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2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신질서의 황혼)

Destiny634, 2024 - | CC-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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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일본제국 제42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大日本帝国第42回衆議院総選挙
1999년 7월 20일
42회 중원선
(밀레니엄 총선)
2002년 8월 3일
43회 중원선
(1차 소비세 총선)
투표율 75.9% ▲ 0.2%p
선거 결과

정당 지역구 비례 총합 비율
자유민주당 289석 44석 333석 51.2%
일본사회당 217석 34석 251석 38.6%
공명당 27석 7석 34석 5.2%
신당 사키가게 3석 4석 7석 1.1%
민주개혁연합 3석 3석 6석 0.9%
남방의당 2석 3석 5석 0.8%
무소속 14석 - 14석 2.2%

개요

1999년 7월 20일, 일본에서 치른 중의원 의원 총선거.

이 선거는 보수합동으로 보수세력이 하나로 결집해 자유민주당을 결성한 이후로 처음 치러졌으며, 진정한 의미에서 보혁 양당의 1:1 선거가 처음 성사되기도 하였다.

선거 결과 신평화조약 파동에도 불구하고 자민당은 건재함을 입증하며 공명당을 제외하고도 단독 과반인 333석을 확보했다. 반면 에다 사쓰키가 이끄는 사회당은 정권교대까지 노릴수 있다는 기대에도 불구하고 251석에 불과하며 오히려 파동 속에 너무 강경한 기조를 동원한 것이 역풍으로 다가왔다.

이 선거를 계기로 제2차 모리 요시로 내각이 들어섰고 모리와 자민당의 집권은 더욱 안정성을 더하게 되었다.

선거 고시

해산일

해산명

  • 신의 나라 해산

공시일

투표일

개선수

  • 650석

선거제도

  • 소선거구제
  • 불구속 명부 비례대표제
  • 비밀투표, 단기투표제

선거권 만 20세 이상의 일본 국민

피선거권 만 25세 이상의 일본 국민

유권자 201,997,789명 (남성 : 101,173,395명, 여성 : 100,824,394명)

과정

1999년은 보수 합동으로 출범한 모리 요시로 내각이 반환점을 돌게 된 가운데, 1998년부터 일본과 미국 간 일미태평양평화조약 개정 협상이 속개되었다. 당시 모리 내각과 자민당의 입장은 하와이 공화국의 관련조항만을 개정하고 그대로 유지하자는 것이었으나, 사회당은 자강을 위한 전면 파기를 주장하자 양당의 충돌이 진행되었다.

자민당과 사회당의 대결이 이어지는 가운데 모리는 1999년 5월 25일 신평화조약을 국회에서 역설하며, 평화조약이 그리 불평등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여러 개의 논란이 있는 조항들을 제거 및 개정했다고 설명, 이는 정부의 성과라고 자평하는 한편 국회에 비준을 요구했다.

자민당 의석에서 환호가 터져나왔으나, 사회당 의원들이 정부는 미국의 주구가 되는 것을 택했다며 맹비난하면서 폭동을 일으켰다. 이것이 바로 헤이세이 11년 중의원 폭동이다.

이에 사회당 의원들이 강제로 제압 당하고, 다음 날 사회당이 전날의 사태에 반발하며 국회에 불출석한 가운데 과반 의석을 점유한 자민당에 의해 신평화조약 비준안이 단독 가결되었다. 자민당의 단독 비준은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으로 여겨졌고, 전국적으로 자민당의 지지가 하락하기 시작한다. 이에 사회당은 때가 무르익었다고 판단하고 개헌과 반미기조, 군축을 주장하면서 판은 점점 커져만 갔다.

정국의 혼란이 이어지자 모리는 승부수를 던지며 6월 17일 중의원 해산을 선언했다. 모리는 신조약에 대해 국민이 그 필요성과 일본에 가져다 줄 이득을 잘 알 것이라고 설명하며 선거로 국민의 평가를 받겠다고 선언, "일본이 천황을 중심으로 한 신의 나라(神の国)라는 것을 국민 모두가 깨닫게 하겠다."며 절대로 일본이 미국의 주구가 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한편 이 말로 인해 이 해산의 명칭은 신의 나라 해산(神の国解散)이 되었다.

이렇게 시작된 선거에서 호헌/용미/세계화를 내세운 자민당과 개헌/반미/자강을 내세운 사회당이 서로의 존망을 걸고 맞붙게 되었다. 한편, 이 와중에 자민당에 악재가 덮쳤는데, 바로 공명당이 신평화조약에 반대하며 자민당과의 연정을 파기한 것이었다. 이 사태로 인하여 선거에서 자민당의 입지가 크게 줄어들 것이 명확해 보였다. 이후 양당은 2009년 제46회 총선을 앞두고 다시 연립할 때까지 10년간 단절된다.

하지만 선거 국면에 들어가서 에다 사쓰키를 필두로 사회당이 너무나 과격한 주장을 반복하고, 이 때문에 자민당으로부터 극좌 정당이라고 비난받자 이것이 여론 악화로 이어졌다. 결국 선거 결과, 자민당은 선거 직전 의석(323석)에서 10석을 늘리게 된 333석으로 공명당 없이도 단독 과반을 달성했으며, 또한 보수합동 후 첫 선거를 매우 성공적으로 끝마쳐 모리 요시로 내각은 쾌재를 취했다. 이어 제2차 모리 요시로 내각이 출범했다.

반면 사회당은 20석이나 잃은 251석으로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를 내며, 에다 집행위원장이 사임하게 되었다. 이후 75세의 신임 도요타 다이쥬 집행위원장 체제 하에서 당 노선의 대대적인 수정을 통해 사회당은 "자유" 개념의 인정을 추진하였으며 자유적 사회민주주의로 기조를 전환하는 등 전반적으로 우경화되었다.

하지만 2001년 7월 종파사건 이후 당의 우경화 기조는 중단되고 좌우결렬로 도요타를 비롯한 우파계열은 신사회당으로 옳겼다.

결과

정당별 득표율

정당 및 대표 지역구 비례대표 합계 비고
득표 의석 득표 의석 의석 증감
모리 요시로 71,138,772
46.4%
289석 66,232,650.
43.2%
44석 333석
51.2%
+6[1] 제1당
자유민주당
에다 사쓰키 55,347,191
36.1%
217석 48,907,906
31.9%
34석 251석
38.6%
-20 제2당
일본사회당
오타 아키히로 8,585,713
5.6%
27석 9,658,928
6.3%
7석 34석
5.2%
0 제3당
공명당
하토야마 유키오 3,679,592
2.4%
3석 5,519,387
3.6%
4석 7석
1.1%
- 제4당
신당 사키가게
코사카 키칸 3,219,642
2.1%
3석 3,832,908
2.5%
3석 6석
0.9%
- 제5당
민주개혁연합
도조 스후다 2,913,010
1.9%
2석 3,219,642
2.1%
3석 5석
0.7%
+1 제6당
남방의당
무소속 6,899,234
4.5%
14석 - - 14석
2.2%
- -
합계 153,316,321 549석 153,316,321 101석 650석 원내 6당체제
  1. 직전 중원선 자유당 + 국민당 + 관민회 327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