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왕 (남고구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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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1월 12일 (금) 02:54 기준 최신판

경왕
景王
지위
남고구려의 제2대 태왕
재위 719년~724년
대관식 경왕(景王)
전임자 장왕(長王)
후임자 애왕(哀王)
부왕 고왕(高王)
이름
고경열(高景劣)
이칭 고경렬(高景列)
별호 없음
연호 경희(慶喜)
묘호 없음
시호 고국경태상왕(高國景太上王)[1][2][3]
신상정보
출생일 ?
출생지 고구려 평양성 안학궁(?)[4]
사망일 738년(?)
사망지 ?
매장지 평성 경왕릉
왕조 남고구려(南高句麗)
가문 평성(平城)
부친 고왕(高王)
모친 강의태후(康義太后)
배우자 왕후 연씨(王后 淵氏)[5]
자녀 고연수(高聯秀) 고연무(高聯武)[6]
종교 없음

고국경태상왕 경왕(高國景太上王 景王, ? ~ 738년, 재위 : 719년 ~ 724년)은 남고구려의 제2대 국왕이다. 국상왕(國上王)이라고도 하고 경열(景劣)이고 고왕의 차남이다.

각주

  1. 진왕이 올린 시호
  2. 본래 시호는 국경태상왕(國景太上王)으로 선왕의 위치로써 태상왕의 시호로 추승되었는데 이후 고(高)자를 더하였으며 양명왕이 공인하므로써 왕으로써의 시호로 인정을 받게 된다.
  3. 태상왕 칭호는 대왕과 태왕이 혼용되던 시기에 태왕 칭호가 정착 되는데에 영향을 주었다.
  4. 신빙성은 없다. 애초에 본인도 그렇고 부왕인 고왕도 고구려 관련 기록에도 나오지 않아서리...
  5. 연개소문의 아들인 연남건의 딸로 알려져 있다.
  6. 고연수와 고연무는 진왕이 즉위한 뒤 라란국으로 망명하였고 고연수와 고연무의 다툼끝에 고연수가 국씨성을 하사받아 개성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