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국 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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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 수문천제
靖祖 壽文天帝
壽文二年御眞
壽文二年御眞
홍룡의기세정승국표장문
홍룡의기세정승국표장문
지위
만화국 제 22대 천제
재위 1919년 2월 23일~1935년 5월 11일
즉위식 1919년 12월 23일
전임자 무종 요란천제
후임자 장조 오행천제
총리
이름
홍예의 제찬철희 (弘譽懿 製璨撤囍)
연호 수문(壽文)
묘호 정조(靖祖)
신상정보
출생일 1861년 5월 13일
출생지 만화국 앙천경 운양별궁
사망일 1935년 5월 11일
사망지 만화국 경항성 경항별궁
능묘 이화릉(梨華陵)
매장지 만화국 성경부 상춘구
왕조 만화국 황조
가문 경내궁 홍씨
부친 의종 무송천제
모친 수원황후(秀鴛皇后)
배우자 열화황후(悅華皇后)
자녀 장조 오행천제
종교 에리스교


정조 수문천제(靖祖 壽文天帝, 1861년 5월 13일-1935년 5월 11일)은 만화국의 제 22대 천제이다.

휘는 예의(譽懿,요이토), 제휘는 제찬철희(製璨撤囍,세이산테츠키). 수문(受文, 쥬몬)이라는 연호는 그가 천제로 재위 할 때 사용하였다. 시호는 정조(政組)이다. 1919년부터 1935년까지 총 16년동안 즉위하였다. 정조 수문천제의 치세는 외제습침으로 시작된 대일항쟁으로 인한 혼란이 가중된 시기였다. 이러한 분위기 속 정조 수문천제는 김원승 국무경과 함께 출궁조정을 이끌고 대일항쟁을 후원하는 등 만화국의 정체성과 정통성을 유지하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생애

1861년 홍광찰 제화영패 당시 황태자와 수원태자빈 사이에서 출생하였다. 차남으로 출생하였기에 차기 황위는 당연히 형이자 장남인 무종 요란천제에게 계승될 예정이였고, 정조 수문천제는 다른 황자들이 그랬듯이 군인이나 학자의 길을 걸을 예정이였는데 그 중 군인을 택했다. 1880년 육군군관학숙에 입학하였고, 1881년 친왕(親王)의 칭호를 받았다. 1886년 육군군관학숙을 졸업하고 주재무관 자격으로 프랑스에 유학하여 생시르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하였고, 소뮈르기병학교와 프랑스 육군대학을 졸업하였고, 프랑스 육군의 제7기병연대에서 복무하다가 1894년 귀국하였다.

이후 황족 출신 장교가 되어 1895년 대위로 임관하였고, 이후 기병대대장을 거쳐 제1기병연대장으로 승진하였고, 참모본부로 발령되었다가 1902년 육군소장으로 승진하여 제3기병여단장으로 취임하였다. 이후 1912년 대장이 되었고, 1918년 원수로 승진하였다. 이는 만화육군 역사상 최연소의 원수였다. 이렇듯 정조 수문천제는 군인으로서 뛰어난 두각을 드러냈으며, 만화육군을 지휘하는 위치에 올랐다.

그러나 1919년 형이자 선황이였던 무종 요란천제가 스페인 독감으로 붕어하였고, 선황이 후사가 없었기에 자연스럽게 황위는 정조 수문천제에 돌아가게 되었다. 정조 수문천제는 갑작스럽게 황위에 오르게 되었고, 당시 세계 정세는 급변하고 있었다. 일본과 중국의 대립이 격화되고 있었으며 미국과 영프, 소련 등의 열강 역시 아시아에서의 영향력을 넓히려 했다. 특히 일본의 팽창 행보가 가속화되기 시작하였고 이로 인해 1920년 일본이 만화를 침공하는 외제습침이 일어나게 된다.

일본제국은 만화국을 침공한지 1년만에 평경성 전체를 점령하고 경도를 함락하였으며, 경도의 함락이 다가오자 김원승 국무경과 정조 수문천제는 눈물을 머금고 부득이하게 경항으로 어가와 조정을 옮기게 되었다. 이를 '수문출궁'이라고 한다. 1921년 5월 20일 경항의 쿠와노지마노베츠고쿄(桑洲別御居)(現 경항별궁)에 당도한 김원승과 수문천제 세력은 출궁조정 성립을 선언하였다. 이후 괴뢰정권과 출궁조정은 도서국 전투와 평경성 전투 등으로 대표되는 '호국전쟁'을 벌였으며, 이 과정에서 종왜군광란이나 적경대학살 등의 전쟁범죄나 잔혹한 사건 또한 많이 일어났다.

정조 수문천제는 1921년 출궁조정 성립 이후 경향부를 중심으로 군사와 의병, 독립운동가들을 규합하기 시작하였고 만화 대일항쟁의 상징적인 존재가 되었다. 또한 김원승 국무경을 전적으로 지지하였으며 이는 마치 빌헬름 1세와 비스마르크 재상의 관계와도 같았다. 이후 출궁조정의 항일군은 도서전투와 평경성전투에서 전공을 올리고 게릴라 전술로 일제에게 타격을 주었고, 이는 만화국민들에게 큰 힘을 주었다. 반면 일제에게는 정조 수문천제는 눈엣가시같은 존재가 되었다. 그러나 천제를 제거하기에는 리스크가 너무 컸기에 일제는 김원승을 제거하기로 하고 암살 작전을 전개했지만, 암살은 미수로 그치게 되었고 오히려 항의 시위인 5.10대항거를 발생시키는 등 대일항쟁을 더 키우는 도화선이 되고 만다.

정조 수문천제는 계속하여 대일항쟁의 구심점으로 있었으나, 그 과정에서 지나친 피로와 과로에 시달리게 되었고 결국 1935년 뇌출혈으로 붕어하였다. 이후 1936년 붕어 1주년 추모제가 적경에서 열렸는데, 추모제는 대규모 반일시위로 확대되었고 일제는 이를 유혈진압하게 된다. 이를 '적경대학살'이라고 칭한다.

평가

현재도 정조 수문천제는 만화국의 자주성을 지켜낸 위대한 명군으로 칭송받고 있는데, 만화국민이 존경하는 천제를 꼽는다면 늘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