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국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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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보수정당
독립논단
한국독립당
한국민주당
조선국민당
민주국민당
현재
한국민주당
민주공화당
국회CI.png 대한민국 국회
원내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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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대국회.jpg
여당
민주국민당 로고3.png
257석
야당
File.자유민주연합 로고.jpg
83석
새누리당 로고.png
38석
전진하는 대한민국 로고2.png
8석
새천년민주당 로고1.jpg
6석
화합당 로고.png
화합당
3석
민중의힘 로고2.jpg
2석
무소속 3석
재적 400석


민주국민당 로고1.jpg
민주국민당
National Party for Democracy/民主國民黨

영문 명칭
National Party for Democracy
중문 명칭
民主國民黨
약칭
민국당, NPD
표어
밝은 내일을 향하여
창당일
1946년 2월 20일
전신
한국민주당
독립논단
한국독립당
조선국민당
이념
자유보수주의
경제자유주의
우남주의
아태연방주의
스펙트럼
중도 우파
주석
남경필
부주석
주호영
원내주석
조정훈
청년주석
이운석
배출 총통
이승만/초대, 5선(1948.8~1973.8)
김영삼/2대, 2선(1973.8~1982.8)
서석준/3대, 2선(1982.8~1990.8)
이회창/5대, 2선(1998.8~2006.8)
오세훈/7대, 1선(2010.8~2014.8
유승민/10대, 현직(2020.5~)
아태정당
아시아태평양민주정당연합
대한민국 국회
257석 / 400석 (64.25%)
다급지자체장
17석 / 20석 (85%)
나급지자체장
6석 / 7석 (87%)
가급지자체장
275석 / 372석 (73.9%)
다급의회의원
589석 / 975석 (60.4%)
나급의회의원
297석 / 463석 (64.1%)
가급의회의원
2465석 / 4734석 (52%)
당색
#00A4F0, 하늘색
당가
가자 미래로
국제 조직
국제민주연합
중도민주 인터네셔널
당원 수
700만 명
학생 조직
학생위원회
청년 조직
청년국민당 기호.png
여성 조직
여성위원회
당보
민국평론
정책 연구소
우남정책연구원


대한민국의 중도 우파 보수정당이자 제1야당인 자민련의 세배의 의석을 가진 거대 여당. 대한민국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정당이며 한국 정치를 주도해왔다. 지금까지 총 6명의 총통을 배출하였다.

개요

민국당 파티.jpg

대한민국 (아름다운 나라)의 중도 우파 보수정당이자 제1야당인 자민련의 세배의 의석을 가진 거대 여당. 대한민국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정당이며 한국 정치를 주도해왔다. 현재까지 총 6명의 총통을 배출했다. 또한 상대 정당 집권기에 항상 사건사고가 발생하여 반사이익을 얻는 운 좋은(?) 정당이기도 하다.

역사

첫 번째 집권기(1948~1990)

1946년 2월 20일, 한국독립당, 한국민주당, 조선국민당, 독립논단이 합당하여 만들어졌다.  우익 정당들의 연합이라고 할 수 있으며, 1948년 초대 대선에서 민국당 후보인 이승만이 당선되면서 여당이 되었다.  이후 민국당은 이승만, 김영삼, 서석준 총통을 연이어 당선시키며 자그마치 42년을 집권하였다.

이승만 정부(1948~1973)

1948년 7월, 근로민주당의 여운형 후보를 큰 표차로 누르고 총통에 당선된 이승만은 정부 내의 악질 친일파를 척결하는 동시에 토지개혁을 통해 농민들의 지지를 확보했다. 또한 북한의 침공에 대비하여 38선에 대전차 방해물을 설치하고 미국으로부터 전차를 비롯한 각종 군수물자를 지원받았다.  1950년 6월 25일, 북한은 전쟁을 일으켰지만 국군과 유엔군의 반격으로 궤멸, 한반도는 분단된지 2년 5개월만에 남한의 주도로 재통일된다.

이승만 정부는 막대한 피해를 입은 37도선 이북을 미국의 원조를 바탕으로 재건하기 시작하였고 1953년 대선에서도 이승만이 무난히 당선된다.  독일에 간호사와 광부들을 파견해 자금을 마련한 정부는 본격적으로 경제건설을 시작한다.

한편, 재선에 성공한 이승만은 국회의 개헌을 통한 헌법의 3선 금지조항 폐지를 추진하는데, 이 과정에서 동남아 순방 중 버마의 아웅산 묘소를 참배하던 총리 김구가 폭탄 테러로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배후는 연변으로 탈출한 조선로동당의 잔당인 것으로 확인되었으나 근로민주당의 최고워원이자 국회의원인 약산 김원봉이 김구 총리 일정을 유출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사건으로 인해 사민당 당수 여운형이 사퇴하였고 이후 야권통합은 우익 정당인 한민당이 주도하게 된다.

공안정국을 통해 개헌에 성공한 이승만은 6%의 표차로 1958년 대선에서 3선에 성공한다.  이후 이승만 정부는 사회칸접자본과 연구개발에 큰 투자를 하여 경제가 비약적으로 성장한다.  1963년 대선에서 재집권한 이승만은 강력한 중공업화 정책을 추진한다.  공업단지, 정유소와 제철소가 건설되었고 엄청난 양의 해쇠투자가 유치되었다..  이승만 정부 4기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12%에 달했다.

4선에 성공한 이승만은 소련, 중화민국, 인도와 협력하고 미국의 지원을 받아 1970년 중국을 침공하여 남만주를 합병하였다.  이후, 이승만은 차기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민국당 내부 개혁에 착수한다. 소련과의 수교로 당의 냉전적 반공주의가 소멸되었고 시민민족주의와 온건보수주의가 도입되어 당은 우익정당에서 중도우파 정당으로 탈바꿈했다.  차기 대선 후보로 이승만의 정치적 계승자인 김영삼이 선출되었고 1973년, 이승만 정부는 25년의 긴 역사를 마감했다.

김영삼 정부(1973~1982)

1973년 대선에서 무난하게 당선된 김영삼은 전임 총통 이승만의 눈치를 봐야 했다.  김영삼이 이승만의 후광을 등에 업고 당선되기도 하였고 이승만이 비록 총통직에서는 물러났지만 여전이 민국당 주석직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집권 초반에는 현직 총통 김영삼과 전직 총통이자 여당 주석인 이승만이 국정을 공동 운영하는 모양새를 띄게 되었다.

김영삼은 이승만의 뜻에 따라 개헌을 통해 총통직을 4년 중임제로 바꾸었다.  또한 아태지역 국가들의 연합체인 아시아태평양국가연합을 출범시켰다.[1]  대신 이승만은 김영삼의 바람대로 금융실명제 실시를 지원했다.  이런 공동 운영은 이승만이 민국당 주석직을 내려놓은 1975년에 끝난다.[2]

김영삼은 앞서 말한 금융실명제등과 같은을 통해 높은 지지율을 유지했으나 임기 말이 되면서 지지율이 많이 떨어졌다.  그 예로 김영삼은 제7회 대한민국 총통 선거에서는 야당인 자유당박순천 후보와 겨우 1% 차이로 당선됐다.

서석준 정부(1982~1990)

이승만이 직접 영입한 서석준은 재무부 출신으로 경제 전문가였다.  1982년 대선에서 손쉽게 총통에 당선된 서석준은 김재익, 김종인 등을 앞세워 경제개혁을 실시한다.  이 경제개혁은 경제 주체를 국가에서 민간으로 전환하는 데에 있었고, 개혁이 성공하면서 3저 호황과 맞물려 대한민국은 단군 이래 최대의 경제호황을 누리게된다.  또한 서석준 정부는 범죄와의 전쟁을 통해 대한민국에게 암적인 존재였던 만주계 극좌 테러단체 인민혁명전선을 사실상 붕괴시켰다.  인혁전선 외에도 양지에서 활동하던 대부분의 조폭 조직이 소탕되었다.

이러한 업적에 힘입어 1986년 대선에서도 서석준이 당선되었으나, 1990년 대선에서는 민국당 김재익 후보가 민주자유당 김대중 후보한테 패배하며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다.

첫 번째 야당 시절(1990~1998)

산업화와 급격한 경제발전을 이루어낸 민국당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국민들은 민국당의 장기집권에 염증을 가지게 됀다.  이 시기, 빈부격차가 심화되고 서석준 정부의 소통 부족이 부각되었다.  게다가 같은 우익 정당이었던 자유당이 김대중의 개혁을 통해 중도화되어 돌풍을 일으키기 시작하였고 자유당과 사회민주당이 합당하여 민주자유당을 창당하면서 야권이 통합되었다.  그리하여 1989년 대선에서 민자당 후보 김대중이 민국당 후보 김재익을 꺾고 당선되면서 민국당의 41년 장기집권은 막을 내렸다.

이 충격으로 당지도부가 총사퇴하고 김종인 비대위가 출범했다.

민국당에게 재집권의 기회는 의외로 일찍 찾아왔다.  각종 사회개혁과 복지정책으로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던 김대중 정부였지만 집권 2기에 접어들면서 측근ㆍ친인척 비리가 연이어 터져나왔고, 1998년 대선을 1년도 남기지 않을 상황에서 터진 경제위기는 김대중 정부에게 치명타를 가했다.  비록 경제위기가 김대중 정부의 잘못도 아니었고 그동안 충실히 비축해둔 외환 보유고 덕분에 국가부도는 막았으나 김대중 정부의 지지도는 20%대까지 떨어졌다.  이후 1998년 대선에서 민국당의 이회창 후보가 당선되면서 민국당은 8년만에 재집권에 성공한다.

두 번째 집권기(1998~2006)

이회창 정부

이승만과 같은 황해도 출신인 이회창은 이승만에게 영입된 법조인 출신으로 국회의원과 황해도의 초대 민선 도지사를 맡았었다.

이회창 정부의 급선무는 경제 회복이었다.  1997년 경제위기로 인해 한국 경제는 꽤나 큰 타격을 입었다.  이회창 정부는 신용카드 발급 조건을 완화하고 기준금리를 인하하는 등 경기부양을 위해 노력했고, 또한 각종 규제를 완화하는 대신 유지된 규제는 철저히 집행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경제성장률이 반등하였다.

경제회복에 힘입어 재선에 성공한 이회창이었지만 한때 이회창의 동지였다가 제1야당인 민주자유당의 주석이 된 이인제가 "강직함"을 무기로 무섭게 치고올라왔다.  이회창은 심복 중 한 명인 박상돈을 키워 대선후보로 내세웠지만 2006년 대선에서 이인제에게 패하였다.

두 번째 야당 시절(2006~2010)

이인제 정부는 노동 개혁과 세금 인하로 보수층 표심을, 복지 확대와 최저임금 인상으로 진보층 표심을 동시에 공략했다.  하지만 2008년 리먼브라더스 사태로 인한 세계 경제 위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지지율이 많이 낮아졌다.  민국당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파상공세에 돌입했고, 정권 교체에 성공했다.

세 번째 집권기(2010~2014)

오세훈 정부

오세훈은 스타 변호사 출신으로, 국회의원과 서울수도시장을 역임했다.  서울시장 재직 중 청계천 복원 등으로 인기를 얻은 그는 현직 총통 이인제를 꺾고 총통에 당선되었다.

오세훈 정부는 세계 경제 위기로 인한 후유증을 극복하기 위해 확장재정 정책을 시행하였다.  이 때 비교적 소외되어있던 만주 지방에 사회기반시설이 크게 발전하였다.   또한 오세훈은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물류 수송비가 부산에서 LA까지의 물류 수송비와 별 차이가 없다는 점을 들어 낙동강과 한강을 연결시키자는 한반도 대운하 사업을 계획했으나 국회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이 때 충청도지사 안휘정이 뛰어난 행정능력으로 돌풍을 일으키며 차기 총통 후보 1위로 떠올랐고, 대선에서 오세훈은 안휘정에게 패배한다.

세 번째 야당 시절(2014~2020)

이 시기는 민주국민당의 가장 큰 위기의 시대였다.  안휘정은 신랄한 말솜씨와 부드러운 업무능력으로 높은 지지를 받았다.  게다가, 안휘정의 첫 번째 임기 중에는 특별한 권력형 비리나 대형 사건사고가 일어나지 않았다.  17대 총선에서 민주국민당은 여당인 민주자유당에게 역사상 최악의 참패를 당했다. 
작업 예정

네 번째 집권기(2020~)

유승민 정부

이념

민주국민당은 오랜 시간 지속된 정당이라 이념도 초기와 많이 변했다. 1946년 창당 당시에는 수많은 우파 정당들을 통합한 당이었기 때문에 중도 우파에서 극우까지 스펙트럼이 매우 넓었다.[3] 당시 민국당의 주요 이념으로는 보수주의, 반공주의, 우익 네셔널리즘 등을 꼽을 수 있다.

그러다 1971년, 동아시아 전쟁 종결 이후 이승만의 온건화 당책에 따라 당이 전반적으로 중도화, 온건화되었다. 보수주의는 온건보수주의와 자유보수주의로 대체되었고 1971년 한국이 소련과 수교하면서 냉전적 반공주의는 점차 사라졌으며 인종적 네셔널리즘은 시민 네셔널리즘으로 대체되었다.[4]

경제적으로는 경제민주주의를 일부 받아들인 경제자유주의가 주류 이념이지만 서석준 정부 시기에는 신자유주의가 당내 주류였다.

계파 분류

민주국민당 로고1.png민주국민당의 계파 분류
시대전환
중도민주연합
미래회의
자유주의
보수자유주의
자유보수주의
경제자유주의
사회보수주의
신자유주의
문재인
김종인
조정훈
추미애
김경수
전해철
진영
모평수
유승민
남경필
원희룡
하태경
정병국
정의화
박형준
김용태
지상욱
이운석
라하연
주호영
황교안
이정현
김성태
정우택
심재철
김병준
등정석

역대 지도부

민주국민당 로고1.png
민주국민당 역대 중앙위원회 주석
[ 펼치기 · 접기 ]
초대
이승만
제2대
김영삼
제3대
서석준
비대위
김종인
제4대
이만섭
제5대
이인제
제6대
이한동
제7대
정운찬
제8대
진영
제9대
최용해
비대위
김종인
제10대
유승민
민주국민당 로고1.png민주국민당
역대 중앙위원회 부주석
초대
김성수
제2대
안재홍
제3대
김구
제4대
허정
제5대
이기붕
제6대
유진산
제7대
조경규
제8대
서석준
제9대
이만섭
제10대
유치송
제11대
김종인
제12대
이회창
제13대
윤여준
제14대
이인제
제15대
이한동
제16대
김영남
제17대
남경필
제18대
심대평
제19대
한승수
제20대
유승민
제21대
원희용
제22대
김무성
제23대
권영세
제24대
유승민
제25대
원희용
제26대
조용원
제27대
정병국
제28대
추미애


역대 선거 결과

총통 선거

득표수 십만 단위

선거 후보 득표수, 득표율 비고
1948 이승만
49 / 70 (70%)
당선.png
당선
1953 이승만
76 / 120 (63%)
당선.png
당선
1958 이승만
73 / 138 (53%)
당선.png
당선
1963 이승만
89 / 157 (57%)
당선.png
당선
1968 이승만
100 / 171 (58%)
당선.png
당선

작업중...

국회의원 선거

연도 지도자 의석수 비고
 1948 이승만
63 / 150 (42%)
원내 1당
 1951 이승만
174 / 250 (70%)
개헌선 확보
 1956 이승만
182 / 250 (73%)
개헌선 확보
 1961 이승만
155 / 250 (62%)
원내 과반
 1966 이승만
157 / 250 (63%)
원내 과반
 1971 이승만
231 / 250 (92%)
개헌선 확보

작업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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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창립 멤버는 한국, 중국, 일본, 남베트남 총 4개국이었다.
  2. 다만 이승만은 인제영입위원장직은 유지했고, 서석준, 김종인, 김재익,심상우 등 3040 신인들을 영입한다
  3. 심지어는 조소앙, 전진한 등의 중도 좌파도 있었다.
  4. 김영삼 정부 당시 이 시민 네셔널리즘은 기독교 민주주의와 결합하여 우남주의라는 이름으로 재탄생, 민국당의 핵심 이념 중 하나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