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시바하엔누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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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15일 (금) 00:26 기준 최신판

별빛 속으로

케메트 파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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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세바하엔누트
Ⲡⲁⲥⲉⲃⲁⲕϩⲁⲉⲛⲛⲓⲩⲧ | Pasebakhaenniut
칭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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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레크 이름: 아문의 보호를 받는 공명정대한 새(bela birdo kiu protektis per amun)
네브티 이름: 천 가지 행성계의 수호자(gardisto, kiu protektas milojn da planedsistemo
황금 호루스 이름: 승리한 자(la venkinto)
즉위명: 라의 선택을 받은 적합한 자(la tauxga kiu elektis de Ra)
출생명: 갈바두스 발마우(Galvadus Valmout)
출생 2830년 4월 6일
케메트 제국 와세트 계
사망 2912년 11월 17일 (82세)
은하공화국 글리사리온
재위 22대 파라오
2840년 6월 4일 ~ 2893년 12월 31일
부모 부왕: 메르넵타 2세, 모후: 타셰리트
배우자 헤나스 메리타텐 지 아우조히스 (Renas Meritaten De Ausores)
자녀 4명

개요

케메트 제국의 22대 파라오. 동시에 최후의 파라오이기도 하다.

즉위 당시 10세 전후였기 때문에 그의 업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제국은 제2차 인류전쟁을 성공적으로 매듭지었고 성년이 되어 실권을 얻은 뒤에는 삭번(削藩) 정책을 펼쳐 신관과 귀족이 통치하는 몇몇 행성계를 다시 복속시키기도 했다. 아코르스타 연방의 침공에 맞서 세르바온 공화국 유민을 받아들였으며 18~22차 총 5차례에 걸친 파이윰 공방전을 승리로 이끌어 제국 중흥의 기틀을 다졌다. 하지만 루카 아인할트가 이끄는 지구인류연합을 상대로 제23차 파이윰 공방전에서 패배하며 제국은 멸망했다.

생애

제국이 무너지다

와세트의 제국회의에서는 이를 수 없을 만큼의 깊은 침묵이 흘렀다. 형언할 수 없는 불안이 엄습한 회의에는 수십년전부터 이미 파라오의 명령을 듣지 않던 이네브 헤지와 아비주의 고위 신관들까지 참석했다. 하지만 그들 사이에서는 수 세기를 버텨온 파이윰 요새와 제국, 신의 현신인 파라오에 대한 믿음이 짙게 깔려있었으며 그순간 제국의 궁전은 인류가 숨쉬며 살아가는 그 어떤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장엄했다.
<케메트 제국사> 중

2887년 10월, 지구 원로원령 총리 루카 아인할트파이윰의 통행을 요구했다. 하지만 이미 루가노를 수복하여 아코르스타 연방으로 진출할 길목을 확보한 상황에서 파이윰 통행 요구는 아무 의미 없는 것이었다. 오히려 지구 원로원령 내에서는 연일 케메트가 아코르스타와 연합할지 모른다는 우려를 가장한 정벌의 목소리가 커져만 갔다. 즉, 파이윰 통행 요구는 사실상 지구 원로원령이 케메트 제국을 무너뜨리겠다는 선언이었던 것이다. 파라오는 요구를 당연히 거부했다. 하지만 불가침조약 제안을 하면서 끝까지 제국을 유지하려는 노력을 그만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 제안은 아인할트가 거절했다. 결국 파라오에게는 사실상 두가지 선택이 남았다. 끝까지 항전하거나, 원로원령에게 복종하는 것이었다. 파라오는 전자를 선택했다. 이미 먼 옛날에 와세트의 영향력에서 벗어난 아비주와 기타 성계의 지도자들이 오랫만에 제국회의에 참석하여 파이윰에 원군을 보내기로 결정하였고 이것은 파라오에게 제국 전체를 통치할 권력은 사라졌지만 그 권위는 여전히 살아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어느 한세력도 파라오를 배신하지 않고 온 제국이 운명을 함께하기로 한 것이다. 파라오는 파이윰의 요새와 대공무기, 전함들을 점검하고 케메트 본국인과 세르바온 유민들의 부대를 엄격하게 구분하여 편제하도록 명령했다.

하지만 제23차 파이윰 공방전에서 지구군은 세르바온 유민들을 이용해 행성 내부에서 후방교란을 꾀했고 그사이 방공망이 허술해지자 케메트 함대와의 정면충돌을 회피하여 파이윰을 점령하였다. 이는 파이윰이 케메트 제국에게 넘어가 요새화된 이후 2세기만에 처음으로 함락된 것이었다. 파라오는 파이윰의 함대를 와세트로 불러들여 최후의 결전을 펼쳤으나 두번의 전투 끝에 패배했다. 이미 많은 손실로 인해 전력 차이는 너무나도 컸기 때문이었다.

와세트 공방전을 끝으로 제국 정부는 붕괴되었고 멀리 떨어진 아비주에까지 지구군의 군정청이 들어섰다. 제국은 명목상 존속했고 파라오는 자리를 지킬 수 있었지만 그는 태양계로 압송되어 연금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가족은 알파 센타우리에 남겨져 2893년 연금이 해제될 때까지 수년간 만나지 못했다. 그 과정에서 막내딸 줄리아나 네페레트 공주가 루카 아인할트와 사랑에 빠졌고 2890년 결혼하면서 장인이 되었다.[1][2] 2894년 은하공화국이 건국되면서 파시바하엔누트는 케메트 제국 파라오 자리에서 내려오게 되었고 출생명인 갈바두스 발마우로 불리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제국이 공식적으로 멸망하는 최후의 순간까지도 제국을 온존케하기 위해 사위인 루카 아인할트에게 제위를 넘긴다는 조서를 발표하였다. 사위로서의 배려였는지는 몰라도 아인할트는 케메트인의 황제(Imperiestro de la Kemetoj)를 공식 직함에 넣었으며 본인이 사망할 때까지 사용했다.

말년

시민 갈바두스 발마우로 내려온 이후 아내 헤나스와 함께 글리사리온이라는 행성계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여생을 보냈다. 아인할트가 이런저런 편의를 많이 봐주었기에 편안하게 소일거리를 하면서 지냈다고 한다.

  1. 아인할트와 사랑에 빠졌을 당시 줄리아나는 유부녀였다. 그녀의 남편은 아비주를 통치하는 고위 신관중 하나였는데 다라야바우쉬라는 아들도 하나 있었다. 그럼에도 아비주와 사실상의 동맹을 맺기위한 정략결혼이었기에 남편에 대한 애정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어머니 헤나스 메리타텐이 알파 센타우리에 연금당했을 때, 그녀를 보좌한다는 이유로 아비주를 떠났고 그곳에서 바로 루카 아인할트와 사랑에 빠져 결혼했다.
  2. 파시바하엔누트 본인은 자국을 멸망시킨 당사자와 딸이 혼인하는 것 자체에 대해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던 모양이다. 결혼식에 참석하지는 않았지만 짧은 축전을 보내기도 했고 보좌하는 하인들에게 어떠한 불평을 했다는 기록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