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요약 없음 |
잔글편집 요약 없음 |
||
106번째 줄: | 106번째 줄: | ||
== 개요 == | == 개요 == | ||
조선의 제31대 국왕이자, [[대한조선국 (푸른 오얏꽃2)|대한조선국]]의 제4대 국왕이다. [[익종 (푸른 오얏꽃2)|익종 이섭]]과 [[원영왕후 (푸른 오얏꽃2)|원영왕후 박주찬]]의 장녀이다. 공주 시절 칭호는 현안공주(賢安公主). 문장은 오얏꽃이며, 연호는 소흥(蘇興)이다. 현재 재위 중이므로 조선인들 사이에선 '''성상 폐하(聖上 陛下)''', 줄여서 '''성상'''이라 불린다.<br> | 조선의 제31대 국왕이자, [[대한조선국 (푸른 오얏꽃2)|대한조선국]]의 제4대 국왕이다. [[익종 (푸른 오얏꽃2)|익종 이섭]]과 [[원영왕후 (푸른 오얏꽃2)|원영왕후 박주찬]]의 장녀이다. 공주 시절 칭호는 현안공주(賢安公主). 문장은 오얏꽃이며, 연호는 소흥(蘇興)이다. 현재 재위 중이므로 조선인들 사이에선 '''성상 폐하(聖上 陛下)''', 줄여서 '''성상'''이라 불린다.<br> | ||
한국사 역사상 4번째 여왕으로, 신라의 진성여왕 이후 1,100년 만에 등장한 여성 군주이다. 2005년(건양 41년) [[익종 (푸른 오얏꽃2)|익종]]이 붕어하고 오빠인 [[창평대군 (푸른 오얏꽃2)|창평대군]]이 즉위해야 했으나, 창평대군이 미혼모인 [[강다은 (푸른 오얏꽃2)|강다은]]과의 혼인을 위해 왕위를 포기했다. 이후 궁내부 추밀원의 심의와 국민 투표를 통해 2005년 7월 25일에 [[이화궁 (푸른 오얏꽃2)|이화궁]] 중화전에서 전통 방식으로 즉위식을 치르고 대한조선국의 여왕이 되었다. 도예에 관심이 많아 서초구 소재 예술원의 명예 회장을 맡기도 했고, 일본을 비롯한 12개국에서의 서훈 내역이 있다. | 한국사 역사상 4번째 여왕으로, 신라의 진성여왕 이후 1,100년 만에 등장한 여성 군주이다. 2005년(건양 41년) [[익종 (푸른 오얏꽃2)|익종]]이 붕어하고 오빠인 [[창평대군 (푸른 오얏꽃2)|창평대군]]이 즉위해야 했으나, 창평대군이 미혼모인 [[강다은 (푸른 오얏꽃2)|강다은]]과의 혼인을 위해 왕위를 포기했다. 이후 궁내부 추밀원의 심의와 국민 투표를 통해 2005년 7월 25일에 [[이화궁 (푸른 오얏꽃2)|이화궁]] 중화전에서 전통 방식으로 즉위식을 치르고 대한조선국의 여왕이 되었다. 도예에 관심이 많아 서초구 소재 예술원의 명예 회장을 맡기도 했고, 일본을 비롯한 12개국에서의 서훈 내역이 있다. 국민 투표를 통해 왕이 된 특이한 케이스의 군주이기도 하다. | ||
== 생애 == | == 생애 == |
2021년 8월 25일 (수) 23:46 판
이 문서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상태로, 본문에 다소 난잡하거나 생략된 부분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조선 제31대 국왕 | |||||||||||||||||||||||||||||||||||||||||||||||||||||||||||||||||||||||||||||||
대한조선국 제4대 국왕 성상 이영혜 | 聖上 李領慧 | |||||||||||||||||||||||||||||||||||||||||||||||||||||||||||||||||||||||||||||||
파일:KakaoTalk 20210423 155712681.png | |||||||||||||||||||||||||||||||||||||||||||||||||||||||||||||||||||||||||||||||
임시 사진 (출처: 원신) | |||||||||||||||||||||||||||||||||||||||||||||||||||||||||||||||||||||||||||||||
대한조선국 국왕 | |||||||||||||||||||||||||||||||||||||||||||||||||||||||||||||||||||||||||||||||
재위 | 대한조선국 공주 | ||||||||||||||||||||||||||||||||||||||||||||||||||||||||||||||||||||||||||||||
---|---|---|---|---|---|---|---|---|---|---|---|---|---|---|---|---|---|---|---|---|---|---|---|---|---|---|---|---|---|---|---|---|---|---|---|---|---|---|---|---|---|---|---|---|---|---|---|---|---|---|---|---|---|---|---|---|---|---|---|---|---|---|---|---|---|---|---|---|---|---|---|---|---|---|---|---|---|---|---|
1976년(건양 12년) 1월 12일 ~ 2005년(소흥 원년) 7월 19일 | |||||||||||||||||||||||||||||||||||||||||||||||||||||||||||||||||||||||||||||||
조선 제31대 국왕 | |||||||||||||||||||||||||||||||||||||||||||||||||||||||||||||||||||||||||||||||
2005년(소흥 원년) 7월 20일 ~ (재위 중) | |||||||||||||||||||||||||||||||||||||||||||||||||||||||||||||||||||||||||||||||
대한조선국 제4대 국왕 | |||||||||||||||||||||||||||||||||||||||||||||||||||||||||||||||||||||||||||||||
2005년(소흥 원년) 7월 20일 ~ (재위 중) | |||||||||||||||||||||||||||||||||||||||||||||||||||||||||||||||||||||||||||||||
대관식 | 2005년(소흥 원년) 7월 23일 서울특별시 이화궁 중명전 | ||||||||||||||||||||||||||||||||||||||||||||||||||||||||||||||||||||||||||||||
즉위식 | 2005년(소흥 원년) 7월 25일 서울특별시 이화궁 중화전 | ||||||||||||||||||||||||||||||||||||||||||||||||||||||||||||||||||||||||||||||
전임자 | 익종 | ||||||||||||||||||||||||||||||||||||||||||||||||||||||||||||||||||||||||||||||
내각총리대신 | 노민영 이명일 박주혜 문재성 | ||||||||||||||||||||||||||||||||||||||||||||||||||||||||||||||||||||||||||||||
[ 펼치기 · 접기 ]
|
개요
조선의 제31대 국왕이자, 대한조선국의 제4대 국왕이다. 익종 이섭과 원영왕후 박주찬의 장녀이다. 공주 시절 칭호는 현안공주(賢安公主). 문장은 오얏꽃이며, 연호는 소흥(蘇興)이다. 현재 재위 중이므로 조선인들 사이에선 성상 폐하(聖上 陛下), 줄여서 성상이라 불린다.
한국사 역사상 4번째 여왕으로, 신라의 진성여왕 이후 1,100년 만에 등장한 여성 군주이다. 2005년(건양 41년) 익종이 붕어하고 오빠인 창평대군이 즉위해야 했으나, 창평대군이 미혼모인 강다은과의 혼인을 위해 왕위를 포기했다. 이후 궁내부 추밀원의 심의와 국민 투표를 통해 2005년 7월 25일에 이화궁 중화전에서 전통 방식으로 즉위식을 치르고 대한조선국의 여왕이 되었다. 도예에 관심이 많아 서초구 소재 예술원의 명예 회장을 맡기도 했고, 일본을 비롯한 12개국에서의 서훈 내역이 있다. 국민 투표를 통해 왕이 된 특이한 케이스의 군주이기도 하다.
생애
1972년 6월 8일, 익종과 박주찬 사이 2남 2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공주 시절의 칭호는 현안공주였다. 무난하게 연희초·중을 졸업했지만, 공주 시절에는 조신하지 않고 자유분방한 행동 때문에 좋게 보지 않는 국민들도 있었다. 그녀는 왕실의 교육이 체질에 맞지 않아 왕립연희고등학교를 졸업하지 않고, 서울특별시 소재 덕성여고에 다녔다. 교우관계도 원만했고, 당시 친구들의 인터뷰에 의하면 항상 활기차고 분위기 메이커였다고 한다. 그러나 일부 국민 여론이 공주의 행동을 좋게 보지 않았고, 심지어 그녀가 하교하고 궁으로 돌아가는 길에 어느 노인이 다가와 "현안공주 아웃! 군주제 폐지! 대한민국 만세!"라고 외친 사건도 있었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