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larnacht/국가/스페인 왕국: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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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 역사 ==
=== 제3차 카를리스타 전쟁 ===
=== 제3차 카를리스타 전쟁 ===
1868년 이사벨 2세의 퇴위 이후 자유주의자들의 주도 하에 스페인 제 1공화국이 설립되는 것과 동시에 제 3차 카를리스타 전쟁은 시작되었다. 전통, 지방분권, 그리고 교회를 내세웠던 카를리스타와 그 지도자 카를로스 7세는 카탈루냐와 나바라 등지에서 빠르게 지지기반을 확보했고, 스페인 공화국을 상대로 게릴라 전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자유주의자들의 군사적 우세에도 불구하고, 자유주의적 정책에 대한 반발이나 더 급진적인 혁명 시도와 같은 내부적 불안정으로 인해 카를리스타 게릴라들을 효과적으로 상대하지 못했다. 카를리스타는 스페인 북부에서 점차 세력을 넓혀나갔고, 결국 왕정 복고와 공화정의 폐지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던 일부 이사벨 2세의 지지자들까지 카를리스타와 협력하기 시작했다. 계속 강해져 가는 카를리스타 세력을 내부적으로 무너져 가던 공화정은 막을 수 없었고, 1876년 카를로스 7세가 이끄는 군대가 마드리드에 입성하면서 제 3차 카를리스타 전쟁은 카를리스타의 승리로 끝난다.
=== 카를리스타 집권 ===
=== 카를리스타 집권 ===
카를로스 7세가 왕위에 오른 뒤 카를로스 7세의 약속들은 곧 실제가 되었다. 교회는 다시금 옛 권력을 되찾았으며, 카탈루냐와 바스크 지방은 전통에 따라 상당한 자치권을 부여받았으며, 이사벨 2세와 공화정 하에서 이루어졌던 개혁들은 폐지되었다. 이러한 정책들은 카를리스타의 지지자들에게는 환영받았지만, 다른 이들에게로부터는 많은 불만과 반발을 불려일으켰다.
비록 제 3차 카를리스타 전쟁이 끝나갈 무렵 군부의 상당수가 자유주의자 대신 카를리스타를 선택했지만, 오랫동안 강한 중앙정부를 원해왔던 군부는 카를리스타의 지방분권화 정책을 용납할 수 없었다. 점차 군부는 카를리스타 계열 왕 대신 이사벨 2세의 후손이 왕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사벨리스타 세력의 중심지가 되어갔다. 미서전쟁의 패배와 뒤따른 식민지 상실은 군부의 불만을 더욱 가속시켰다.
제 3차 카를리스타 전쟁에서 패배했던 자유주의자들도 크게 세력이 약해지긴 했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 비극의 주간 ===
=== 비극의 주간 ===
=== 1917년 위기 ===
=== 1917년 위기 ===

2023년 4월 30일 (일) 17:06 판

[ 극야 : 혁명의 잔재 ]
[ 4대 팩션 ]
PATRA Commonwealth of Nations SchutzBündnis Pacte de La Rochelle
스페인 왕국
Reino de España
국기 국장
국기 파일 국장 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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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칭
국명 (국문)
스페인 왕국, 스페인
국명 (스페인어)
Reino de España, España
상징
국기
스페인 국기
국화
스페인 국화
왕실 상징
스페인 왕실 문양
역사
1872년-1876년 제3차 카를리스타 내전
1917년 프리모 데 리베라의 쿠데타 시도, 총파업
1921년 리프 전쟁 발발
지리
수도
마드리드
위치
서유럽
이베리아 반도
주변국
포르투갈 공화국
프랑스국
정치 · 경제
정치 체제
전제주의
절대왕정
국가 원수
알폰소 카를로스 1세
(Alfonso Carlos I)
행정 수반
마누엘 팔 콘데
(Manuel Fal Condel)
경제 체제
자본주의 경제 체제
통화
스페인 페세타

1848년 자유주의 혁명은 아이러니하게도 스페인을 과거로 되돌렸습니다. 48년 혁명에 영향을 받은 자유주의자들은 1868년 혁명을 통해 스페인에 자유와 진보를 가져오고자 했지만, 곧 전통과 종교라는 벽에 가로막히고 말았습니다. 결국 1872년부터 1876년까지 벌어진 제3차 카를리스타 전쟁에서 카를리스타 세력이 승리하며 스페인의 자유주의는 한날 꿈으로 끝나버렸습니다.

스페인을 "좋았던 옛 시절"로 되돌리고자 했던 카를리스타의 시도는 많은 이들의 불만을 초래했습니다. 지방분권화와 바스크와 카탈루냐의 자치정부, 그리고 식민지 상실은 강한 중앙정부를 원하던 군부가 불만을 가지게 했고, 자유주의자들은 왕정 자체를 포기하고 공화주의로 시선을 돌렸습니다. 좋지 못한 경제 상황과 노동자들의 빈곤은 이들이 사회주의나 무정부주의 같은 혁명적인 이념을 받아들이게 만들었습니다. 카를리스타의 무자비한 탄압은 오히려 이러한 세력들을 더욱 극단적으로 변하게 했습니다. 결국 이러한 문제점들은 1917년 안토니오 프리모 데 리베라 장군의 쿠데타 시도와 사회주의자들과 무정부주의자들의 총파업 선언 때 폭발했습니다. 비록 왕정이 이들을 진압하면서 가시적인 반발은 , 스페인의 문제들은 커져만 갈 뿐이었습니다.

현재의 스페인은 여러 어려움들을 직면하고 있습니다. 분데스베르케 쇼크와 모로코에서의 군사적 실패들은 스페인을 더욱 위태로운 자리로 몰아넣었습니다. 농민들과 노동자들은 굶주리고 있고, 군부 내에서는 비밀스러운 이야기들과 음모들이 오가고 있으며, 카탈루냐는 무정부주의자들과 극단적 민족주의자들로 가득합니다. 이 중 한 문제가 — 혹은 이들 모두가 — 간신히 유지되던 스페인의 질서를 무너뜨릴 날이 머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이미 금이 간 스페인은 자그만한 충격에도 산산조각 날 것입니다.


개요

스페인 왕국 혹은 스페인은 유럽 이베리아 반도에 존재하는 국가이다.

1933년의 상황

역사

제3차 카를리스타 전쟁

1868년 이사벨 2세의 퇴위 이후 자유주의자들의 주도 하에 스페인 제 1공화국이 설립되는 것과 동시에 제 3차 카를리스타 전쟁은 시작되었다. 전통, 지방분권, 그리고 교회를 내세웠던 카를리스타와 그 지도자 카를로스 7세는 카탈루냐와 나바라 등지에서 빠르게 지지기반을 확보했고, 스페인 공화국을 상대로 게릴라 전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자유주의자들의 군사적 우세에도 불구하고, 자유주의적 정책에 대한 반발이나 더 급진적인 혁명 시도와 같은 내부적 불안정으로 인해 카를리스타 게릴라들을 효과적으로 상대하지 못했다. 카를리스타는 스페인 북부에서 점차 세력을 넓혀나갔고, 결국 왕정 복고와 공화정의 폐지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던 일부 이사벨 2세의 지지자들까지 카를리스타와 협력하기 시작했다. 계속 강해져 가는 카를리스타 세력을 내부적으로 무너져 가던 공화정은 막을 수 없었고, 1876년 카를로스 7세가 이끄는 군대가 마드리드에 입성하면서 제 3차 카를리스타 전쟁은 카를리스타의 승리로 끝난다.

카를리스타 집권

카를로스 7세가 왕위에 오른 뒤 카를로스 7세의 약속들은 곧 실제가 되었다. 교회는 다시금 옛 권력을 되찾았으며, 카탈루냐와 바스크 지방은 전통에 따라 상당한 자치권을 부여받았으며, 이사벨 2세와 공화정 하에서 이루어졌던 개혁들은 폐지되었다. 이러한 정책들은 카를리스타의 지지자들에게는 환영받았지만, 다른 이들에게로부터는 많은 불만과 반발을 불려일으켰다.

비록 제 3차 카를리스타 전쟁이 끝나갈 무렵 군부의 상당수가 자유주의자 대신 카를리스타를 선택했지만, 오랫동안 강한 중앙정부를 원해왔던 군부는 카를리스타의 지방분권화 정책을 용납할 수 없었다. 점차 군부는 카를리스타 계열 왕 대신 이사벨 2세의 후손이 왕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사벨리스타 세력의 중심지가 되어갔다. 미서전쟁의 패배와 뒤따른 식민지 상실은 군부의 불만을 더욱 가속시켰다.

제 3차 카를리스타 전쟁에서 패배했던 자유주의자들도 크게 세력이 약해지긴 했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비극의 주간

1917년 위기

리프 전쟁

정치

정부 구성

군사

경제

인물

정당 및 단체

기타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