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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애긥토스-가장 거룩한 이집트 제국
Πιο Ιερά Βασιλεία Αιγύπτιος
Πιο Ιερά Αυτοκρατορίας της Αιγύπτιος
국기 국장
Ⲓⲏ̅ⲥ̅ Ⲡⲭ̅ⲥ̅ ⳿ⲡϣⲏⲣⲓ ⳿ⲙ⳿ⲫϯ
Ⲓⲏⲥⲟⲩⲥ Ⲡⲓⲭⲣⲓⲥⲧⲟⲥ ⲉⲡϣⲏⲣⲓ ⲉⲙⲉⲫⲛⲟⲩϯ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상징
국가 나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보았다
이집트, 만세!
국수
성 마르코의 사자
수호성인
聖 복음사가 마르코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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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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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집트 문명 B.C. 32C ~ 4C
  • 프톨레마이오스조 B.C. 305 ~ B.C. 30
  • 파벨라노스조 B.C. 154 ~ 현재
  • 로마 제정 하의 이집트(동부) B.C. 30? ~ A.D. 405
  • 기독교 공인 A.D. 313
  • 기독교 국교 천명 A.D. 395
  • 파벨라노스조의 이집트 유일군주 선언 A.D. 451
  • 알렉산드리아 기독교의 국교화 A.D. 505
  • 유대 지방 복속 A.D. 532
  • 골고다 언덕 위에 그리스도 대성당 준공 및 건물 축성 A.D. 582
  • 對이슬람 방어 전쟁 A.D. 629 ~ 634
  • 유대 지방장관령 설치 A.D. 650
  • 그리스어를 "유일"의 국어로 지정 A.D. 654
  • 콥트 성모 대성당 시공 A.D. 662
  • 콥트 성모 대성당 완공, 축성 A.D. 1066
  • 초대 최고재상(총리) 임명 A.D. 1654
  • 제국 헌법 제정 A.D. 1742.01.13
  • 현재의 국기ㆍ국장 제정 A.D. 1806
  • 콥트 성모 대성당 붕괴 A.D. 1814
  • 2차 헌법 A.D. 1828
  • 콥트 성모 대성당 재건 및 증축 A.D. 1869
  • 알렉산드리아-카이로 지방지하철 개통 A.D. 1908
  • 전국 도로 정비 사업 A.D. 1918 ~ 1937
  • 현행 헌법 A.D. 1945
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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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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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총 인구
155,010,381명
밀도
107.5명/km2
인종
이집트인 85.4%, 유대인 14.6%, 기타 1%
공용어
에굽 그리스어
지역어
콥트어, 히브리어, 암하라어
공용 문자
그리스 문자
종교
국교
기독교(콥트 정교회 대다수)
분포
기독교 92%, 기타 8%
군대
이집트의 군대
하위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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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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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체제
입헌군주정[1], 전제군주정[2], 정교일치, 의원내각제
국가 원수 (전 이집트의 바실레우스)
아우구스토스 트라야노스 3세 바실레우스 폐하
정부
요인
교황
요안네스 20세 교황 성하
최고 재상
아야디르 요한 말레야암(Αγιαδίρ Τζον Μαλένιαμ)
각료수반 각하
유대 지방장관
베니아민 네타니아후(Μπενιαμίν Νετανιάχου)
환관성 장관
루카트 막시밀리트(Λουκάρτ Μαξιμίλιτ)
외무성 장관
아우구스토스 카를리니(Αύγουστος Καρλινική)
내무성 장관
카티코스 멜리자크(Κάτικος Μελιζάκ)
재무성 장관
마르코스 앙겔로스 디마리(Μάρκος Άγγελος Δημάρι)
국군성 장관
메이로스 알렉산드로스(Μάινος Αλέξανδρος)
민족성 장관
베네토스 크레토니(Μπενέκος Κρητώνη)
문교성 장관
그레고리오스 루 그레이오(Γρηγόριος Λου Γκρίο)
여당
전진하라 이집트여!(Προχώρα Αίγυπτος!)
연립 여당
이집트당(Αιγυπτιακό κόμμα)
신임과 보완
이집트 민주당(Δημοκρατικό κόμμα της Αιγύπτου)
원내 야당
환경당(Περιβάλλον πάρτι)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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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체제
수정자본주의
GDP
(명목)
전체 GDP
$4,170,788,578,322
1인당 GDP
$28,762
화폐
공식 화폐
이집트 드라크마
ISO 4217
EDM
단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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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연호
콥트 교회력
그레고리력
시간대
UTC+2
도량형
SI단위
ccTLD
.eg, .me
국가 코드
MOE[3], PEA[4], EGY[5]
전화 코드
+20
위치
파일:이집트 행정구역.png

가장 거룩한 이집트 제국(그리스어: ο Πιο Ιερά Βασιλεία Αιγύπτιος _[*], 영어: The Most Holy Basileo-Empire of Egypt 더 모스트 홀리 바실레오-엠파이어 오브 이집트[*]) 혹은 이집트(그리스어: Αίγυπτος _[*]), 영어: Egypt 이집트[*], 가장 거룩한 나라(그리스어: Πιο Ιερά _[*]), 영어: Most Holy 모스트 홀리[*])는(은) 북동부 아프리카 일대에 위치한 입헌군주정[6] 국가로, 그 역사는 세계적인 수준이다. 수도는 가장 거룩한 도시 알렉산드리아, 최대 도시는 카이로 광역도시이며 인구는 2021년 7월 인구총조사 기준 155,010,381명이고 국가 주거 인구의 대부분은 알렉산드리아-카이로(나일강 유역)-예루살렘 등등 북부의 비옥한 지역과 바다 혹은 강에 밀집하고 있다. 서쪽으로 마주보는 국가로는 리비아가 있으며 남쪽으로는 수단 공화국, 동쪽으로는 레바논, 시리아, 이라크, 사우디아라비아 등등이 있다. 주를 차지하는 종교는 92%의 국민이 믿는 기독교[7]로, 수도인 알렉산드리아에는 교황(총대주교)좌가 위치하고 있는데, 알렉산드리아 교황좌는 복음사가 성 마르코로부터 약 2,000년간 이어져 왔을 만큼 유서깊다. 기독교 이외 나머지 8%의 국민들은 유대교와 이슬람교를 포함한 기타 종교들을 믿고 있다. 역사적으로 국교가 기독교인 사회여서 다른 종교는 지속적으로 탄압을 받았고, 또한 기독교가 세를 넓히고 있어 근 500년간 유대교 신자는 정체, 이슬람교 신자는 소폭 감소하는 추세다. 이집트의 인종은 이집트인 85.4%, 유대인 14.6%, 기타 1%로 구성되고 있다. 이집트의 국가 원수는 바실레우스(황제)로, 프톨레마이오스조 당시부터 이어져온 전통이며 현직 황제는 아우구스토스 트라야노스 3세이다. 또한 현직 최고수상대신아야디르 요한 말레야암으로, 약칭 최고수상은 내각과 정부를 책임진다.[8]

이집트는 유래깊은 군주정 국가로, 자그마치 고대 이집트 시대부터 현재까지 군주정이 유지되고 있다. 현재 이어져 오는 황가는 파벨라노스 황가로, 프톨레마이오스 황가의 방계 가문이다. 파벨라노스 황가는 프톨레마이오스조 이집트 말기에 방계로 독립하여 일부 영지를 수여받았고 이집트 일대의 지배권을 점차 늘려나갔다. 프톨레마이오스 조가 로마에 사실상 복속되고 멸망한 이후에는 로마 제국과 이집트를 양분하여, 현재의 이집트 서부를 통치하였다. 로마 제국이 이집트에서의 통제권을 점차 잃자 로마의 영향력 하에서 독립하여 이집트의 유일한 황제임을 선포하기도 했다. 로마 영향 하에서의 독립 이후에, 파벨라노스조의 군주들은 프톨레마이오스 황조가 군주의 호칭으로 사용했던 바실레우스를 그대로 사용하되 황권을 강화하는 등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하여 백성들이 주로 믿는 신앙이었던 알렉산드리아 지역의 기독교를 공인하였다. 기독교를 국교로 삼으며 알렉산드리아 주교에게 대관을 받아 왕권을 강화하고, 이들에게 성당과 토지를 하사했다. 이스라엘 지역을 복속하여 예루살렘 성지를 회복한 이집트는 대대적인 기독교 숭상 정책을 펴고 다른 종교들을 탄압하는 정책을 펴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유대교와 같이 다른 신앙을 믿는 백성들의 반발이 있었으나 유대 지방 장관령이 설치되고 점차 기독교의 비율이 사회적으로 우위에 서자 탄압 정책이 완화되면서 반발은 줄어들은 상태다. 다만 이집트 정부가 유대 지역의 기독교화를 단념한 상태는 아니고, 점차 이들을 동화시켜 기독교화 시키고자 하고 있다. 의외로 이 동화정책은 상당한 유대인들로부터 효과를 보고 있다.

이후 이집트는 칼게돈 공의회 이후 콥트 교회를 정통으로 인정했고, 로마 제국의 영향력 하에서 벗어나면서 이슬람 세력과의 전쟁이 심화되었다. 이슬람 제국과의 전쟁은 이집트사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이슬람의 초대 칼리파인 무함마드의 세가 강해져 이집트를 침공하자 이집트군과 이슬람 군대는 시나이 반도에서 전선의 변동 없이 교전하게 되었고 무함마드가 사망하자 그 후계자를 정하는 과정에서 이슬람 세력이 혼란에 빠지자 그때를 틈타 이집트군이 파죽지세로 올라갔고, 결국 방어전쟁은 성공했다.

국명

영어 명칭 "Egypt"는 고대 그리스어 아이굽토스(Αίγυπτος, 에귑토스)에서 유래하여 라틴어 애급투스/아이깁투스(Aegyptus, 에귑투스)를 통해 전해진 말이다. 개신교의 구약과 신약 번역 성경에서는 애굽이라는 말로도 찾아볼 수 있다. 구약에서는 출애굽기가 가장 유명하고, 신약에서는 예수가 아기 때 헤로데 왕을 피해 피신해 살던 곳이기도 하다.

헤로데가 죽을 때까지 거기에 있었다.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내가 내 아들을 이집트에서 불러내었다.”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마태 2,15)

역사

고대 세계 4대 문명으로 꼽히는 고대 이집트 문명, 메소포타미아 문명, 인더스 문명, 황하 문명.

이집트는 그 어떠한 국가들보다도 유구한 문명과 역사를 지니고 있는 국가들 중 하나이다. 기원전 32세기부터 풍요로운 나일강과 주변 덕에 급속도로 문명이 발전했으며, 곧이어 국가가 등장해 그 일대를 장악했다. 고대 이집트는 기원전 15세기에 절정의 전성기를 자랑했고 이 시기에 동아프리카의 아비시니아 지역과도 교류했다.

자연환경

정치

이집트의 행정부ㆍ입법부ㆍ사법부는 내각ㆍ양원ㆍ3제의 법원, 즉 3부로 이루어져 있다. 그 중 내각은 각료수반인 최고 재상 휘하에 있는 것으로, 헌법상으로는 이들이 행정상의 권한을 갖고 있다. 의회의 동의를 받아 황제에 의해 임명된 재상은 내각 관료들을 임명할 수 있다. 의회는 이집트의 입법부로 귀족원과 민의원이 나뉘며, 민의원의 경우 각 지방의 모든 국민들이 선출하여 뽑힌 500명의 대의원으로 구성된다. 귀족원은 150명의 의원으로 구성되며, 이 중 100명은 헌법상으로 황제가 임명할 수 있다. 민의원의 임기는 4년이고, 귀족원의 임기는 6년으로, 둘 다 직접 연임이 2회까지 가능하며 중임 역시 가능하다. 사법부는 대체로 이집트의 고유 제도가 존재했으나 이후 유럽 국가들과 많이 교류하면서 로마의 법제가 이집트에 들어오게 되었다. 따라서 서양의 사법제도와 유사하면서도 이집트 고유의 사법제도가 조화를 이루게 된 것이다. 3제법원은 지역법원, 고등법원, 최고법원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황제가 직접 임명하는 최고법원장은 임기 6년의 고등법원장을, 최고법원장에 의해 임명된 고등법원장은 임기 4년의 지역법원장을 임명한다. 최고법원장은 별도로 정해진 임기가 없고 종신직이다. 고등법원장과 지역법원장의 임기는 연임할 수 없다.

황제

사실상의 전제군주정 국가인 이집트에서 내각ㆍ의회ㆍ법원은 황제에 직접적인 반하는 행동을 하지 못한다. 국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어 큰 반발을 살 여지가 있으며 황제가 어마무시한 권한들을 영유하고 있기 때문인데, 물론 헌법이 황제가 대놓고 그 권한을 사용하는 것을 제한하기 때문에 자유롭게 사용은 하지 못하며, 필요 시에만 그 권한을 사용하거나 비밀리에 사용하고 있어 반발은 없는 편이다. 파라오-바실레우스라 불리는 이집트의 황제는 헌법상으로 국가원수이자 국군의 최고통수권자로, 국가의 통합과 국민의 화합을 보전한다. 또한 의회의 동의를 받아 최고 재상을 임명, 이외 귀족원 의원 임명, 최고 법원장 임명ㆍ경무청장 임명ㆍ국가 헌병대장 임명ㆍ유대 지방장관 임명 등등 정치적으로 3부에 대한 강력한 통제력을 행사할 수 있다. 또한 총대주교들을 불러 교회 공의회를 소집하는 등 종교적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경제

종교

이집트의 종교는 역사적으로 콥트 오리엔트 정교회, 콥트교라고도 불리며 복음사가 성 마르코의 후계자인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 및 콥트 교황을 필두로 하는 이집트 국교회가 지배하고 있다. 전체 국민이 믿는 신앙 중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천년이 넘는 세월동안 황실의 강력한 지지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국교회의 지도자인 알렉산드리아 콥트 총대주교, 즉 콥트 교황은 거대한 교회를 관리하고 신앙을 보호하기 위하여 현실보다 더 큰 종교적 권한을 갖게 되었다. 그 일거수 일투족이 모두 집중적으로 조명되며, 교황과 국교회 성직자들은 국민들에게 큰 자부심과 존경을 받고 있다. XXXX년의 알렉산드리아 공의회에서는 콥트 정교회의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교황)만이 알렉산드리아의 마르코좌를 잇는 유일한 총대주교임이 선언되며 정교회의 현지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좌는 단절된 상태다.

또한 콥트 정교회는 역사적으로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는 오직 하나임을 주장하고 있고 황실도 이 입장에 지지하면서 정교회 측과의 충돌이 예상된다.

문화

이집트의 문화 역시 세계적이며, 이 경우 고대부터 융성하였다. 고대 이집트 문명부터 발전한 문화ㆍ예술은 헬레니즘이 정착한 프톨레마이오스조 이집트에서 정점을 찍었다. 프톨레마이오스조가 멸망한 이후 이집트 동부 지역에서 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으면서 로마 문화가 들어오기 시작했고, 이는 곧 그리스 문화와 접목되면서 이집트ㆍ로마ㆍ그리스 3문화라는 화려한 문화 예술 양식이 발전하였다. 반면 이집트 서부는 여전히 헬레니즘의 피를 이어받은 파벨라노스조가 이집트를 통치하고 있었는데, 이들은 이집트만의 독특한 헬레니즘 문화를 발달시켰다. 로마 제국령에 있던 동부 이집트에서 고대 이집트의 문화는 사라져 갔으나, 파벨라노스조 이집트에서는 여전히 고대 이집트의 문화는 융성했다. 이는 건축 분야에서도 눈에 띄게 알 수 있으며, 로마령 이집트의 수도에서는 로마식 건축 양식을 볼 수 있는 반면 파벨라노스 이집트의 수도에서는 고대 이집트와 헬레니즘 건축 양식이 공존하며 조화를 이루었다.

이집트 동부 지역이 로마의 통제력 하에서 벗어나자 파벨라노스조가 동부 지역을 다시 회복하였다. 파벨라노스조 이집트는 로마의 문화예술과 건축양식을 받아들여 이를 자국의 양식에 결합시켰다. 이로 인해 탄생한 것이 현재 알렉산드리아와 카이로 등등 대도시들에서도 많이 볼 수 있는 "이집트 양식"이다. 고대 시대가 끝나고 중세 시대가 들어서면서 이집트는 더 많은 유럽 국가들과 교류하기 시작했다. 이집트의 상인들은 콘스탄티노폴리스와 베네치아의 문화예술과 건축양식을 보고 감탄하였으며, 이를 그대로 이집트에 소개하였다. 콘스탄티노폴리스의 비잔티움 건축양식은 기존에 있던 이집트 양식과 접목되어 더 크고 웅장하면서도, 신앙적인 내용을 그림 그대로를 담을 수 있는 건물양식으로 발전하였다.

각주

  1. 명목상
  2. 사실상
  3. Most holy egypt
  4. Pope Alexandria
  5. Egypt
  6. 사실상 전제군주정
  7. 절대 다수는 알렉산드리아 콥트 정교회 신자이며, 이들은 자신의 신앙과 교회에 대한 자긍심이 대단하여 다른 신앙으로 개종시키기가 굉장히 어렵다고 한다.
  8. 명목상으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