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우휠 4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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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어코 명백한 총성이 울렸다. 포성이 아닌 총성이 의미하는 바는 이미 적이 안에 있다는 것. 곧 양쪽 복도 끝에서 단말마와 함께 두터운 총성이 다가왔고, 해군과는 다른 회색의 병사들이 해군 장교들이 모여있는 이곳으로 뛰어오고 있었다.
기어코 명백한 총성이 울렸다. 포성이 아닌 총성이 의미하는 바는 이미 적이 안에 있다는 것. 곧 양쪽 복도 끝에서 단말마와 함께 두터운 총성이 다가왔고, 해군과는 다른 회색의 병사들이 해군 장교들이 모여있는 이곳으로 뛰어오고 있었다.
저 옷차림, 회색의 병사.  그 의미는 분명 공화수호전선이다.


그들은 곧장 소령과 반델을 향해 총격을 가했다. 갑작스러운 상황이었지만, 반델은 빠르게 파티가 벌어지고 있는 홀로 들어갔다. 비명과 주크박스의 노랫말이 섞인 방에서 둘은 빠르게 권총을 집어들었고, 주변을 살폈다. 가령 선박 안까지 적이 침입했다면 외부도 마찬가지일 터. 우선 당장의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그들은 곧장 소령과 반델을 향해 총격을 가했다. 갑작스러운 상황이었지만, 반델은 빠르게 파티가 벌어지고 있는 홀로 들어갔다. 비명과 주크박스의 노랫말이 섞인 방에서 둘은 빠르게 권총을 집어들었고, 주변을 살폈다. 가령 선박 안까지 적이 침입했다면 외부도 마찬가지일 터. 우선 당장의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2022년 6월 17일 (금) 13:13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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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그로우휠 4편
전장으로

다섯 개의 가문.

그 중에서도 이레프는 황실의 총애를 받던 귀족이자 마법사 집단이었다. 그것도 무려 백여년 동안 말이다. 황제의 실책으로 나라가 무너지기 전까지 황실은 어떤 가문보다 이레프를 총애하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왜일까?

이유는 당연하다.

이레프가 연구한 마법은 <젊음과 불사>였으니. 비록 불사는 완성하지 못했지만 이레프에 의해 황실은 황혼의 젊음을 맛볼 수 있었다. 그게 많은 대가를 지불한다고 하더라도 개의치 않을 만큼 강한 유혹일 테니. 그것을 보고 왕가의 사람들은 이레프의 기적이라 불렀다.

"첫번째 제안을 하겠네. 나를 불사(不死)로 만들어주게."

차분하면서도 워렛만을 바라보는 날카로운 눈빛은 전혀 과장되지 않았다. 진심이다. 워렛의 예상도 하나 빗나가지 않았다. 이미 총통이란 작자는 모든 걸 알고 있다고. 자신의 가문이 어떤 가문이며, 자신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 조차도 말이다. 요구에 응하지 않는다면 가장 최솟값은 죽음일 테고. 최대값은 자신 외의 사람들이 함께 고통받는 일이겠지. 무엇하나 편안한 선택지가 없다.

이것은 번짐이다. 이 죽음은 반드시 번진다.

워렛은 뚫어져라 자신을 바라보는 총통에게 답한다.

"…불사를 만드는 건 쉬운 게 아닙니다."

"그렇겠지. 노력해준다니 고맙군 그래. 마저 종이를 읽게."

마음 속으로 몇 번이나 삼켰을 침을 참고, 마른 입처럼 긴장한 상태로 종이를 훑었다. 종이의 상태나 글씨체를 봤을 때 분명 고문 후 작성된 내용이다. 그렇다면 분명 이 글을 쓴 것도, 어쩌면 생사를 모르는 가족 중 한사람의 것이겠지.

규모가 크더군. 왕정복고? 왕위에 앉힐 믿을만한 사람은 잘 찾았나? 내각은 또 어떻고. 3년 동안 정말 고생이 많았네."

총통은 아는 걸 한번에 말하지 않았다. 그는 하나하나의 이야기가 얼마나 진실이고 또 중요한지 알기 위해 워렌의 반응을 최대한 이끌어냈다. 이를 악무는 그 여린 표정과, 숨마저 조절하려드는 긴장감이 그랬다. 놈이 떨고 있다고 확신을 가지기 위해서.

그는 분명한 전략가다.

다시 한번 정적이 이어지자 총통은 말했다.

"병사. 분위기를 조금 바꿔보도록 하지."

그는 분위기를 전환하기 위해 병사들을 시켜 창문을 열고, 권총을 들고 근위대들을 앉혔다.

"자네에게는 수백명의 목숨이 있고. 내게는 수천만의 국민이 있네. 그럼 자네는 둘 중 어느쪽이 더 가치있다고 생각하나?"

"..."

대답하지 않는다.

"두 존재 중 우위는 없네. 반란을 도모하는 수백명 마저도 국민이기 때문이지. 모든 국민은 불순분자가 될 가능성이 존재해. 그렇기 때문에 고작 그 수백병을 쳐낸다고 해서 나라가 바뀌지는 않는 걸세.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하는가?"

총통은 말을 이어갔다.

"집단이 하나가 되어야하네. 외부와 맞서야하고, 내부가 단합해야 하네. 지도자는 때에 따라서 용서할 줄 알아야하고.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싶은지 알겠나? 모두를 죽이는 게 마냥 편한 답이 아니라는 것즈음은 이 늙은이도 알고 있네."

"모르겠습니다."

이번에는 누나를 꼭 닮은 표정과 상황에 총통은 웃는다. 남녀의 차이따위 존재하지 않았다. 자신을 노려보면서도 존칭을 칭하는 저 양반된 행동이. 듣지도 않은 아이를 데려다가 설명을 해주는 어른과 같다는 생각을 들게 했다. 둘다 남매는 남매였달까. 자신에게 저항하는 모습이 총통은 내심 싫지 않았다.

"병사, 아니 워렛 자네는 왜 대학살의 원흉이 혁명이라고 생각하지?"
그 이야기를 하자, 워렛은 총통을 노려본다. 당신네들이 저지른 일을, 마치 남탓을 하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무엇이 혁명을 만들었는지에 대해선 생각하지 않았나? 왜 권력이 무너졌는지. 왜 황제는 백성과 타협하지 않았는지."

정적 사이로 열차가 한 번 덜컹거린다.

"그건 황제에게 그런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야. 아니. 나아가, 껍데기만 젊은 채. 영혼이 병들었기 때문이지.”

영혼이 병들었다라니.

"본능만 남아 욕구만을 추구한다. 틀린가? 이 나라의 황제들은 그렇게 살았네. 민초의 하소연도 신경쓰지 않았지. 결국 그러다 보면 누군가는 그런 권리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수순적으로 혁명이 일어날 수 밖에 없는 걸세. 지극히 당연한거야"

총통은 워렛, 자신에 비해서는 한참이나 어린 아이가 노려보는 눈빛 따위 두렵지 않았다.

"묻겠네. 만약 황제가 백성과 타협하고자 했다면. 대혁명의 살육은 일어나지 않았을 걸세. 이 말도 부정하는가? 황제가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었다면 백성을 향해 발포명령을 하지는 않았겠지. 그건 당연한거야. 그러나 그 작자에게 그런 견해는 없었네."

이것은 술수다. 간악한 혀의 뱀이다 라고, 워렛은 마음의 손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괘변을 덧댄 괘변들이었지만, 한편으로 납득할지도 모르는 자신을 무시하기 위해서다. 그 속에 내용물이 뭔지도 모른다면 더더욱 피할 이야기다.

"밖을 보게"

어느새 열차는 대도시 인근을 지나고 있었다. 도시 중심의 환한 빛이 거리를 밝히고 시청의 꼭대기에선 국기가 휘날렸다.

"이 나라는 어떻게 변했지?"

"..."

워렌은 창에 손을 딛고서 밖을 바라보기만 한다. 그 모습을 바라본 총통은, 처음으로 상냥한 목소리를 내며 워렌에게 말했다. 그의 모습은 어느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을 모습이었다.

"나에 대한 대외적인 이미지는, 냉혈하고, 잔인하고, 괴랄하고. 나쁜 수식어는 이것저것 붙이더군. 그러나 나는 실제로 그런 인간이 아니지. 씁쓸하지 않나? 높은 권력 위에 서있는 남자가 이리도 멀쩡한 이야기를 늘어놓고. 그리고 얘기를 듣는 본인은 그 합리적인 이야기를 비이성적으로 거부하고 있지."

총통은 웃음을 보였다.

"과거를 잊게. 불우한 과거를 잊고, 현재를 믿게. 희생당한 모든 이들의 공로를 인정하겠네. 어떤가?"

워렌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그의 언행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권력의 꼭대기에서 고개숙인 채 아래밖에 보지 못하는 자가, 지난날 황제가 가진 혜택을 누려보고 싶다고 하소연하는 꼴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상냥한 목소리는 오랜 시간 단단히 굳은 원한과 복수심을 깊은 안에서부터 허무는 듯 했다.

"난 오래전부터 너희 둘을 지켜보았지. 몇몇 사건에 연루되어 있다는 것도 알아. 하지만 아무래도 좋아. 나를 도와주게. 내겐 사람이 필요해. 거의 모든 마법사가 사라진 지금의 시대에선 말이지"

기필코 당신네들을 찢어발기겠다던 다짐은 어디가고. 마음 위로 날카롭게 서있던 워렌의 경계심이 흔들렸다.

"현명한 지도자가 있다면, 국가가 건실히 유지되고. 국가가 건실히 유지되면, 수천만의 국민은 타국처럼 고통받지 않아도 되네. 모든 게 허물어질 때 단 한사람이 오롯이 서있다면. 그 옛날 왕처럼, 잘못된 실수따위 하지 않는다면 이 나라는 망하지 않네. 잘못된 계승 따위는 없어."

그것은 마치 마음의 응어리에서 나오는 말처럼 깊고 선명한 목소리였다.

"오직 하나의 완전함이지. 그러니 부탁하겠네. 내 불치병을 치료해주고, 나를 불사로 만들어주게."

워렛은 흠칫 놀랐고, 입이 벌어졌다. 결코 그의 입에서 나오지 않아야 할 약점조차, 그는 스스로 말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선택은 자네 몫이네."

그리고 총통, 나이든 군인은 자신을 따르는 군인들과 함께 열차를 빠져나갔다.

워렛은..


그로부터 모레
툭, 툭툭
오후부터 낀 먹구름은 차츰 늘어나 하늘을 덮었다. 머지 않아서 굵은 빗방울이 쇠로된 갑판에 떨어지고, 으슬으슬한 천둥 소리는 주크박스의 노랫말 사이로 내부까지 비집었다.

"계속 여기 계실겁니까?"

"안에 들어가봐야 어울리지도 못해"

"미인을 마다할 사람은 없을겁니다."

"그게 내가 싫어하는 이유지."

반델의 말에도 중장은 삐딱한 말투로 대답한다. 그녀의 시선은 온통 전달받은 서류에만 머물렀다. 반면 격문 너머에서는 여전히 주크박스와 술기운의 분위기로 꽉 차, 육군과는 다른 해군만의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조용한 걸 좋아하는 아렌 중장에게는 결코 편하지 않은 환경이다.

"혹시나 해서 말하는건데. 소령이 원하면 다녀와도 괜찮아."

"배려는 감사하지만 전 적적한 게 좋습니다."

"뭐? 날아다니게 생겼는데 말이지. 소령."

"그렇지 않습니다."

불과 몇 시간이었지만 반델은 올곧음 자체였다. 필요하지 않은 대화는 하지 않았고 아무리 티가 난다고 하더라도 결코 기분이 나쁠만한 발언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건 직업적으로는 좋았지만 다른 의미로 결국 아렌은 그 몇 시간동안 반델이란 인간을 파악조차 하지 못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니 도통 풀리지 않는 어색함에 짜증이 조금 나기도 했다.

"친위대는 무슨 훈련을 받지?"

"다양한 걸 배웁니다. 상관을 모시는 예우라던지, 송사리 케익을 먹는 방법이라던지 말입니다."

"그 구닥다리 유머는 누구한테서 배우고?"

"각하께 배웁니다."

그 이야기에 아렌은 흠칫했지만, 이내 뻐근한 목을 더듬으며 반델에게 말한다.

"소령, 난 깐깐한 사람이라 그렇게 벽 치면 좋을 게 없어. 내게 궁금한 건 없나?"

"음. 그렇다면 혹시, 동생 분은 어떤 성격입니까?"

"워렛이라. 워렛은."

예정없는 질문에 처음으로 떠오른 생각은, “조심성”이었다. 어딘가 조금씩 지레짐작이 심한 그 아이는 늘 조심성 없이 나서거나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하에게 동생 험담을 할 필요는 없으니, 그냥 저냥 좋게 대답하기로 다짐한다.

"착해."

"제일 나쁜 유형의 대답 아닙니까?"

"뭐 좋게 말할 게 있어야지."

원래 다짐이란 건 짧게 끝나기 마련이다. 덕분에 반델이 처음으로 픽 웃었다.

"반델 소령은 동생 없나?"

"있었습니다."

"아." 스쳐가는 생각에 아렌은 말을 멈추었다.

이때 대뜸 천둥번개 소리 들려왔다. 그 소음은 둘의 정적을 조금이나마 가라앉혔다.

"요란하네."

"그러게나 말입니다."

"혹시 말이야. 총통각하와 대화를 해볼 기회는 있었나?"

"의외로 많았습니다. 다정다감하신 편입니다."

"다정다감…?"

아렌은 별다른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자신의 눈 앞에서 총알을 쑤셔넣으며 사람을 쏘던 사람이 총통이라고 말해봤자, 친위대 앞에서 잡아가달라고 요청하는 셈이다. 믿을 리도 없고. 그런 인간이 대체 어느 부분이 마음에 들어서 다정다감하다고 표현을 해?

"어느 부분이 말이야?"

"그건…"

그때 작은 진동이 몇 차례 발 밑에서 울리더니, 이내 큰 폭발음과 함께 배가 뒤흔들렸다. 방 안에서는 노래가 멈추고 복도에 서있던 병사들은 우왕좌왕하며 갑판으로 뛰어갔다. 분명 이건 사고가 아니다. 하지만 이런 기후에 다른 적국이 공격할 리는 만무했고, 무언가 이상했다.

"중장님. 괜찮으십니까?"

반델은 엎어진 아렌을 부축하고, 아렌은 주변을 둘러보며 장교들을 찾는다.

"소령. 이런 기후에 자국 해협에서 적함이 공격할 확률은?"

"너무 낮지 않습니까?"

"그럼 이건?"

기어코 명백한 총성이 울렸다. 포성이 아닌 총성이 의미하는 바는 이미 적이 안에 있다는 것. 곧 양쪽 복도 끝에서 단말마와 함께 두터운 총성이 다가왔고, 해군과는 다른 회색의 병사들이 해군 장교들이 모여있는 이곳으로 뛰어오고 있었다.

그들은 곧장 소령과 반델을 향해 총격을 가했다. 갑작스러운 상황이었지만, 반델은 빠르게 파티가 벌어지고 있는 홀로 들어갔다. 비명과 주크박스의 노랫말이 섞인 방에서 둘은 빠르게 권총을 집어들었고, 주변을 살폈다. 가령 선박 안까지 적이 침입했다면 외부도 마찬가지일 터. 우선 당장의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해군이 준비한 관광인가봐?"

"중장님도 유머에 욕심이 있으셨군요."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랍니까!?"

소령과 반델 사이로 젊은 해군 장교 하나가 끼어들었다. 하얀 옷에 술을 엎질러서는 잔뜩 겁먹은 모습이 두 사람이 보기에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아렌은 그 남자를 끌어내고는, 총격이 이어지는 복도를 피해 방으로 들어갔다.

"죽지 않길 기도해야겠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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