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대한민국, 와르샤와)

WARSAW (토론 | 기여)님의 2021년 2월 2일 (화) 10:30 판 (→‎계파)
파일:국회CI.png 대한민국 국회
원내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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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대 국회 2020.5.30. ~ 2024.5.29.
여당

114석

11석
야당

107석

30석

14석

6석

2석

2석

1석

1석
무소속
12석
재적 300석
민주당
Democratic Party of Korea (DPK)
약칭
민주당, 더민주
표어
국민과 함께 민주당
위기에 강한 대한민국, 위기에 강한 민주당
창당일
2014년 3월 26일 (국민민주당)
당명 변경
2015년 12월 28일 (민주연합)
2017년 12월 28일 (민주당)
통합한 정당
신민당 (2015년 12월 28일 흡수합당)
중앙 당사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국회대로68길 7
(여의도동, 민주당 당사)
이념
사회자유주의
사회민주주의

내부계파:
진보주의
민주사회주의
참여민주주의
친문
중도개혁주의
케인즈주의
사회보수주의
자유보수주의

스펙트럼
중도좌파
대통령
문재인 / 19대 (2017. 5 ~)
당대표
문희상 / 6선 (14·16~20대)
원내대표
김태년 / 4선 (16~19·21대)
사무총장
정성호 / 4선 (17·19~21대)
정책위의장
조승래 / 2선 (20·21대)
국회의원
113석 / 300석 (38.3%)
광역단체장
24석 / 31석 (77.4%)
기초단체장
168석 / 319석 (52.7%)
당색
주황 (#EC4200)
당가
민주당가
국제 조직
당원 수
4,065,408명(2020년 기준)
청년 조직
청년민주당
홈페이지

민주당(Democratic Party of Korea, 民主黨)은 대한민국의 집권여당, 원내 제1당이자 사회민주주의, 사회자유주의를 표방하는 정당이다. 2014년 3월 26일 안철수가 이끄는 국민개혁당과 김한길이 이끄는 통합민주당이 합당하여 국민민주당으로 시작했지만, 2015년 11월 29일 호남계의 집권으로 인하여 안철수를 중심으로 친안 계열이 대부분 이탈하여 1차 분당되었고, 12월 28일 정동영 대표의 주도로 당명을 민주연합으로 변경, 동시에 김민석이 이끄는 신민당을 흡수합당하여 당권을 유지하다가 2017년 12월 9일 추미애 당 대표의 호남 발언으로 호남계 대다수가 탈당해 친안계가 있던 신 국민민주당으로 대거 합류하면서 결국 12월 28일 민주연합에서 민주당으로 당명을 변경했다.

역사

국민민주당 창당

2013년 5월 4일 통합민주당 정기전국대의원대회에서 비주류의 지원을 받은 김한길 의원이 대의원투표, 권리당원투표, 국민여론조사 결과 61.72%의 득표율로 임기 2년의 당 대표에 선출되었다. 2013년 9월 1일에는 영등포당사로 이전한지 10년 만에 다시 여의도로 이전하였다. 통합민주당은 그동안 녹색과 노란색에서 파랑을 상징색으로 하는 새 PI를 발표했다.

한편 2011년 안철수가 재보궐선거 무렵 돌풍을 일으키면서, 유력 정치인으로 떠오르게 된다. 안철수는 2012년 대선에 출마하여 화제를 모았으나 무소속 문재인 후보와의 단일화로 사퇴하게 된다. 야권의 실질적인 단일 후보가 된 문재인은 최선을 다했지만, 보수당 후보인 박근혜에 의해 패배한다. 그러나 안철수는 이미 '유력 대권주자'까지 부상했고, 이에 통합민주당은 2013년 보궐선거를 앞두고 안철수 영입을 고려했으나 안철수 측이 이를 거부하면서 무산되었다. 이후 안철수가 제3지대 정치를 목표로 조직 설립을 추진하려 하자 일각에서는 안철수 신당 창당설까지 나돌기까지 했으며 그 해 11월 새정치당을 창당하여 안철수 신당이 현실화되었다. 가상 지지율의 경우 민주당과 새정치당이 오차범위 내에서 접전을 펼쳤고, 심지어는 통합민주당을 누르고 제1야당으로 올라서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새정치당은 설립 초기부터 당 내 갈등과 인재 영입의 부재 등으로 악재가 터진 상황이었고, 이를 진화하기 위해 당명을 국민개혁당으로 바꾸었지만 새정치라는 이름을 버렸다는 이유로 비판을 받았다. 결국 안철수 vs 반안철수 연합으로 나뉘어 당내 갈등이 현실화되었고, 곧 분당으로 이어질지 모르는 상황이 온 것이다.

그 결과 국민개혁당은 후에 통합민주당과 합당하는 결과가 된다. 이렇게 해서 야권의 연대가 이루어졌고 안철수와 김한길 대표는 여러 회의를 거쳐 통합신당 창당 준비를 했고, 3월 25일 국민개혁당을 해산하고 통합민주당에 신설합당하는 방식으로 절차가 완료되었다. 2014년 3월 26일 최종 합당을 통해 마침내 국민민주당이 출범하였다.

국민민주당이라는 당명은 안철수가 지은 것으로 초기에는 민주당으로 정하자는 호남계의 의견과, 민주연합으로 정하자는 친노, 김한길 대표의 의견이 나왔으나 통합신당의 회의를 통해 안철수 안이 최종 결정되었다.

=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국민민주당 출범 이후 지방선거가 다가오자 '기초선거 공천폐지' 등을 당론으로 내걸었는데, 구 민주계와 호남계가 기초선거의 공천을 폐지해서는 안된다며 당내 반발이 일어났고 이를 무마하기 위해 안철수 공동대표가 청와대에 '기초선거 공천폐지' 논의를 위한 면담을 요청하기도 했으나 실패했다. 결국 당 내 여론조사에 따라 근소한 차이로 공천을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또 선거 운동 기간 터진 세월호 침몰로 인해 정부는 물론 보수당의 지지율 하락과 더불어 이를 '정부의 무능과 책임'이라는 비판 마케팅을 통해, 12명의 광역단체장(서울·강원·충남·충북·세종·대전·전북·전남·광주·평양·개성·신의주)을 당선시키는데 성공하지만 보수당은 대통령의 눈물 마케팅을 이용해 서울·평양·개성을 제외한 수도권, 부울경에 근소한 차로 야권후보가 패하는 등 전반적으로 압승한 선거로 보기 어려워졌다.

7·30 재보선과 지도부 총사퇴

2014년 재보궐선거는 지방선거 참가로 상실한 국회의원들과 재판결로 상실한 국회의원들이 다수 발생하면서 총 27곳을 두고 선거를 치루게 되었다. 국민민주당은 세월호 침몰의 진상규명을 통한 특별법 제정과 정부 견제론을 목적으로 선거를 이어나갔지만, 공천 문제와 더불어 권은희 의원의 보은 공천 논란으로 7석만 건지고 참패했다.

전통적인 강세 지역인 수도권에서는 수원시 을만 건졌고, 지역적 기반이었던 전라남도의 순천·곡성에서 보수당 후보가 당선됨에 따라 최초로 보수정당 국회의원이 탄생하는 파란을 낳았고, 손학규, 김두관 등 당 중진급 국회의원들이 보수당 신인들에 낙선되기도 했다. 다만 평양시 을에 출마했던 민주진보당의 오병윤 의원이 당선되었음에도 야권연대의 성적이 나아지진 않았다. 결국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는 7월 31일 지도부를 총사퇴시키면서 4개월 만에 막을 내리게 되었다.

총사퇴 이후 지도부 총 사퇴로 인한 공백을 메꾸고, 2015년 1월 이후로 예정된 지도부 선출 전당대회까지 당을 혁신으로 이끌 비상대책위원회가 구성되었다. 2014년 8월 4일 의원총회에서 금태섭 원내대표를 만장일치로 비상대책위원장에 추대하였으며, 8월 5일 금태섭 위원장은 비상대책위원회 명칭을 국민혁신위원회로 확정지었다.

문희상 비상대책위원회 체제

금태섭 국민혁신위원장이 세월호 특별법 통과를 위해 민주진보당, 참여신당은 물론, 우파의 선진한국당과 연대하겠다고 공식 발표하였다. 하지만 민진당과 참여신당만 참여하고 선진한국당은 참여하지 않았는데 선진한국당은 이미 친박 계열의 당권 주도와 이회창·이인제 간의 갈등으로 이이(李李)갈등이 벌어진 상황이었다. 이후 선진한국당의 중도파가 세월호 특별법에 찬성하자 당권을 잡은 친박 계열은 중도파를 소수로 밀어내 세월호 특별법 찬성의 목소리를 막으려 했다. 거기다 보수당과의 합당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어 사실상 국민민주당의 세월호 특별법 질의에 반대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금태섭 위원장 체제는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오히려 선진한국당의 내부 갈등을 방관했다는 당 내 비판을 받고 국민혁신위원장에서 사퇴했으며 진보 성향의 논객인 유시민과 친안 성향의 송호창이 유력 위원장으로 떠올랐으나 결국 송호창이 국민혁신위원장으로 임명된다. 하지만 송호창도 1개월 채 되지 않아 사퇴했고, 결국 문희상 의원이 국민혁신위원장으로 임명, 명칭을 비상대책위원회로 환원하고 박영선, 문재인, 박주선, 인재근, 정세균 의원을 위촉해 계파실세 비대위가 형성되었다.

정동영 대표 체제와 1차 분당

국민민주당은 2015년 2월 8일 제1차 정기전국대의원대회를 개최하고 범호남계였던 정동영이 국민민주당의 새로운 당 대표로 선출하였다. 대의원 현장투표와 권리당원 ARS 투표, 일반국민, 일반당원 여론조사를 합산한 결과, 정동영이 51.4%, 문희상이 33.7%, 안철수가 16.3%를 각각 득표하였다.

정동영 체제가 들어선 후 당의 진보화를 내세워 좌클릭을 시도했으며, 나중에 권은희 사무총장이 사퇴하고 신기남 의원이 사무총장에 임명되면서 사실상 호남계가 친노와 친안을 밀어내고 당권을 장악한다. 하지만 지지율은 걷잡을 수 없이 흐지부지해졌고, 정동영 대표의 당 내 개혁이 너무 성급하다는 친노의 비판을 받았다.

한편 친노 계열은 순수 친노와 열린연합 출신 친노를 제외하면 이미 문재인이 주도하는 친문으로 탈피된 상태였고 최대 계파로 불렸던 친노가 정동영계로 당권이 넘겨지며 힘을 잃었고, 거기다 친노와 친문으로 나뉘어져 친문이 성장하고 친노는 소형 계파로 전락했다.

그러던 2015년 11월 29일, 안철수가 "지금까지 알던 민주당은 이미 계파 정당으로 변질되었다. 정동영 대표의 당 내 개혁은 생각이 다른 사람을 배척하는 것과 같다"며 호남계 패권주의를 비판했다. 여기에 친문으로 탈피 중인 친노도 1년이 지났지만 변한게 없다고 비판하여 민주당이 아닌 신당 창당을 목표로 탈당을 선언했다. 그리고 안철수를 따르던 10인(권은희, 이태규, 강동원, 박주선, 송호창, 김한길, 유성엽, 황주홍, 문병호, 김동철 의원)이 추가로 탈당하면서 1차 탈당이 벌어졌고, 국민민주당은 111석으로 줄어들었다.

여기에 국민민주당의 정체성을 상실했다는 김민석 의원이 탈당하고 신민당을 창당해 국민민주당과의 차별화를 강조했다.

민주연합으로 당명 변경

정동영 대표는 탈당 사태를 계기로 안철수 지우기에 나섰다. 그러자 국민민주당의 당명을 놓고 문제 제기가 벌어졌는데, 안철수가 탈당한 후 똑같은 정당으로 창당을 시도하자 국민민주당이 반발하여 안철수에 소송을 제기하였기 때문이다. 이후 12월 12일까지 갈등이 커지다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국민민주당이 정식 등록을 한 것으로 판결하여 국민민주당 측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안철수는 중앙선관위의 판결에 불복하여 신당 창당을 시도했고, 나중에 가서는 국민민주당과 안철수 신당 측이 만나 토론하기에 이른다.

결국 정동영 대표는 양당의 합의를 통해 12월 19일 당명을 28일 공개하기로 하여 최종 결정되었으며, 이후 일주일 간 진행된 당명 국민 공모에서 "민주연합", "희망민주당", "민주통일당", "민주시민당", "소나무민주당" 총 5개로 확정되어 25일 투표 결과 민주연합이 의결되어 12월 28일 민주연합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그리고 국민민주당의 당명은 안철수 신당으로 넘겨져 공식 당명이 되었다.

민주연합으로 변경한 이후 정동영을 당 대표로 유지하는 대신 천정배, 신기남을 원내대표로, 박준영을 사무총장으로 함에 따라 호남계의 당권 주도가 이어졌으며, 동시에 진보주의와 사회자유주의, 참여민주주의를 공식 이념으로 채택했다. 정동영 대표는 좌우 모두를 아우르는 정당을 내걸어 표창원 전 교수의 영입을 시작으로, 김종인 전 보수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 등 각종 분야 전문가들의 인재 영입을 시도해 당내 갈등을 막고 당 재건과 안정에 집중했으며, 여기에 선거가 다가오면서 김종인과 천정배를 공동선거대책위원장에 앉혀 선거 전략과 공천을 통한 선거 준비를 탄탄히 계획했다.

20대 총선에서의 제1당 차지

2016년 4월 13일 치러진 20대 총선에서 민주연합이 134석으로 제1당이 되었다. 이는 보수당의 오만과 독선으로 인한 국민의 심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또 보수당이 유승민 대표의 취임으로 당명을 자유당으로 바꿔 중도화를 시도했음에도 여전히 친박 중심이라는 비판을 받은 것도 야권연대의 승리 요인으로 볼 수 있다.

총선 이후 민주연합은 2016년 8월 27일 제2차 정기전국대의원대회를 개최하고 추미애가 새 대표로 선출되었다. 대의원 현장투표와 권리당원 ARS 투표, 일반국민, 일반당원 여론조사를 합산한 결과, 추미애가 56.4%, 김부겸이 43.3%를 각각 득표했다.

19대 대선 후보 경선에서는 문재인, 이해찬, 이재명, 정동영 각 4명의 후보가 참여했다. 문재인 전 사상구 의원은 "준비된 후보", 이해찬 세종시장은 "정권교체를 위한 움직임", 이재명 성남시장은 "공정사회와 시민의 변화", 정동영 전 대표는 "대한민국 진보화"를 강조했다. 경선 결과, 문재인(51.9%) 후보가 이해찬(16.4%), 이재명(17.2%), 정동영(9.1%) 후보를 제치고 과반을 득표해 대선 후보로 확정했다.

19대 대선과 2차 분당

2017년 5월 9일 치러진 19대 대선에서는 문재인 후보가 42.9%로 당선되어 창당 이후 첫 집권이자 민주당계 정당 중 세 번째로 집권에 성공했다.

19대 대선 이후 문재인 대통령은 내각을 구성함에 따라 포항 지진과 각종 산불의 적극적인 대처, 수능 연기, 미국의 원조를 통한 동아시아 삼국 핫라인을 구성하는 등 첫 해엔 그나마 잘 넘긴 상태였다. 하지만 2017년 12월 9일 추미애 대표가 "우리나라 지역 중에 전라도가 제일 못 산다"며 호남을 못 산다고 표현해 논란이 일었고, 결국 동교동/호남계와 중립 추미애계와의 갈등이 커졌다. 결국 정동영 전 대표는 범호남계 의원들과 함께 "추미애 대표가 사과할 때까지 우리는 민주연합에서 떠나기로 한다"는 입장을 통해 대다수가 민주연합을 탈당했고 친안 독자 정당으로 불렸던 신 국민민주당에 대거 입당하였다. 때문에 신 국민민주당은 47석, 민주연합은 89석이 되면서 어떤 정당이라도 개헌저지선을 넘길 수 없게 되었다.

여기에 김종인 등 중도 성향의 국회의원들도 탈당을 선언했다.

민주연합의 위기와 모면

민주연합의 지지도는 이 때부터 감소세를 보이기 시작했고, 여기에 중도층과 보수층이 자유당과 신 국민민주당에 집중되면서 큰 타격을 입었다. 결국 2017년 12월 28일 민주당으로 당명을 변경했지만 더군다나 2018년부터 동계 올림픽 과정에서의 정부 홍보 논란과 중국몽 사건, 북부 주민 살인 사건에 대한 소극적 태도를 보이더니 2018년 12월 자유당, 신 국민민주당 등의 주도로 조국 서울대학교 교수의 민주당 유착과 딸 조민의 대학교 및 대학원 부정 입학 의혹 등이 제기되면서 지지율에 바닥을 치고 있다. 여기에 국가보안법, 로스쿨 폐지를 두고 여야가 충돌하였다.

하지만 민주당은 2018년 6월 13일 치러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경북·경남·신의주·나선·함남·함북·전남을 제외한 모든 지역을 차지하여 돌풍을 일으켰으며 같은 날 치러진 재보궐선거에서도 경북과 신의주 지역을 제외한 모든 지역을 차지해 정당 역사상 최고의 황금기가 시작되었고, 여기에 한국은 물론, 미국, 일본, 러시아와의 사국회담을 통해 한국의 외교적 성공을 기미로 지지율이 75%까지 치솟았다. 이후 추미애는 2019년 6월 1일 사퇴하여 이해찬에게 당권을 쥐게 되었다.

2019년 11월 최강욱, 정봉주, 손혜원 등을 중심으로 친문 계열이 탈당해 열린시민당을 조직했다. 손혜원은 이해찬이 집권한 이후 민주당의 정체성을 잃었다며 비판했고 최강욱은 민주당이 갈수록 우클릭을 가고 있다며 이를 주도했던 이해찬 대표를 비판했다.

코로나19와 21대 총선

2020년 1월 20일 첫 중국발 코로나 확진자가 나오고 나서, 방역에 대한 문제는 물론, 중국과 단교하자는 반중 여론이 커진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의 친중 논란과 더불어 중국인 입국금지를 촉구하는 여론이 커지자 민주당은 중국인 입국금지를 강력하게 반대하는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여기에 코로나 유행을 둘러싼 가짜뉴스까지 속출하여 정부와 여당은 골치가 아픈 상황이었다.

그런데 대구의 일부 대형 교회를 중심으로 집단감염이 시작되자, 중국인 입국금지에 대한 여론이 크게 줄고 대형 교회에 대한 비판 여론이 크게 작용하여 방역 체계가 망가진 것은 물론, 슈퍼확진자라는 오명을 쓰면서 충격과 공포에 휩싸였다.

심지어 총선이 다가오면서 민주당은 선거 준비에 힘을 싣기 시작했지만 여기서 정부 견제론을 주장하는 자유당이 앞서나가 정부 견제론과 지원론이 치열해지고 있다. 그 결과 민주당은 115석을 차지해 그나마 나은 성적을 보여줬다. 하지만 자유당이 우파연합, 전진당과의 보수연립을 추진하려 하자 민주당은 제1당을 뺏길 수 있다며 사회민주당과 연립정부를 추진, 이후 민주당-사민당 연립정권이 탄생했다.

21대 총선 이후 5월 7일 여당의 원내 사령탑을 결정하는 원내대표 선거가 치러졌으며 선거 결과 김태년 후보가 115표 중 78표를 흭득하여 결선 투표 없이 당선되었다. 전해철 후보는 36표, 정성호 의원은 1표로 나타났다.

계파

의 계파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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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주의 / 범친명 범친문 중립 / 범비문
민주혁명연구회
정성호 유승희
김한정 강기정
정청래 김기준
제윤경 이화영
민형배 최배근
민주평화국민연대
설훈 우원식
노영민 위성곤
이인영 홍익표
인재근 김민기
기동민
개혁민주회
윤호중 전해철
이광재 전재수
백원우 박재호
신친문
은수미
박영선
86그룹
김태년
우상호
윤호중
김인석
자유당 탈당파
조경태
김병준
박주민과 사람들
양향자 최재성
김병기 진성준
오기형 김상곤
조응천 정찬모
이낙연연대
백혜련 고민정
이개호 오영훈
이탄희 조오섭
배재정 강훈식
시민의 눈
정세균 김영주
강기정 이미경
전병헌
참여민주연합
김명미
박성필
송치용
이해찬계
문희상
청민연대
김부겸 김두관
노웅래 송영길
이석현 정성호
박지원 이용호

민주당의 핵심적인 계파는

  • 동교동계로 대표되는 호남권 정치인
  • 1980년대 민주화 투쟁에 앞장섰던 운동권
  • 1990년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영입했던 성공한 야권 성향 유명 인사 집단이 있다.

그리고 현재 민주당이 집권한 뒤로는,

  •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축으로 하는 친노
    •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 출신인 문재인 대통령을 축으로 한 친문
      • 1970-80년대의 민주화 투쟁을 한 운동권을 주축으로 한 민평련
      • 문재인 정부 초대 국무총리 출신인 이낙연을 축으로 한 이낙연연대
      • 현직 종로구 국회의원 정세균을 축으로 한 시민의 눈
      • 친노 출신이 주축이 된 개혁민주회
      • 참여신당 출신이 주축이 된 참여민주연합
      • 구 안희정계, 구 박원순계 등에서 유입된 정치인들을 포함한 범친문
  • 현직 국회의원 박주민을 축으로 한 박주민과 사람들
  • 전 성남시장이자 현직 경기도지사인 이재명을 중심으로, 일부 비문 성향과 진보가 합쳐진 민주혁명연구회
  • 진보적 이재명계를 제외한 중도주의 성향 청민연대

이 중 1번은 대부분 호남계이자 친노와의 반목이 심한 계열로, 현재 개혁당으로 나갔으며, 2번은 김근태 의장의 사망과 함께 각자도생의 길을 걷다가 김근태의 철학과 이념을 바탕으로 민주평화국민연대로 넘어왔다. 그 중 일부는 86그룹으로 전향했으며 3번은 크고 많은 비중을 차지한 계파가 친노무현계이다.

호남계는 2015년 전당대회를 통해 정동영이 선출된 후 민주당의 최대 계파로 부상했다. 그 중 정동영계가 호남계 중에서 가장 진보적이며, 그 다음으로 천정배계, 박지원계, 안철수와 뜻을 같이 하던 김한길계, 손학규계로 손학규가 이끌던 계파가 가장 보수적으로 평가받는다.

민주연합 설립 이후 정동영이 차기 대선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지지 기반이 호남과 높은 세대이었기 때문에 다른 후보에 밀려 전국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하지만 추미애 대표의 망언으로 인하여 당권파와 동교동계와 호남계 간의 갈등을 촉발시켜 나중에는 탈당 후 대부분 신 국민민주당으로 넘어갔으나 7회 지방선거 당시 공천 갈등으로 인하여 개혁당으로 분당했다.

과거에는 국민개혁당과 합당한 이후 친안 세력이 주류였으나, 7·30 재보선에서 참패한 후 비주류가 되었으며 2015년 11월 안철수의 탈당을 통해 친안 계열이 빠져나가 신 국민민주당을 창당하였다. 이후 개혁당으로 분당한 후 신 국민민주당은 전진당으로 간판을 바꿔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다.

친노의 경우 참여정부 이후부터 힘을 잃기 시작했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살하고 난 후부터는 부활의 불씨를 마련했다. 2010년에는 6·2 지방선거에서 친노 진영 인사들이 당선되어 눈부신 성과를 이뤘는데 안희정이 충남도지사, 이광재가 강원도지사, 김두관이 경남도지사, 이해찬이 평양시장, 백원우가 개성시장에 당선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한명숙 전 총리도 야권단일화로 서울시장에 출마해 보수당의 오세훈, 선진한국당의 나경원과 삼파전을 벌였으며, 경기도지사에서도 유시민 당시 참여신당 원내대표가 야권단일화로 출마, 보수당의 김문수와 강한 접전을 벌였다.

2011년 문재인의 정치적 돌풍으로 친노에서 인기를 얻게 되었고, 나중에는 2012년 대선 후보로까지 등극했다. 하지만 2012년 당시에는 이명박 정부의 인기가 저조하던 시기였으나 총선에서는 12명이 당선된 반면 대선에서는 문재인 후보가 낙선하여 또 다른 고난을 겪었다.

국민민주당 창당 이후에도 대표 계파로 손꼽혔지만 규모가 줄어들었다. 1차 분당 당시에는 동교동계, 호남계와 잠시 손을 잡은 적이 있었으나, 2차 분당부터 동교동계와 호남계에 손을 뗐다. 그 중 1차 분당 당시 친노도 같이 갈라졌는데, 유력한 대선 주자로 떠오른 문재인 쪽으로 뭉치면서 친문이 탄생한 것이었다.

2015년 온라인 입당 열풍과 2016년 총선을 거치면서 친문은 민주당 내에서 많은 권리당원과 국회의원을 가진 최대 계파가 되었고, 2017년에는 친문 수장인 문재인이 정권을 잡게 되었다. 이후 2018년 지방선거와 2020년 총선에 승리하면서 정부가 탄탄해진 모습을 볼 수 있으며 현재 실질적인 계파 현황은 친문이 유일하게 최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낙연 전 국무총리가 이끄는 이낙연연대, 정세균 현 국회의원이 이끄는 시민의 눈, 참여신당 출신 참여계가 이끄는 참여민주연합, 친노 출신들이 축이 되는 개혁민주회, 그리고 구 박원순·안희정계에서 유입된 정치인을 포함하는 범친문으로 하위 갈래가 존재한다.

또 과거에는 박원순 서울시장과 안희정 충남도지사를 따르는 박원순계와 안희정계로 각각 나뉘었으며, 양 계파는 지방선거 기간 동안 점점 성장해갔다. 당 내에서는 기동민, 허영, 윤준병, 김원이 등이 속해있는 '신서울연합'과 박수현, 김종민 등이 속해있는 '충청의 힘'이 존재했다. 박원순계는 친문보다 워낙 진보적인데다가 2020년 총선에서 총 17명을 당선시켜 차기 대권 도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 믿었고, 안희정계도 2018년 안희정의 당선으로 이른바 충남엑소라는 별명을 통해 충청 대망론이 작용할 것으로 보였었다.

하지만 2018년 안 지사의 성폭력 사건으로 안희정계가 가장 먼저 사라졌고, 2020년 5월에는 박원순의 자살로 박원순계마저 사라지면서 사실상 미투 사건으로 인하여 소멸된 계파가 되었다. 박원순계 대부분은 각종 사건사고에 휘말려 정계 은퇴를 선언했으며 현재 일부만 민평련에 갔고, 안희정계 일부도 청민연대에 속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