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기 Cold War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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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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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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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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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아티아 대분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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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스타샤 내부에서 정부로 대표되는 안테 파벨리치와 군부로 대표되는 슬라브코 크바테르니크의 갈등은 크로아티아 독립국의 건국 초기로부터 서로 간의 불신으로 증가해갔고, 모든 것을 통제하고 싶어하는 파벨리치가 군부를 장악하고 1인 독재체제를 굳히려는 야망을 보이자, 크바테르니크는 토미슬라프 2세를 구심점으로 내세워, 对파벨리치 반군을 조직해 대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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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8월 2일 ~ 1952년 11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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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족정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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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북상황 중 북방사령부를 이탈한 이정택 파벌 조선 남의사가 일본령 조선에 진입해 총독인 니가키 다이키에 대한 암살을 시도하나 실패하게 되면서 일본의 집중 통치 기구인 조선민정총감이 세워진다. 남의사는 조선인들을 향해 이들에 대한 불복종과 폭동을 종용하나, 지하에서 활동하던 각종 반군들이 무장 게릴라를 전개하며 합세하자 난전이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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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8월 22일 ~ 1965년 3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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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두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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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움비라투스 성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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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5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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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테말라 쿠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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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나이티드 프루트 컴퍼니의 모든 자산들은 독일 국내 경쟁에서 약세를 보이던 크루프 아그에 무상 인수되며 일종의 지수 회사로 돋움했는데, 1951년 대통령으로 선출된 호아신 아르벤스가 농지 개혁과 토지 재분배를 비롯한 사회 개혁 사업에 크루프 아그 소유의 토지를 국유화 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독일은 카를로스 카스티요 아르마스 군부를 지원하고 국방군을 직접적으로 파견하며 쿠데타를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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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6월 18일 ~ 1954년, 6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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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루트 중동 방위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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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움비라투스 회원국간 체결된 중동 지역에서의 군사를 대동한 무력 행동의 자제를 서로 약속하는 충돌 완충성 의미를 띄는 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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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8월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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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대조국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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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의 책임은 스탈린에게 전가되었고, 당과 군의 괴뢰로 선출된 이반 이크라모프가 작전명: 이르티시를 공개하며 총력전을 위한 총동원령을 선포했을때 모두가 충격에 빠졌다. 광범위한 동원령에 남여노소 모두가 전시산업과 군사훈련에 징집되었고, 시베리아로 내쫓긴 이들의 목적은 독일을 응징하는 것으로 좁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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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2월 2일 ~ 1956년 6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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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4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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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7월 14일 ~ 1958년 9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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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침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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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8월 7일 ~ 1958년 10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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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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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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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10월 14일 ~ 1965년 7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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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년 온두라스 쿠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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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11월 2일 ~ 1959년 11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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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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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12월 19일 ~ 1965년 8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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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게가라오 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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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9월 30일 ~ 1960년 11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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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 엘살바도르 쿠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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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10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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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과테말라 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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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아르마스 군부의 쿠데타로 일련의 모든 개혁 정책이 철회되고, 군부 독재에 의한 정치적 억압, 토지 문제, 인종차별이 심화되고 농민들에 대한 불리한 토지 정책까지 재정되자, 과테말라 노동당(PGT)과 과테말라 민족혁명단체연합(URNG)이 최초로 무장 항쟁을 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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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11월 13일 ~ 1991년 12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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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린타왁 전격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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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5월 2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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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년 2·26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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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차이나 전쟁과 발란타왁 전투에서의 졸전으로 일본은 인도차이나 반도와 필리핀에 대한 통제를 완전 상실했고, 공영권의 구성원들은 일본의 통치력에 의심을 보냈다. 국내에서는 희생된 병사들에 대한 추모와 현 군부의 무능에 대한 분노가 들끓기 시작했고 이내 반구패신민회로 대표되는 신임 사관도와 하위 장교, 사병들의 연합 사조직이 1962년 2월 26일 자정, 군수뇌부를 제압하고 의회를 점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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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2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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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황도수호령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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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6월 1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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