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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6th Blood Demonic War
- 상세
십자군의 예루살렘 원정 이후, 6번째로 벌어진 인간과 혈식인들 사이의 혈악 대전. 1939년, 독일의 나치당이 독일의 혈식학 비밀 결사인 툴레 협회와 협력해 혈식인을 무기로 개발, 독일 국방군 산하의 혈식학특별사령부(Bluttruppen Sonderkommando)를 창설해 성전기사단의 본거지가 있는 프랑스를 침공하면서 시작된 전쟁이다. 성전기사단의 저항에도 프랑스 정부가 항복하고 성전기사단을 지원하던 교황청이 이탈리아에 의해 봉쇄되자 성전기사단은 영국으로 대규모 탈출을 감행했다. 독일은 혈식인들의 전투 능력을 극대화 시키기 위해 인공 강우를 발생 시키는 장치를 만들고 이를 영국 전역에 대규모로 사용하며 영국은 전쟁 기간 동안 햇빛이 가려진 날씨가 유지되었으며 독일의 루프트바페가가 런던에 수송기를 사용해 혈식인들을 투하하며 런던 전투가 벌어지기도 했다. 독일이 적극적으로, 그리고 전술적으로 혈식인들을 무기로 사용하자 베르세르크 집단인 공동보호협약이 성전기사단, 왕립 국교 기사단과 손을 잡으며 인류 최초로 베르세르크와 인간 사이의 협력 관계가 형성 되었다. 이를 통해 조직된 '연합군 혈생학 사령부'는 훗날 국제혈식인대응기구(IHRO) 창설의 초석을 다지게 된다.
- 전개
1933년, 아돌프 히틀러가 권력을 장악한 직후, 제국혈식학회에 소속되었던 베르너 폰 젤비히는 당시 독일 내에서 활동하던 툴레 협회 및 SS 산하의 아네네르베와의 협의를 거쳐, 혈식학의 완전한 군사화를 목적으로 하는 전담 기관의 설립을 제안하였고, 그 결과 혈식학청의 창설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하였다. 이 과정에서, 과거 제5차 혈악대전 당시 생포되었던 4형 베르세르크 개체인 '라트무트'의 신체를 연구 기반으로 삼아, '롱기누스 프로젝트'라 불리는 혈식학적 무기 개발 사업이 극비리에 개시되었으며, 이 프로젝트는 고위 간부들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군사적 실용화를 목표로 속도를 내기 시작하였다.
1938년, 전면전을 앞두고 독일 국방군 산하에 ‘혈생학특별사령부’가 설치되었으며, 같은 해, 인류의 약 3%를 '선택 감염'대상으로 설정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뉘른베르크 계획’이 극비리에 수립되어 혈식학청에 의해 내부 배포되었다. 이와 동시에, 혈식학청은 약한 혈식병 접종을 통해 감염자들의 공격을 방지 할 수 있는 3호 백신, 일명 'Blitz-Serum(번개 혈청)'의 개발 및 시험에 성공하였고, 이를 통해 군 간부급 인원을 포함한 독일 전군에 백신 접종이 이루어지며 혈식학 기술의 실전 배치가 개시되었다.
1939년, 독일의 폴란드 침공 시기, 혈생학특별사령부는 새롭게 개발된 혈식학 무기를 실제 전장에서 시험하기 위해 ‘루비콘 수송열차’에 2형 감염자 1,200명을 탑승시킨 뒤 바르샤바로 이송하였고, 이에 따라 바르샤바 도심에서 대규모 감염 사태가 발생하게 된다. 이 사건은 유럽 전역에 충격을 주었고, 곧바로 왕립국교기사단과 공동보호협약 측은 독일의 혈식학 무기 사용 정황을 파악하고 혈생학청 연구시설에 대한 교란 작전을 전개하기 시작하였다. 독일은 이러한 움직임을 통해 혈식학 기반 단체들이 본격적으로 전쟁에 개입하고 있음을 인지하게 되었으며, 이후 프랑스 전역에서는 ‘노이에 누벨바흐 작전’을 통해 3형 감염자를 대규모로 공수 낙하시켜 파리 북부에 침투시켰고, 이 작전을 통해 성전기사단 단장을 포함한 고위 인사 다수가 제거되는 성과를 거두며 파리 점령 이후에는 성전기사단이 보관 중이던 고대 베르세르크, ‘자라타이’의 신체 일부 표본을 확보하게 되었다.
이 시점부터 공동보호협약은 성전기사단 및 왕립국교기사단과의 정보 공유 및 작전 협력을 강화하기 시작하였으며, 이에 따라 1940년에는 연합군 산하에 혈식학 대응을 위한 독립 기구인 '연합군 혈생학 사령부(OMS)'가 공식적으로 창설되었다. 같은 해, 독일-이탈리아-일본 간 삼국 동맹 조약이 체결되며 협력 체제가 공고히 되었고, 일본은 독일 측으로부터 제공받은 혈식학 연구 자료를 바탕으로 기존의 혈식학 부대였던 '만주 88연구소'를 재편해 제국 혈생학과로 승격시키는 조치를 단행하게 된다.
1941년, 동부 전선이 개시되며 독일의 혈생학특별사령부는 수년간 개발해오던 혈식학 무기들을 본격적으로 실전에 투입하기 시작하였고, 특히 베르세르크의 혈액을 정화 및 주입함으로써 인간의 생리적 한계를 뛰어넘는 강화가 가능한 수준에 이르게 된다. 이에 따라 독일은 혈생학특별사령부 산하에 인간-베르세르크 하이브리드 병력을 운용하는 '아이제른 하르트군단'을 창설하고, 여기에 SS 제17무장척탄병사단 '레콘키스타'를 병행 편성하며 혈식학 전력의 본격적인 전개를 준비한다. 이에 맞서 소련은 독일의 혈식학 무기에 대응하기 위해 '작혈실험군(SKP)'이라는 독자적 혈식학 전담부대를 창설하고, 시베리아 일대에서 활동 중이던 히페리오니 교단을 기습하여 혈식학 관련 자료들을 대량 확보하며 연구에 착수한다. 특히 레닌그라드 공방전에서는 독일과 소련 양측의 혈식학 전력이 정면으로 충돌하게 되었으며, 이 전투는 역대 혈악대전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치열한 혈식학 전장으로 기록되었다. 한편 태평양 전선에서는 일본이 과달카날 전투 중 3형 산화가스 B-SPORE를 살포하여 OMS 전력을 무력화하려 했으나, 연합군 혈식학 대응 연구소의 선제적 방역 대응이 성공하면서 일본군은 퇴각하게 되었고, 이어 일본군이 확보한 핵심 4형 개체들을 수송 중이던 수송선이 격침되며 일본의 혈식학 연구는 결정적인 타격을 입고 침체에 빠지게 된다.
- 교전 세력
- 추축국
- 툴레 협회
- 독일국 국방군 혈생학특별사령부
- SS제17무장척탄병사단 레콘키스타
- 제3의 세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