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레드 제플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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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영국록밴드 레드 제플린이 1969년 10월 22일 발매한 2집이다.

상세

현재의 레드 제플린을 만든 앨범. 레드 제플린의 상업적 성공과 음악성의 전설은 대부분 이 음반의 성공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당대 최고의 인기 밴드였던 비틀즈의 앨범 Abbey Road의 차트 1위 독점을 끝내버리고[* 비슷한 시기 발매된 비틀즈의 라이벌 밴드 롤링 스톤스의 앨범 "Let It Bleed"는 UK 차트에서 1주간 1위를 하고 바로 Abbey Road에게 자리를 넘겼으며, 빌보드에서는 1위를 차지하지도 못했다.] 빌보드 누적 7주, UK 차트 1주간 1위를 차지하며, 레드 제플린의 시대를 알린 기념비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이 앨범은 미국에서만 1,200만장(12X플래티넘) 인증을 받아 1969년 한해동안 가장 많이 팔린 앨범중 하나가 되었으며, 전세계 8개 국가에서 차트 1위에 올랐다.

해당 앨범에는 헤비 메탈 역사상 가장 중요한 곡중 하나로 꼽히는 Whole Lotta Love를 비롯하여, 드럼 연주 기법에 혁명을 불러온 존 본햄의 드럼 인스트루멘탈곡 Moby Dick, 지미 페이지의 기타 리프가 돋보이는 하드 록 넘버 Heartbreaker가 수록되어있다. 이 외에도 The Lemon Song, Thank You 등의 곡들은 후대의 하드 록헤비 메탈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곡으로 평가받고 있다. Led Zeppelin II는 롤링 스톤이 선정한 "500대 명반"에서 123위에 올랐으며, 미국의 케이블 음악 채널 VH1이 선정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앨범" 44위를 차지했다.

Whole Lotta Love는 그 해 영국을 제외한 국가에서 싱글로 발매되어, 빌보드 Hot 100에서 4위[* 이때의 빌보드 4위를 지금의 4위로 생각하면 안된다. 이 당시는 1960년대 후반, 그러니까 록 음악에서 레전드라고 불리는 음악가들이 명곡과 명반을 폭탄처럼 쏟아내던 해다. 비틀즈, 롤링 스톤스, 지미 헨드릭스, 마빈 게이, 비치 보이스, 딥 퍼플, 제퍼슨 에어플레인 등 각종 올타임 레전드급 음악가들이 동시에 차트 경쟁을 하던 때가 바로 1969년이었다. 그러니까 당시의 빌보드 4위는 정말 대단한 기록인것.]에 오르면서 상업적으로 성공했다. 앨범 커버의 제작자였던 데이비드 주니퍼는 1970년도 그래미 어워드의 "Best Recording Package"에서 후보로 오르기도 했다.

녹음 배경

1968년 10월부터 11월까지 Led Zeppelin의 녹음 과정을 마치고, 프로듀싱 과정만이 남았던 레드 제플린은 1969년 1월부터 첫 투어에 나섰다. 밴드는 4번의 유럽-영국 공연과, 3번의 북미 공연을 하면서 상당히 바쁜 상태였고, 이 과정에서 런던에 틀어박혀 조용히 앨범을 녹음하는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레드 제플린의 멤버들은 투어와 녹음, 1집의 프로듀싱을 동시에(!) 병행하였다. 투어 도중에는 Thank You, The Lemon Song, Moby Dick이 오버 더빙되었고 동시에 Whole Lotta Love와 Heartbreaker의 믹싱도 진행되었다. 그러면서 Led Zeppelin의 프로듀싱 과정도 거쳤다.

녹음은 런던의 올림픽 스튜디오, 로스앤젤레스의 미러 사운드, 런던의 모건 스튜디오, 멤피스의 어던트 스튜디오, 그리고 뉴욕의 애틀랜틱 스튜디오, A & R 스튜디오, 저기 사운드 스튜디오에서 이뤄졌다. 스튜디오별로 녹음실 상태가 천차만별이었기 때문에 프로듀싱 과정이 까다롭긴 했지만 지미 페이지와, 총괄 엔지니어 에디 크라머는 이 어려운 작업을 전부 혼자서 해냈다. 에디 크라머 왈 이 당시 페이지의 프로듀싱 실력은 "엄청난 경이로움"(bloody marvellous)이라고.

물론 이런 빡센 녹음 과정에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멤버들은 녹음, 작곡, 작사, 믹싱, 오버더빙을 전부 스튜디오 안에서 해야했다. 또 투어를 위해 이동하면서 장비와 녹음 상태도 천차만별인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한 것도 멤버들에게 피로감을 불러일으켰다. 로버트 플랜트는 후일 이 앨범의 제작 과정이 미치게 힘들었다고 소회했다.

앨범 커버

||<tablebordercolor=#642d0e><width=50%> {{{#!wiki style="margin: -5px -10px" width=100%}}} || {{{#!wiki style="margin: -5px -10px" width=100%}}} || ||<rowbgcolor=#642d0e><rowcolor=#D5CDA6> 리마스터판 커버 || 2014년 딜럭스판 커버. 커버 색이 파란색으로 조정되었다. || || {{{#!wiki style="margin: -5px -10px" width=100%}}} || {{{#!wiki style="margin: -5px -10px" width=100%}}} || ||<rowbgcolor=#642d0e><rowcolor=#D5CDA6> 초판 뒷면. || 리마스터판 커버, 앞면 커버와 같다. || 다른 레드 제플린의 앨범 커버처럼 독특한 배경을 가지고 있는 커버다. 해당 커버는 갈색 배경에 폭탄처럼 생긴 비행선 모양, 그리고 연기 사진으로 인해 일명 "The Brown Bomber"커버로 불렸다.--딜럭스판은 Blue Bomber가 되었다--

앨범 커버는 "붉은 남작"이라고 불렸던 1차 대전의 에이스 전투기 조종사 만프레트 폰 리히트호펜[* 게르니카 폭격을 지휘한 볼프람 폰 리히트호펜의 사촌형으로도 유명하다. 지미 페이지는 엄청난 독일 밀덕후, 그것도 나치빠라서 나치 제복을 모으는 취미가 있었다고 한다.]이 속해있던 항공 부대 사진을 멤버들 얼굴로 덧붙이고 재작업한 것이다. 중간에 있는 곱슬머리 여성은 프랑스 배우 델핀 세리그[* 알랭 레네의 지난해 마리앵바드, 샹탈 아커만의 잔느 딜망, 루이스 부뉴엘의 부르주아의 은밀한 매력으로 유명하다.]으로, 좌파 반전 영화인 Mister Freedom에서 출연했을 당시 모습에서 따왔다.

표지 디자인은 데이비드 주니퍼(David Juniper)라는 사람이 만들었는데 이 사람은 지미 페이지가 서튼 미술 대학교에 다니던 시절의 친구라고 한다. "흥미로운 표지 디자인을 해달라"는 요청에 리히트호펜의 사진을 편집하여 만들었고, 거기다가 멤버들의 사진을 합성하고 그 외에도 몇몇의 관계자와 다른 사람들의 사진도 넣었다. 앨범 커버에 들어간 사람으로는 레드 제플린의 매니저 피터 그랜트와, 투어 관계자 리처드 콜, 우주 비행사 닐 암스트롱, 앤디 워홀의 친구 매리 워러노브, 그리고 재즈 아티스트 마일스 데이비스이다.

흥행

첫 앨범 Led Zeppelin에서 상업적으로 대성공을 거둔 레드 제플린은 이 앨범을 통해 본격적인 메이저 밴드로 부상하게 되었다.

반응은 그야말로 대박으로, 미국에서만 1,200만장이 팔렸고, 영국에서 120만장, 캐나다에서 90만장, 독일에서 50만장 가량의 인증 판매고를 기록하였다. 전세계적으로 인증판매고로만 1,525만장 가량이 팔린것으로 집계되어, 1969년 한해에 가장 많이 팔린 앨범중 하나로 기록되었고, 동시에 1969년 사상 가장 많이 팔린 하드 록 앨범이 되었다.

이 인증 판매고 기록은 인증 판매 시스템이 잘 되어있지 않을때인 1960년대 후반에 집계된 것이다. 따라서 추정 판매고는 이것의 몇배는 된다고 추정되며 대략 1,900만장에서 2,200만장 가량이 팔린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또한 이 앨범은 Houses of the Holy 앨범보다 400만장 가량이 더 많이 팔려서 레드 제플린 역사상 2번째로 높은 인증판매고 기록을 세웠다.[* 참고로 2위는 약 2,900만장 가량의 인증판매고를 기록한 Led Zeppelin IV이다.] 이는 세계 앨범 판매량 순위에서 100위권 안에 들어가는 수치다.

앨범 차트에서 역시 대성공을 거뒀다. 빌보드, UK 차트에서 동시에 1위에 올랐고 특히 빌보드 200에서는 도합 7주, 5주 연속 1위를 기록하였다. 이 외에도 서독, 스페인, 덴마크, 네덜란드, 캐나다, 호주에서 1위에 올라 총 8개 국가에서 차트 1위에 올랐다. 노르웨이에서는 2위, 프랑스에서는 3위를 기록했고 일본 차트에도 차트인하여 8위까지 올랐다. 2014년 리이슈 딜럭스판은 폴란드 차트에서 9위에 올랐다.

무엇보다 당시 차트 경쟁을 했던 앨범은 비틀즈의 Abbey Road. 해당 앨범은 약 3,000만장 가량이 팔린,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한 앨범중 하나다. 애비로드는 미국에서 도합 11주, 영국에서 도합 17주 연속 1위를 하던 앨범이었는데 그 앨범을 신인 밴드의 앨범이나 다름이 없었던 Led Zeppelin II가 밀어버리고 1위를 차지한 것이다.[* 물론 이정도로 오래 1위를 한 것은 그만큼 내려갈 때도 되었다는 뜻이다. 애초에 영국 차트건 미국 차트건 빌보드에서 누적으로 10주 이상 1위를 하는 것은 현재도 그렇지만 당시에는 더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앨범도 아니고 비교적 신인에 가까웠던 밴드가 비틀즈의 앨범을 밀어버렸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또한 Whole Lotta Love는 앨범 판매량에 악영향을 미칠까봐 제한적으로만 싱글로 발매했음에도 백만장 이상이 팔리고 빌보드 4위를 기록하는 등,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이러한 상업적 성공의 결과 레드 제플린은 각종 매체로부터 주목을 받는 신인 밴드가 되었다.

음악적 성향과 평가

상업적 뿐만 아니라 음악적으로도 크게 성공을 거뒀다. 1집을 혹평했던 음악 평론가들도 2집에 대해서는 호평하는 의견이 1집보다는 많았다. 1980년대 하드 록의 유행 이후에는 평가가 더더욱 상승해서, 레드 제플린 최고의 명반 뿐만 아니라 하드 록 역사상 최고의 명반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올뮤직에서는 만점, 롤링 스톤에서 만점을 받았고, 2014년 딜럭스 버전 역시 메타크리딕에서 100점 만점에 95점, 롤링 스톤에서 4.5점을 맞으며 호평을 받았다.

이른바 1970년대 고전 헤비메탈 씬의 포문을 연 앨범으로 평가받는다. 올뮤직은 후대의 모든 헤비 메탈 밴드들에게 청사진을 제공한 앨범(provided the blueprint for all the heavy metal bands that followed it)이라고 평가했다. 특히나 해당 앨범에 수록된 Whole Lotta Love는 거의 모든 메탈 아티스트들과 평론가들로부터 극찬을 받는, 레드 제플린의 명곡중에서도 명곡이다. 해당 곡은 롤링 스톤이 선정한 "500대 명곡"에서 75위를 차지했으며, 이는 레드 제플린의 곡중 Stairway to Heaven 다음으로 높은 것이다.

Whole Lotta Love가 너무 성공하면서 다른 곡들은 묻힌 감이 있지만 사실 다른 곡들도 뜯어보면 헤비 메탈과 블루스, 하드 록 역사에 길이 남을 명곡들이다. Moby Dick은 드럼 배우는 사람이면 다들 아는, 드럼 연주법에 혁명을 불러 일으킨 곡이다.[* 이전까지 드럼은 키스 문과 진저 베이커로 대표되는, 화려한 드럼 세트와 연주가 주를 이뤘다. 이걸 존 본햄이 필요 없다면서 기본 드럼 세트로만 Moby Dick과 같은 드럼 명곡을 쏟아내 드럼 연주법을 재정립했다.] Heartbreaker 같은 인상적인 헤비 메탈, 하드 록 곡도 있으며 해당 곡의 리프 역시 후대 하드 록 기타 리프 및 솔로에 큰 영향을 줬다. Heartbreaker는 미국의 기타 전문 잡지 "기타 월드"에서 선정한 "최고의 기타 솔로곡" 16위에 랭크되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60년대 후반의 사이키델릭 정서가 미약하게나마 남아있는 것 역시 특징이다. 특히나 Whole Lotta Love에서는 테레민을 사용해 이국적이고 사이키델릭한 음색을 낸다. 그러나 1집과 같이 사이키델릭 록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는 것은 아니고, 더욱 블루스 록과 하드 록의 색체가 강화되어 헤비 메탈에 가까워진 느낌이다. 1집에서 Good Times Bad Times 등 몇몇 곡에서만 그쳤던 헤비 메탈 넘버는 이 앨범에서 대폭 늘어났다.

트랙리스트

Side A

Side B

차트 성적 및 인증 판매고

여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