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


이탈리아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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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제국 제3대 황제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 | Vittorio Emmanuel III
본명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페르디난도 마리아 젠나로 디 사보이아카리냐노
Vittorio Emanuele Ferdinando Maria Gennaro di Savoia-Carignano
출생 1869년 11월 11일
이탈리아 왕국 캄파비아 주 나폴리
대관식 1946년 3월 5일
사망 1952년 7월 23일 (향년 82세)
이탈리아 라치오 주 로마
국적 이탈리아
재위 이탈리아 국왕 | 황제
1911년 2월 24일 ~ 1952년 7월 23일
(41년 4월 4주 1일, 15,125일)
작위 이탈리아 제국 황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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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부군 움베르토 1세 사보이의 마르게리타 왕비
형제자매 3남 2녀중 장남
배우자 벨기에의 마리아 조세 황비
자녀 장남 움베르토 2세
외 1녀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페르디난도 마리아 젠나로
(Vittorio Emanuele Ferdinando Maria Gennaro)
사보이아
(Savoia)
신체 153cm, 62kg
종교 가톨릭

개요

이탈리아 제국의 제3대 황제.

차례의 세계 대전에서 이탈리아를 이끌면서 이탈리아의 승리를 견인하였으며, 동시에 제국의 영토를 크게 확장한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정복군주로 꼽힌다. 1945년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이탈리아 왕국을 제국으로 재창건한 것 역시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의 업적이다.

생애

유년기

황제 즉위

제1차 세계 대전

전간기

제2차 세계 대전

1939년,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자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는 프랑스, 영국과 함께 독일에 선전포고하였다. 그러나 실질적인 군사 작전은 없었으며 그렇게 가짜 전쟁이 지속되었다. 1940년 프랑스 침공 때 이탈리아군은 20개 사단, 총 41만명을 동원하여 프랑스를 도왔으나 역부족이었고 오히려 알프스 산맥에서 대치중이던 오스트리아의 국경이 돌파당하면서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1940년 9월 11일, 로마 인근의 마을 치비타베치아에서 이탈리아군 9개 사단이 전멸하는 대패를 겪은 이탈리아군은 9월 17일 로마를 내어주면서 독일에게 이탈리아 반도 전체를 내어주게 되었다. 1940년 11월, 이탈리아군은 나폴리를 포함한 이탈리아 반도 남부를 포기하고 시칠리아섬으로 도피했다. 비슷한 시기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 역시 이탈리아령 리비아로 대피하게 된다.

전후 제국 선포와 말년

평가

긍정적 평가

부정적 평가

가족 관계

여담

각주

  1. 전 이탈리아인의 국왕, 알바니아 국왕, 리비아의 보호자, 에리트레아의 보호자를 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