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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통상을 허용하자는 신구법파가 승리하여 신구법파의 [[안항주]]가 영의정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1833년 다시 보수구법파가 신구법파를 뒤엎고 정권을 찬탈하였고, 구법파의 세도 정치와 조세 개혁의 정체가 이뤄졌다. 결국 구법파의 수장이었던 [[안성용]]이 권력을 사유화하였고 신구법파를 모두 처형하는 만행을 저지르게 되었다. 이후 1875년까지 보수구법파의 초우위 체제가 만들어졌다.
결국 통상을 허용하자는 신구법파가 승리하여 신구법파의 [[안항주]]가 영의정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1833년 다시 보수구법파가 신구법파를 뒤엎고 정권을 찬탈하였고, 구법파의 세도 정치와 조세 개혁의 정체가 이뤄졌다. 결국 구법파의 수장이었던 [[안성용]]이 권력을 사유화하였고 신구법파를 모두 처형하는 만행을 저지르게 되었다. 이후 1875년까지 보수구법파의 초우위 체제가 만들어졌다.
안성용은 사실상 왕권을 무력화하고 국정농단을 자행해 국왕의 분노를 사 능지형을 당했으나, 그의 영향으로 조정은 보수구법파가 언제나 다수를 차지하게 되었고 이는 임나국의 멸망을 초래하였다.


=== 일제강점기 ===
=== 일제강점기 ===

2020년 6월 10일 (수) 01:51 판


임나
임나국
任那國
국가 황제행진곡 (한국어: 皇帝行進曲)
국목 오동나무
표어 임나영광 황실번영
임나국의 행정구역
수도 성산현 (북위 35° 12′ 31″ 동경 128° 40′ 46″)
최대도시 동래현 (북위 35° 10′ 46″ 동경 129° 04′ 32″)
면적 13,270.3‬km2
역사 - 1598년 5월 22일 일본령 임나국
- 1742년 6월 4일 일본-임나 독립전쟁
- 1902년 9월 3일 일제강점기
- 1950년 6월 25일 한국 전쟁
- 1954년 6월 1일 독립
- 1984년 5월 12일 민주화

인문 환경


인구 전체 인구 7,324,894 (2018)
민족 구성 임나인 63.2%, 한국인 20.2%, 일본인 11.2%, 기타 5.4%(2019)
인구 밀도 551,97 (2018)
출산율 1.44명 (2017)
출생 인구 147,211명(2018)
기대 수명 79.3세(2020)
성비 51.9 : 48.1 (남초)
공용어 한국어
국민어 한국어, 일본어
지역어 제주어
공용 문자 한글, 한자
문해율 97.3%(2020)
종교 무종교 42.1%
신토 40.2%
불교 11.2%
기타 6.5%(2018)
군대 임나국방군
세부
군대
육군 임나국 육군
해군 임나국 해군
공군 임나국 공군

하위 행정구역


행정
구역
8구 사천구, 임례구, 성산구, 동래구, 울주구, 금성구, 수성구, 제주구
38현 38개 현

정치


정치 체제 입헌군주제, 의원내각제, 총리직선제, 단일제, 대의민주제, 성문헌법
입법부 임나국 입법원
민주주의 지수 9.03 (완전 민주주의)
국가
원수
임나국 황제 인덕황제
국무총리 김영춘
정부
요인
부총리 김부겸
국회의장 박맹우
대법원장 김문석
헌재소장 문형배
여당 민솔당
연립 여당 민주노동당

경제


경제 체제 자본주의적 시장경제
명목
GDP
전체 GDP $310,216,585,794‬
1인당 GDP $42,351
GDP
(PPP)
전체 GDP $446,320,441,208
1인당 GDP $60,932
수출
입액
수출 $422,203,323
수입 $324,329,041
신용등급 무디스 A1
S&P A+
Fitch A
화폐 공식화폐 임나국 환 (YNH)
국가
예산
1년 세입 $112,090,232
1년 세출 $143,923,452
통계
자료
경제성장률 2.2%
물가상승률 6.4%
실업률 4.5%

코드와 단위


ccTLD .YN
국가 코드 YMN
국제 전화 코드 032
단위 법정연호 임나황제력, 서력기원
도량형 SI 단위
날짜형식 yyyy-mm-dd
운전석
(통행방향)
오른쪽 (좌측통행)

임나국(한국어: 任那國, 영어: State of Yimna)은 동아시아에 위치한 입헌군주제 국가이다. 북으로는 대한민국을, 남으로는 대한해협을 건너 일본에 접해있으며, 남해와 동해를 접하고 있다.

임나국의 영토는 임나국 본토와 그 부속도서로 되어있지만 대마도는 현재 일본이 실효지배하고 있다. 수도는 임나국 황궁이 위치한 성산현이며 최대 도시는 동래현이다. 면적은 대한민국의 1/8정도 되는 13,270km2이다. 인구는 약 700만명으로 한반도 인구의 10% 가량을 차지한다.

1592년 임진전쟁의 종전 이후 일본에 의해 설치된 일본의 속국 임나국이 도요토미-도쿠가와 가문 전쟁을 틈타 독립을 선언했고 일본과 3차례의 전쟁을 거친 후에 독립하였다. 이후 일본에 의해 합병되어 약 40년간 일본의 식민지였다가, 1945년 조선과 함께 독립되었다. 1953년 7월 27일 한국전쟁 종전 이후 주둔하고 있던 영국군이 철수하였고 왕실이 복원되었으며, 1984년 5.12 민주선언을 통해 현재와 같은 민주주의 체제가 설립되었다.

정치 체제로는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으나 총리직선제를 시행하는 등 대통령제와 비슷한 면도 많이 갖추고 있다. 국가 원수는 황제이지만 실질적인 국가 원수는 국무총리다. 경제적으로는 동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국민소득을 가진 국가중 하나이며, 무역업이 발전해 '동북아의 싱가포르'라는 명칭을 가지고 있다.

국가 상징

국호

임나국의 국호는 임나국(任那國) 그 자체이다. 영어로는 State of Yimna, 혹은 Empire of Yimna라고 번역되는데 정부는 원의미를 살려 State of Yimna를 공식 표기로 인정하고 있다. 줄여서는 임나라고 한다. 옛 이름을 따 가야라고도 한다.

국기

자주기
지위
공식 국기
제정 시기
임나 제1제국 (1754년 6월 2일)
임나 제2제국 (1878년 12월 13일)
임나 지하정부 (1912년 5월 1일)
임나 민주왕정 (1985년 1월 1일)
근거 법령
법률 제15833호 <국기법>
고안자
광명황제 덕종
제작자
민화령

국가

황제행진곡
지위
공식 국가
제정 시기
임나 제1제국 (1754년 6월 2일)
근거 법령
법률 제15322호 <국기법>
작곡가
김호철
원곡
현대중공업 노동조합가

스페인의 국가인 <Marcha Real>처럼 가사는 없다. 원곡은 현중노조가이다.

역사

임진전쟁 직후

임진전쟁에서 조선-일본간 평화조약이 맺어진 이후, 조약에 따라서 경상도 일부 지역이 일본에게 일본령 임나국이라는 이름으로 할양되었다. 일본령 임나국은 1598년 5월 22일 건국되었고, 류구 스미요시(竜宮住吉)가 1대 국왕으로 파견되었다. 그러나 갓 탄생한 한국-일본계 국가에서 민족간 분쟁이 끊이지 않았고 결국 폭동까지 일어나는 신세가 되었다. 또한 스미요시 내각이 주도한 인두세와 농지부가세 등이 농민들의 반발을 일으켰다. 결국 류구 스미요시는 폭동 진압에 실패하여 일본으로 도망쳤고, 1600년 5월 3일 농민군대 대장 전학수가 이끄는 임나봉기군이 임나국을 점령하게 된다. 전학수는 일본령 임나국을 조선에 양도한다고 선언했으나 곧바로 일본이 선전포고하면서 조선에서 발을때며 홀로 남게 되었고, 15년동안의 1차 전쟁을 겪게 되었다.

제1,2,3차 임나-일본 전쟁

임나국과 일본의 전쟁을 일컫는 말로 임일전쟁이라고 줄여부르기도 한다. 1600년부터 1617년까지를 1차 임일전쟁으로, 1630년부터 1636년까지를 2차 임일전쟁으로, 그리고 1740년부터 1742년까지를 3차 임일전쟁으로 분류한다. 전쟁 결과 임나국이 승리하여 일본으로부터 독립을 선포하였다.

제1차 임일전쟁은 1600년부터 1617년까지 17년간 이어졌다. 전쟁 극초반에는 막강한 화력을 앞세운 일본군이 우세하였으나, 조선의 간접적인 지원을 받고 있었던 임나국이 유리한 지형을 이용해 일본군에 어느정도 방어하는 것에 성공했다. 대마도가 일본에게 넘어갔으나, 일본 내에서도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사망 등 내부적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임나국과 일본군은 평화협정을 체결했고 대마도를 제외한 다른 영토는 독립을 보장받았다.

제2차 임일전쟁은 철저하게 게릴라전의 형국으로 전개되었다. 일본군은 초반 기세를 앞세워 임나국 전역을 점령하는데에 성공했으나 험준한 산지를 이용한 임나국 게릴라에 의해 큰 피해를 봤고, 전쟁이 6년동안 이어져 장기화되었다. 또한 동래부 등에서의 봉기 시도 등 임나국을 점령해 좋을 것이 없다는 판단 하에 일본군이 철수하여 임나국이 다시 한번 승리를 거두게 되었다.

1636년 전쟁에서 승리한 임나국은 본격적인 안정 체제와 국제 무역항으로서의 입지를 넓혔다. 1655년 광성황제 태종의 지시로 서양과의 무역항을 열었고 네덜란드를 비롯한 서양 여러 나라와 교역하여 조선보다 더 빠른 근대화에 성공할 수 있었다. 또한 내부적으로도 조세 제도를 개혁하고 전쟁 피해를 수습하는 등 여러 노력을 가한 결과, 1700년대에는 사실상 경제가 조선에 맞먹는 수준으로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또 1720년대에는 전근대적인 농본국가에서 탈피하여 상공업 국가로서 발전할 수 있었다.

1740년부터 1742년까지 2년간 제3차 임일전쟁이 일어나기도 했으나 강한 국력을 토대로 일본군에 맞서 확실히 우위의 양상을 보여줬고, 결국 2년만에 다시 평화협상을 치뤄 일본에게 보상을 받아내는 성과를 거두기도 하였다.

구법파의 정권 장악과 국정농단

1782년 임학서의 난을 계기로 임학서의 개혁안을 받아들여야한다는 좌파세력 신법파와 받아들이지 말아야한다는 우파세력 구법파가 충돌하였다. 신법파는 백성들의 지배를 받고 있었으나 1788년 구법파의 쿠데타로 인해 무너지고, 1790년 구법파가 조정을 장악하게 되었다. 조정을 장악한 구법파는 조선과의 교류 일체 중단과 서양 문물 수용 거부를 내걸었으며, 이로 인해 백성들의 반발이 극에 달하자 다시 1799년 구법파가 신구법파와 보수구법파로 나뉘어 붕당을 형성하였다.

결국 통상을 허용하자는 신구법파가 승리하여 신구법파의 안항주가 영의정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1833년 다시 보수구법파가 신구법파를 뒤엎고 정권을 찬탈하였고, 구법파의 세도 정치와 조세 개혁의 정체가 이뤄졌다. 결국 구법파의 수장이었던 안성용이 권력을 사유화하였고 신구법파를 모두 처형하는 만행을 저지르게 되었다. 이후 1875년까지 보수구법파의 초우위 체제가 만들어졌다.

안성용은 사실상 왕권을 무력화하고 국정농단을 자행해 국왕의 분노를 사 능지형을 당했으나, 그의 영향으로 조정은 보수구법파가 언제나 다수를 차지하게 되었고 이는 임나국의 멸망을 초래하였다.

일제강점기

군사정권

민주화와 현재

왕실

정치

국무총리대신


임나국 역대 국무총리대신
1대 2대 3대 4대 5대
황헌군 (이최응)
허정
장택상
허정
이효상
6대 7대 8대 9대 10대
박정희
박정희
박정희
김영삼
김영삼
11대 12대 13대 14대 15대
김헌규
이기택
이기택
정주영
허태열
16대 17대 18대 19대 20대
노무현
이명박
이명박
안대희
김영춘

사법

정당과 의회

한때에는 보수정당인 국민당이 일당 독주 체제를 이어갔지만 노무현이 총리에 당선된 이후에는 자유주의 성향의 민솔당과 보수주의 성향의 국민당의 양당제 체제로 바뀌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이 제3당으로 진입하기도 했으며, 그 외에도 임나공산당, 민주국민당 등의 군소정당이 있다.

행정구역

주요 도시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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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OEC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