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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1914년, 세르비아 청년 가브릴로 프린치프가 오스트리아 제국의 황태자 부부를 암살하는 사라예보 사건이 발생하였다. | 그러던 1914년, 세르비아 청년 가브릴로 프린치프가 오스트리아 제국의 황태자 부부를 암살하는 사라예보 사건이 발생하였다. | ||
'''그리고 이는 제국의 해체에 도화선을 붙인 1차 세계 대전을 일으켰다.''' | |||
오스트리아 제국은 분노하여 세르비아에 선전 포고를 했고, 이에 번번히 발칸 반도에서 오스트리아와 충돌하던 러시아는 세르비아를 보호한다는 명목 아래 총동원령을 선포하였으며, 독일은 이를 이유로 러시아를 침공하였다. | 오스트리아 제국은 분노하여 세르비아에 선전 포고를 했고, 이에 번번히 발칸 반도에서 오스트리아와 충돌하던 러시아는 세르비아를 보호한다는 명목 아래 총동원령을 선포하였으며, 독일은 이를 이유로 러시아를 침공하였다. |
2022년 7월 21일 (목) 23:44 판
오스트리아 제국 패배자는 아니리 문서로 가기 |
Kaisertum Österreich | ||||
국기 | 국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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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4 ~ 1917 | ||||
상징 | ||||
국가 | Gott erhalte den Kaiser (하느님 황제를 지켜주소서) | |||
역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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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 | ||||
빈 | ||||
빈 | ||||
중부·동부 유럽 | ||||
인문환경 | ||||
독일인(오스트리아인), 체코인, 헝가리인, 슬로바키아인, 루마니아인 등 | ||||
독일어 사실상 | ||||
서력 기원 | ||||
정치 | ||||
경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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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개요
1804년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프란츠 2세가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배에 있던 오스트리아 대공국, 보헤미아 왕국, 헝가리 왕국 등을 모아 건국한 제국이다.
역사
초기
빈 체제의 성립과 붕괴
제국 분할안 논의, 그러나 버텨낸 제국
다양한 왕국과 민족들로 구성된 제국은 빈 체제의 붕괴 이후로 독일(프로이센)과 이탈리아(샤르데냐)와의 전쟁에도 패하며 크게 흔들리게 되었다. 이에 제국 내 외부에서 다양한 분할안이 제시되었다. 그러나 이들은 많은 문제점을 품고 있었고, 의회에서 대부분 무효화되었다. 결국 제국의 해체를 막기 위해서는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의 '대타협'(Ausgleich)이 주목받기 시작하였다.
이 방안대로라면 오스트리아는 헝가리와 이중제국을 형성할 예정이었다. 즉, 헝가리의 왕국과 의회는 독립하되, 왕위 자체는 오스트리아의 황제가 차지하는 방식으로 동군연합을 결성할 것이였다. 또한, 논의할 사안에 대해서도 별도의 내각을 꾸리고, 각료를 두는 등 헝가리의 자치를 크게 허용할 예정이었다.
제국 내에서 대다수를 차지하는 헝가리와의 이중제국 형성은 헝가리의 독립 여론을 잠재우고, 제국을 안정화 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오스트리아에서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헝가리에서는 체결 찬반 여론이 크게 갈렸다. 당시 빈 체제가 붕괴되고 독립 여론이 절정에 달했던 때라, 급진파들은 헝가리의 완전한 독립을 주장하고 나섰다. 결국 대타협 체결에 크게 협력하던 정치가 페렌츠 디아크가 급진파들에 의해 암살되면서 대타협은 결렬되고 만다.
결국 오스트리아는 크로아티아 지방과 보헤미아·모라바 지방에 자치를 우선 부여하는 것으로 선회하였다. 헝가리의 독립 운동은 또다시 오스트리아에 의해 진압되었다.
러시아와의 충돌
타 열강과 달리 아프리카로의 확장이 쉽지 않았던 오스트리아는 발칸 반도를 우선 확보하는 동진 정책을 추진하였다. 특히 1890년대, 헝가리의 독립 운동 등으로 제국이 흔들리자 오스트리아는 무모한 영토 확장으로 방향을 선회하였다.
그러나 이는 번번히 러시아와 충돌을 빚었고, 이러한 러시아와의 빈번한 충돌은 삼제 동맹이 깨지고 삼국 동맹과 삼국 협상이 체결되는데도 큰 영향을 주었다.
1차 세계 대전
그러던 1914년, 세르비아 청년 가브릴로 프린치프가 오스트리아 제국의 황태자 부부를 암살하는 사라예보 사건이 발생하였다. 그리고 이는 제국의 해체에 도화선을 붙인 1차 세계 대전을 일으켰다.
오스트리아 제국은 분노하여 세르비아에 선전 포고를 했고, 이에 번번히 발칸 반도에서 오스트리아와 충돌하던 러시아는 세르비아를 보호한다는 명목 아래 총동원령을 선포하였으며, 독일은 이를 이유로 러시아를 침공하였다.
초기에 독일은 슐리펜 작전 아래 프랑스와의 서부전선과 러시아와의 동부전선 일부에서 꽤나 선전했고, 오스트리아군도 이를 도와 러시아와의 전투에서 성과를 올렸으나, 슐리펜 작전이 실패하면서 독일은 양면전선의 위기를 맞게 된다.
이후로 오스트리아와 동맹국, 세르비아와 협상국 간의 치열한 싸움이 발칸에서 지속된다. 1915년 4월엔 오스트리아 제국을 목표로 한 이탈리아 왕국이 삼국 동맹에서 이탈하여 협상국에 참전하였으나, 알프스 전선에서 막히고 말았고, 10월에는 불가리아 왕국까지 동맹국에 참전하며 발칸에서 동맹국이 우세하게 되었으나, 1916년의 브루실로프 공세와 세르비아의 항복 거부로 제국은 무리한 싸움을 계속하게 된다.
결국..
1916년 헝가리 혁명
1916년 8월 25일, 루마니아가 동맹국에 참전하기 2일 전에 부다페스트부터 트란실바니아에 이르는 영토에서 헝가리인들의 대규모 봉기가 시작되었다. 헝가리인들은 협상국의 편에 참전해 스스로 무장하여 오스트리아에 반기를 들었다.
이 대가로 헝가리 임시정부는 슬로바키아의 일부분을 러시아에게 넘기게 되었으나, 이 땅이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으로 동맹국에 넘어가게 되고, 동맹국이 항복한 후에 다시 헝가리에 돌아오게 된다.
제국의 해체
오스트리아 제국의 해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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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스트리아 공화국[1] |
![]() 헝가리 인민 공화국[2] |
![]() 보헤미아-모라바 공화국 |
![]() 유고슬라비아 왕국 |
![]() 폴란드 공화국 |
![]() 루마니아 왕국 |

사진은 전쟁 전과 후의 세계 영토 변화.
헝가리 혁명과 동맹국의 연이은 패배로 인해 동맹국은 결국 항복하였고, 생제르맹 조약이 체결되며 제국은 해체 수순을 밟게 되었다. 이 조약으로 인해 헝가리인들과 기타 소수민족들의 줄기찬 독립 요구에도 100년 간 제국의 지위를 유지했던 오스트리아 제국은 결국 해체되었다.
해외 영토 및 식민지

사진은 오스트리아가 보유했던 해외 영토를 함께 표시한 지도이다.
오스트리아령 톈진
의화단 운동을 진압하는 과정에 참여한 대가로 오스트리아는 톈진에 조계를 얻게 되었으나, 20년도 가지 못하고 14년 만에 조계를 생제르맹 조약으로 잃게 된다.
오스트리아령 사하라
- 자세한 내용은 오스트리아령 사하라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기존까지는 다른 열강들과 달리 별 다른 해외 식민지를 보유하고 있지 않았으나, 1898년 미국-스페인 전쟁에서 패배한 스페인으로부터 스페인령 사하라를 매입하며 첫 식민지를 보유하게 되었다.
매입 과정에서 헝가리인들의 반대가 있었으나, 오스트리아는 헝가리인들을 무시하고 매입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이는 후에 헝가리 독립 요구를 심화시키는 계기가 된다.
영토
황제
오스트리아 제국 황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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