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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청]] 2대 황제.
[[옹청]] 2대 황제.


[[헌무제|선제]]가 시해된 후 제위에 올랐으나 옹청은 빠르게 수도인 서안과 섬서성 일대를 공산군에게 빼앗겼고 미처 사천으로 피신하지 못한채 낙양, 정주로 후퇴했다. 이후 10월 말엽 산동성 태안에서 최후의 항전을 준비하였으나 파죽지세로 기세를 몰며 진격하던 공산군에게 속절없이 패배, 결국 사실상 한국의 영향력이 미치던 청도로 후퇴하며 혜의제를 비롯한 옹청 인사들은 한국으로 망명했다. 그러나 미처 함께 피하지 못한 동생 [[순성제|푸제]]가 사천성에서 항전하며 옹청의 불씨는 살아남았다.
[[보계 전투]] 직후 [[헌무제|선제]]가 시해되어 제위에 올랐으나 옹청은 수도인 서안과 섬서성 일대를 공산군에게 순식간에 빼앗겼고 조정은 미처 사천으로 피신하지 못해 정주로 후퇴했다. 이후 10월 말엽 산동성 태안까지 밀려나 최후의 항전을 준비하였으나 파죽지세로 기세를 몰며 진격하던 공산군에게 패배, 결국 한국의 영향력이 미치던 청도로 건너갔다. 그러나 함께 피하지 못한 동생 [[순성제|푸제]]가 사천성에서 항전하며 옹청의 불씨는 살아남았다.

2022년 4월 13일 (수) 03:23 판


동방의 불란서 세계관

청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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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청 2대 황제
慧懿帝
혜의제
묘호 없음
시호 효후양순혜의황제
(孝厚襄順慧懿皇帝)
출생 1906년 2월 7일
청나라 직예성 북경 순친왕부
사망 1980년 10월 3일 (74세)
일본 가나가와현 카와사키시
능묘 헌릉(獻陵)
재위 옹청 황제
1953년 6월 2일 ~ 1953년 12월 9일
연호 선통(宣統)[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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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신기오로(愛新覺羅, ᠠᡳᠰᡳᠨ ᡤᡳᠣᡵᠣ)
푸이(溥儀, ᡦᡠ ᡳ)
부모 부친: 성조 선통제
모후: 효정황후 구왈기야씨
배우자 고불로 완룽
악이덕특 문수
후지와라 아키코

개요

옹청 2대 황제.

보계 전투 직후 선제가 시해되어 제위에 올랐으나 옹청은 수도인 서안과 섬서성 일대를 공산군에게 순식간에 빼앗겼고 조정은 미처 사천으로 피신하지 못해 정주로 후퇴했다. 이후 10월 말엽 산동성 태안까지 밀려나 최후의 항전을 준비하였으나 파죽지세로 기세를 몰며 진격하던 공산군에게 패배, 결국 한국의 영향력이 미치던 청도로 건너갔다. 그러나 함께 피하지 못한 동생 푸제가 사천성에서 항전하며 옹청의 불씨는 살아남았다.

  1. 부친이 승하한 해에 베트남으로 망명하며 그대로 퇴위한 탓에 부친의 연호를 그대로 쓸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