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경 · 부급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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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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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경(三京)급 행정구역
황성 한성부
漢城府 | Hansong[1]
부기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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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청 소재지
여의도
지방
수도권
하위 행정구역
23방 451동
인구
12,221,332명
GDP
약 $5,1253억
1인당 GDP
약 $42,000
부윤
오세훈
부의회
종로
IATA 도시 코드
HNG
ISO 3166-2
KR-11
한성부의 경관
광화문의 야경
여의도의 스카이라인
개요

한성은 대한국의 수도이자 최고(最古), 최대 도시이다. 현재 동아시아에서 가장 발달한 도시 중 하나로, 공식 명칭은 한성부(漢城府)이다. 다른 명칭으로 서울, 경성(京城) 등이 있지만, 최근에 들어서는 정식명칭인 한성이 자주 쓰인다.

역사

삼국시대

고대부터 한강의 잦은 범람으로 땅이 비옥한 땅이었다. 백제의 고왕 부여온조가 이곳에 자리잡아 위례라고 이름을 붙였고, 후에 부여로 파천할 때까지 도읍이었으며, 고구려가 이곳을 점하였을 때도 남경이라 하여 중히 여겼다. 끝내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여 삼한을 하나로 묶은 뒤에 이곳은 신라의 9주 5소경 중 한주(한산주) 소속이 되었다.

지금의 종로를 중심으로 한 강북 지역은 신라 초기 북한산주(北漢山州)였다가 신라 경덕왕 때인 757년 전국 지명 한화정책에 따라 한양군(漢陽郡)으로 바꾼다. 한양이라는 명칭은 지금까지 이어지는 한성이라는 명칭의 시조가 되었다.

고려시대

강남은 광주(廣州), 강북은 양주(楊州)로 나뉘었다. 한편 문종 때에는 신라의 5소경과 마찬가지로 풍수지리설에 입각하여 수도 개경을 보완하는 목적으로 성종 때 동경으로 지정되는 금성(경주), 태조 때 서경으로 지정되는 평양과 더불어 강북 지역이 문종 때 남경(南京)으로 지정되어 양주와 대등해졌다.

남경은 풍수지리적으로 길지로 인정받아 문종과 숙종 연간에 천도설이 제기되기도 했다. 숙종 시기에는 남경에 별궁을 세웠으며, 숙종이 직접 남경을 방문하기도 했다. 고려 말에는 더욱 천도하자는 분위기가 강해졌는데, 이유는 왜구의 준동으로 인해 수도 개경이 위협받는 상황이 계속 벌어지는 것과 예성강의 퇴적 현상으로 개경의 수운 활용이 난감해지게 된 것으로 보고 있다.

충선왕 대에 다시 한양(漢陽)으로 개칭되었으며, 이후 한양이나 한성(漢城)이라고 불리운다.

조선시대

조선 건국 이후 한동안은 여전히 개경을 수도로 삼았으나 1394년(태조 3) 10월 25일(양력 11월 18일) 태조 고황제의 명으로 천도하였고 이 시기에 정도전에 의해 경복궁이 건설된다. 그러나 1차 왕자의 난 이후 정종은 형제들간의 피를 본 한성이 불길했는지 1399년(정종 1) 3월 7일(양력 4월 13일) 다시 개성으로 수도를 옮겼다. 그러나 태종 대인 1405년(태종 5) 10월 11일(양력 11월 2일)에 다시 서울로 옮겨왔고 이후 근 600년의 세월 동안 한반도의 중심지이자 최대도시 역할을 거침없이 수행해 왔다.

대한시대

1867년 고조가 제국을 수립하고 고종이 근대화를 추진하면서 한성에도 변화가 찾아오기 시작하였다. 명칭적으로는 황성 한성부를 사용하면서 천자국의 도읍인 것을 확실히 하였고, 내적으로는 신식 문물이 들어오면서 변화를 최초로 맞이한 장소가 되었다.

황제의 명으로 설치된 전신주와 전기선을 시작으로 각종 공장과 포장도로가 설치되었고, 옛 기와집과 초가집이 사라지고 벽돌과 시멘트로 지은 집이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황궁 또한 이러한 변화를 직통으로 맞아 환한 불빛이 들어왔고, 별궁 경희궁에 석조전을 지으면서 개화의 선봉이라는 것을 외세에도 똑똑히 보여주었다.

1910년대를 지나 20년대 경제적으로 전성기를 달리던 당시 제도의 모습은 동아시아에서 가장 발전, 동방의 유럽과 다름 없었는데, 백화점이나 양장점은 거리에서 흔하게 볼 수 있었고 현대와 비슷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1945년 대대적으로 파괴된 한성을 재복구시키면서 과거와는 다른 모습으로 발전하였다. 잿더미에서 새로 건물을 쌓아올리면서 기존 썩어있던 건물을 재정비할 수 있었으며, 대한제국 시절에 있던 제국주의, 군국주의 문화를 반영한 모습이 사라지면서 경제발전 그 자체를 상징하는 도시가 되었다.

지금도 한성은 찬란한 빛을 내고 있으며, 많은 이들의 이상의 땅으로 불리우고 있다.

황궁

경복궁

대한의 궁궐 중 하나이자 정궁이다. 태조가 조선을 건국하고 한양 천도를 단행하면서 조선 시대에 가장 먼저 지은 궁궐이다. 원래는 신진사대부가 계획한 궁궐이기 때문에 '검이불루 화이불치'라는 유교 이념을 반영하여 이전 왕조들의 궁궐에 비해 화려한 장식 없이 수수하고 검소한 형태로 지어졌었다. 배치는 유교적인 관점에 따라 삼문삼조의 형태로 되어 있었다.

임란 이후 폐허로 남아있던 경복궁을 1867년 제국선포 이후 그냥 놓아둘 수 없다는 의견에 따라 1869년 예산을 짜 중건계획을 세웠고, 5,230여 칸의 크기로 중건하였다. 그러나 이 또한 1945년에 한성대공습으로 한차례 파괴되어 1950년 다시 재건될 때까지 폐허로 남아있었다.

현대에는 황제의 즉위식이 열리는 곳이며, 광영제의 경우에는 연중 네 달 정도를 경복궁에서 머문다고 한다.

창덕궁

태조는 조선 건국 3년차인 1394년(태조 3년)에 한양으로 천도해 정궁(법궁)으로 경복궁을 지었지만 제1차 왕자의 난 이후 즉위한 정종은 1399년(정종 1년)에 옛 고려의 수도인 개경으로 수도를 다시 옮겼다. 그러나 정종의 뒤를 이어 즉위한 태종은 한양으로 재천도를 결정했다. 재천도를 위한 사전 작업으로 태종은 향교동에 이궁(移宮) 건설을 명해 1404년(태종 4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1405년(태종 5년)에 완공했다. 그 궁이 바로 창덕궁이다. 그러나 한양에 이미 경복궁이 있는데 굳이 새 이궁을 짓는 것은 태종이 경복궁에서 머물기 싫다는 의미였다. 조선시대 임금들은 이러한 양궐 체제의 두 궁 사이를 오가며 번갈아가며 거주한 경우가 많았다.

1869년에 고조가 경복궁 중건사업을 실시하여 1872년에 이가 완성되자 창덕궁은 정궁의 지위를 잃었으나, 이후 즉위한 고종이 창덕궁에 주로 머물면서 역시 중하게 여겨졌다. 광무연간에 확장과 보수, 재건축이 이루어져 과거와 근대를 잇는 혼합적인 궁궐이 되었으며, 한성대공습 이후에도 전각이 남아있는 등 여러모로 행운을 입었다.

현대에는 광영제가 주로 이 궁궐에서 생활한다하며, 이 근방 5Km는 법령에 따라 특별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다.

창경궁

경운궁

경희궁

도시 구조


3대 도심 · 6대 부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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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 도심
종로 을지로 명례
6대 부도심
여의도 양화로 (연희, 홍대) 청량리 강남 (언주) 신도림 잠실

한성의 전통적인 중심지는 강북으로, 북쪽의 황궁을 포함하여 종로, 명례를 중심으로 한 도심과 동쪽의 청량, 서쪽의 연희와 홍대거리, 남쪽의 용산·여의도 부도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여의도와 용산은 금융의 중심지로, 연희와 홍대거리는 상업의 중심지로 기능하고 있으며, 이들 부도심은 한강 남북을 잇는 대교와 한성 도시철도로 강남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강의 남쪽에는 전후 세워진 목동, 반포 등의 부도심에 주로 주택가가 들어서 있으나, 동남쪽의 잠실 · 압구정을 비롯해 상업 중심지도 많이 분포하고 있다.

상권 중심지


상권 중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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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중심지
여의도 홍대 거리 명례 이태원 압구정 용산
잠실 이촌 청담-신사
  • 여의도 - 한국의 대표적인 번화가 중 한 곳으로, 가운데의 여의도공원을 기준으로 북쪽에는 행정 건물들과 마천루들, 각종 다국적 기업의 사옥들이, 남쪽에는 한성국제금융센터(IFC몰)를 비롯하여 거대한 상권이 형성되어 있다.
  • 명례 - 마찬가지로 한국의 대표적인 번화가로, 동쪽의 명례거리는 각종 식당과 상점들이, 서쪽은 롯데백화점 명례본점을 비롯해 쇼핑몰이 밀집한 지역이다. 세계에서 가장 명품 매장이 많이 밀집된 곳으로도 유명하다.
  • 이태원 - 2차 세계 대전 직후 미군이 주둔했던 곳으로, 이에 클럽, 술집 등 다양한 유흥업소가 형성되어 지금의 번화가가 되었다.
  • 용산 - 서브컬처계에서는 가히 성지로 불리는 곳으로, 과거 전자상가가 밀집해 있었으나 지금은 게임, 프라모델, 애니메이션 등 거의 모든 서브컬쳐 아이템을 취급하는 곳으로 다양한 분야의 덕후들에게 인기가 높다.
  • 홍대 거리 · 신촌 - 홍대입구역 앞 경의선 거리가 10대 청소년들의 패션 거리로 항상 붐비며, 서쪽으로는 홍대 거리가, 동쪽으로는 신촌이대거리가 각종 카페나 유흥 주점으로 유명하다.
여담

창작물에서

The Last Empire
Land of the Light and Night TLE [GWR] TLE [Hoi4] The Last Empire For the Future
  1. 정식 영문 명칭은 Hansong Metropolitan Govern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