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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랑의 난이 한참일 즈음, 까치놀 섬의 바니리꾼<ref>바니리를 부리는 전사를 말한다</ref>들도 봉기 진입에 한창 동원되었는데,  그때 동원되었던 바니리꾼들은 약탈 당해 만신창이가 된, 다리샅 지방 사람들을 마주하게 된다. 봉기군과 늘품군 모두에게 약탈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니리꾼들은,  이 전쟁 자체에 회의를 느꼈다.  
하랑의 난이 한참일 즈음, 까치놀 섬의 바니리꾼<ref>바니리를 부리는 전사를 말한다</ref>들도 봉기 진입에 한창 동원되었는데,  그때 동원되었던 바니리꾼들은 약탈 당해 만신창이가 된, 다리샅 지방 사람들을 마주하게 된다. 봉기군과 늘품군 모두에게 약탈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니리꾼들은,  이 전쟁 자체에 회의를 느꼈다.  


그들은 까치놀 섬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그들은 다리샅 사람들에게 다시는 이런 일을 당하지 않게 하겠다는 다짐을 한다. 그날은 비가 왔다. 비가 추적추적 내렸던 그날, 바니리꾼 여장부였던 [[나루]]와 그녀의 친구이자 충직한 부하였던 [[바우]], [[솔]]은 건초더미 밑에서 비를 피하며 [[온새미로]]의 시작을 논한다.
그들은 까치놀 섬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그들은 다리샅 사람들에게 다시는 이런 일을 당하지 않게 하겠다는 다짐을 한다. 그날은 비가 왔다. 비가 추적추적 내렸던 그날, 바니리꾼 여장부였던 [[나루]]와 그녀의 친구이자 충직한 부하였던 [[바우]], [[솔]]은 건초더미 밑에서 비를 피하며 [[온새미로]]의 시작을 논한다.<ref>온새미로 정치의 근간이 되는 ‘건초더미 회의’의 시작이다.</ref>


나루 일행은 까치놀 섬으로 회군한 뒤, 하랑 봉기군의 제안을 가져온 전갈과 회군의 이유를 물으러온 늘품의 전갈을 베어버리고 독자 세력을 자처한다. 기원 후 19년, 온새미로의 시작이었다.
나루 일행은 까치놀 섬으로 회군한 뒤, 하랑 봉기군의 제안을 가져온 전갈과 회군의 이유를 물으러온 늘품의 전갈을 베어버리고 독자 세력을 자처한다. 기원 후 19년, 온새미로의 시작이었다.

2021년 5월 3일 (월) 18:00 판

개요

늘품은 기원 전 473년, 모도리하늘을 나는 고래를 베고 세운 나라이다.

그들은 드높은 솔개 묏길에 서식하는 마루솔개들과, 남쪽 바다에서 서식하는 바니리들을 부렸다. 그리고 뛰놀숲의 존재들과도 어울리며 독자적인 문명을 이루었다.

역사

건국이야기

모도리가 하늘을 나는 고래를 베기 전, 터앝땅에는 여러 부족들이 각자 사회를 이루고 있었다. 해 부족은 터앝땅의 부족 중, 가장 영향력이 컸다.

부족들은 하늘을 나는 고래를 섬기고 있었다. 그들은 매년, 막 성인이 된 여성을 바람풀별로 끌고 가, 고래에게 재물로 바치는 인신공양 풍습이 있었다.

하지만 해 부족의 족장은 부족의 영향력을 이용해 해 부족에서는 제물을 바치치 않도록 했다. 그렇게 계속해서 다른 약소 부족에서만 제물로 바치던 중 기원 전 474년, 최약소 부족이었던 그믐달 부족장의 딸 예람이 제물이 되어 바람풀별로 끌려갔다.

예람을 사랑했던 터앝땅 최고의 칼잡이 모도리는 자신의 출신 부족인 해 부족을 모두 적으로 돌린 채, 바람 풀별로 향한다. 하지만 예람은 이미 하늘을 나는 고래가 제물로 생기를 폭발시켜 그대로 나무가 되어 있었다.

분노한 모도리는 고래와 혈투를 벌였고, 결국 고래를 베고 만다. 그리고 그 고래의 힘이 모도리의 칼에 깃들게 된다[1]. 모도리는 슬픔을 뒤로 삼킨 채, 뒤따라 온 해 부족의 추격대를 전부 몰살시켜버리고, 터앝땅으로 돌아간다.

해 부족의 땅으로 돌아간 모도리는 족장을 죽이고, 새로운 부족장의 자리에 앉게 된다. 그리고 칼에 깃든 고래의 힘[2]을 보이며 하늘을 나는 고래를 죽인 것을 증명한다.

그는 다른 부족들에게 힘을 합치자고 제안했고, 평소 해 부족에게 불만이 많았던 다른 부족들은 모도리의 의견에 찬성하게 된다. 그렇게 기원 전 473년, 늘품이 탄생하게 된다.

분열

늘품은 모도리 이래 약 550년 동안 찬란한 문화와 문명을 이룩해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관리들은 백성들의 안생을 뒷전이고 사리사욕을 채워왔다. 불만이 가득 찰대로 찬 백성들은 결국 봉기를 일으켰다.

솔둔치 지방 출신 하랑은 민중 봉기를 이끄는 사람 중 한명이었으며, 마루솔개를 부리는 데 능했다. 그들은 솔둔치 사람들을 모아 기원 후 18년, 하랑의 난을 일으켰다.

하랑의 난은 늘품 후반기 난세에 일어난 봉기 중, 가장 큰 봉기였다. 그들은 누리쌈의 일파인 바람짓[3]으로 파죽지세로 밀고 가서 결국 터앝땅 동부와 솔둔치, 솔개묏길 지역을 차지하고, 울력을 세우고 선포한다.

하랑의 난이 한참일 즈음, 까치놀 섬의 바니리꾼[4]들도 봉기 진입에 한창 동원되었는데, 그때 동원되었던 바니리꾼들은 약탈 당해 만신창이가 된, 다리샅 지방 사람들을 마주하게 된다. 봉기군과 늘품군 모두에게 약탈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니리꾼들은, 이 전쟁 자체에 회의를 느꼈다.

그들은 까치놀 섬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그들은 다리샅 사람들에게 다시는 이런 일을 당하지 않게 하겠다는 다짐을 한다. 그날은 비가 왔다. 비가 추적추적 내렸던 그날, 바니리꾼 여장부였던 나루와 그녀의 친구이자 충직한 부하였던 바우, 은 건초더미 밑에서 비를 피하며 온새미로의 시작을 논한다.[5]

나루 일행은 까치놀 섬으로 회군한 뒤, 하랑 봉기군의 제안을 가져온 전갈과 회군의 이유를 물으러온 늘품의 전갈을 베어버리고 독자 세력을 자처한다. 기원 후 19년, 온새미로의 시작이었다.

온새미로의 초기 세력권은 까치놀 섬에서 그쳤지다. 하지만 하랑의 난이 끝나고 울력이 선포된 뒤, 그들은 행동을 개시했다. 그들은 외짝 섬과 바니리곶, 그리고 다리샅 지역까지 온새미로의 세력권을 넓힌다. 그들의 다짐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남은 늘품의 세력은 떨어져 나간 세력에 대해 애통해 하며, 자신들의 과오를 되돌아보게 된다. 그들은 늘품의 국호를 미립으로 고치고, 새로운 시작을 하기로 한다.

그렇게 기원후 21년, 늘품은 3개의 세력으로 분열되게 된다.

  1. 위시의 마석이 흩날리며 모도리의 칼에 스며들게 된다
  2. 해 부족의 잔당들을 전부 나무로 만들어 버렸다
  3. 바람을 다루는 누리쌈으로, 솔둔치 지방 사람들이 마루솔개의 날갯짓을 보고 동작을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4. 바니리를 부리는 전사를 말한다
  5. 온새미로 정치의 근간이 되는 ‘건초더미 회의’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