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조 공화국 (사막여우)

사막여우 (토론 | 기여)님의 2021년 12월 19일 (일) 17:46 판 (→‎근대)
에조 공화국
蝦夷共和國 (えぞきょうわこく)
국기 국장
상징
국가
국조
두루미
국목
가문비나무 (사할린 가문비)
국화
해당화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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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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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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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삿포로 특별시
최대 도시
삿포로 특별시
면적
120,634.95km²
접경국
일본국, 러시아 연방
인문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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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출산율
1.21 명
기대 수명
87세
공용어
없음(사실상 일본어)
공용 문자
없음
종교
국교
없음
분포
군대
에조 공화국 국군
하위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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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역자치단체
기초자치단체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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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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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체제
자본주의적 시장경제
GDP
(PPP)
전체 GDP
$
1인당 GDP
$
GDP
(명목)
전체 GDP
$
1인당 GDP
$
무역
수입
$
수출
$
외환 보유고
$
신용 등급
AA-
화폐
공식 화폐
에조 공화국 료(両)
ISO 4217
MJY
단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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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연호
서력 기원
시간대
GMT +9
도량형
미터법
ccTLD
.ez / .えぞ / .エゾ / .蝦夷 / .com
국가 코드
EZ,EZO
전화 코드
851


에조 공화국(일본어: 蝦夷共和國 (えぞきょうわこく))는 동북아시아에 위치한 국가이다. 국경은 동쪽과 서쪽, 북쪽으로는 러시아와 접하고 남쪽으로는 일본과 접한다. 수도는 삿포로이다.

영토는 에조가시마(蝦夷ヶ島)와 북위 40도선 이남의 가라후토(樺太), 북방영토(北方領土)와 그 부속섬으로 구성되어 있다.

역사

중세 이전

고대에는 일본인이 에미시 또는 에조라고 부르던 아이누족이 거주하던 땅이었다. 이를 에조치(蝦夷地)라고 불렀다. 일본이 동쪽으로, 북쪽으로 점령해 나가고 도호쿠 지방에 거주하던 아이누족은 야마토 민족과 동화되었고 에조가시마, 가라후토(사할린), 캄차카 반도 일대에 거주하던 아이누 민족은 존재하고 있었다.

근세

근대

1867년, 대정봉환으로 도쿠가와 막부가 막을 내리자 이에 불만을 품은 도쿠가와 막부 내 군인들이 일으킨 일종의 반란이었다. 도쿠가와 요시노부시즈오카로 낙향하는 것을 지켜본 도쿠가와 막부의 해군 부총재 에노모토 다케아키는 구 막부의 신하들을 보호하고 북방을 방어한다는 이유를 내세워 1868년 8월 9일, 해군 기함 카이요마루를 비롯한 8척의 배를 이끌고 에도를 탈출했다.

도중에 아이즈 전쟁에서 패한 전습대를 비롯 신선조와 창의대의 잔존세력들이 에노모토에게로 합류했고 이를 바탕으로 에노모토는 에조국 마츠마에 번을 침공한다. 당시 마츠마에 번주였던 마츠마에 노리히로가 급사[1]하면서 그대로 마츠마에 번 전체를 정복한다.

이를 바탕으로 이들은 하코다테에 정청을 두게 된다.

1868년 11월 4일, 에노모토가 하코다테를 점령한 뒤에 영국과 프랑스의 공사를 태운 군함들이 하코다테를 방문했다. 이들은 에노모토와 회견을 가진 뒤, 다음과 같은 사항을 적은 각서를 보내왔다. "일본 국내 문제에 우리는 중립을 지킨다, 교전 단체로서의 권리는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실상의 정권(Authorities De Facto)'으로는 인정한다."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사실상의 정권'이라는 말은 말장난에 불과했다. 기실 에노모토를 만나고 호감을 가진 영국과 프랑스 군함의 함장들이 본국의 훈령도 무시하고[2] 멋대로 쓴 것에 불과한 것이었다. 사실상의 정권이란 영국이 신정부만을 유일한 정권으로 인정하기 위한 구실이었다. 그러나 에노모토는 이 '사실상의 정권'이라는 말에서 국제법의 헛점을 찾아내고, 이를 이용하여 하코다테 정권을 교전단체로 인정하게 만든다.

이후 12월 5일, 일본 최초의 선거(입찰)을 통한 정부 조직 구성이 이뤄졌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투표권은 에노모토를 따라온 군인들에게만 있었고 현지 주민들에겐 투표권이 주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사실상 요식 행위에 불과한 것이었다는 지적이 있기도 하다. 어쨌든 856명이 투표하여 156표를 받은 에노모토가 총재로 임명되었고 120표를 받은 마츠다이라 타로가 부총재가, 116표로 아깝게 3등을 한 나가이 나오유키[3]가 하코다테 지사가 되었다. 그리고 이후 득표순대로 주요 각료들을 선임했다.

무진 전쟁

'

각주

  1. 자살했다는 말도 있다.
  2. 영국의 주일 전권공사였던 파크스는 용어 사용에 신중할 것을 미리 당부했지만 서기관 애덤스가 실수를 저질렀다
  3. 이 인물이 언급되는 유일한 이유는 그의 직계 고손자가 미시마 유키오 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