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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핏빛돼지가 과연 정의를 심판할 수 있는지는 수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지만, 아마 그것이 주는 상흔을 유흥으로 바꾸는 능력이 인간에 내면화 되었다고 보는 것이 더 이로울 것이다.
상세
핏빛돼지는 기본적으로 보랏빛고양이로부터 탄생했다. 보랏빛고양이가 불꺼진 급식실에서 식사를 하지 않듯이 핏빛돼지 역시 붉은달을 보며 식사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것이 진실이라고 믿는 이는 역시 핏빛돼지 그 자신이다. 그가 테르하의 질서에 흠집을 낼 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는 그저 늙은 낚시꾼조차 알지 못하는 이야기이지만, 핏빛돼지는 그저 보랏빛고양이의 사랑스러운 눈빛 아래에서만 생존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달무리의 진실 따위가 그에게 중요한가? 무더운 사막 한복판에서 노래부르는 방울뱀처럼, 그 역시도 핏빛돼지로서의 의무에 충실할 뿐이다. 핏빛돼지는 잔인하지 않다. 핏빛은 그저 붉은 색에 의미를 부여하고 언어로 표현했을 뿐이니까. 그러나 단지 그렇다는 이유만으로 인간들의 긍정적인 서사에 초대받지 못하고 흉악한 진흙더미에서 뒹굴 뿐이다. 어쩌면 휴가를 떠나는 청년처럼, 공장으로 들어가는 블루칼라처럼, 내려오는 환영을 보고 신이라고 믿기도 한다. 핏빛돼지는 바로 그런 존재기 때문이다. 그는 코끼리를 보고 경쾌한 배에서 털이 자란다고 느낀다.
핏빛돼지에게 남겨진 것이라고는 검은색 음료수 뿐이다. 그 검은색 음료수는 무엇일까? 사상을 단정짓는 이들인가, 지식없이 의견을 가지는 이들인가, 진리를 추종하는 이들인가? 음료수는 음료일 뿐이다. 경쾌한 탄산이 마치 사마귀가 호랑이를 사냥하듯 터져나올지라도, 핏빛돼지는 기꺼이 즐겁게 마실 것이다. 다시 본다면, 책을 펼쳐들고 토사물을 뱉어내는 무시무시한 왕들도, 그리고 거북이를 용봉탕으로 끓여먹거나 등딱지에 문자를 새기는 너구리인간들도 핏빛돼지와 유기적으로 이어진 이들이다. 이들과 하나라는 것을 논리적으로 깨닫기 전까지는, 그저 우주적 대질서에 의미를 부여하고자 하는 나약한 이들일 뿐이다. 조금 더 깊게 들어가자면 핏빛돼지는 떨어지는 벚꽃과 그 벚꽃을 맞는 야카세와원숭이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야카세와원숭이가 먹은 고등어일 수도 있다. 평범하지만 앞쪽의 털이 푸른빛으로 빛나는 돼지일 수도 있다. 핏빛돼지는 스마트폰을 쓰지만, 동시에 책도 읽는다. 그리고 그 책에서 33명의 어린이들이 왜 멧돼지를 기르는지도 탐구해본다. 의미를 부여하진 않지만, 사실은 그가 자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