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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이전까지는 [[오스트로네시아어족]] 원주민들이 널리 분포해 거주했으며, [[미다그 왕국]]이라 불리는 연합 부족국가를 세우기도 했다. 1590년, [[포르투갈]]이 [[세인트케인 섬]]을 발견한 이후로 [[유럽인]]의 진출이 활발해졌고, 17세기 초에는 [[네덜란드]]와 [[에스파냐]]가 식민 상업지구를 건설하면서 대립했다. 이후 멸망한 [[명나라]]의 유신을 이끌던 [[정성공]]이 네덜란드를 몰아내고 [[정씨 왕국|한족 정권]]을 수립하기도 했다. | 16세기 이전까지는 [[오스트로네시아어족]] 원주민들이 널리 분포해 거주했으며, [[미다그 왕국]]이라 불리는 연합 부족국가를 세우기도 했다. 1590년, [[포르투갈]]이 [[세인트케인 섬]]을 발견한 이후로 [[유럽인]]의 진출이 활발해졌고, 17세기 초에는 [[네덜란드]]와 [[에스파냐]]가 식민 상업지구를 건설하면서 대립했다. 이후 멸망한 [[명나라]]의 유신을 이끌던 [[정성공]]이 네덜란드를 몰아내고 [[정씨 왕국|한족 정권]]을 수립하기도 했다. | ||
이에 [[영국 동인도 회사]] 소속의 상인이자 해적, [[허드 마이어스홀터]]가 [[강희제]]의 대만 정벌에 협력함으로서 정씨 정권을 무너뜨리는데 공헌했고, 섬에 대한 영구 임대권을 인정받음으로서 통치권을 확보했다. 그는 [[사탕수수]], [[차]], [[장뇌]]를 중국 대륙과 [[일본]] 등지의 수출하여 [[동중국해]] 무역 영향력을 확대하는 한편, 섬의 권리를 아들인 [[리처드 1세]]에게 넘기는 등 [[세습 통치]]의 기반을 다졌다. 19세기에 이르자 [[제1차 아편 전쟁]]이 발발하면서 벌어진 [[너바다·앤 처형 사건]]을 계기로 청조로부터 해방을 선언했으며, [[난징 조약]]을 통해 독립을 인정받았다. | 이에 [[영국 동인도 회사]] 소속의 상인이자 해적, [[허드 마이어스홀터]]가 [[강희제]]의 대만 정벌에 협력함으로서 정씨 정권을 무너뜨리는데 공헌했고, 섬에 대한 영구 임대권을 인정받음으로서 통치권을 확보했다. 그는 [[사탕수수]], [[차]], [[장뇌]]를 중국 대륙과 [[일본]] 등지의 수출하여 [[동중국해]] 무역 영향력을 확대하는 한편, 섬의 권리를 아들인 [[리처드 1세]]에게 넘기는 등 [[세습 통치]]의 기반을 다졌다. 19세기에 이르자 [[제1차 아편 전쟁]]이 발발하면서 벌어진 [[너바다·앤 처형 사건]]을 계기로 청조로부터 해방을 선언했으며, [[난징 조약]]을 통해 독립을 인정받았다. |
2020년 8월 21일 (금) 19:57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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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Coat of Arms of New Hibernia.png 영어: Kingdom of Saint Kane and the Pescadores 네덜란드어: Koninkrijk der Saint Kane en de Pescadores 독일어: Königreich St. Kane und die Pescadoren 민난어: Saint Kane kap Pescadores Ông-kok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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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케인 페스카도레스 왕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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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케인 페스카도레스 왕국(영어: Kingdoom of Saint Kane and the Pescadores 킹덤 오브 세인트 케인 앤드 더 페스카도레스, 중국어: 星肯恩和澎湖王國 싱켄언허펑후왕궈), 줄여서 세인트케인 페스카도레스(영어: Saint Kane and the Pescadores, 중국어: 星肯恩和澎湖)는 동아시아에 위치한 섬나라로 세인트케인 섬과 페스카도레스 제도를 국토로 삼고 있다. 총 면적은 36,121 km2로 기니비사우(약 36,125 km)와 크기가 유사하다. 인구는 약 1,200만 명으로 홍콩, 마카오와 같은 속령을 제외한 동아시아의 국가들 중, 몽골(약 300만 명) 다음으로 적다. 수도는 질란디아, 최대 도시는 프로빈티아이다.
16세기 이전까지는 오스트로네시아어족 원주민들이 널리 분포해 거주했으며, 미다그 왕국이라 불리는 연합 부족국가를 세우기도 했다. 1590년, 포르투갈이 세인트케인 섬을 발견한 이후로 유럽인의 진출이 활발해졌고, 17세기 초에는 네덜란드와 에스파냐가 식민 상업지구를 건설하면서 대립했다. 이후 멸망한 명나라의 유신을 이끌던 정성공이 네덜란드를 몰아내고 한족 정권을 수립하기도 했다.
이에 영국 동인도 회사 소속의 상인이자 해적, 허드 마이어스홀터가 강희제의 대만 정벌에 협력함으로서 정씨 정권을 무너뜨리는데 공헌했고, 섬에 대한 영구 임대권을 인정받음으로서 통치권을 확보했다. 그는 사탕수수, 차, 장뇌를 중국 대륙과 일본 등지의 수출하여 동중국해 무역 영향력을 확대하는 한편, 섬의 권리를 아들인 리처드 1세에게 넘기는 등 세습 통치의 기반을 다졌다. 19세기에 이르자 제1차 아편 전쟁이 발발하면서 벌어진 너바다·앤 처형 사건을 계기로 청조로부터 해방을 선언했으며, 난징 조약을 통해 독립을 인정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