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습장:기여자

BLACK (토론 | 기여)님의 2022년 6월 17일 (금) 15:22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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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그로우휠 5편
면접

그야말로 불청객이다.

연이은 총성이 좁은 복도를 뒤집어놓았다. 세 사람은 급한대로 주변에 방으로 피신하긴 했지만, 꼼짝없이 갇힌 형세다. 아렌과 반델은 급한대로 권총을 장전했고 문을 가구로 틀어막았다. 사태파악이 필요했다. 갑작스레 적들이 공격했다지만 이곳은 상공의 덩그러니 뛰어진 비공정이고, 갑판에 있는 포 한 번 쏘지않고 적들이 침입했다는 게 말이 되지 않으니까.

분위기에 어울리게 천둥이 한 번 내리쳤고, 세 사람은 호흡을 고른다.

"손님들이 어떻게 무임승차 했을까? 소령"

"저도 의아합니다. 그것도 군인들이 잔뜩 탄 배인데도 말입니다."

그들이 누구인지, 무슨 목적인지가 중요했다.

"해군 수준하곤. 차편이 이거밖에 없었나?"

"송구스럽지만 중장님, 여유가 되는 군용 비공정이 1대 뿐이었습니다."

"저흰 이제 어떻게 합니까?.. 히끅"

그리고 듬직한 사람들 사이로 약간의 모자란 사람이 말했다. 아마도 여전히 술기운이 찬 듯 싶다. 아렌은 바닥에 엎드려 허덕이는 해군 장교를 보고 순간 입술을 깨물었다가, 그나마도 정신을 차려 예의있게 말했다.

"일어나시지 말입니다. 직급과 성함이?"

"타이즈.. 타이즈 맥거만 중사입니다..."

반델은 그나마 호위라는 명분 하에 소총을 들고 있었기에 권총 한 자루가 남았다. 개의치않은 표정으로 권총을 건네주고, 타이즈 중사는 총을 장전하며 말했다.

"술주정 다 부리셨으면 정신 차립시다."

"예.. 옙..."

그리고 대답하기 무섭게 총성이 복도를 울렸다. 사실 비공정은 겉만 번지르르하지, 가볍게 만들기 위해 내부에는 합판을 많이 사용했으므로 적들이 마음만 먹는다면 문 부수기는 순식간이었다. 적이 어디서 나타났든 당장 필요한 것은 이곳에서 빠져나가는 게 급선무다. 아렌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더듬으며 말했다.

"타이즈 맥거만 중사. 길 안내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여기서 나가시겠다는 겁니까...?"
타이즈 중사가 기겁하는 표정으로 말하자 아렌이 따가운 눈빛으로 입을 꼬집었다.

"그럼 여기계십시오."

"아..아니! 싫다는 게 아니라, 계획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우선 제가 맞대응하겠습니다."
반델이 복도에 있는 적들과 대치하는 동안, 중사는 은근히 설득력있는 말은 시작했다.

"그.. 끅.. 우선, 적들이 나타나기 전에 선내에 충격이 없었습니다. 그건 적들이 처음부터 비공정에 숨어있었단 이야깁니다. 종종 불법으로 적재화물칸에 숨어드는 놈들이 있는데, 놈들이 무슨 계획인진 몰라도 그렇게 숨어든 것 같습니다.."

다르게 이야기하면 놈들은 도망갈 곳이 없다는 얘기로 들렸다. 그는 아픈 머리를 억누르며 횡성수설 말했다.

"그럼 선내에 호송중인 정치인이라던지 그런 건 없습니까? 분명 목적이.."

중사는 얼굴을 한참 찡그리고는 온갖 기억들 사이에서 그럴듯한 근거들을 찾아다녔다. 그러다 하나를 떠올린듯 빠르게 말했다.

"다른 건 모르겠지만.. 적재칸에는 비상시에 탈출할 수 있는 비행선이 있습니다. 아마 그걸로 탈출할 생각인 것 같긴 한데..."

"적들이 더 많이 옵니다! 나갈 곳은 없습니까?"
반델이 탄창을 던지며 크게 외쳤다. 아무래도 아슬아슬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은?"

"비공정 벽면에 정비용 사다리가 있습니다!"

"예?"
아렌이 다시 한 번 넋이 나간 표정을 지었다.

"죽기야 하겠습니까?"
반델이 복도에 쏟아지는 총알들 사이로 수류탄을 던졌고, 곧 상의도 없이 소총으로 방 벽면의 창문을 쏘아댔다. 곧 기압이 달라진 방은 바람이 휘몰아치며 온갖 물건들이 휘날리니 그야말로 아비무환. 바깥에서 쏟아내리던 빗방울이 안으로 몰아쳤다. 반델은 자신이 앞장서서 창틀의 잔유리를 개머리판으로 정리하곤 바깥으로 손을 뻗었다.

"하.. 진짜.. 포로가 나았나 싶기도 한데"

중사는 본인이 얘기했지만 꽤나 고민이 들었다. 안전장치없이 팔의 완력만으로 비공정의 외부에 붙어있는다? 그것도 천둥번개치는 날씨에? 아무리 비공정이 느리고 고도도 높지 않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아렌은 결국 반델과 함께 빠져나갔고, 중사는 눈물을 머금고 그들을 따라나섰다.

선외는 당연하게도 엄청난 바람이 불었다. 진작에 세 사람의 군모는 저 멀리 날아가버렸고, 흩날리는 비바람 소리가 목소리마저 들리지 않게 만들었다.

"뒤따라오는 적은! 어쩌려고?"

"괜찮습니다!"

반델이 자세를 낮추고 사다리를 타오르던 순간, 수류탄을 하나 더 두고갔는지 한 박자 늦게 다시 폭발이 일어났다.

"불이 붙어서 괜찮을 겁니다!"

"허억"

두 번의 폭발로 급기야 화재가 발생했고, 짙은 뭉게구름이 내부에서 폭발적으로 흘러나왔다. 중사는 감당이 안되는 장면을 본듯 싶었다. 뭐가 됐든 저 화재가 커지면 공화파보다 훨씬 무서운 재앙이 발생할 테니 말이다. 그나마 반델의 말대로 적들이 추격하지는 않았다.

탁. 사다리에 오르던 아렌은 순간 빗물로 발을 헛딛었다.

"아"

"잡았습니다."

하지만 반델이 쏜살같이 그녀의 팔목을 잡아 다시 위로 올려놓았다. 놀라운 반사신경이다.

떨어지지 않아서 다행이라며 호들갑을 떠는 맥거만과 함께, 두 사람은 비공정 외벽 사다리를 타고 계속 위로 올라갔다. 그 동안 지속적으로 총성이 이어졌고, 확실히 전황이 좋아보이지는 않았다.

"중장님. 제 생각에는 공화파[1]같습니다."

"공화파가? 근거는?"

"쓰는 총과 언어도 그렇고, 그 억양이 완전히 판박이입니다."

아렌은 군모가 날아가서 허전해진 머리를 더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그들이 왜? 쌔한 느낌이다.

그때 갑자기 비공정이 프로펠러의 방향을 전환하더니, 호소니가 아닌 그로부터 더 동쪽으로 향하기 시작한다.

"배가.. 조종실이 점거당한 모양입니다."
맥거만이 끔찍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무리 적이 많더라도 이 배에만 탄 군인수는 못 넘을겁니다."

"그렇지만 조종실이 인질로 잡히면 아무 소용이 없지. 결국 이 상황을 해결하려면.."

반델과 아렌은 서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맥거만은 그 머릿속 생각을 입밖으로 꺼냈다.

"그럼 다시 싸우러 가시겠다는 겁니까?"

"갈겁니다."

담담하게 말하며 아렌은 젖은 머리를 묶는다. 반델은 외벽에 붙은 비상용 로프를 혁대에 단단히 묶었고, 아렌에게도 마찬가지로 떨어지지 않도록 연결했다. 그러다 반델은 난데없이 아렌에게 물었다.

"근데 중장님은 명색에 사령관이신데, 너무 위험하시지 않습니까?"

"그건.. 부하가 다 못 미덥다. 뭐 그런거지"

"저는 어떻습니까?"

"아직. 아직은 면접기간"

반델은 어깨를 으스대며 마지막으로 총끈을 멘다. 준비는 끝났다. 그리고 그 장면을 멀뚱멀뚱 보고있는 맥거만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자신보다 계급도 높고, 해군도 아닌 작자들이 싸우겠다고 저러고 있었으니까.

"같이 가시겠습니까?"

"하...."

맥거만은 질끈 눈을 감았다가, 입을 벌리며

"가겠습니다. 제가 해군이지 않습니까."

세 사람은 정비사다리를 타고 다시 이동하기 시작했다. 지금 위치는 측면이었지만, 조종실은 정면에 있었고, 횡단으로 이동해야 했다. 작업용 로프를 연결한 세 사람은 먹구름 진 하늘에서 쏟아내는 비도 아랑곳 않고 위험한 곳으로 자처해서 이동했다.

"하.. 내가 뭘 하고 있는건지"

가만 생각해보니, 정말 자신은 반강제였지만 사령관으로서 부임해 전장으로 돌아가고 있었는데, 머리가 터지도록 인수인계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대형사고가 걸린 셈이었다. 그야말로 이건 저주이자 재앙이었다.

"이 아래로 더 내려가면 조종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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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라이프니츠 제국 내부에서 공화주의적 사상을 주장하는 급진주의파벌. 총통에 의해 정치적으로 매장되자 남부에서 대대적인 반란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