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 인민 공화국 (패배자는 아니리)

헝가리 인민 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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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 인민 공화국
Magyar Népköztársaság
북헝가리
국기 국장
Regnum Mariae Patrona Hungariae
헝가리의 수호자인 마리아의 왕국
트리아농 조약 이전
- 이후
헝가리 임시 정부
헝가리 평의회 공화국
-
1916 (1918) ~ 현재
상징
국가 〈찬가(Himnusz)〉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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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
수도
부다페스트 (Budapest)
최대 도시
부다페스트 (Budapest)
위치
동부 유럽
인문환경
민족
헝가리인, 슬로바키아인, 루마니아인 등
공용어
헝가리어
연호
서력 기원
정치
정치 체제
공화제
주요 대통령
(국가 원수)
카로이 미하이
주요 총리
(행정 수반)
베린케이 데네시
경제
통화
헝가리 크로네 → 헝가리 코로나
위치

개요

헝가리 인민 공화국(Magyar Népköztársaság)은 1916년 헝가리 혁명을 통해 오스트리아 제국에서 독립하여 1차 세계 대전 종전 후 국가로서 인정받은 동유럽의 공화국이다.

상징

국기


헝가리 인민 공화국의 국기

국장


헝가리 인민 공화국의 국장

역사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가 제안한 제국 분할안('대타협')이 부결되면서, 헝가리인들과 오스트리아인들의 불편한 공존은 이어져 갔다.

헝가리인들의 독립 열기에 가장 불을 붙였던 사건은 부다페스트 지하철 테러 사건인데, 헝가리인들이 본국의 독단적인 결정을 직접적으로 막아낸 첫 번째 사건으로 그 의의가 있다.

유럽이 전쟁의 물결에 휩싸일 때도 헝가리인들은 본국의 전쟁 요청에 반대했다. 물론 오스트리아 본국이 세르비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하더라도 세르비아의 주권을 인정하고 영토를 유지하라는 헝가리의 요청을 받아들이면서, 전쟁 초반에는 헝가리 또한 전쟁을 지지하였다. 그러나 헝가리의 많은 국민들은 호시탐탐 독립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1916년 헝가리 혁명

오스트리아 제국의 해체


오스트리아 공화국[1]


헝가리 인민 공화국[2]


보헤미아-모라바 공화국


유고슬라비아 왕국


폴란드 공화국


루마니아 왕국


결국 1916년, 반전주의 운동에 힘입어 남부에서는 사회주의자들이, 북부에서는 민주주의자들이 대규모 봉기를 일으켰다. 남부의 적군은 협상국에 참전하는 대가로 루마니아와 조약을 맺어 남부 트란실바니아를 루마니아에 이양했고, 북부의 헝가리 임시 정부는 슬로바키아인이 다수 거주하는 북부 지방을 러시아에 이양했다.

헝가리 임시 정부는 초대 대통령으로 카로이 미하이를, 적군은 최고지도자로 차바 오르소스를 선출하였다. 북부는 극단주의를 억압하고 강대국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정책을 펼쳤고, 남부는 민족주의를 이용해 대규모 파업을 종용하는 정책을 펼쳤다. 보스니아와 크로아티아에서 발생한 대규모 사회주의 운동이 남부에 영향을 받아 발생하였다.

대전쟁이 끝난 후 헝가리 적군과 헝가리 임시 정부는 프랑스의 베르사유에서 체결된 트리아농 조약을 통해 공식적인 국가로 인정받게 되었고, 헝가리 임시 정부는 북부 지방을 반환받을 수 있었다.

헝가리 내전과 정부 수립


사진에서 녹색이 왕당파·공화파로 대표되는 헝가리 임시 정부, 붉은색이 사회주의 국가인 평의회 공화국이다.

대전쟁이 끝나고 헝가리 임시 정부와 헝가리 적군은 모두 주권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대규모 파업을 종용하고 세계 혁명을 추구하는 헝가리 적군을 승계하는 평의회 공화국은 주변국들에게 큰 위협이 되었고, 곧 발생한 헝가리 내전(적록내전)에서 주변국들이 헝가리 임시 정부를 지원하는 계기가 되었다.

내전에서는 많은 이들의 예상대로 헝가리 임시 정부가 승리하였고, 승리한 임시 정부는 12월 5일, 공식적으로 헝가리 인민 공화국을 선포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헝가리 임시 정부는 극좌 세력을 억압하면서도 노동 문제에 적극적인 정책을 펼치며 정치를 안정시키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공산주의자들의 위협이 헝가리 내에서 여전하고, 1932년에는 내전에서 활약한 제독 호르티 미클로시가 쿠데타를 일으켜 2년 동안 정권을 잡는 등(호르티 정부) 여전히 불안한 내부 정세는 헝가리가 해결해 나가야 할 과제이다.

여담으로 내전 후에 헝가리 내 사회주의자들이 급격하게 줄어들었다고 하는데, 대부분 오스트리아로 도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파시즘 성향의 조국전선이 정권을 차지한 후에는 오스트리아 역시 사회주의자들의 피난처가 되지는 못하였다.

영토

북헝가리의 영토 변화
독립 당시 (1917) 내전 직전 (1918) 통일 후 (1919~)

좌측으로부터 독립 당시의 영토(1917), 러시아에게 이양했던 북부 지방을 트리아농 조약에서 반환받은 후의 영토(1918), 통일 후의 영토이다(1919 ~). 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는 대가로 바나트 지방의 일부와 남부 트란실바니아를 비롯해 루마니아에게 많은 영토를 이양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정치

관련 문서

각주

  1. (독일계 공화국 · 제1공화국 · 연방국)
  2. (前 임시 정부 · 평의회 공화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