞏胤文紙)에 따르면 종지법윤서기(宗志法允書記)에서 언급된 최초의 인간들인 자웅십시(雌雄拾始) 중 예(倪)와 희(姬)의 32남이다.

칭호

대만화국 시조 숭극치성태평광요천제 (大灣華國 始祖 嵩極致聖太平光燿天帝)

시조 숭극치성태평광요천제(始祖 嵩極致聖太平光燿天帝)공종 광희천제가 내린 묘호와 시호이며, 현재 만화국 황실에서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명칭이다. 만화국은 현재까지 거쳐오면서 역사상의 여러 성군들에게 명예적인 묘호와 시호를 내려왔는데, 왜칠문필랑은 제 1차 통일왕조인 왜씨왕조 중 유일하게 만화국 천제로부터 묘호와 시호를 둘다 받은 군주이다.

다마국 태존왕 소성대군 (多麻國 太尊王 昭聖大君)

태존왕 (太尊王)융흥왕으로부터 430년에 받은 왕호이며, 소성대군(昭聖大君)태종대군의 치세인 603년 전명대신성산우진천으로부터 받은 군호이다. 그러나 후이비광의 존재를 의식 할 수 밖에 없던 시대적 상황과 더불어 태존왕이라는 왕호는 어디까지나 최초의 통일군주로서의 예우였을 뿐이었기 때문에, 세간에서는 '왕호를 받은 왜씨'라는 뜻에서 왜씨왕으로 더 많이 불렸다.

천모사 성결전사 왜질분힐량 (侍天母使 聖潔戰士 矮氏大王)

시천모사 성결전사 (侍天母使 聖潔戰士)는 에리스교 내부에서만 쓰이는 명칭이다. 에리스교에서는 왜칠문필랑의 다마도 통일과 남부정벌을 비롯한 모든 통일전쟁을 천모 에리스의 큰 뜻(元義)을 널리 퍼트리기 위한 성결한 전쟁으로 보기 때문에, 에리스의 심복인 반신반수 홍룡의 현인신의 후손으로 취급되는 홍씨황조인 태조 개락천제를 제외한 나머지 두 통일군주에게 '시천모사'라는 직위를 내렸다. 일례로 제 2차 통일왕조를 열어낸 환잉대군은 '시천모사 성결대왕'이라는 직위를, 1대 전명대신성산양등환은 '시천모사 성결대장군'이라는 직위를 받았다.

이비광국 타카마웨 왜칠문필랑 (尼逸冠國 茶加馬艾 矮七文匹郞)

치세 당시에 쓰였던 명칭이다. '타카마웨(茶加馬艾)'는 이비광의 군주를 이르는 칭호로, '높으시고 존귀한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생애

기원전 620년 출생이라는 것의 근거는 이비광의 유일한 역사서이며, 다마국 성산씨 정권시대에 유물로서 출토된 죽간목독으로 쓰인 역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역지(歷紙)는 시대상 170년부터 시작된한풍을 주도하던 시태왕 때의 작품이며, 역지의 제작년도를 180년정도로 어림잡았을 때, 800년 전 왜칠문필랑 대왕이 탄생했다는 언급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후 즉위년도는 300년 후라고 언급되기 때문에, 출생년도와 즉위년도간의 텀이 300년이나 된다. 그러나 한편, 이비광의 건국년도는 180년 당시로부터 680년전인 500년이라 언급되기 때문에, 출생년도와 즉위년도, 건국년도가 뒤죽박죽이다.

역지에서 서술된 바에 의하면, 왜칠문필랑은 아버지인 왜다곤지비루를 추장으로 하는 북부 다마도의 이미타지역의 한 성국(가로)에서 천신 아라스(亞羅壽)의 가호를 받으며 태어났으나, 이를 시기한 주변 가로로부터 공격을 받아,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인 오도사가름원은 빼어난 미모 때문에 성노예로서 납치당하게 되었다. 왜칠문필랑은 이에 성장하여 이비광을 건국한 후, 천신 아라스(亞羅壽)의 명을 받아 전 다마도를 정벌하였으며, 이후 남쪽을 치라는 하늘의 명을 받고 다마해협을 건너와 남정(南征)을 개시했다고 적혀있는데, 여기서 아라스라는 신의 존재는 원시 에리스교의 주신으로서 추측되고 있다.

왜칠문필랑은 남정을 개시하면서 궁다래, 기부사, 고타루등의 야만국들을 정벌하고, 현재 이비광현의 남부인 요루사나가라를 기점으로 요해진타 반도쪽으로 향하여 요해진타성을 지었다고 한다.

이후의 치세나 죽음에 대한 서술은 없는데, 이는 한풍 이전의 대부분의 타카마웨에 대한 서술에 대한 특징이며, 다행히도 9대 타카마웨인 왜즐미무칭때 부터는 교차검증을 통해 간접적으로 사망일이 확인가능하게 된다.

그러나 왕릉 자체는 전도시대 때 부터 알려져 왔으며, 이에 관한 서술또한 이후 왜즐미무칭의 대에 가서 직접적으로 언급이 되는데, 요해진타성으로부터 동쪽에 위치한 곳에 성역(聖域)을 찾았으며, 이곳을 아라소지(牙羅召旨)라고 명명 후 능으로 삼았다고 한다. 이비광현아라소지군은 그러한 아라소지릉의 소재지라는 뜻에서 명명되었으며, 현재도 만화국의 국보 중 하나로 등록되어있다.

종교 상의 생애

왜칠문필랑은 최초의 인간들인 자웅십시(雌雄拾始) 중 예(倪)와 희(姬)의 32남이다. 자웅십시들은 혼약과 관계 없이 난교로 수많은 자손을 낳았기 때문에, 부모의 관계를 따지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다. 자웅십시는 총합 1800인의 자손을 낳았는데, 이 1800인이 또 자손을 낳고 또 자손을 낳으면서 과거 에리스가 자웅십시에게 준 깨달음인 '큰뜻(元義)'를 잊고 세력을 나눠 분열하였다.

에리스는 이에 1800인의 자손 중 어떠한 세력에도 들어가지 않은데다가 큰뜻을 잊지 않고 자연 속에 살아가던 성사(聖士) '질분힐량'을 시켜 통세지명(統世之命)을 받들게 하고, 작은 키를 가진 사내라는 뜻에서 왜(矮)씨 성을 내리었다. 하여 왜질분힐량은 에리스의 명을 받고 성정(聖征)에 나섰으며, 결국 전국을 통일하고 에리스의 큰 뜻을 따르는 국가로서 이비광을 세웠다.

관련 문화재

참고 문헌

기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