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청종합예술대학/옛 교정: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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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특별시]] 동호구 영수동 정향호수변에 있던 옛 성경교정. 영수촌교정으로도 불렸으며 1956년 처음 개교해 2010년까지 사용되었다. 1980년대 이전까지 북청예대를 다니던 분들에게는 그야말로 꿈과 희망이 넘치던 추억의 캠퍼스로 정향호수의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성경이 급격하게 성장하면서 1970년대부터 인근에 소규모 공장과 하수처리장등이 들어서 학생 복지 수준이 떨어지고 원활한 도시계획에도 차질이 생기자 1985년 [[대한한림원|한림원]]은 시정부와 협의 아래 성경 동부 능서구 신개동과 평양의 황실 소유 부지로 교정을 이전하기로 결정하였다. 2000년에는 모든 학부가 평양과 신개동교정으로 이전 완료하였고 남은 건물과 부지는 실습수업이 잠깐 이루어지는 정도로 유지되었으나 2010년 결국 완전 폐쇄가 결정, 2013년 모든 건물이 완전히 철거되었다. 현재 부지는 분할매각되어 아파트와 정향호수공원이 들어서있다.
[[성경특별시]] 동호구 영수동 정향호수변에 있던 옛 성경교정. 영수촌교정으로도 불렸으며 1956년 처음 개교해 2010년까지 사용되었다. 1980년대 이전까지 북청예대를 다니던 분들에게는 그야말로 꿈과 희망이 넘치던 추억의 캠퍼스로 정향호수의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성경이 급격하게 성장하면서 1970년대부터 인근에 소규모 공장과 하수처리장등이 들어서 학생 복지 수준이 떨어지고 원활한 도시계획에도 차질이 생기자 1985년 [[대한한림원|한림원]]은 시정부와 협의 아래 성경 동부 능서구 신개동과 평양의 황실 소유 부지로 교정을 이전하기로 결정하였다. 2000년에는 모든 학부가 평양과 신개동교정으로 이전 완료하였고 남은 건물과 부지는 실습수업이 잠깐 이루어지는 정도로 유지되었으나 2010년 결국 완전 폐쇄가 결정, 2013년 모든 건물이 완전히 철거되었다. 현재 부지는 분할매각되어 아파트와 정향호수공원이 들어서있다.


2010년 철거 직전 두달 동안 <65년의 기억, 호수변에서의 나날>이라는 기념전시회가 열렸는데 졸업생이 무려 2만여명이나 다녀갔다. 그만큼 영수촌교정이 많은 졸업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던 것.
2010년 철거 직전 두달 동안 <65년의 기억, 호수변에서의 나날>이라는 기념전시회가 열렸는데 졸업생이 무려 1만여명이나 다녀갔다. 그만큼 영수촌교정이 많은 졸업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던 것.

2023년 11월 2일 (목) 19:12 기준 최신판


동방의 불란서 세계관

개요

북청종합예술대학의 폐지, 이전된 교정에 대한 문서.

서울교정

현 주소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173.

예술학교 당시 처음으로 교정으로 사용된 삼림빌딩이 있었던 곳으로 1949년 북청종합예술대학이 정식으로 출범하고 나서는 단 한번도 정식 교정으로 사용된 적은 없지만 예술학교의 역사를 잇는다는 취지에서 서울교정으로 명명되었다. 아태전쟁 이후 내탕금으로 주위 부지를 조금씩 사들인뒤 1955년에 삼림빌딩을 헐고 10층짜리 건물로 다시 지었다가 2003년 재건축하여 현재는 서울사무소 겸 대학 서울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舊 성경교정(영수촌)

성경특별시 동호구 영수동 정향호수변에 있던 옛 성경교정. 영수촌교정으로도 불렸으며 1956년 처음 개교해 2010년까지 사용되었다. 1980년대 이전까지 북청예대를 다니던 분들에게는 그야말로 꿈과 희망이 넘치던 추억의 캠퍼스로 정향호수의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성경이 급격하게 성장하면서 1970년대부터 인근에 소규모 공장과 하수처리장등이 들어서 학생 복지 수준이 떨어지고 원활한 도시계획에도 차질이 생기자 1985년 한림원은 시정부와 협의 아래 성경 동부 능서구 신개동과 평양의 황실 소유 부지로 교정을 이전하기로 결정하였다. 2000년에는 모든 학부가 평양과 신개동교정으로 이전 완료하였고 남은 건물과 부지는 실습수업이 잠깐 이루어지는 정도로 유지되었으나 2010년 결국 완전 폐쇄가 결정, 2013년 모든 건물이 완전히 철거되었다. 현재 부지는 분할매각되어 아파트와 정향호수공원이 들어서있다.

2010년 철거 직전 두달 동안 <65년의 기억, 호수변에서의 나날>이라는 기념전시회가 열렸는데 졸업생이 무려 1만여명이나 다녀갔다. 그만큼 영수촌교정이 많은 졸업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던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