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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Provisional Government of the Kamchatka
독일어: Provisorische Regierung der Kamchatka
러시아어: Временное правительство Камча́тский
캄차카 왕정부
(1875~1889)
堪察加 王政府
국가 폐하를 위하여
(중국어: 爲了陛下 / 러시아어: Для моего величества)
국목 참수리
(중국어: 虎头海雕)
표어 왕정복고
(중국어: 王政復古)
수도 북경 유귀부 (北京流鬼府, 53°01′N 158°39′E)
최대도시 계수시 (薊樹市, 52°55′50″N 158°24′10″E)
면적 472,300 km2
역사
- 망명 정부 수립
1875년 4월 26일
- 왕정복고 선언
1889년 8월 11일
이전 국가 - 대완 대완(1752~1875)
다음 국가 - 퉁구스 왕국 퉁구스 왕국(1889~1918)

캄차카 왕정부(중국어: 堪察加 王政府) 혹은 캄차카 임시정부(영어: Provisional Government of the Kamchatka)는 1875년부터 1889년까지 캄차카 반도(堪察加半島)에서 존속한 망명정부(亡命政府)이다.

서야혁명(西野革命, 1875)으로 수구당(守舊黨)·입헌당(立憲黨) 세력은 민중 및 지식인들의 지지를 잃고 연전연패를 거듭하면서 급속도로 영향력을 상실했다. 이후 공화당(共和黨)과 이에 협력하던 숭무영(崇武營) 의해 일제히 숙청될 위기에 처하자, 당시 해군경(海軍卿) 적령(翟零)의 제안으로 황실과 휘하 신하들이 대거 캄차카로 이주하여 망명 정권을 수립하였다.

망명 정권 수립 이후엔 본토로의 복귀 및 입헌군주제(立憲君主制) 실현을 목적으로 한 사회입헌당(社會立憲黨)이 실권을 장악하였으며, 이 시기에 이르러 북방 개척을 단행함에 따라 유귀부(流鬼府), 계수시(薊樹市)와 같은 북방 도시들이 대거 조성되었다. 또한 러시아 제국(Pоссiйская Имперiя)과 미합중국(米合衆國)의 물적·인적 원조를 받아 근대화 정책을 추진했기에 퉁구스 제1공화국(通古斯共和國)과 대립 구도를 이어나갈 수 있었다.

1889년, 남북대전(南北大戰)이 발발하자 북이도(北夷島)의 입헌당(立憲黨)[1] 지식인 및 군부와 협력하여 퉁구스 왕국(通古斯王國)의 건립을 선언했으며, 사도 공방전(斯道攻防戰, 1892)에서의 승전을 기점으로 사할린(薩哈嗹)의 주요 요충지를 장악하면서 우위를 점했다. 수세에 몰린 공화정권은 수도를 오흔사(奧欣斯)로 이전하고 최후 항전을 계획했으나 현지 주민들에 대한 탄압과 고립적인 대외 외교로 인한 열악함을 극복하지 못하고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면서 내전은 마무리되었다.

관련 틀


역대 캄차카 왕정부 국가원수
1875~1899
역대 황제
1대 2대
안종 명수제
(1875~1885)
의종 환녕제
(1885~1889)
역대 국무주석
1대 2대 3대
야율회립
(1875~1877)
소창윤서
(1877~1888)
야율옹경
(1888~1889)
역대 대완 군주 / 역대 캄차카 왕정부 국가원수 / 역대 퉁구스 제2공화국 대통령 / 역대 퉁구스 왕국 군주 / 역대 퉁구스 왕국 총리대신

각주

  1. 캄차카 왕정부와 퉁구스 제1공화정이 양립하던 기간 동안 양측에 각각 '입헌당'이라는 이름을 가진 정치 세력이 존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