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 대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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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이 문서는 제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난 원인에 대하여 서술하는 문서이다.
전간기 동안 우라즈카 공화국에서는 제1차 세계 대전에서의 패전을 대가로 승전국에 대한 막대한 전쟁 배상금과 군비 제한을 통해 유스카로프가 다시금 군사강국으로 도약하는 것을 억제하는 벨렘 조약의 가혹한 조건에 대해 깊은 원망과 분노가 들끓었다. 특히 마르케비치 지역의 비무장화와 동시에 드레볼리시아, 비슬라비아와 유스카로프의 통일 금지, 유스카로프의 해외 식민지 상실, 유스카로프 영토 40%가 상실하는 것을 넘어 국토가 여러 개의 국가로 쪼개진 것은 유스카로프 내 정치에 강력한 회귀주의의 흐름을 불러왔다. 한마디로 견제국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내 제대로 된 기능조차 못하는 우라즈카 체제가 아닌 1차 대전 당시의 막강한 국력을 행사하던 제국주의 유스카로프를 원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우라즈카 공화국은 겉으로는 민주주의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실질적으로는 승전국들이 패전국을 견제하기 위해 강제로 떠맡긴 체제에 불과했다. 공화국 정부는 전쟁 배상금과 경제난으로 인해 실질적인 행정 능력을 갖추지 못한 상태였고, 이러한 정국에서 우라즈카 국민들은 민주주의를 불신함은 동시에 무능한 정부를 비판하며 이들의 불만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때 우라즈카 국민들의 눈길을 사며 급부상한 정당이 바로 '대유 국가혁신당' 즉 비로젠치였다. 비로젠치는 1929년부터 유스카로프에서 연이은 총선 승리로 빠른 속도로 권력을 휘어잡았고, 유스카로프 민족의 재통합과 강력한 중앙정부의 수립, 군사력 부활, 벨렘 조약 철폐을 주요 기조로 삼았다. 이러한 비로젠치의 공격적인 국내외 정책은 국민들의 불만을 효과적으로 흡수하며 비로젠치 정권을 더욱 공고히 했다.
이러한 한편 모명 공화국에선 1차 대전에서 승전했음에도 양국과 루미에르의 압박으로 제대로 된 승전국의 지위를 누리지 못한 것은 물론 이로 인한 국민들의 불만이 극에 달해 모명 정부가 대내외적인 압박을 받고 있었다. 모명의 국민들은 이런 무능한 정부를 붕괴시키고 양국과 루미에르에 대한 강력한 외교를 펼칠 이들을, 즉 모명 국가 민족 단결당을 환대했고 이는 곧 로테 모명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이를 이웃한 신유스카로프가 모를리가 없었고 같은 파시즘 국가인 로테 모명과 손을 맞잡는 한편 아렌시아의 군국주의 국가인 이네메지아 제국까지 동맹을 요청하자 로테 모명과 신유스카로프가 이에 응하며 동맹국이 탄생하게 되었다.
궁극적 원인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유스카로프 제국이 패하고 벨렘 조약이 체결되면서 그 후신 국가인 아자르카의 국민의 불만이 가중 되어갔고, 그 여파로 인해 여러 극단적인 정부들이 생겨나면서 아자르카의 정치는 혼란스러웠다. 이 상황을 지켜보던 대현월국은 유스카로프가 또 다시 전쟁을 일으킬 것을 우려해 아자르카에 대대적인 투자를 시행하며 아자르카를 안정시켰다. 하지만 그것을 견제하던 양국과 루미에르는 추가적인 경제제재를 넣어 대현월국의 지원을 무력화 시키고자 하였고, 이에 눈치를 보던 대현월국이 투자를 점차 줄여나가면서 다시금 아자르카의 정치는 혼란스러워지고 만다.
그 순간, 회귀주의, 민족주의를 이념으로 삼는 대유 국가혁신당, 속칭 비로젠치가 아자르카의 공산당 등을 제치고 야당이자 유일한 정당으로 들어섰고, 극단적인 두 이념을 가진 정당이 정권을 잡은 아자르카는 걷잡을 수 없게 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