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라스코 사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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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span="2" style = "background:#b0313f;color:#fff;" | <big>'''ポスコ事件''' </big><br/>포스코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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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일본 (신질서의 황혼)|일본]]에서 발생한 정치 스캔들. 록히드 사건(1976), 리쿠르트 사건(1986), 사가와 규빈 스캔들(1992)과 더불어 일본 4대 정경유착 비리로 손꼽힌다. 현직 총리의 형이 특정 기업으로부터 뇌물을 수수하고 불법자금을 받고, 급기야 사학 비리까지 저질러 이에 총리인 본인까지 연루되어 [[쓰키야마 아키히로 (신질서의 황혼)|쓰키야마 아키히로]] 내각의 붕괴라는 결과를 가져온 사건으로 회자된다.
2012년 [[일본 (신질서의 황혼)|일본]]에서 발생한 정치 스캔들. 록히드 사건(1976), 리쿠르트 사건(1986), 사가와 규빈 스캔들(1992)과 더불어 일본 4대 정경유착 비리로 손꼽힌다. 현직 총리의 형이 특정 기업으로부터 뇌물을 수수하고 불법자금을 받고, 급기야 사학 비리까지 저질러 이에 총리인 본인까지 연루되어 [[쓰키야마 아키히로 (신질서의 황혼)|쓰키야마 아키히로]] 내각의 붕괴라는 결과를 가져온 사건으로 회자된다.
== 상세 ==
== 상세 ==
포스코(ポスコ)는 조센반도 [[게이슈현]] [[우라나지시]](浦項市)에 위치한 제철 회사이며, 1963년 우라나지제철(浦項製鉄)이라는 이름으로 설립된 후 당시도 그렇지만 현재에도 일본 3대 제철회사에 들 만큼 철강산업의 대기업이다.  
우라스코(ウラスコ)는 조센반도 [[게이슈현]] [[우라나지시]](浦項市)에 위치한 제철 회사이며, 1963년 우라나지제철(浦項製鉄)이라는 이름으로 설립된 후 당시도 그렇지만 현재에도 일본 3대 제철회사에 들 만큼 철강산업의 대기업이다.  


이랬기에 우라나지는 반도 내 철강산업의 본산이라고 할 정도로 게이쇼 지방의 유력한 공업도시이다. 포스코가 쓰키야마 가와 엮이게 된 데는 이유가 있었는데, [[쓰키야마 아키히로 (신질서의 황혼)|쓰키야마 아키히로]] 총리의 아버지 [[쓰키야마 마고고로]]의 고향이 바로 우라나지로서, 쓰키야마 역시 이 지역을 자주 드나들며 인맥을 쌓았기 때문이다.
이랬기에 우라나지는 반도 내 철강산업의 본산이라고 할 정도로 게이쇼 지방의 유력한 공업도시이다. 우라스코가 쓰키야마 가와 엮이게 된 데는 이유가 있었는데, [[쓰키야마 아키히로 (신질서의 황혼)|쓰키야마 아키히로]] 총리의 아버지 [[쓰키야마 마고고로]]의 고향이 바로 우라나지로서, 쓰키야마 역시 이 지역을 자주 드나들며 인맥을 쌓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중의원이던 총리의 형 [[쓰키야마 아이에루]]였다. 아이에루는 동생 아키히로가 집권하자마자 포스코에 접근하여 여러 편의를 봐주는 대가로 불법 정치자금과 뇌물을 수수했고, 총리 또한 이를 묵인하면서 근 2년 이상 비리를 저질렀다. 종국에는 포스코가 운영하는 사학재단에까지 손을 뻗치면서 비리는 대담해졌고, 결국 2012년 4월 최초로 의혹이 제기되었다.
문제는 중의원이던 총리의 형 [[쓰키야마 아이에루]]였다. 아이에루는 동생 아키히로가 집권하자마자 우라스코에 접근하여 여러 편의를 봐주는 대가로 불법 정치자금과 뇌물을 수수했고, 총리 또한 이를 묵인하면서 근 2년 이상 비리를 저질렀다. 종국에는 우라스코가 운영하는 사학재단에까지 손을 뻗치면서 비리는 대담해졌고, 결국 2012년 4월 최초로 의혹이 제기되었다.


내각은 이를 덮기에 급급해했으나 2012년 5월경 결정적인 제보와 증거까지 나오면서 경찰이 수사에 돌입했다. 그리고 결국 2012년 7월 10일에 쓰키야마 아이에루를 소환조사하면서 스캔들은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올라왔다. 2012년 9월 20일, 아이에루는 결국 구속을 면치 못했으며 총리의 연루설까지 유력하게 제기되자 쓰키야마 총리도 사임 의사를 밝히는 수밖에 없었다.
내각은 이를 덮기에 급급해했으나 2012년 5월경 결정적인 제보와 증거까지 나오면서 경찰이 수사에 돌입했다. 그리고 결국 2012년 7월 10일에 쓰키야마 아이에루를 소환조사하면서 스캔들은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올라왔다. 2012년 9월 20일, 아이에루는 결국 구속을 면치 못했으며 총리의 연루설까지 유력하게 제기되자 쓰키야마 총리도 사임 의사를 밝히는 수밖에 없었다.


4대 정경유착 사건 중 하나인 이것은 일본 사회를 상당히 뒤흔들었고, 당사자인 쓰키야마 아이에루를 비롯한 정재계 인사들이 구속기소되었다. 자민당은 이 일로 위기를 맞이하기도 하였으나 [[아베 신조 (신질서의 황혼)|아베 신조]]가 새 총리가 되어 당을 일신하면서 [[제49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신질서의 황혼)|차기 총선]]도 무난히 승리를 거머쥐었다.
4대 정경유착 사건 중 하나인 이것은 일본 사회를 상당히 뒤흔들었고, 당사자인 쓰키야마 아이에루를 비롯한 정재계 인사들이 구속기소되었다. 자민당은 이 일로 위기를 맞이하기도 하였으나 [[아베 신조 (신질서의 황혼)|아베 신조]]가 새 총리가 되어 당을 일신하면서 [[제47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신질서의 황혼)|차기 총선]]도 무난히 승리를 거머쥐었다.


[[분류:신질서의 황혼]][[분류:헤이세이 시대]]
[[분류:신질서의 황혼]][[분류:헤이세이 시대]]

2024년 4월 27일 (토) 10:53 판

Destiny634, 2024 - | CC-0


ウラスコ事件
우라스코 사건
▲ 구속 결정 후 도쿄 구치소로 압송되는 쓰키야마 아이에루.
일시 2012년 7월 ~ 2012년 10월
국가 대일본제국
결과 쓰키야마 아키히로 내각 붕괴


개요

2012년 일본에서 발생한 정치 스캔들. 록히드 사건(1976), 리쿠르트 사건(1986), 사가와 규빈 스캔들(1992)과 더불어 일본 4대 정경유착 비리로 손꼽힌다. 현직 총리의 형이 특정 기업으로부터 뇌물을 수수하고 불법자금을 받고, 급기야 사학 비리까지 저질러 이에 총리인 본인까지 연루되어 쓰키야마 아키히로 내각의 붕괴라는 결과를 가져온 사건으로 회자된다.

상세

우라스코(ウラスコ)는 조센반도 게이슈현 우라나지시(浦項市)에 위치한 제철 회사이며, 1963년 우라나지제철(浦項製鉄)이라는 이름으로 설립된 후 당시도 그렇지만 현재에도 일본 3대 제철회사에 들 만큼 철강산업의 대기업이다.

이랬기에 우라나지는 반도 내 철강산업의 본산이라고 할 정도로 게이쇼 지방의 유력한 공업도시이다. 우라스코가 쓰키야마 가와 엮이게 된 데는 이유가 있었는데, 쓰키야마 아키히로 총리의 아버지 쓰키야마 마고고로의 고향이 바로 우라나지로서, 쓰키야마 역시 이 지역을 자주 드나들며 인맥을 쌓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중의원이던 총리의 형 쓰키야마 아이에루였다. 아이에루는 동생 아키히로가 집권하자마자 우라스코에 접근하여 여러 편의를 봐주는 대가로 불법 정치자금과 뇌물을 수수했고, 총리 또한 이를 묵인하면서 근 2년 이상 비리를 저질렀다. 종국에는 우라스코가 운영하는 사학재단에까지 손을 뻗치면서 비리는 대담해졌고, 결국 2012년 4월 최초로 의혹이 제기되었다.

내각은 이를 덮기에 급급해했으나 2012년 5월경 결정적인 제보와 증거까지 나오면서 경찰이 수사에 돌입했다. 그리고 결국 2012년 7월 10일에 쓰키야마 아이에루를 소환조사하면서 스캔들은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올라왔다. 2012년 9월 20일, 아이에루는 결국 구속을 면치 못했으며 총리의 연루설까지 유력하게 제기되자 쓰키야마 총리도 사임 의사를 밝히는 수밖에 없었다.

4대 정경유착 사건 중 하나인 이것은 일본 사회를 상당히 뒤흔들었고, 당사자인 쓰키야마 아이에루를 비롯한 정재계 인사들이 구속기소되었다. 자민당은 이 일로 위기를 맞이하기도 하였으나 아베 신조가 새 총리가 되어 당을 일신하면서 차기 총선도 무난히 승리를 거머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