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마 공화국 대통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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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대 신흥도지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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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대 개마공화국 대통령 신오을 申悟乙 | Shin Oh-eul | |
출생 | 1962년 7월 17일 (58세) |
신흥도 흥원시 남연정 | |
국적 | 개마 |
현직 | 전진개마 당수 개마공화국 대통령 |
임기 | 제5대 흥원시장 |
2008년 8월 1일 - 2011년 12월 30일 | |
제7대 신흥도지사 | |
2016년 8월 1일 - 2020년 7월 30일 | |
제6대 개마 대통령 | |
2020년 12월 1일 - 현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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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개마의 노동자 출신 정치인.
생애
어릴적 공부를 못하지는 않았지만 가난한 집안 사정으로 인하여 대학교 진학을 포기했다. 1980년 18살의 나이로 흥원철강생산소의 생산직 노동자로 취직했으며, 1985년 개혁개방 조치로 흥원공업생산소가 민영화되자 그 후신인 신열철강에서 일했다. 1990년 개마가 민주화되자 노동법을 포함한 수많은 법이 바뀌고, 급속한 자본주의로의 체제 이양이 이뤄졌는데, 이 당시 신열철강도 기회를 노려 노동자 임금을 삭감하고 정리해고를 감행하였다. 이에 반발한 신오을은 노동조합원으로서 가장 강경한 파업을 주도해 신열철강의 임금 삭감 및 정리해고 조치를 철회하였고 이 사건은 개마의 민주화 진행 과정에 있어서 노동자들이 스스로의 권리를 쟁취한 사건으로 높이 평가받게 되었다. 1993년, 31세의 나이로 신열철강 노동조합 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정치 활동
흥원시의원을 3번 지냈으며, 평의원에 출마한 적은 있지만 낙선했다.
2008년 고향인 흥원시에서 시장으로 출마해 50.9%를 얻어 당선되었다. 2011년, 시장직을 사퇴한 이후 상의원 후보로 출마했다. 시장직 사퇴에 대한 비판 여론이 있었으나 상의원에 당선되어 4년간 재직하였다.
상의원 임기를 끝마친 뒤에는 더 격이 높은 신흥도지사로 출마했다. 초반에는 지지율이 밀렸지만 53.6%대 46.4%로 상대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대통령
정치관
논란
소속 정당
소속 | 기간 | 비고 |
---|---|---|
1984 - 1991 | 입당 | |
1991 - 2017 | 재창당, 정계 입문 | |
무소속 | 2017 - 2018 | 노선 차이로 탈당 |
2018 - | 창당 |
선거 이력
연도 | 선거 | 선거구 | 소속 정당 | 득표수 (득표율) | 당선 여부 | 비고 |
---|---|---|---|---|---|---|
1996 | 제2회 개마 지방선거 (흥원시의원) | 흥원시 ㄱ선거구 | 3,058표 (67.33%) | 당선 (1위) | 초선 | |
2000 | 제3회 개마 지방선거 (흥원시의원) | 3,963표 (80.00%) | 당선 (1위) | 재선 | ||
2004 | 제4회 개마 지방선거 (흥원시의원) | 3,754표 (77.94%) | 당선 (1위) | 3선 | ||
2006 | 제6대 개마 평의원 선거 | 흥원시 제1구 | 48,674표 (45.43%) | 낙선 (2위) | ||
2008 | 제5회 개마 지방선거 (흥원시장) | 흥원시 | 115,831표 (50.95%) | 당선 (1위) | 초선 | |
2011 | 제8회 개마 상의원 선거 | 신흥도 제3구 | 168,473표 (47.75%) | 당선 (1위) | 초선 | |
2016 | 제7회 개마 지방선거 (신흥도지사) | 신흥도 | 683,722표 (53.57%) | 당선 (1위) | 초선 | |
2020 | 제6대 개마 대통령 선거 | 개마 | 10,950,733표 (53.64%) | 당선 (1위) | 초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