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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에는 [[서족]], [[백월]]이 정착하였고 [[남월]]에 지배를 받던 중 [[한무제]]에 의해 군현으로 편입되었다. [[삼국시대]]에는 [[손권]]이 [[섭우]]를 시켜 정벌을 시도, 원주민들을 병력으로 차출했다. 그 뒤 [[하이난 섬]]처럼 [[유배지]]로 활용되기도 했으며 [[송나라]]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한족]]들이 이주하기 시작했다. [[명나라]]의 멸망 이후엔 [[소무제]]와 함께 [[광저우]]에서 [[반청복명]]을 이끌던 [[유세적]](游世迪)이 세력을 규합해 페당 일대를 점유, 명 부흥 운동의 거점으로 삼았다.
고대에는 [[서족]], [[백월]]이 정착하였고 [[남월]]에 지배를 받던 중 [[한무제]]에 의해 군현으로 편입되었다. [[삼국시대]]에는 [[손권]]이 [[섭우]]를 시켜 정벌을 시도, 원주민들을 병력으로 차출했다. 그 뒤 [[하이난 섬]]처럼 [[유배지]]로 활용되기도 했으며 [[송나라]]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한족]]들이 이주하기 시작했다. [[명나라]]의 멸망 이후엔 [[소무제]]와 함께 [[광저우]]에서 [[반청복명]]을 이끌던 [[유세적]](游世迪)이 세력을 규합해 페당 일대를 점유, 명 부흥 운동의 거점으로 삼았다.


[[삼번의 난]] 당시 청에게 지원군을 보내는 반란 진압에 협조한 공로로 [[강희제]]는 1680년, [[비청화의]]를 체결하여 유세적을 [[동영왕]](東瀛王)으로 봉하였다. 이후 [[정씨 왕국]] 정벌에 협력하는 등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였으며 [[서구 열강]][[중국 대륙]]을 잇는 무역 [[중계지]]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청나라는 [[천계령]]을 반포하는 페당을 압박했으나 큰 효과를 보지 못했으며, 수차례에 걸친 교섭 끝에 1683년 [[유청화의]]를 체결하여 명 부흥 포기 및  청 수군의 [[홍콩 해협]] 관리를 조건으로 [[조공국]] 지위를 인정, 유세적을 '창해왕'(漲海王)으로 봉하였다. 그 후 페당은 [[남중국해]]의 무역 거점이자 전초기지로서의 역할을 맡았다. 18세기 말부터는 영국 상인의 적극적 지원 아래 [[아편]] 무역의 배후지가 되어 [[중국 대륙]] 전역에 이를 유통시켰다.


19세기 중반부터는 [[남중국해]] 해상에서 활동하던 [[해적]]과 [[서구 열강]]의 위협에서 벗어나고자 [[영국]]과 [[룽아문 조약]]을 체결하여 [[보호국]]을 자처하였다.
19세기 중반에는 [[남중국해]] 해상에서 활동하던 [[해적]]과 [[서구 열강]]의 위협에서 벗어나고자 1855년 [[영국]]과 [[룽아문 조약]]을 체결하여 사실상 [[보호국]]이 되었다. 청나라는 이에 적극적으로 관여하지 않았으나 형식적인 조공·책봉 관계의 유지를 꾀했고 [[베이징 조약]]에 이르러서야 영국에게 종주권을 넘겼다. 영국은 [[페당 총독부]]를 설치한 뒤 [[근대화]]를 추진해 오늘날의 [[포트엘리엇시|포트엘리엇]], [[]]과 같은 유럽식 도시들이 조성되었다.

2021년 5월 18일 (화) 10:30 판

틀:페당 페당(중국어: 毘燈 피덩, 광둥어: Pei3 Dang1 페이당)은 동아시아에 위치한 나라이다. 국토 면적은 7,831 km2이며 페당 섬콰이푸이 섬을 중심으로 하여 영토가 구성되어 있다. 북쪽으로는 홍콩 해협을 사이에 두고 중국 대륙과 가까이 위치해 있다. 인구는 740만 명으로 몽골(약 330만 명)을 제외한 동아시아 나라들 중 가장 적다. 수도는 카이콕(啓覺), 최대 도시는 포트엘리엇(艾略特港)이다.

고대에는 서족, 백월이 정착하였고 남월에 지배를 받던 중 한무제에 의해 군현으로 편입되었다. 삼국시대에는 손권섭우를 시켜 정벌을 시도, 원주민들을 병력으로 차출했다. 그 뒤 하이난 섬처럼 유배지로 활용되기도 했으며 송나라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한족들이 이주하기 시작했다. 명나라의 멸망 이후엔 소무제와 함께 광저우에서 반청복명을 이끌던 유세적(游世迪)이 세력을 규합해 페당 일대를 점유, 명 부흥 운동의 거점으로 삼았다.

청나라는 천계령을 반포하는 등 페당을 압박했으나 큰 효과를 보지 못했으며, 수차례에 걸친 교섭 끝에 1683년 유청화의를 체결하여 명 부흥 포기 및 청 수군의 홍콩 해협 관리를 조건으로 조공국 지위를 인정, 유세적을 '창해왕'(漲海王)으로 봉하였다. 그 후 페당은 남중국해의 무역 거점이자 전초기지로서의 역할을 맡았다. 18세기 말부터는 영국 상인의 적극적 지원 아래 아편 무역의 배후지가 되어 중국 대륙 전역에 이를 유통시켰다.

19세기 중반에는 남중국해 해상에서 활동하던 해적서구 열강의 위협에서 벗어나고자 1855년 영국룽아문 조약을 체결하여 사실상 보호국이 되었다. 청나라는 이에 적극적으로 관여하지 않았으나 형식적인 조공·책봉 관계의 유지를 꾀했고 베이징 조약에 이르러서야 영국에게 종주권을 넘겼다. 영국은 페당 총독부를 설치한 뒤 근대화를 추진해 오늘날의 포트엘리엇, [[]]과 같은 유럽식 도시들이 조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