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
편집 요약 없음 |
||
2번째 줄: | 2번째 줄: | ||
= 개요 = | = 개요 = | ||
{{인용문7|짐은 충실한 신민들 덕분에 끔찍한 [[아시아 태평양 전쟁|난세]]를 이겨내었고 종묘와 사직을 보존할 수 있었다. 이에 새로이 짓는 궁궐의 이름을 평안(平安)으로 하여 대한국과 온 백성이 자손만대에 이르기까지 평화롭게 번영하기를 기원하겠다.|세조실록 13권, 정화 3년(1948) 4월 5일 첫번째 기사}} | {{인용문7|짐은 충실한 신민들 덕분에 끔찍한 [[아시아 태평양 전쟁|난세]]를 이겨내었고 종묘와 사직을 보존할 수 있었다. 이에 새로이 짓는 궁궐의 이름을 평안(平安)으로 하여 대한국과 온 백성이 자손만대에 이르기까지 평화롭게 번영하기를 기원하겠다.|세조실록 13권, 정화 3년(1948) 4월 5일 첫번째 기사}} | ||
평안궁은 [[황도특별시]] | 평안궁은 [[황도특별시]] 자미원구에 위치한 [[대한국 (동방)|대한국]] 황실의 두 정궁, 법궁이다. 평안궁과 동등한 지위에 놓인 궁궐은 서울에 위치한 경복궁뿐이며 양대 수도의 법궁 역할을 맡고 있다. | ||
= 역사 = | = 역사 = | ||
1948년 [[세조 (동방)|세조]]가 장춘(현 [[황도특별시|황도]])으로 천도하기를 결정하면서 1951년 축조가 시작됐다. 궁의 전반적 구조는 세조 황제가 몸소 설계한 것이며 경복궁과 다르게 서양식으로 지었다 | 1948년 [[세조 (동방)|세조]]가 장춘(현 [[황도특별시|황도]])으로 천도하기를 결정하면서 1951년 축조가 시작됐다. 궁의 전반적 구조는 세조 황제가 몸소 설계한 것이며 경복궁과 다르게 서양식으로 지었다. | ||
= = | = = |
2022년 8월 10일 (수) 19:07 판
![]() 동방의 불란서 세계관 |
---|
개요
짐은 충실한 신민들 덕분에 끔찍한 난세를 이겨내었고 종묘와 사직을 보존할 수 있었다. 이에 새로이 짓는 궁궐의 이름을 평안(平安)으로 하여 대한국과 온 백성이 자손만대에 이르기까지 평화롭게 번영하기를 기원하겠다. |
세조실록 13권, 정화 3년(1948) 4월 5일 첫번째 기사 |
평안궁은 황도특별시 자미원구에 위치한 대한국 황실의 두 정궁, 법궁이다. 평안궁과 동등한 지위에 놓인 궁궐은 서울에 위치한 경복궁뿐이며 양대 수도의 법궁 역할을 맡고 있다.
역사
1948년 세조가 장춘(현 황도)으로 천도하기를 결정하면서 1951년 축조가 시작됐다. 궁의 전반적 구조는 세조 황제가 몸소 설계한 것이며 경복궁과 다르게 서양식으로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