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폐허가 남은 땅 카레트니코비아는 20세기 초 무정부주의 운동가였던 세멘 카레트닉의 이름에서 명칭을 따온 행성입니다. 이름값대로, 이 행성은 한때 '무정부적 이상주의의 정수'라 불렸던 행성입니다. 연방 곳곳에서 이 행성에 모인 아나키스트들은 조직적으로 행성을 개척하고 무장부주의 공동체를 구축했습니다. 그들은 수백 년간 외부 간섭 없이 직접민주주의와 협동노동을 통해 자급자족 사회를 유지해왔습니다. '모든 권위에 대한 거부, 모든 폭력에 대한 저항'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이들은 여러 무정부주의 행성과의 느슨한 연결고리를 바탕으로 연방의 질서 아닌 스스로의 질서를 창출해 나갔습니다.
하지만 이상은 현실의 벽 앞에서 무너졌습니다. 총력전의 와중에, 연방정부는 다른 행성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카레트니코비아에서도 인력과 자원을 징발하려 했습니다. '권위적 정부'에 의한 '약탈'은 무정부주의자들이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카테르니코비아와 여러 무정부주의 행성들은 자원 공출을 거부했습니다. 연방정부는 이를 반역으로 규정하고 전면적인 토벌을 단행했습니다. 연방군의 대규모 강습과 고궤도 폭격으로 인해 도시와 농장, 시민회관들이 초토화되었고, 수많은 민간인이 희생되었습니다. 현재 카레트니코비아는 연방군의 군정 하에 놓여 있습니다. 도시 곳곳에는 연방군 검문소가 세워져 있고, 인터넷과 행성통신은 제한되었으며, 통행금지령과 감시드론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옛 영광을 잊지 못한 아나키스트들은 지하로 숨어들었고, 게릴라전을 벌이며 연방군에 저항합니다. 변방계 인종주의를 내세우며 떠오른 극우파들 역시 연방군을 괴롭힙니다. 이 두 세력은 서로를 증오하지만, 연방군으로부터 그들의 고향을 지킨다는 명분을 공유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고향은, 더이상 지킬 게 없을 정도로 황폐화되어 있습니다. 토양은 오염되었고, 발전소는 멀쩡한 것이 손에 꼽히며, 대부분의 생산시설은 파괴되어 폐허로 남아있습니다. 전쟁고아와 부상자들은 거리에서 구걸하며, 주민들은 연방군과 자선단체의 배급으로 연명합니다. 고통받는 자들은 아무 잘못 없는 주민들입니다. 과거의 자유를 그리워하지만, 더이상의 혁명도, 더이상의 전쟁도 원치 않는 이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레트니코비아에는 여전히 예전의 정신이 희미하게나마 살아 있습니다. 도시 외곽의 폐허 속에서 아이들은 여전히 '자유'와 '협동'이라는 단어를 배웁니다. 그것이 과거의 유산이든, 미래의 씨앗이든.
무너진 이상 위로, 현실이 묵직하게 내려앉은 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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