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왜제국: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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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2월 13일 (화) 13:29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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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역사
이전 시대 대왜제국
1598 ~ 1868
다음 시대
전국 시대 대일본제국 (라 파트리아)

태합동기 1598~1868

개요

전국 시대의 후신이자,  라 파트리아 대일본제국의 전신.

대왜제국(大歪帝国 일본어:ダイイビツテイコク, 다이이비츠 테코쿠) (1598년 ~ 1936년)은 전국시대를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정유재란무술왜란을 통해 선포한 제국이다.

역사

배경 및 건국

도요토미 히데요시임진왜란의 패배에 대해 이를 갈았다. 그러던 도중 자신을 축출했던 고니시 유키나가고요제이 천황에게 강제로 보내면서 다시 권력을 되찾는다.[1] 권력을 되찾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스스로 일왕 작위를 박탈하여 정유재란이 일어나면서 고바야카와 히데아키도도 다카토라가 이끄는 왜군 사령부는 부산에, 시마즈 요시히로타치바나 무네시게는 사천에, 아리마 하루노부는 순천에 주둔했다. 이순신의 압박이 강해지자 아리마 하루노부가 부산으로 지원요청을 나간 사이 오무라 요시아키가 고립되었고, 울산에 먼저 진격한 가토 기요마사 역시 권율에 의해 고립되는 신세가 된다. 이때 고바야카와 히데아키가 가토 기요마사를 구해주지만, 이순신이 여수 앞바다까지 진격하면서 사천, 부산 일대의 왜군들이 위기에 처한다. 동시에 구루지마 미치후사의 용병들이 부산에 들어오고, 고바야카와 히데아키는 도도 다카토라와 와키자카 야스하루, 아리마 하루노부, 데라자와 마사시게를 보내어 이순신을 방어토록 한다. 도도의 부대가 난전을 겪자 고바야카와 히데아키가 몸소 지원을 나서고, 이순신의 함대를 서해안까지 몰아낸다. 사천의 시마즈 요시히로 역시 이때 지원을 나가 대승을 거두고, 오무라 요시아키를 구출한다.(여수 해전)

왜군은 이때 한양으로 진격하여 조선 왕 선조를 잡기위해 혈안이 되는데, 울산의 가토 기요마사가 금세 또 위기를 겪는다. 고바야카와 히데아키의 부대는 가토 기요마사 부대를 부산으로 퇴각시키고 직접 권율의 부대를 쳐 승리를 거둔다. 왜군들은 순식간에 한양을 점거, 선조를 시해하고 명나라를 침공한다.(무술왜란)

고바야카와 히데아키와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직접 군을 나누어 산둥 반도요동 반도를 각각 치는 이로병진 작전을 펼치고, 그 결과 자금성을 포위 점령하며 만력제를 처형하였다. 후방에 있던 구루지마 미치후사의 부대가 자금성으로 향하고, 고바야카와 히데아키는 부대를 이끌고 사막에서 페르시아군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다.(사마르칸트 대첩)

하지만 본국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반란을 일으킨다.(세키가하라 전투)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군의 사기를 떨어뜨리려 했는데, 시마즈 요시히로를 내세워 가토 기요마사와 가토 요시아키의 반란 유언비어와 마에다 도시이에를 참수하여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죽였다는 유언비어를 소문내는 등 계략을 꾸미었다.[2] 하지만 이때는 이미 와키자카 야스하루가 야음을 틈타 오스만의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함락한 터라 늦은 상황이였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마지막 방법으로 후지산 분화를 선택했다. 이때의 후지산 분화로 수호신 장달프를 비롯한 기존 오대로와 오봉행이 모두 죽었다. 이때 제주도로 후퇴한 이순신이 병력을 수습하고 오사카를 총공격한다.

오사카에서 치열한 백병전이 벌어졌고, 시마즈 요시히로가 죽으면서 가신 쵸주인 모리아츠가 당주 행세를 하게 되었다. 결국 총대장 고바야카와 히데아키는 열도를 내어주고 대륙을 먹는 초강수를 둔다.

오사카를 함락한 이순신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고요제이 천황을 처형하고, 곧장 진격준비를 하였다. 이때 자금성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태황의 자리에 오르고, 와키자카 야스하루, 고바야카와 히데아키, 쵸주인 모리아츠, 구루지마 미치후사, 다테 마사무네를 새 오대로에 임명하면서 대왜제국이 선포된다. 그리고 오대로의 집결지로 둔황칠전 왜성이 건축된다.

반란 진압과 전성기

이 무렵, 명나라의 환관이였던 연우(延宇)는 명나라의 부흥을 꿈꾸고 있었다. 진린의 부대를 처음 보냈지만 고바야카와 부대에 의해 저지당하였고, 직접 전투에 임하게 된다. 갑작스런 기습에 데라자와 마사시게가 전사하고, 동시에 조선에서도 봉기가 일어나게 된다. 초반에는 몇번 승리했지만 고바야카와 히데아키가 적진 깊숙히 들어간 와중에 낙마 사고로 사망하게 된다.[3] 칠전 왜성의 총대장이였던 쵸주인 모리아츠는 사츠마로 후퇴를 결정했고, 후일을 도모하게 된다.

삿포로 섬아이누족을 경계하던 다테 마사무네가 칠전성에 입성하게 되고, 곧장 조선으로 출정하게 된다. 투항하여 상해왜성 총대장직을 얻은 이순신은 적진에 잠복해 있다가 공격을 퍼부었고, 다테 마사무네, 와키자카 야스하루, 쵸주인 모리아츠가 동시 다발적으로 공격을 퍼붓는다.

이 때 신요의 지원군들이 조선의 반란군에 대사군전을 퍼부었는데, 이 일을 계기로 대왜제국은 신요와 교류하기 시작했다.

한편, 여진족 추장 탁시는 연우의 명군[4]을 대패시키고 대륙을 먹으면서 금나라를 다시 세우는데, 이 또한 나중에 대왜제국에 의해 진압당하고 만다. 이때 대왜제국은 심각한 난전을 겪었는데, 구루지마 미치후사쵸주인 모리아츠가 전사하면서 그 자리를 하타 치카시, 미야모토 무사시가 잇게 된다.

중원을 다시 차지한 대왜제국은 칠전왜성을 사마르칸트로 이전하고 태황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친정 하에 유럽을 정벌하고 곧장 개혁(일명 홍데타)을 실시한다. 개혁에 반발한 다이묘들을 추방시키는 등 오대로의 권력은 어마어마했다. 이때 원로 다이묘 시마즈 요시히사가 사망하면서 2차 개혁(일명 분데타)가 실행되는데, 이에 반발한 와키자카 야스하루가 오스만군을 이끌고 반란을 일으킨다.

반란군이 거세지자 타치바나 무네시게의 군대가 나섰으나 대패했고, 다테 마사무네는 칠전성에서 할복하였다. 가메이 고레노리하타 치카시는 탈영한 터라 더는 군사도 없었고, 한반도의 왜군들이 나서게 된다. 가토 기요마사가 함대를 이끌고 발해만으로 진격하는 반면에 후쿠시마 마사노리는 몽골인으로 변장한 상태로 자금성의 다이묘들을 탈출시켜 함락된 칠전왜성을 다롄에 재건한다.[5]

가토 기요마사의 부대가 톈진의 반란군들을 해안봉쇄하고, 후쿠시마 마사노리의 부대가 산해관을 넘으면서 바린 좌기[6]의 대하왜성[7]으로 진격한다. 가토 역시 톈진을 지나 자금성을 수복하고 대하왜성으로 진격했다. 와키자카 야스하루의 군대와의 치열한 접전 끝에 한반도군이 승리하였지만 가토 기요마사와 후쿠시마 마사노리는 전사하고 만다.

사츠마로 후퇴한 반란군의 잔당들은 안코쿠지 에케이를 내세워 다시 반란을 일으키고, 미륵을 신봉하던 명나라 잔당들이 봉기하게 되지만 영웅왜성에서 직접 군대를 이끌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보낸 이이 나오마사시마 사콘, 다케다 노부요시 등이 모두 진압하였다. 칠전왜성은 시안에 재건되었고, 이이 나오마사시마 사콘, 구로다 칸베에를 새 오대로에 임명하였으며, 수군 기지로 단동 왜성을 건축했다.

그리고, 대왜제국은 200년동안 전성기를 맞게 된다.

멸망

고요제이 덴노의 뒤를 이은 고미즈노오 덴노는 선황의 죽음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탓으로 인식, 고니시 유키나가의 도움을 받고 조용히 세력을 넓혔다. 그렇게 칼을 갈아오던 중 1868년, 메이지 덴노는 아버지의 독살을 명분으로 반란을 일으키게 된다. 순식간에 메이지 덴노는 혼슈를 장악, 사츠마의 시마즈 다다요시에게 항복을 받아내어 규슈까지 점령한다. 이어서 단동왜성의 사이고 다카모리, 영웅왜성의 이토 히로부미, 칠전왜성의 산조 사네토미, 상해왜성의 데라지마 무네노리구로다 기요타카, 이노우에 가오루 등의 항복을 받아내어 자금성을 포위한다. 자금성이 함락 직전에 다다르자 태황 일족은 자살을 결심하였고, 메이지 덴노가 자금성을 점령하자 대왜제국의 멸망과 동시에 라 파트리아 대일본제국이 선포되었다. 그렇게 대왜제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종교

수화기의 신, 장달프.

사츠마 번에 출현하여 수화기로 전국을 통일시킨 장달프를 수호신으로 뫼시었다.

장달프의 수화기는 그 당시 귀중한 물건이였다. 함부로 썼다가 사형당한 사람들이 있을 정도이다.

수도

  • 자금성(수도): 대왜제국 200년 역사의 수도.
  • 칠전 왜성(정치 행성): 오대로, 오봉행이 모여 정치를 총괄한 행성이였으나, 청나라에 의해 함락당했다. 둔황 - 사츠마 - 사마르칸트 - 다롄 - 시안 등지로 옮겨 다녔으며, 함락 이후에는 나고야로 이전하였다. "칠전"이란, 일곱 명의 전사들을 뜻하며 고바야카와 히데아키, 와키자카 야스하루, 쵸주인 모리아츠, 구루지마 미치후사, 다테 마사무네, 타치바나 무네시게, 데라자와 마사시게를 가리킨다.
  • 상해 왜성(국방 행성 겸 육군 기지): 전쟁 관련 일은 모두 이곳에서 총괄하였으며, 동시에 대왜제국의 육군 기지로 활용하였다.
  • 단동 행성(수군 기지): 상해 왜성을 육군 기지로 활용했다면, 단동 왜성은 대왜제국의 수군 기지로 활용한 곳이다.
  • 영웅 왜성(여름 수도): 연해주에 위치한 대왜제국의 여름 수도였다.
  • 오사카성(겨울 수도): 전국 시대 당시의 수도였으나 자금성을 수도로 삼은 이후에는 대왜제국의 겨울 수도로 활용하였다.

같이 보기

외부링크

  1. 이후 고니시 유키나가는 고요제이 천황에 의해 세이타이의 쇼군이 된다.
  2. 이 때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자금성에 피신했다.
  3. 고바야카와 히데아키의 뒷자리는 타치바나 무네시게가 잇게 된다.
  4. 이들의 후예들이 미륵을 신봉하며 세력을 키우게 된다.
  5. 미야모토 무사시는 기리시탄 다이묘임이 들통나 처형당했다.
  6. 옛날의 요나라 수도.
  7. 반란군의 집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