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펼치기 · 접기 ]
|
---|
프로젝트 디스코드 • ![]() |
Tooltip text

콜롬비아 공화국 | |||||||||||||||||||||||||||||||||||||||||||||||||||||||
---|---|---|---|---|---|---|---|---|---|---|---|---|---|---|---|---|---|---|---|---|---|---|---|---|---|---|---|---|---|---|---|---|---|---|---|---|---|---|---|---|---|---|---|---|---|---|---|---|---|---|---|---|---|---|---|
1810년 7월 20일 ~ 1966년 11월 23일 | |||||||||||||||||||||||||||||||||||||||||||||||||||||||
국기 | 국장 | ||||||||||||||||||||||||||||||||||||||||||||||||||||||
이름 | |||||||||||||||||||||||||||||||||||||||||||||||||||||||
|
개요
라우레아노 고메스 콜롬비아 대통령이 갑작스러운 뇌졸중으로 사망하며 부통령 로베르토 우르다네타가 대통령직을 계승한다. 고메스 대통령 사후 일어난 콜롬비아의 정치적 위기는 우르다네타 대통령이 구스타보 로하스 파니야 장군을 제거하려 시도하고, 로하스 장군이 군부의 만장일치의 지지를 받아 정부에 쿠데타를 벌이고 군사정부를 구성함에 따라 정점에 도달했다. 콜롬비아의 새로운 지도자는 선거를 무기한으로 중단시키고 보수당과 자유당을 불법화시켰으며, 카스트로의 쿠바에 영감을 받아 국가 발전을 위한 제3의 길을 걷는 독재체제를 열기로 결정했다.
한편 URC와 누에바그라나다에 속하지 않은 온건파로 구성된 자유당, 보수당 반체제 인사들은 베네수엘라로 망명하여 로하스 장군을 퇴진시키기 위한 통합세력 '국민전선'을 창설하기로 결정했다.
콜롬비아는 로하스 피니야 대통령이 집권한 이래 끊임없는 불안정에 시달려 왔다. 그가 이끄는 정권은 베네수엘라에 망명해 있는 조직 국민전선이 주도하는 파업과 시위로 인해 끊임없이 도전을 받아왔다. 그리고 마침내 대규모 총파업으로 인해 자유당, 보수당 연합은 콜롬비아에 귀환하여 임시정부를 구성하게 되었고, 피니야 전 대통령은 멕시코로 망명했다.
신정부는 아마 자유당과 보수당이 경쟁을 벌일 것으로 예성되는 선거를 다음 달 안에 실시하겠다고 공표했고, 누에바그라나다와 콜롬비아 혁명연합은 새로 설립된 정부를 경계했다.
피니야 장군 퇴진 이후 국민전선 임시정부가 예고한 1964년 콜롬비아 선거는 자유당의 알베르토 레야스 카마르고 임시 대통령이 승리함으로써 그 막을 내렸다. 레야스 카마르고는 지방분권을 위한 지방 자치제를 신설하고, 국가재건을 위한 산업진흥과 노동, 은행, 의료 개혁 등의 다양하고 야심에 찬 개혁안을 약속했다.
1956년 휴전이 체결된 이후 콜롬비아에 찾아온 무장평화는 콜롬비아 중앙정부, 콜롬비아 혁명연합, 누에바그라나다 3세력이 콜롬비아 북부를 장악하기 위한 교전을 재개하면서 끝을 맺었다. 여기에 제2 애국군의 부상과 이들의 갑작스러운 아틀린티코 장악은 이 지역을 더욱 불안정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