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차 십자군
15th Crusade
표어
For the faith, For the Way of Sword
믿음과, 의무를 다하여
국적 사르타디움 공화국
창립일 2460년 1월 6일
편제 성전 기사단
구호 기사단
튜턴 기사단
가터 기사단
충원방식 모병제
상비군
예비군 약 800,000명
지휘 체계
본부
그리스도교 세계안전보장 합동참모본부
통수권자
국방장관 Grand Master
Johann Plantagenet[1]
총참모장 교황 하드리아노 7세
육군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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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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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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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함
군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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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사르타디움 공화국의 특수작전용 민간종교군사단체. 어떤 의미에서는 외인부대로도 분류된다.


상세

사르타디움의 영토는 테라포밍을 진행한 현재까지의 영토인데, 영토의 서방 미개발 구역이 인류에게 적의를 가지고 있는 적성인외생명체[2]들에게 점거당했고, 이들이 언제 공화국에 큰 피해를 입힐지 모르는 상황이다. 실제로 2460년부터 2474년까지 14년동안 이어졌던 14년 전쟁은 사르타디움 공화국이나 루네바스 제국이나 수천만 명의 사상자가 나오는 등 막대한 피해를 입히게 했지만, 그 사상자중 일부는 정체 모를 습격에 의한 것이었으며 사상자 중 대부분의 시체는 휴머노스트들이 거두어간 탓에 수습조차 하지 못했다. 전쟁이라는, 다소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전후복구에 열을 올리고 있던 공화국 정부는 미개발 구역에서 암약하고 있는 괴생명체들의 정보를 확인하게 된다. 정부에서는 특수부대를 파견하여 괴생명체의 대략적인 수를 파악하게 하지만, 보내는 족족 병력의 2할이나 절반이 대파당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이들이 유일하게 알아낸 정보는 괴생명체의 수가 얼마나 되든 적어도 정부가 예상한 규모보다는 훨씬 많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평범한 납탄으로는 죽일 수 없고 그렇다고 대량살상병기를 투입하기엔 어떤 여파를 가져올지 모르는 터라 정부에서도 쉽사리 나서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이에 베르트란트 교황청을 포함한 그리스도교 단체는 그들을 물리칠 수 있는 것은 자신들 밖에 없다고 단언하고, 정부에서 괴생명체들을 공식적으로 적성인외생명체, 이하 휴머노스트로 분류하고 휴머노스트 격퇴의 주력 부대 창설을 허가함과 동시에 그리스도교 세계안전보장 합동참모본부가 출범하면서 교황청의 소집명령에 15차 십자군이 결성된다.

십자군은 최우선적으로 테라포밍 진행중인 서방 미개발 구역에서 생존하며 인류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는 휴머노스트의 격퇴 및 대비와 서방 가톨릭 교구의 주민 보호에 주력하고 있다. 대부분의 휴머노스트들이 지상에서 생존하고 있는 생명체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십자군의 병력은 창설 초기부터 지상병력 위주로 육성하고 있다. 2470년대 이후로는 심해의 휴머노스트 발견으로 공화국 해군과도 협력하는 등 여러 방면으로 투자하고 있다.

문제는 십자군부터가 민간종교군사단체라는 점이다. 정부에서 인가받은 공식적 군으로서 법률상 그 효력을 인정받았다고는 하지만, 정부의 완전한 통솔 휘하에 있는 군사단체도 아니다보니 무장병력이라는 점에서 내란의 주역이 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이러한 점 때문에, 정부에서는 국가보안부의 감찰실에서 감찰관 한 명을 십자군의 본부에 파견하고, 합동참모본부에 국방부의 장관 외 여러 정부기관의 장관을 임원으로 임명시켜 정부의 의향을 내비치고 있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십자군의 동향을 감시하기 위한 행동이라 십자군 현역 기사들 사이에서도 그렇게 좋게 보는 편은 아니다.

공화국의 국군이나 제국군에 비해 절박해보인다 싶을 정도로 편제의 대부분이 전방의 전면전에 특화되어 있는데, 괴생명체 격퇴나 과격 성향을 보이는 방해집단 격퇴라는 주 임무를 맡았다는 특성상 언제 적의 공격이 들어올지 모르는 상황이 이들의 편제 성향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현재 공화국의 국군이나 제국군과는 달리 독립된 장교 계급체계와 호칭이 분류되어있는 것도 특징이다. 애당초 이들은 일반적인 군 부대와는 달리 교황청에서 기사 작위를 받은 이들로 구성되어있는데, 이는 성전 기사단을 포함한 각 종교 기사단의 역사 깊은 전통이라 볼 수 있다. 거기에 현역 장병들의 경우 주로 근접전으로 이루어지는 괴생명체 격퇴전의 특성 때문에 시대와는 조금 떨어져보이는 냉병기 운용 능력을 겸비하고 있으며 군 자체에서도 주특기를 살린 냉병기 운용을 장려하고 있다. 물론 그것과는 별개로 각종 화기를 운용할 수 있는 능력도 필수로 여겨지고 있다.


십자군의 사명

① 이 법은 속칭 괴생명체와 연관하여 법률로 정한 국가의 영토와 국민의 안전의 보장을 위하여 결성된 민간종교 및 민간종교군사단체에 대한 조직과 행정ㆍ직무범위의 대강을 정함을 목적으로 둔다.
② 이 법에서 정한 민간종교군사단체는 본 단체에 대한 피해가 없는 이상 소속 정부에 대한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

- 민간종교군사단체에 관한 법률 제 1장
① 십자군은 신의 군대로서 국가를 방위하고 국민의 안전을 수호함을 이념으로 삼는다.
② 십자군은 공화국의 자유와 독립을 보전하고 국토를 방위하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나아가 인류의 평화유지에 이바지함을 그 사명으로 삼는다.
③ 기사는 명예를 존중하고 투철한 충성심, 진실한 용기,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 대한 신뢰, 임전무퇴의 기상과 죽음을 무릅쓰고 책임을 완수하는 숭고한 정신을 굳게 지녀야 한다.

- 복무신조


편제

그리스도교 세계안전보장 합동참모본부

자세한 것은 해당 문서 참조.

성전 기사단

성전 기사단
Order of Temple Knights

성전 기사단의 엠블럼
표어
For the faith, For the Way of Sword
믿음과, 의무를 다하여
약칭
Templar
결성
1차: 1119년 말
2차: 2180년 중순
3차: 2460년 1월 6일
해산
1차: 1312년 빈 공의회
2차: 2414년 5월 중순
유형
군사적 목적 하에 설립된 국방기관
목적
주: 최전방에서의 괴생명체 격퇴
부: 참모본부 및 국가와 국민의 안전 수호
본부
몬티우스 주 카이사레아 요새
활동 지역
전 영토
Grand Master
요한 플랜태저넷
Johann Plantagenet
설립자
위그 드 파앵
Hugues de Payens
1118~1136.5.24

십자군 전쟁 당시 활약한 그리스도교 계열 기사단.

상징은 흰색 바탕에 그려진 붉은 십자가. 여러 십자가 중 잉글랜드의 상징이기도 한 성 조지의 십자가를 쓴다. 이 십자가는 흰 바탕에 붉은 십자가라는 색상을 제외하고는 다양한 형태를 가지다가, 중세 이후의 성전기사단은 Cross pattée라고 불리는 끝이 굵은 형태의 문양을 주로 사용하게 되었고 최근에 와서는 이것이 정식 엠블럼으로 정해졌다.

대외적으로는 '청렴한 기사'라는 이미지를 내세우며 가끔 성전 기사단을 검색하면 나오는 말 1마리에 기사 둘이 타는 상징도 "우리는 말 하나를 기사 둘이서 같이 탈 정도로 가난함."을 어필하는 목적이었다. 물론 실제로 그렇게 타지는 않았고, 저 로고 덕택에 남색의 억울한 이미지가 덧칠되기도 했다. 거기다 십자군 전쟁이 절정으로 치닫고, 레반트 지역에서 입지가 중요해진 뒤로는 가난하기는커녕 많은 기부금에 더해 입회한 기사들의 유산을 상속하여 부유해졌고, 이를 바탕으로 거대 금융 자본 집단으로 성장했다.

그러다가 1312년 빈 공의회에 의해 해체당하고, 1314년 성전 기사단 최후의 단장이 프랑스 왕에 의해 화형당하면서 십자군의 대표적인 기사단이었던 성전 기사단은 역사 속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듯.... 하였으나, 프랑스를 제외한 다른 나라에서는 그다지 큰 탄압이 없었고 그 덕분에 살아남은 기사들은 기사단의 이름을 바꾸거나 기사단을 탈퇴하여 잠적하거나, 혹은 다른 기사단에게 흡수되어 명맥을 이어가는 형태로 남게 되었다. 후자의 경우는 대표적으로 구호 기사단이 있다. 성전 기사단이 몰락하면서 남긴 수많은 유산을 이어받아 유럽의 거의 전 지역으로 지부를 확장시킬 수 있었다.

특히 이슬람과의 최전선에서 국토 회복 운동이 진행 중이던 포르투갈 지부는 1312년 포르투갈 국왕 디니스 1세의 중재를 받아 이름을 그리스도 기사단으로 바꾸고 계속 활동해 나간다. 대항해 시대에는 항해왕자 엔히크를 비롯한 왕족들이 그리스도 기사단의 그랜드 마스터가 되고, 바스코 다 가마 같은 유능한 탐험가들이 기사단원이 되어 바다로 진출해 포르투갈의 융성에 한 몫 거들게 된다. 포르투갈에 왕정이 폐지되고 공화정이 들어선 현대에도 그리스도 기사단은 그대로 존속 중이었으며, 포르투갈 대통령이 기사단장을 맡고 있었다. 그러다 제 3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포르투갈이 멸망해버려 갈 곳이 없어지는데, 이 때 로마 바티칸 교황청에게 합류하여 기사단의 전신이었던 성전 기사단으로 정체성을 복귀시킨다.

교황의 명을 받아 제 4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활약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인원 수가 비교적 적어 대대적으로 나서지는 않았지만, 중요한 작전이 있을 때마다 투입되어 전황을 유리하게 이끌곤 했었다고 한다.

지구가 멸망하면서부터는 탈출선에 탑승하여 넨데프 행성으로 건너오면서 성전 기사단의 후예라는 명맥이 일단은 이어졌다. 넨데프 행성에 이주하면서 생존자들의 생존권이 불확실해지자, 교황의 명과는 별개로 생존자들의 보호에 자진해 나섰고 2414년에 교황이 선출된 후로부터는 교황의 명을 받아 생존자들의 보호에 매진하다가 2414년 5월 중순에 일시적으로 해체된다. 이 당시 기사단원들은 교황청이 구입한 서방 영토에서 자리를 잡고 생활하다 자연사했으며, 그 후손들은 14년 전쟁에 참여했다.

그러다 14년 전쟁이 끝나고, 인류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괴생명체의 존재가 확실해지자 교황청의 명에 따라 다른 종교 기사단과 함께 성전 기사단도 부활하면서 현재는 미개발 구역의 휴머노스트 격퇴와 자국 국민의 안전 보호에 주력하고 있다.

다른 종교 기사단과 마찬가지로 일천 년 이상 명맥을 이어왔다는 사실 때문인지 역사가 깊다는 점에서 자부심이 상당히 강한 장병들이 많다.

구호기사단과 달리 프리메이슨과 함께 음모론에 자주 휘말린다. 물론 절대 다수는 거짓이거나 날조된 사실이 많은데, 이에 대해 성전 기사단은 별다른 해명은 하지 않고 있다.[3]


구호 기사단

구호 기사단
Order of Hospital Knights

구호 기사단의 엠블럼
표어
천국이 그대들의 목적지일지어다
Heaven is your destination
약칭
군의관, Hospitaller
결성
1차: 1113년 십자군 전쟁
2차: 1801년
3차: 2460년
해산
1차: 1798년
2차: 2414년 중순
유형
군사적 목적 하에 설립된 의료기관
목적
주: 후방 의료지원
부: 참모본부 및 국가와 국민의 안전 수호
본부
몬티우스 주 카이사레아 요새
활동 지역
공화국 전 영토
Grand Master
세드리크 필라니
설립자
블레스 제라드
Blessed Gerard
1099~1113
상급 단체
그리스도교 세계안전보장 합동참모본부

유럽 십자군 전쟁 시기에 결성된 가톨릭의 기사수도회. 정식 명칭은 '성 요한의 예루살렘과 로도스와 마르타의 주권 군사 병원 기사단'이다.

성전 기사단이나 다른 종교 기사단과 마찬가지로 현재까지도 존속하고 있는 부대이며, 단체명과 각종 직책명은 과거 기사단 시절의 것을 그대로 유지하는 중이지만 달리 주권국가로서 성립되지는 않는다. 영토가 없기 때문에 국제법상 주권 국가로 취급받기 어려운 상황인데, 세속의 영토가 있었던 과거엔 엄연히 국제법상 주권 실체로서 대우를 받았다. 영토가 없는 현재는 군사적 목적과 함께 구호와 봉사를 목적으로 하는 NGO의 기능도 겸하고 있다.

구호 기사단의 창설은 공식적으로는 1113년 십자군 전쟁 초기이지만, 시초를 따지자면 600년 경에 예루살렘에 설립된 순례자들을 위한 병원이 시초로서, 본래 구호 활동을 담당하던 곳이다. 그래서인지 1차 십자군 전쟁 때에도 십자군들로 포위된 예루살렘에서 자의에 의한 것인지 타의에 의한 것인지 의료 봉사를 계속 했다. 이들의 이러한 기원은 그들이 유연하게 살아남는 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성전 기사단은 보호할 성전과 전투가 없으면 존재 가치를 잃지만, 병원 기사단은 전투가 없어지면 그들의 기원인 의료 봉사로 돌아가면 되는 것이다보니.

이후 1113년 십자군 전쟁이 발발하면서, 교황의 명으로 정식 기사단으로 조직되었다. 처음에는 예루살렘 방어와 같은 소극적 전투 활동에 국한되던 활동 영역이 이후 순례자들의 경호 등으로 확대되기 시작했고, 계속적인 조직 확대를 통해 거대한 군사 조직이 되었다. 이때부터 구호 기사단은 검은색 겉옷에 그려진 흰 십자가를 상징으로 삼으며, 십자군 전쟁 기간 동안 전쟁의 주력으로서 성전 기사단과 함께 이슬람 군대와 치열한 접전을 벌였다.

그러다 1291년에 아크레가 함락당하고 예루살렘 왕국이 성지의 영토를 모두 상실하고 키프로스로 밀려나면서 구호 기사단도 성지의 거점을 모두 상실하자 당시까지 동로마 제국의 영토였던 로도스 섬을 침공해 거점으로 삼았다. 십자군 전쟁이 종료된 후 교황청 및 프랑스 왕의 손에 의해 철저하게 해체당한 성전 기사단과 달리 구호 기사단은 최전선에서 이슬람에 맞서는 성채로서 큰 역할을 하고 있었던 덕분에, 성전 기사단의 재산 상당량이 구호 기사단에 흡수되어 유럽 각지에 지부를 두고 그 세력을 크게 확장할 수 있었다.

그렇게 로도스 섬, 몰타 섬을 전전하며 거의 6세기 가량 이슬람 세력과 기나긴 격전을 벌이다가 18세기 후반 들어 종교개혁으로 대륙의 지부들은 전부 해체되고 몰타 지부만 남게 된다. 그러다가 1798년에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의 일환으로 몰타 섬이 공격당했고, 기독교도와는 싸우지 않는다는 원칙에 따라 항복하면서 구호 기사단 역시 해체된다.

세월이 흐르고 1834년 로마에 정식 기사단 지부를 만드는 것을 허가받았으면서 구호 기사단의 재건이 이루어진다. 이 시기부터 구호기사단은 군사적인 면은 완전히 탈피하여 본분인 구호활동에 노력하는 일종의 NGO로 거듭났다가, 1877년 구호기사단군이 창설되면서 다시금 군대로서의 이미지도 보이기 시작했다. 이후 지구가 멸망 직전에 이르자 교황의 명을 받고 핵전쟁으로부터 살아남은 생존자들의 구출과 집계를 담당했다. 탈출선에 탑승하여 넨데프 행성으로 건너오면서도 구호 기사단의 명맥은 이어졌고. 넨데프 행성에 이주하면서 생존자들의 생존권이 불확실해지자 교황의 명과는 별개로 생존자들의 구호에 자진해 나섰으며 2414년에 교황이 선출된 후로부터는 교황의 명을 받아 생존자들의 보호에 매진하다가 2414년 5월 중순에 일시적으로 해체된다. 이 당시 기사단원들은 교황청이 구입한 서방 영토에서 자리를 잡고 생존자들을 돕다 자연사했으며, 그 후손들은 14년 전쟁에 참여했다.

그러다 14년 전쟁이 끝나고, 인류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휴머노스트의 존재가 확실해지자 교황청의 명에 따라 다른 종교 기사단과 함께 구호 기사단도 부활하면서 현재는 십자군의 의료 지원과 자국 국민의 안전 보호에 주력하고 있다.


튜턴 기사단

튜턴 기사단
Order of Teutonic Knights

튜턴 기사단의 엠블럼
표어
속죄와 구원을 위한 여정
A journey to atonement and salvation
결성
1차: 1198년
2차: 1834년
3차: 2460년
해산
1차: 1808년
2차: 2414년 5월 중순
유형
군사적 목적 하에 설립된 국방 기관
목적
주: 전방 병력 지원
부: 참모본부 및 국가와 국민의 안전 수호
본부
몬티우스 주 카이사레아 요새
활동 지역
공화국 전 영토
Grand Master
지브란트
Sibrand
설립자
하인리히 월포트 폰 바센하임
Heinrich Walpot von Bassenheim
1198~1208
상급 단체
그리스도교 세계안전보장 합동참모본부

십자군 전쟁기에 조직된 기사수도회.[4] 상징은 흰 바탕에 검은색 십자가 문양. 독일 기사단국의 모태이기도 하다.

수도자라고 하기에는 역사적으로 참 못할 짓을 많이 했다. 당시 발트 신화 종교를 믿던 발트계 부족들을 잡아다가 이슬람 국가에 노예로 팔아먹는다던가, 헝가리 내정에 개입했다가 쫓겨나거나, 분열되어있던 폴란드 제후가 요청한 발트족을 내쫓아 달라는 요청에 따라 들어와서 폴란드 앞마당에 눌러앉아 버렸다. 그리고 이렇게 해서 세워진 독일 기사단국은 나중에 프로이센을 거쳐 독일 제국으로 변한다.

중세의 창설 초반에는 독일인을 중심으로 북유럽과 동유럽의 독일인 기사로 구성되어 '독일 기사단'으로도 불렸다. 튜튼이라는 이름은 고대 그리스, 고대 로마에서 고대 게르만족의 한 부족인 테우토네스(Teutones,Τεύτονες)에서 유래한 것으로 이는 사람, 부족이라는 의미를 지닌 게르만 조어의 "Þeudanōz"에서 유래한다. 물론 지금은 구성원의 다수가 독일인은 아니기 때문에 전통이라는 명목 말고는 그다지 의미 있는 명칭은 아니다.

1190년 아크레 공성전에서 창설된 야전병원이 모체로, 1192년 교황으로부터 기사단 조직 인가를 받은 뒤 구호집단으로 활약하다가 1198년 군사 기사단으로 전환한다. 초기에는 다른 십자군 및 여타 기사단과 함께 성지 예루살렘과 주변 지역에서 활동했으나, 1211년 헝가리 왕 언드라시 2세(II. András, 재위: 1205 ~ 1235)의 권유로 트란실바니아로 이주, 카르파티아 산맥 동쪽 쿠만족의 침입을 받고 있던 헝가리를 구원한다. 이 때를 기점으로 1226년부터 북방 십자군 전쟁의 주역이 되어 활동하였고, 그 역사는 14세기까지 이어지다가 14세기 이후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왕국의 압박으로 결국 기사단은 1410년 그룬발트 전투에서 1.5배 규모의 폴란드-리투아니아군을 상대로 나섰다가 대패하면서 많은 영토를 잃고 세력이 크게 축소된다. 이 전투로 기사단의 군사력은 거의 붕괴되었고, 위신은 땅에 떨어지게 된다.

이후 1454년부터는 1466년까지 13년에 걸쳐 폴란드와 전쟁을 벌였다가 패배하여 비옥한 비스와 강 하역과 무역 중심지였던 그단스크, 마조비아의 콘라트가 봉토로 주었던 헤움노 등을 모조리 잃고 독일 기사단국의 기사단장은 폴란드 왕의 신하가 되어야 했다. 그러다 1525년 기사단장 알브레히트가 루터교회로 개종하고 폴란드 왕의 봉신으로 충성을 맹세, 프로이센 공국을 세우고 공작이 되면서 독일 기사단국은 프로이센으로 계승되고 동프로이센쪽의 기사단은 가톨릭 교황과 단절되었다.

그 후 신성 로마 제국과 동유럽에 작은 형태의 영지가 유지되었으나 1808년 나폴레옹 전쟁의 결과로 신성 로마 제국이 해체되면서 기사단 국가의 남은 영지가 몰수되고 기사단 조직도 소멸하게 되고 이렇게 사라지는가 싶었으나...... 1834년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후원으로 기사단 조직이 부활, 1929년 무력이 배제된 봉사단체로 완전히 변모하게 된다.

이후 지구가 멸망 직전에 이르자 탈출선에 탑승하여 넨데프 행성으로 건너오면서 튜턴 기사단의 명맥이 이어지게 된다. 넨데프 행성에 이주하면서 생존자들의 생존권이 불확실해지자 교황의 명과는 별개로 생존자들의 구호에 자진해 나섰으며 2414년에 교황이 선출된 후로부터는 교황의 명을 받아 생존자들의 보호에 매진하다가 2414 5월 중순에 일시적으로 해체된다. 이 당시 기사단원들은 교황청이 구입한 서방 영토에서 자리를 잡고 생존자들을 돕다 자연사했으며, 그 후손들은 14년 전쟁에 참여했다.

그러다 14년 전쟁이 끝나고, 인류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휴머노스트의 존재가 확실해지자 교황청의 명에 따라 다른 종교 기사단과 함께 튜턴 기사단도 부활하면서 현재는 십자군의 의료 지원과 자국 국민의 안전 보호에 주력하고 있다.

가터 기사단

가터 기사단
Order of Garter Knights

가터 기사단의 엠블럼
표어
이를 삿되이 여기는 자에게 수치 있으라
Honi soit qui mal y pense
결성
1347년 백년전쟁
유형
군사적 목적 하에 설립된 국방기관
목적
주: 정보 수집 및 후방 지원
부: 참모본부 및 국가와 국민의 안전 수호
본부
몬티우스 주 카이사레아 요새
활동 지역
공화국 전 영토
Grand Master
샤론 카터
Sharon Carter
설립자
에드워드 3세
Edward III of England
1327.2.1~1377.6.21
상급 단체
그리스도교 세계안전보장 합동참모본부

잉글랜드의 국왕 에드워드 3세가 백년전쟁 초기인 1347년에 결성한 잉글랜드의 기사단. 당시 본거지는 윈저궁이었으며 수호성인은 드래곤을 잡은 성인으로 유명한 성 조지. 가터 기사단의 가터(Garter)는 양말이 흘러내리지 않게 고정해주는 그 가터가 맞다. 위 상징에서 모토가 쓰인 둥근 원을 자세히 보면 가터다.

백년전쟁 당시에는 군사적 목적 하에 창설된 군대 기사단의 유형 중 하나였으며, 시간이 지나면서 '가터 훈장(Order of the Garter)' 이라는 일종의 명예직으로 변했다. 창설 초기에는 잉글랜드 국왕을 단장으로 총 26명의 기사를 뽑았고 최초에는 21명이 정원이었으며, 근대 이후로는 정단원 외에 명예단원으로서 가입하는 경우도 있었다.

선발되는 기준은 그 기사가 세운 공적이 보통 기사와 비할 수 없이 클 때. 이론적으로는 평민이나 여자도 일단 기사서임을 받은 뒤 공훈이 혁혁하다면 최고의 영예라 할 수 있는 가터 기사단의 일원이 될 수 있었는데, 실제로 가터 기사단이 존재하는 동안 여자 68명이 가터 기사단원으로 임명되었었다.

윈스턴 처칠도 가터 기사에 서임되었다. 최초로 서임제안을 받은 때는 1945년 대독 전쟁이 종료된 후 치러진 선거에서 참패한 후. 이때는 "국민으로부터 선거패배라는 훈장을 받았는데, 다시 가터 기사훈장을 받을 수 없다." 라는 이유로 서임을 거절했다. 처칠이 가터 기사로 서임된 것은 1950년대 중반의 일이다.

가터 기사단에 가입함은 동시에 가터 훈장을 서훈받는다는 의미였다. 서훈시 문장이 새겨진 방패와 브로치ㆍ대수ㆍ검ㆍ가터벨트 등을 받으며, 이들 중 일부는 사망 시 반납된다.

백년 전쟁 당시와 그 이후 중세 말까지는 군사 조직으로서 존재하다가 근대에 오면서부터 명예직의 개념이 강해졌다. 그래서인지 제 3차나 제 4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전장을 뛰어다니던 다른 종교 기사단과는 달리 이 쪽은 그런 역사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제 4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영국 또한 크나큰 피해를 받게 되고, 행성 대이주로 인해 지구를 버리고 떠나오면서부터는 영국 왕정이 아예 무너졌으니 서임권을 가진 사람조차 존재하지 않아서 명예직의 개념조차 사라지게 되었는데, 가터 기사단의 단원으로서 살아남은 단원들은 다른 종교기사단처럼 명예직보다 집단으로서의 성격으로 정체성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고 실제로도 그렇게 시도했지만 아직은 명예직으로서의 개념이 상당히 강했다. 그래서 2414년 5월에 다른 3대 종교 기사단이 일시적으로 해체될 때에도 가터 기사단은 해체되지 않았으며 14년 전쟁이 종전할 때까지도 가터 기사단의 명예직 개념은 계속 유지되었다. 그러다 14년 전쟁이 끝나고, 인류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휴머노스트의 존재가 확실해지자 교황청의 명에 따라 다른 종교 기사단이 부활하면서 십자군이라는 조직이 결성되는 분위기로 흘러가자, 가터 기사단 역시 군사 단체로서의 합류를 요청했었다.

사실 이 당시 가터 기사단은 군대 기사단으로서는 무장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인원수도 상당히 적었기 때문에 다른 3대 종교 기사단처럼 그다지 차지하는 지분이 그렇게 높은 편은 아니었다. 그래서 3대 기사단이 주력 무장 집단으로서 활동할 때 가터 기사단은 대부분 행정업무 인원으로 배정되어 정보수집 및 작전편성 등 행정업무의 성격이 강했다. 현재는 개신교나 북방 정교회 신자의 입대 지원 수가 늘어나면서 차츰 무장 군사 기사단으로서 입지를 굳혀나가는 중이다.


의무와 처우

의무

① 십자군에 소속된 군의 군인은 소유재산의 8할을 법률에서 지정한 민간종교기관에 예탁하는 것을 의무로 정하며, 예탁의 기한은 복무 기간의 종료, 명예전역, 예비역 전환 등의 시 까지로 정한다.
② 십자군에 소속된 군인의 세금은 법률에서 지정한 종교기관에서 부담하는 것으로 하며, 십자군에 소속된 군인은 재산의 예탁 기한이 끝날 때까지 납세의 의무를 거부할 수 있다.
③ 십자군에 소속된 군인의 대우는 국군의 대우와 같이 취급한다.

- 민간종교군사단체에 관한 법률 제 10장 제 75조 각 군의 권리

모병제로 운영하는 십자군에 지원하는 국민에게는 다음과 같은 의무가 적용되는데, 입대 전 입대자가 소유한 소유재산의 8할을 교황청에 예탁하는 것을 의무로 정하고 있다. 이렇게 임시로 교황청에서 맡게 된 소유재산은 현금가치로 환산하여 각 장병의 세금 납세 처리, 각 장병의 월급 지급 및 생활 보장, 공익을 위한 교황청의 활동 등에 쓰인다. 이후 현역 장병이 원하는 시기에 전역하여 예비역으로 전환하게 된다면 예탁한 소유재산은 예탁했던 금액 그대로 돌려받게 된다. 물론 예비역에서 현역으로 전환하였을 때에도 예외는 아니다.

생활상

병력 수급 방식이 모병제이고 수익이 짭짤하고 군장비가 좋다는 점, 훈련의 질이 보장되고 파병을 가서 실전적인 분위기가 조성되며 덕분에 짬밥이 아닌 경력을 얻는 다는 점에선 일반적인 사르타디움 정부군보다 훨씬 낫다.

하지만 평소의 분위기와 군기는 그래도 직업군인인 특성상 비교적 프리한 편이나, 일상의 괴리가 은근 심한 편이다. 기사단에 따라 다른데, 십자군은 평등권을 추구하는 규정 상 가터 기사단 측에서 비종교인도 같이 선발하고 있으나 나머지 세 개의 종교 기사단은 종교인의 이미지가 워낙 강한 터라 종교인이 아니라면 조금의 반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그래서 십자군 참모부 측에서도 각 기사단에서 수습 기사들을 모집할 때 가능한 종교인들만 받는 추세고, 이조차도 적절한 신체능력과 언어능력을 구사하는 인원이어야 선발이 가능하다.

십자군 대다수의 전투 담당 기사단은 서방 미개발 구역에서 괴수를 전담해 격퇴하는 임무를 맡고 있기 때문에 생존율이 극악에 달한다. 훈련의 강도부터가 흔히 메이커 부대로 불리는 여러 수색/정찰/특공대 간부 훈련과 동급 혹은 그 이상급으로 살벌하다. 이 때문에 신체가 약하거나 하자가 있다면 수습 기사의 훈련을 중도포기하고 나갈 확률이 높다. 십자군은 그 특성상 정부군을 대신해 서방의 미개발 구역에서 특수 임무를 이행하기 때문에 그 본질에 충실하기 위해 당연 왠만한 정예부대급으로 훈련이 빡세다.

때문에 임무의 특성상 라틴어 실력이 좋아야하고 특전사나 공화국 특수부대에 입대하여 자대 배치 후 거기서도 평타를 칠 정도는 되어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수습 기사로서 시험이 아니라, 수료 후 정식으로 기사단에 배치되어 거기서 뒤쳐지지 않는 수준이어야 한다. 또한 당연히 모든 부대가 그렇겠지만, 체력만 된다고 되는게 아니라 머리도 굉장히 좋아야 한다.

15주동안의 훈련 중 각기사단에서 훈련 담당 소대만 따로 나와서 첫 8주간 훈련을 받는데 첫 4주간은 장벽 인근의 훈련소에서, 나머지 4주간은 미개발 구역의 훈련소에서 치른다. 숙식 훈련을 받는 동안은 상당히 고되게 훈련하고 정신, 육체적으로 고생시킨다.

의무복무기간은 5년이며 계약 만료 전에 1년 단위로 연장을 신청할 수 있다. 처음 기본 계약기간 5년은 그 어떠한 사유로도 복무해야만 한다. 정식으로 군번을 부여받고 의무복무기간이 주어진 군인이 탈영했다가 다시 체포될 경우 곧바로 군 교도소행이며, 만기출소 후에도 잔여 복무기간을 다 채워야 한다. 이런 경우 당연하지만 탈영한 그 계급에서 진급이 막히며 장기복무 대상에서 제외된다. 그러나 자진해 돌아왔을 경우, 영창 1개월 정도로 봐주며, 잔여 복무 기간 중 개인의 노력을 통해 인사상 불이익을 극복할 수 있다. 어자피 탈영 중 별도의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면 형량도 그리 길게 선고되지 않는다. 반대로 탈영 중 공무원 신분을 유지 못할 수준의 범죄를 저질렀다면 군 내에서 재판을 받고 징역살이 하다 민간인 신분으로 방출된다.

탈영 후 범죄를 저지르거나 군 내에서 범죄가 일어나는 비율은 굳이 정부군을 비교 대상으로 삼지 않더라도 굉장히 낮은 편인데, 그 배경에는 예하부대에서 복무 중인 기사들에 대한 대우도 있겠지만 처음 입단 신청서를 제출할 때 엄격한 신원조사를 거치면서 인원을 모집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신원조사를 하는 진짜 이유는 수배범이 수배를 피해 도피입대를 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인데, 신원조사에서 수배범임이 밝혀지면 바로 경찰이나 검찰에 넘긴다.

처우

월급

막 입대한 이등병 기준으로, 지급되는 월급은 한화로 350만원 정도이다. 물론 세금을 포함한 금액은 아니며, 현역 계급과 복무기간에 따라 지급받는 금액이 조금씩 차이가 난다.

말단 계급임에도 급여가 저렇게 나오는 것에는 이유가 있는데, 첫째로 십자군의 작전 지역 특성상 위험도가 높은 최전선이라는 점, 둘째로 입대시부터 소유재산의 대부분을 교황청에 예탁하고 입대하였다는 점, 세번째로 모병제라는 점 이 세 가지가 십자군 장병 급여 추산의 근거다.


전사자 보상금

14년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는 2천만원 정도였으나, 2335년에 십자군이 창설되고 본격적으로 괴생명체와의 전쟁이 시작된 이후로는 지급하는 금액이 1억 원으로 늘었고 전사자 보험에서 추가로 4억 원이 나오기 때문에 전사자 유족에게 지급되는 보상금은 합계 5억원 정도이다.


군으로서의 대우

종교군사단체 특성상 그리스도교로서의 분위기가 만연하게 깔려있는 편이다. 수직적 서열 관계가 아닌 수평적 인간관계를 중시하기 때문에, 십자군의 기사로서 종사하는 모든 군인은 신의 품 안에서 형제라는 분위기가 만연하다. 따라서 장교와 사병의 관계 역시 임무가 발생하면 장교가 사병에게 어떤 임무가 있다고 알려주면 사병은 그 임무를 수행하는 형태로 군복무를 하는데 상급자와 하급자가 서로를 존중해주는 형태로 유지되고 있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장교와 사병은 상호 협조관계이며 공과 사의 구분이 엄격해 장성급 장교가 병에게 커피를 타오게 하거나 하는 등의 사적인 심부름은 상상할 수도 없다.

그리고 어쨌든 계급은 계급인지라 군대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방법으로서 사병이 장교에게 명령을 내릴 수 없으며 사병이 장교에게 기어오르지 못한다. 이 정도만 유지한 채 수평적인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것인데 이는 같은 계급이라 하더라도 입대일 기준으로 1개월 차이만 나도 수직적 인간관계를 요구하는 공화국의 국군과는 안티테제 급으로 차이가 난다.

종교군사단체이고, 정부와 국방부의 산하통제를 받지는 않으나 엄연히 자국의 국군 중 한 형태로 분류되기 때문에 공화국의 군사적 전략 물자나 국방 과학 기술 등을 원조받을 수 있다. 거기에 독립된 군사단체라고는 하지만 계급은 공화국의 국군과 거의 똑같기 때문에 계급만 오른다면 공화국 국방부에서 취급하는 기밀을 공유할 수 있다. 즉, 같은 군사단체로 취급받기 때문에 국군이 받는 행정적 대우 역시 똑같이 받을 수 있다는 것.

십자군에서 20년 이상 복무하게 되면 연금을 받게 되는데, 20년 이상 복무하게 되면 현역 당시 받았던 월급의 50%를 연금으로 받게 되고, 30년 이상 복무하게 되면 그의 75%를 받게 된다. 상기 서술한 월급에 이어 연금 제도까지 합치면 십자군이 감당하는 국방비 중 인건비의 비율은 얼마나 될지 슬슬 무서워질 지경.

거기에 전 부대의 보편적인 문화시설, 식사 등 물질적인 부분에서는 공화국의 국군보다 더 나은 지경이다. 부대라곤 전 영토에 무슨 성채마냥 지어놓았으니 무슨 시설이 있겠느냐고 말할 사람이 있겠지만, 부대 자체가 차지하는 부지가 워낙 넓어서 부대 안에서도 있을건 다 마련되어 있는 편이다. 부대는 요새처럼 지어졌지만 부대 내에는 패스트푸드점, 영화관 등의 문화시설이 민간 수준으로 잘 갖추어져 있다. 체육 시설도 민간 헬스장 저리가라 할 정도로 매우 보편적이며, 식사는 뷔페식으로 본인이 원하는 식단에 맞춰 섭취 가능하다. 거기에 십자군은 병사들의 자기계발을 적극 권장하며 위로금과 지원금도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병사들 중 외국어나 학위, 운동과 관련한 부분으로 민원을 넣으면 지휘관이 아주 좋아하며(!) 이를 통해 학위나 자격증을 취득하거나, 체력검정이나 훈련 등에서 성과를 거두면 다양한 혜택을 아끼지 않는다. 이걸로 병사에게 돌아오는 혜택은 금전적 지원 뿐만 아니라 진급 우대, 장교로의 임관 등 상당히 다양한 혜택을 준다.

사회적 대우

공화국에서 십자군에 종사하는 군인은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나쁜 편은 아니다. 일단 괴생명체가 몰려있는 서방 가톨릭 교구 같은 경우는 지리 특성 때문에 자신들을 보호해주는 십자군 군인을 존경할 정도며 선망하는 직업 1위에 올랐다. 북방 정교회 교구나 동방 개신교 교구에서는 신의 이름을 위해 싸우는 군인 정도로 해석되고 있으며, 남방에서는 일반적으로 공화국 군인과 평범한 수준이다. 이 십자군 군인에게 훈장 수훈자란 매우 큰 사회적 이슈라서 어딜가든 존경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심지어는 참모총장 자리에 위치한 교황이 직접 거수경례를 하기도 한다.

십자군에 종사하고 있는 군인이 공공기관이나 은행에서 민원을 처리할 경우 사람들이 줄을 양보하거나 직원들이 나서서 프리패스로 진행해주는 경우도 허다하며, 비행기를 타면 항공사의 VIP들과 함께 가장 먼저 탑승시키는데다가 때에 따라 좌석을 일등석으로 업그레이드 시켜주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길을 가도 사람들이 악수를 청하는 등 이 모든게 상당히 자연스럽게 받아지고 있는 추세다.

특히 군 내의 고급인력으로 갈수록 그 차이가 격상되는데, 십자군에서 계급이 올라가면 올라갈 수록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어마어마한 지원과 대접을 받는다. 인식과 대접, 작전 특성에 따른 전문성, 훈련의 질, 무엇보다 국가와 교황청에서의 금전+물질+정신적 지원들을 보면 공화국 군인이든 십자군 군인이든 국민에게 있어서 군인이란 최우선으로 선망하는 직업으로 선정되기도 한다. 심지어는 현역에서 예비역으로 전환한 전역자의 경우에도, 전투에 대한 PTSD 같은 정신적 장애가 있는 등의 피해가 있다면 우선 국가에서 나서서 피해보상을 해주기도 하며, 전역자들에 대해서는 장병의 생활 환경에 따라 교황청에서 금전적으로 생활에 대한 지원을 해주기도 한다.

이러한 사회적 대우의 배경에는 십자군의 특성상 괴생명체와의 싸움에 있어 최전선에서 전쟁을 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크게 작용하고 있다. 목숨 걸고 신의 이름 아래 총과 검을 들고 나가서 싸우는데, 그것도 국민의 영토와 안전을 지키겠다고 목숨까지 버려가며 싸운다니 존경을 안할래야 안 할 수가 없다.

군사 계급

국군과의 연합 작전에 임할 것을 대비해 일반적으로는 일부 장성급 계급만 제외한다면 국군에서 사용하고 있는 계급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단, 국군에서는 정확한 계급 명칭을 사용하지만 십자군 내에서는 호칭이 다르게 불린다.

장성급~위관: Master
준사관~부사관: Sir


장성급 장교[5]

계급 준장 소장 중장 대장 단장
이름 Brigadier Major Lieutenant Master Grand Master


영관 장교[6]

계급 소령 중령 대령
이름 Cadet Lieutenant Major Colonel


위관 장교[7]

계급 소위 중위 대위
이름 Ensign Junior Ensign Captain


준사관 장교

계급 준위
이름 Warrant


부사관 장교

계급 하사 중사 상사
이름 Staff Enforcer Gunnery Enforcer Master Sergeant


계급 이등병 일병 상병
이름 Private Second Class Private First Class Sergeant


기타 특수 직제

계급 이름
집사장[8] Senechal
감시관[9] Surveillance


군복

기본적으로 소재는 방탄섬유 소재다. 제원은 케블라로, 전신에 케블라 소재가 차용되었으며, 상부의 아머는 케블라를 제원으로 한 가죽 소재다. 방탄 기능을 하고 있는 방패를 지급하고 있음에도 이러한 제원이 차용된 이유는 대 괴생명체 전에서 근접전 시 피격에 의한 부상을 최소화하기 위함이며, 또한 팔꿈치의 아머 마츠, 무릎과 정강이의 아머 파츠는 티타늄 합금을 차용하고 있다.

직제의 구분은 목 카라의 계급장이나, 어깨 아머의 계급장을 통해 확인할 수 있으며, 소속된 기사단은 카라의 십자 뱃지나 각 전투복의 채색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성전 기사단 구호 기사단 튜턴 기사단 가터 기사단


세례영창

자세한 것은 적성인외생명체 문서 참조.

교황청에서 공식적으로 사용중인 마술. 현재 칭해지고 있는 소위 이능력을 그리스도교의 교리에 맞춰 바꾼 버전이다.

방황하는 영혼을 구제하기 위한 의식. 한 마디로 엑소시즘의 일종이다. '교리' 라는 집합적 무의식을 보편적인 기반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행성 대이주 이전의 인류 역사 속에서도 종종 사용되어오던 오래된 의식이며, 기독교가 널리 보급된 것도 이 영혼에 고하는 의식이 사람의 마음을 치유하기 때문이었다. 가히 세계 최대, 최초의 이능력인 셈. 세계대전으로 인류가 멸망하고 나서는 대이주 이후 새로이 보급된 에너지원과 상성을 이루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이를테면 현대의 영체는 플리우스 에너지원과 융합되어 사념체로서 구현되어 현실에 나타나는 초자연적인 현상임에 비해, 세례영창 같은 경우도 의식 자체가 플리우스 에너지와 융합되어 대 영체 전에 특화된 의식으로서 기능할 수 있게 되었다.

사용 장비에 대한 내구도를 높이는 데에는 위력을 발휘하나, 바위를 부수는 등의 물리적인 위력은 전혀 없는데, 영체 등의 초자연적인 현상에 대해선 절대적인 위력을 발휘한다. 즉 영체에 가해지는 데미지가 크든 작든, 영체를 상대로는 추가타가 들어가는 것은 확정적이며 피할 수 없다는 이야기. 그래서 영체를 상대로 사용할 경우, 의식을 집행당하는 영체는 구제의식을 집행할 경우 온 몸이 타들어가는 고통을 느끼며, 저항하여 집행자에게서 10m 이상 벗어나지 못할 경우 종국에는 소멸한다.

살아있는 사람을 상대로 사용할 경우, 악, 또는 이단 성향을 가진 이에게 사용하게 되면 온 몸이 타들어가는 격통과 함께 구제[10]되지만, 그게 아니라면 기적이라는 개념 자체가 많이 옅어진 현대이기 때문에 가벼운 찰과상 정도, 혹은 심리적인 문제에는 심리적 안정밖에 처방할 수 없다. 이렇게 치유 목적으로 사용할 경우 정신력이 많이 소모되며 두통을 느끼고 쉽게 지친다. 또한, 본인을 상대로 사용할 수는 없다.

서술하였듯이, 특수한 상황이 아니면 보통 개인이 가진 에너지는 소모되지 않으며, 사용자가 지닌 신앙심에 따라 추가타가 들어간다. 사실 본래라면 절대로 통할 수가 없는 의식인데, 이 의식은 '교리'라는 집합무의식을 보편적인 기반으로 사용하는데다 인류의 7할에 기독교가 널리 보급된 덕분에 거의 어디에서나 쓸 수 있다.

비단 가톨릭 교도가 아니더라도 그리스도교도라면 신앙심이 주는 이상 세례영창을 사용할 수 있다.


여담

전투력

지상전에서의 전투력은 압도적으로 높다.

14년 전쟁으로부터 벌써 23년이 지났다. 다시 말하자면, 여타 다른 정규군을 비교해본다면 루네바스 제국군이나 공화국 국군은 실전경험이 23년 전에 머물러있다는 의미고, 그것과 비교하면 십자군의 기사들 대부분은 22년동안 현재진행형으로 미개발 구역에서 괴생명체와의 전쟁을 통해 수많은 실전경험을 쌓은 이들이다. 비과학적인 이야기로, 22년동안 실전을 통해 단련되어 있으니 당연히 전투에 있어서 전투력을 추산한다면 압도적으로 십자군이 월등하다.

물론 지상전에서의 대인 전투나 시가전 등의 대군 전술에 유능하다는 것 뿐이라, 만약 상대 쪽에서 전략 병기 같은 대량살상용 무기를 꺼내든다면 십자군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공군과 해군을 가진 공화국 국군이나 제국군과는 달리 십자군은 지상 전력에만 집중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세 군대 중 병사 각 개인의 기량이나 실전경험, 피지컬을 생각한다면 십자군이 우위를 점한다.


사상자와 교환비

무지막지한 물량과 높은 전투력, 그리고 뛰어난 의료체계 덕분에 서방 최전선에서 사상자가 거의 없다. 물론 창설 초창기에는 휴머노스트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던 시절이라 사상자가 대규모로 나왔던 적이 있었는데, 2475년 이후로는 점차 사상자의 수가 거의 열 명 단위 이하로 줄어들고 있었다. 다만, 휴머노스트 문서에서도 볼 수 있듯이 휴머노스트들의 학습능력이 고도화되고 있는 터라 앞으로의 전황은 이전처럼 그렇게 좋지는 않을 예정으로 보인다.


라틴어

일반적으로 라틴어는 필수로 여겨지고 있다. 이는 라틴어가 공용어로 쓰이기 때문이 아니라, 휴머노스트 격퇴에 특화된 마술인 세례영창을 사용하는데에 라틴어가 필수라서 그렇다. 기본적으로 라틴어를 숙지하고 들어오는 입대자도 있지만, 대부분은 라틴어를 모르는 상태로 입대하기 때문에 입대하게 되면 훈련병 시절부터 라틴어 공부는 거의 필수적인 교육이 되었다.


관련 문서



  1. 공식적으로 장관급 직위를 받지는 않았으나, 실질적 군 통수권자 위치에 있다.
  2. 이하 휴머노스트
  3. 사실 해명을 해도 51구역처럼 대부분이 믿지 않을 것이고, 파장만 더 불러일으키는 꼴이 될테니까.
  4. 성전 기사단이나 구호 기사단도 마찬가지인데, 기본적으로 십자군의 대부분의 병력은 전투 병력 뿐만 아니라 성직자로서의 역할도 겸비한다.
  5. 대부분 정계에 관련이 있는 차관급 인사들이 이 곳에 있음. 예외로, 영관이나 위관으로부터 시작해 실력으로 올라오는 경우 있음.
  6. 대지주나, 소유 재산이 많은 이들이 이 곳에 있음. 예외로, 재산은 많지 않으나 순수 실력으로 올라오는 경우 있음.
  7. 소유 재산이 영관급보다는 아니나, 준사관보다는 많은 이들.
  8. 각 지휘기사단장의 대리인. 2인자로서 행정업무를 맡음.
  9. 독립 직제. 십자군의 동향을 감시. 종교적 목적으로 무장한 집단인만큼 이들에 의한 내란이 일어나지 않도록 국정원에서 전담 감시관을 파견함.
  10. 다른 의미로는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