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제도

대한합중국
연방자치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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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제도
광역자치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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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합중국의 주
태평양제도
太平洋諸島
Taepyeongyang Islands
주기 문장
상징
주가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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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방제 도입 1945년 8월 15일

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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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도 | 최대도시 유지특별시
주청 소재지
면적 1,910km²
인문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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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총 인구 757,192명
인구밀도 396.4명/km²
공용 언어 한국어, 토착어
공용 문자 한글, 한자
종교 기독교 59% (가톨릭 31%, 개신교 26%, 기타 기독교 2%), 기타 4%, 무종교 37%
하위 행정 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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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역자치단체 1특별시 1광역시 6도
기초자치단체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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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사 해양일
부주지사 00
참의회 의원
민의회 의원
연방자치단체장
주의회의원
여당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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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목
GDP
전체 $116억 1,000만
1인당 $15,333
GDP
(PPP)
전체 $166억 7,700만
1인당 $22,025


개요

서태평양 지역에 위치한 대한합중국의 연방자치단체. 미서전쟁에 개입한 한국이 유지도를 점령하면서 시작된 행정구역이다. 나머지 섬들은 독일제국에 판매되었다가 1차 대전에서 협상국으로 참전한 한국이 점령하여 국제연맹에 의해 위임통치하게 된다. 이후, 국제연맹이 붕괴하며 완전한 한국 영토로 편입되게 된다.

역사

현 태평양제도는 과거 스페인과 독일에 의해 양분된 상황이었다. 마연 제도, 제상 제도, 추극 제도, 파인도는 스페인령 동인도가 고광 제도, 해왕도는 독일령 뉴기니가 소유하고 있었다. 1898년 발생한 미서전쟁으로 한국이 유지도에 상륙해 점령하여 할양받고, 독일이 나머지 섬들을 약 2500만 페세타에 사들이며 독일의 식민지가 되어 독일령 뉴기니를 구성하였다.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한국은 한영동맹을 근거로 1차 대전에 개입하기로 한다. 한국은 독일에 선전포고하여 독일령 칭다오를 점령한 것을 시작으로 뉴기니 식민지의 뉴기니섬과 비스마르크 제도, 부건빌 섬을 제외한 모든 섬들을 장악한다.

1919년, 베르사유 조약이 발효되어 전쟁이 무승부로 종결되었으나, 무승부를 주장한 독일이기에 사실상 패전국으로 취급되어 한국이 점령한 섬들은 국제연맹의 위탁을 받아 1919년 6월, 위임통치령의 형태로 한국에 배분되었다. 1922년 4월에 비율빈 자치령에 편입되어 있던 유지도를 포함해 태평양제도를 설치한다. 제도는 연방제 실시 이전에는 도와 동등한 단계의 행정구역이었다. 1945년 대한제국이 연방화되어 대한합중국이 되자 각지에 주가 설치되었는데, 태평양제도는 그대로 연방자치단체로 승격되어 주와 동등한 입장이되었다. 당연히 산하 도와 특별시, 광역시가 설치되었다.

1946년 4월 18일, 국제연맹이 완전히 해체된다. 이미 1939년 겨울전쟁을 막지 못해 많은 회원국이 이탈한 상황이었는데, 1941년 유고슬라비아 내전부터 시작된 동유럽 공산화 물결을 막아내지 못하며 완전히 붕괴한 것이다. 그렇게 1946년 국제연맹 해체를 선언하며 인류를 대표하는 국제 기구가 사라진다. 그에 따라 아직 독립하지 못한 C형 위임통치령은 각 나라에 사실상 귀속된다. 태평양제도도 독립시켜야 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서 해방되어 적극적인 개발을 시작하게 된다.

인구

행정구역

교육

경제

종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