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1979년 영국 총선거

1974.10 ←
1979년 5월 3일
→ 1982년

선출의석: 635
과반의석: 318
투표율 76.0% (증가 3.2%)
  제1당 제2당 제3당
 
지도자 마거릿 대처 제임스 캘러헌 데이비드 스틸
정당 보수당 노동당 자유당
지도자 취임 1975년 2월 17일 1976년 4월 5일 1976년 7월 7일
지도자 선거구 핀칠리 남동 카디프 록스버그
이전선거 결과 277석, 35.8% 319석, 39.2% 13석, 18.3%
획득한 의석수 339석 269석 11석
의석 증감 증가 62석 감소 50석 감소 2석
득표수 13,697,923 11,532,218 4,313,804
득표율 43.9% 36.9% 13.8%
득표율 증감 증가 8.1% 감소 2.3% 감소 4.5%

선거전 총리

제임스 캘러헌
영국 노동당

총리 당선자

마거릿 대처
영국 보수당

1979년 영국 총선
 %
50
40
30
20
10
0
43.9%
36.9%
13.8%
득실표율
1974년 선거와 정당별 득실율 비교
  %
 10
   8
   6
   4
   2
   0
  -2
  -4
  -6
+8.1%
−2.3%
−4.5%



1979년 영국 총선1979년 5월 3일에 실시되었다. 이 선거에서 제임스 캘러헌을 총리로 한 노동당은 지난 5년 동안 영국병이라 일컫는 사회 문제들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큰 비판을 받아왔다. 반대로 신자유주의 정책을 내세우며 1975년보수당대표에 취임한 마거릿 대처영국 최초로 여성 총리에 취임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선거 결과 보수당은 339석을 차지해 과반선을 넘기며 정권 교체를 이루었다. 노동당은 269석을 차지하였으며 자유당은 기존 13석에서 11석으로 의석이 줄었다. SNP의 경우 기존 11석에서 의석이 크게 감소해 2석을 차지하는데 그쳤다. 이 선거에서 전 자유당 대표였던 제레미 소프는 낙선하였다.

배경

1974년 10월 영국 총선에서 1석 차이로 턱걸이 과반을 차지한 노동당 내각은 이어진 재보궐선거에서의 패배로 인해 과반을 상실했고, 해럴드 윌슨 수상에 이어 취임한 캘러헌 수상은 자유당과의 연정을 통해 정부를 꾸려나갔다. 총선이 치르려 했던 1978년 10월까지도 노동당의 지지율은 지난 총선보다 떨어지긴 했으나 보수당과 엇비슷한 정도였다. 그러나 캘러헌 수상은 세금 감면과 함께 이듬해 불황을 극복할 전망으로 선거를 1년 늦췄다. 그러나 '불만의 겨울'이라 불린 그 해 겨울은 전국적으로 파업이 이어졌고, 노동당의 지지율은 추락했다. 그리고 SNP마저 스코틀랜드 자치권 이양과 관련해 지지를 철회하자, 의회는 선거를 5개월 앞두고 1표 차이(311:310)로 내각 불신임안을 통과시켰고, 조기 총선이 치러지게 되었다. 노동당은 복지 문제와 고용 문제를 내세웠고, 보수당은 2차 석유파동을 계기로 경제 문제를 이슈화했다. 자유당은 전 대표였던 제레미 소프과 동성애 의혹과 그로 인해 연인을 살해했다는 의혹으로 사임해 타격을 입었다.

선거 결과

정당별 당선자 수 (명)
정당 의석수
보수당 339
노동당 269
자유당 11
얼스터 연합주의자당 5
스코틀랜드 국민당 2
웨일스당 2
사회민주노동당 1
통합 얼스터 연방주의자당 1
얼스터민중연맹당 1
무소속 1
합계 6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