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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늘품은 기원 전 473년, 모도리하늘을 나는 고래를 베고 세운 나라이다.

그들은 드높은 솔개 묏길에 서식하는 마루솔개들과, 남쪽 바다에서 서식하는 바니리들을 부렸다. 그리고 뛰놀숲의 존재들과도 어울리며 독자적인 문명을 이루었다.

역사

고래는 눈물이 되어 사라지네

모도리가 하늘을 나는 고래를 베기 전, 터앝땅에는 여러 부족들이 각자 사회를 이루고 있었다. 해 부족은 터앝땅의 부족 중, 가장 영향력이 컸다.

부족들은 하늘을 나는 고래를 섬기고 있었다. 그들은 매년, 막 성인이 된 여성을 바람풀별로 끌고 가, 고래에게 재물로 바치는 인신공양 풍습이 있었다.

하지만 해 부족의 족장은 부족의 영향력을 이용해 해 부족에서는 제물을 바치치 않도록 했다. 그렇게 계속해서 다른 약소 부족에서만 제물로 바치던 중 기원 전 474년, 최약소 부족이었던 그믐달 부족장의 딸 예람이 제물이 되어 바람풀별로 끌려갔다.

예람을 사랑했던 터앝땅 최고의 칼잡이 모도리는 자신의 출신 부족인 해 부족을 모두 적으로 돌린 채, 바람 풀별로 향한다. 하지만 예람은 이미 하늘을 나는 고래가 제물로 생기를 폭발시켜 그대로 나무가 되어 있었다.

분노한 모도리는 고래와 혈투를 벌였고, 결국 고래를 베고 만다.


그리고 그 고래의 힘이 모도리의 칼에 깃들게 된다[1]. 모도리는 슬픔을 뒤로 삼킨 채, 뒤따라 온 해 부족의 추격대를 전부 몰살시켜버리고, 터앝땅으로 돌아간다.

해 부족의 땅으로 돌아간 모도리는 족장을 죽이고, 새로운 부족장의 자리에 앉게 된다. 그리고 칼에 깃든 고래의 힘[2]을 보이며 하늘을 나는 고래를 죽인 것을 증명한다.

그는 다른 부족들에게 힘을 합치자고 제안했고, 평소 해 부족에게 불만이 많았던 다른 부족들은 모도리의 의견에 찬성하게 된다. 그렇게 기원 전 473년, 늘품이 탄생하게 된다.

마음은 갈라지고, 찢어졌네

늘품은 모도리 이래 약 550년 동안 찬란한 문화와 문명을 이룩해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관리들은 백성들의 안생을 뒷전이고 사리사욕을 채워왔다. 불만이 가득 찰대로 찬 백성들은 결국 봉기를 일으켰다.

솔둔치 지방 출신 하랑은 민중 봉기를 이끄는 사람 중 한명이었으며, 마루솔개를 부리는 데 능했다. 그들은 솔둔치 사람들을 모아 기원 후 18년, 하랑의 난을 일으켰다.

하랑의 난은 늘품 후반기 난세에 일어난 봉기 중, 가장 큰 봉기였다. 그들은 누리쌈의 일파인 바람짓[3]으로 파죽지세로 밀고 가서 결국 터앝땅 동부와 솔둔치, 솔개묏길 지역을 차지하고, 울력을 세우고 선포한다.

하랑의 난이 한참일 즈음, 까치놀 섬의 바니리꾼[4]들도 봉기 진입에 한창 동원되었는데, 그때 동원되었던 바니리꾼들은 약탈 당해 만신창이가 된, 다리샅 지방 사람들을 마주하게 된다. 봉기군과 늘품군 모두에게 약탈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니리꾼들은, 이 전쟁 자체에 회의를 느꼈다.

그들은 까치놀 섬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그들은 다리샅 사람들에게 다시는 이런 일을 당하지 않게 하겠다는 다짐을 한다. 그날은 비가 왔다. 비가 추적추적 내렸던 그날, 바니리꾼 여장부였던 나루와 그녀의 친구이자 충직한 부하였던 바우, 은 건초더미 밑에서 비를 피하며 온새미로의 시작을 논한다.[5]

나루 일행은 까치놀 섬으로 회군한 뒤, 하랑 봉기군의 제안을 가져온 전갈과 회군의 이유를 물으러온 늘품의 전갈을 베어버리고 독자 세력을 자처한다. 기원 후 19년, 온새미로의 시작이었다.

온새미로의 초기 세력권은 까치놀 섬에서 그쳤지다. 하지만 하랑의 난이 끝나고 울력이 선포된 뒤, 그들은 행동을 개시했다. 그들은 외짝 섬과 바니리곶, 그리고 다리샅 지역까지 온새미로의 세력권을 넓힌다. 그들의 다짐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남은 늘품의 세력은 떨어져 나간 세력에 대해 애통해 하며, 자신들의 과오를 되돌아보게 된다. 그들은 늘품의 국호를 미립으로 고치고, 새로운 시작을 하기로 한다.

그렇게 기원 후 21년, 늘품은 3개의 세력으로 분열되게 된다.

검들아, 물럿거라

기원 후 262년, 뛰놀숲 동부 지역의 검주비인들이 미립을 침략한다. 미립인들은 검주비의 막강한 무력을 당해낼 수 밖에 없었고, 순식간에 수도가 함락[6]된다.

미립의 유민들과 임금은 온새미로로 피난을 갔고, 임금[7]은 온새미로의 큰어른에게 구호를 요청한다. 온새미로의 큰어른[8]은 민족의 아픔에 큰 애통함을 느끼곤 미립 임금의 구호 요청에 승낙한다.

어느새 검주비는 왼다리뫼를 넘어 다리샅 지방으로 침략하기 시작했고, 온새미로는 미립의 패잔병들과 함께 필사적으로 막아낸다. 그러면서 온새미로군은 미립의 책사인 그루의 전략으로 바니리꾼을 모아 뛰놀풀별로 상륙한다.

기원 후 270년, 뛰놀풀별로 상륙한 온새미로의 바니리꾼들은 놀란 검주비인들을 무찌르며 전세를 역전시킨다. 그렇게 수도까지 치고 올라간 온새미로군은 난관에 봉착하는데, 바로 검주비의 대전사인 훔바투였다. 그는 나니리 대륙 역사상 강한 전사[9]였으며, 강력한 무력으로 온새미로군을 부수었다.

그렇게 훔바투의 무력으로 전세가 다시 검주비쪽으로 기울려 할 때, 울력의 솔개패[10]들이 전장에 합류한다. 솔개패는 하늘에서 활과 물맷돌과 바람망치를 쏟아내었고, 그렇게 훔바투는 솔개패들의 공세를 이기지 못하고 전사하였다.

울력의 합류로 쐐기를 박은 늘품은 곧바로 미립의 영토를 회복한다. 기원후 288년, 26년만에 검주비인들을 몰아내게 된다. 이 전쟁은 약 250년 만의 늘품인의 통합을 이루어낸 전쟁[11]이었다.

우리는 결국 한 핏줄 아니겠소

검주비들을 물리친 미립, 온새미로, 울력 삼국의 지도자들은 버들풀 성[12]에 모여 이야기를 나눈다.

지도자들은 이번 전쟁으로 한 핏줄임을 느꼈고, 오래 전의 앙금을 풀고 다시 통합을 해야하지 않냐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고, 모두들 동의한다. 그렇게 새늘품[13]이 피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누가 새늘품의 최고 지도자가 되느냐에 대한 이야기에서 다시 갈등이 생기게 된다.

삼국의 지도자들은 서로 자기가 새늘품의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며 다투었고, 서로의 주장은 좁혀지지 않았다. 결국 미립의 책사인 그루가 각 나라의 가장 강한 전사를 내보내 싸움을 시켜 이긴 사람이 되자는 의견을 내고, 다들 찬성한다.

2년간의 준비기간 후, 같은 장소에서 새늘품 싸움꾼 한마당이 열리게 된다. 결국 승리자는 울력의 용맹한 땡칠이가 차지하며 울력의 윗[14]이 새늘품의 지도자인 임금[15]이 된다.

이렇게 기원 후 291년, 새로운 늘품이 시작되었다.

  1. 위시의 마석이 흩날리며 모도리의 칼에 스며들게 된다
  2. 해 부족의 잔당들을 전부 나무로 만들어 버렸다
  3. 바람을 다루는 누리쌈으로, 솔둔치 지방 사람들이 마루솔개의 날갯짓을 보고 동작을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4. 바니리를 부리는 전사를 말한다
  5. 온새미로 정치의 근간이 되는 ‘건초더미 회의’의 시작이다.
  6. 검주비가 미립을 침략한 지 사흘 만이었다.
  7. 미립의 최고 지도자를 ‘임금’이라고 불렀다.
  8. 온새미로의 최고 지도자를 ‘큰어른’이라고 불렀다.
  9. 하지만 역사에 짧게 등장하기 때문에 후대에서는 상대적으로 저평가를 받는다.
  10. 마루솔개를 타고다니는 전사들을 부르는 말이다.
  11. 늘품 재통합의 씨앗이 되었다.
  12. 터앝땅의 중심에 있으며, 한때 늘품의 수도 성읍이었던 곳이다.
  13. ‘늘품’이지만 필자는 삼국 이전의 늘품과 구별하기 위해 ‘새늘품’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14. 율력의 최고 지도자를 ‘윗’이라고 불렀다.
  15. 새늘품은 미립의 ‘임금’이라는 칭호를 쓰기로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