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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계관의 모든 인물, 사건, 단체, 국가는 가상이며 현실의 어떠한 인물이나 단체도 찬양하거나 비하할 의도가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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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법인 사람사는 세상 이사장 노무현 盧武鉉 | Roh Moo-hyun | |
출생 | 1946년 9월 1일 (76세) |
경상남도 김해군 진영읍 본산리 30 | |
국적 | 대한민국 |
거주지 | 경상남도 김해시 진영읍 봉하로 135 |
직업 | 변호사, 정치평론가, 방송인 |
현직 | 노무현법률사무소 변호사 사단법인 사람사는 세상 이사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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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상세
-변호사 이전 행적 생략-
1975년 8월, 부산에서 변호사를 개업했다. 당시 조세변호사로서, 소위말하는 돈 잘버는 잘나가는 변호사였다. 간단하게 승률이 매우 높은 변호사였다는 뜻이다. 다른 변호사들과는 다르게 상고출신이라 세법에 대해 잘 알았던것은 꽤 이득이 되었다고 한다. 지금이나 옛날이나 세법은 회계를 알아야 했기에 일반 변호사들은 하기 어려웠고, 한가지만 파도 잘됐던 옛날 변호사들의 장점을 노무현이 따라갔다고 볼수있겠다.
1983년 7월, 노무현은 사상공단 노동자 사망사건에서 변호사를 맡으며 노동전문변호사로 발돋음한다. 당시 사상공단에서의 임금체불로 인해 사상공단 절반의 노동자들이 파업에 들어갔는데, 이것을 진압하기위해 사측에서 깡패들을 동원하여 노조원을 가격하는 도중 노조원 1명과 파업에 참여하지 않은 노동자를 깡패가 노조원으로 오해하며 총 2명의 노동자가 사망하게 된다. 하지만 사측이 이에 대해 나몰라라 하자 유가족들이 사측에 고소를 한것인데, 원래 노무현은 지속해서 안한다면서 거절했지만, 사건의 심각성을 알게되자 오랜 고민끝에 수락했고, 대법원까지 가는 법정공방 끝에 사측에서의 배상을 받아내며 승리한다. 이후 노무현에겐 노동자 전문변호사, 인권변호사라는 별명이 생겼고, 이때 노무현의 영원한 친구인 문재인을 만나게된다.
인권변호사로 활동할적인 1989년, 민주국민당은 노무현과 문재인 둘 모두에게 정계입문을 제안한다.[3][4] 노무현과 문재인 모두 한사코 거절하려고 했으나 문재인은 노무현의 현실정치에서 세상을 바꿔달라는 부탁으로 이를 수락하고 노무현만이 법무법인 부산에 남아 변호사로 활동한다.[5] 하지만 이후 그도 현실정치에 입문할 계기가 생기는데, 민자당 김대중을 총통으로 배출하고 제대로 기를 펴면서 자신의 고향인 영남권의 지역주의가 고착화 되자 이를 타파하겠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이에 노무현은 1994년, 제2회 전국지자체장 선거, 즉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민국당 소속으로 부산광역시장에 도전한다. 선거전 초반에는 노동변호사로 활동한 이력도 있거니와, 당시 영남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전 총통인 김영삼이 노무현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면서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노무현이 앞서 나가는 경우도 존재했으나, 막판에 표가 민자당 문정수 후보에게 쏠리면서 최종적으로 득표율 42.3%로 낙선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