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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고(Obsidian)
아이티는 오랜 미국의 강점기에 형성된 물라토 계층의 지배체제와 흑인 하류층간의 갈등은 국가를 병들게 하고 있으나, 끝내 도미니카 공화국의 침공으로 일부 영토를 강탈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카리브 군단이 도미니카를 침공하는 시점에서도 아이티는 국내정세가 굉장히 혼란스러워서 고토 수복을 시도하지 않는다.
1963년 3월 카리브 군단의 도미니카 침공이 실패한 이후 도미니카 공화국의 침공 위협이 커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1963년 5월 아이티 대통령 데주아가 행정부, 군 당국의 지원을 받은 쿠데타를 통해 대통령 직에서 물러난다.
쿠데타는 장관 프랑크 라보가 주도했는데, 그는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민주주의와 아이티의 제도를 강화할것을 약속했다.
1963년 9월 28일 아이티 민족해방인민당(PPLN)은 무능한 아이티 정부에 대항해 전국적인 게릴라 투쟁을 촉구하는 카으아이시앵 선언을 발표했다. 아이티군이 동원됨에 따라 게릴라전과 소규모 봉기가 전국에서 일어났다.
1966년 4월 포르토프랭스에서 민족해방인민당의 봉기와 함께 아이티 정부를 향한 총공세로 인해 아이티 전역의 도심부에서 시가전이 벌어졌다. PPLN은 그동안 아이티 정부에 대항하는 소규모 반군 활동을 이어왔지만, 이번 사태 같은 대규모 교전은 처음이었다.
아이티 정부는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반란을 종결시키기 위해 군을 동원함과 동시에 라보 정부는 이번 봉기에서 승리할것임을 선언했다.
1966년 4월 23일 PPLN이 오랜 반란 끝에 아이티 정부를 무너뜨리고 포르토프랭스를 점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