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의 불란서 세계관
대한국의 쿠데타·반란·민란 (시도 포함)
[ 펼치기 · 접기 ]
사군의 난
四軍之亂
기간
1947년 6월 19일 ~ 1948년 11월 25일
장소
조선반도 전역
원인
아시아 태평양 전쟁 종전후 정부의 군인 처우 미흡
현역 및 퇴역 군인들의 불만 증대
교전 세력
대한국 국군 정부군 대한국 국군 제4군단
삼도군사경찰대
지휘관
황제 세조 무황제
내각총리대신 여운형
조선임시치안본부장 조병옥
진압군 도원수 임세준
삼도임시치안대장 윤원구
제4함대장 목윤호 †
함흥부사 박만채
제주부사 이원율 †
제4군단장 조충은
삼도군사경찰대장 명진호 †
무진함장 구문옥 ←
부산부치안대장 홍대길
원산부군사경찰대장 안명수 †
병력
67만명 30만명
피해 규모
사상자 5만명 사상자 12만명
민간인 피해
8~10만명 사망
결과
정부군 승리, 진압 성공
영향
제주 4.3 사건 발생
전후 복구 지연
퇴역군인 처우 개선

개요

정화 2년(1947) 제4군단 등 몇몇 육군 부대와 이에 호응한 군인들이 조선성에서 일으킨 군사반란, 내전.

원인

역사학자들은 사군의 난이 발발한 직접적 원인으로 전쟁으로 비대해진 군부, 해군과 육군의 차별대우로 인한 갈등, 재원 부족으로 인한 군인 임금 체불을 꼽고 있으며 간접적, 부가적 요인으로는 근대화가 진행되며 관서 지역과 만주의 신진 자본가 계급의 성장으로 인해 소외된 삼남지방(충청, 전라, 경상)의 전통 양반 계급이 가진 불만을 꼽고 있다.

전개

제4군단 반란

파죽지세의 반란군

안주 전투

패퇴하는 반란군

삼남 토벌 작전

제주도로 간 반란군

제주 4.3 사건

14연대 반란

종결

영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