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조부 (신질서의 황혼):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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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세부적으로 나누면 게이조시 전체에서 조센왕조 시기의 한성(칸조) 성곽 내 지역, 즉 원조 게이조 지역은 1914년 게이조. 즉 쇼마치, 타츠야마, 쥬구 정도로 볼수 있다. 이 3개 구는 칸조(漢城) 3구라고 하는 게이조의 유서깊은 지역이다.  
더욱 세부적으로 나누면 게이조시 전체에서 조센왕조 시기의 한성(칸조) 성곽 내 지역, 즉 원조 게이조 지역은 1914년 게이조. 즉 쇼마치, 타츠야마, 쥬구 정도로 볼수 있다. 이 3개 구는 칸조(漢城) 3구라고 하는 게이조의 유서깊은 지역이다.  


그렇기에 게이조의 주요 행정 중심지는 다 이곳에 소재한다. 경제적 중심지는 게이진(京仁)이기에 행정 / 경제가 분리되어 있는 것이다. 또한 이곳에는 [[고카문]], [[게이조부청]](구 조선총독부) 뒤뜰에 위치한 조센 왕조의 정궁 [[게이조고쿄]], 히가시몬, 미나미문, 기타몬 등 조센 도읍 칸조의 [[4대문]](3대문) 등 문화재도 위치해있다.<ref>니시몬이 없는 이유는 1915년 정부가 게이조 개발 과정 전차 부설로에 세다이문이 걸리자 철거했기 때문이다.</ref>
그렇기에 게이조의 주요 행정 중심지는 다 이곳에 소재한다. 경제적 중심지는 게이진(京仁)이기에 행정 / 경제가 분리되어 있는 것이다. 또한 이곳에는 히가시몬, 미나미문, 기타몬 등 조센 도읍의 [[4대문]] 등 문화재도 위치해있다.<ref>니시몬이 없는 이유는 1915년 정부가 게이조 개발 과정 전차 부설로에 세다이문이 걸리자 철거했기 때문이다.</ref>


1936년 게이조. 즉 니시몬구, 히가시몬구, 에이호구, 마호구, 조토구 등 5개 구까지는 그래도 칸조 3구에 이어 정통 게이조로 보는 경향이 강하나, 이후 1940년에 편입된 게이진 지역은 기본적으로 이들과는 어느정도 이질적이다.
1936년 게이조. 즉 니시몬구, 히가시몬구, 에이호구, 마호구, 조토구 등 5개 구까지는 그래도 칸조 3구에 이어 정통 게이조로 보는 경향이 강하나, 이후 1940년에 편입된 게이진 지역은 기본적으로 이들과는 어느정도 이질적이다.

2024년 4월 17일 (수) 09:10 판

Destiny634, 2024 - | CC-0


대일본제국
도도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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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부(府)
京城府 (けいじょう ふ)
게이조부 | Keijo Prefecture
부기(府旗) 문장(紋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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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청 소재지 게이조시 쇼마치구 메이지초메 31-0
국가 일본
지역 게이키 (기타게이키)
최대도시 게이조시
면적 1,431.08km2
하위 행정구역 20시 1정[1]
인구 12,929,761명[2][3]
인구밀도 8,032.28명/km2
GDP(명목) $8,147억 8,197만
1인당 GDP $61,763
시간대 GMT+09:00
부지사 시민 기노시타 에이코
(木下映子, 3선)
부의회
(112석)
시민 59석
자민 32석
입헌 12석
공명 2석
무소속 7석
중의원
(24석/650석)
시민 16석
자민 6석
입헌 2석
참의원
(12석/384석)
시민 6석
자민 3석
입헌 2석
공명 1석
상징 부화 개나리
부목 은행나무
부조 까치
ISO 3166-2 JP-48
도메인 .keijo.jp, .keij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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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이조의 도심.
▲ 게이조 최대의 번화가. 혼마치.

개요

氣分よい變化、品格ある京城
기분 좋은 변화, 품격 있는 게이조

게이조부 캐치프라이즈

일본 반도에 위치한 도시. 도쿄에 이은 일본 제2의 도시이다. 더해서 아시아 전체에서 제2도시기도 하다. 게이조시를 중심으로 서북쪽에서 동남쪽으로 뻗어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인구는 총 1,292만명 가량.[4] 광역 인구까지 합치면 2,800만명에 달해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권중 하나로 분류된다. (게이키 광역권)

역사

게이조는 매우 유서깊은 도시로 반도 역사에 있어서 강을 중심으로 드넓은 평야가 펼쳐지고 수확량이 높아 비옥했던 "간강 유역" 이라 함은 매우 중요도가 높았다. 백제, 고구려, 신라 순으로 이곳을 차지하였고 최종적으로 신라시대에 9주5소경 중 북원경에 속했다.

후삼국시대에는 고려시대엔 남경으로 불리는 고려 주요 3대 도시에 해당하였다. 고려 멸망 후 1392년부터 1910년까지 반도에 위치한 조선의 도읍이었고, 이 당시에는 한성으로 불렀었다. 약 500년간 조선의 수도로서 기능한 일본 7대 고도[5]의 하나다.

그러다가 1910년대 일한합방조약을 통해 조선 왕조가 멸망하자 게이조(京城)로 개칭되고 게이키도에 속하게 되었으며 1952년 내지편입 직후 게이키도에서 독립해 독자적 행정구역인 게이조부로 기능하였다. 이때 조선총독부의 조직이 그대로 게이조부청이 되었다.

현재와 같은 행정권이 부여된 것은 1946년 칙령으로 조선 반도 지역 내의 참정권이 부분적으로 인정되고 1991년 지방자치제가 실행되어 부지사를 직선으로 뽑게 된 이후이다.

1980년대, 쇼와 버블경제 시기에는 뉴욕이나 게르마니아도 뛰어넘고 세계 제2도시라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현재도 도쿄, 뉴욕, 게이조, 게르마니아, 로마 등 세계 5대 도시의 하나로 꼽히는 대도시이다.

1988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되어 1988 게이조 올림픽을 개최할수 있었다. 이 올림픽은 냉전 종식의 국제 화해의 장이 되었으며, 병합 78년 만에 일본 제국 내에서 반도의 장족의 발전을 상징했다.

현재 게이조는 인구 약 700만 명의 일본 제2도시이자, 동아시아 제2도시, 세계 제3도시이다.

정치

민주화 이후에는 과거 군국주의 체제에 대한 반감으로 일본사회당 계열 진보 야당의 당세가 강력했던 지역이었다. 97년 자민당 창당 이전에는 말할것도 없어 일본자유당이 가장 고전하는 지역이었고 이후에도 게이쇼, 고겐, 간쿄 등 다른 조센반도 지역이 자민당 지지로 돌아섰음에도 게이조만큼은 리버럴 성향이 매우 강한 도시였다.

그러나 사회당 내란 사태로 혁신계 전반에 큰 타격을 입은데다 2010년에 게이조에서 매우 큰 영향력을 가진 기노시타 에이코가 게이조 지역주의의 시민 리그를 창립하면서 혁신계 야권은 급격히 지역에서 축소되고 시민 리그가 독식하는 체제가 이어졌다. 대체로 시민 리그가 독식하고, 자민당과 입민당이 제1야당 다툼을 하는 식이었다.

그러나 2009년 사회당 내란 사태로 공안정국이 조성괸 상황에서 게이조도 대도시로서 우경화를 피해가지 않았다. 자민당은 게이조의 진보세가 공안정국으로 말미암아 흔들리기 시작하자 집중적으로 공략했고, 2019년 통일지방선거에서 입헌민주당 하야시 모토아츠(19.34%)와 표가 갈리기는 했으나 3선에 도전하는 현직 부지사 기노시타 에이코(35.19%)가 자민당의 유력 여성 정치인 마쓰시마 교다마(36.42%)에게 접전패한 초유의 결과가 나왔다. 또한 부의회도 최초로 자민당이 112석 중 33석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2021년 중의원 선거에는 게이조의 의석 24석 중 시민 리그가 16석을 가져가 6석의 자민당을 눌려 여전한 야권의 우세 지역임을 증명했다.

2023년 통일지방선거에는 기시다 후미오 내각의 낮은 지지율의 영향으로 기노시타 에이코가 다시 복귀했다. 기노시타 에이코는 37.64%로 한 차례 건너뛰어 3선 하였으며[6] 부의회는 시민 리그 49석으로 제1당을 가져갔다.[7]

이 이후로는 게이조는 자민당이 입민당과의 제1야당 다툼에서 확실한 우세를 점한 양상이나, 여전히 진보혁신계의 입김이 크다.

참고로 가와미나미 5시의 경우는 자민당의 초강세 지역이다. 이곳은 게이조가 야권의 텃밭이던 시절부터 부유 지역으로서 자민당 지지세가 높았고 현재는 거의 농촌지역 이나 후산부 수준의 자민당 득표율을 보여준다.

행정구역

게이조부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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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조시

게이조시 시역

대체적으로 게이조라면 이 게이조시만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도쿄도 도쿄도 구부의 23구만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은 것과 같은 이치다.

게이조시는 다시 1936년까지의 식민 시대 게이조부(현 게이조부와 다르다)의 8구[8]를 조테이쥬리, 이후 편입된 지역을 게이진으로 통칭한다.

더욱 세부적으로 나누면 게이조시 전체에서 조센왕조 시기의 한성(칸조) 성곽 내 지역, 즉 원조 게이조 지역은 1914년 게이조. 즉 쇼마치, 타츠야마, 쥬구 정도로 볼수 있다. 이 3개 구는 칸조(漢城) 3구라고 하는 게이조의 유서깊은 지역이다.

그렇기에 게이조의 주요 행정 중심지는 다 이곳에 소재한다. 경제적 중심지는 게이진(京仁)이기에 행정 / 경제가 분리되어 있는 것이다. 또한 이곳에는 히가시몬, 미나미문, 기타몬 등 조센 도읍의 4대문 등 문화재도 위치해있다.[9]

1936년 게이조. 즉 니시몬구, 히가시몬구, 에이호구, 마호구, 조토구 등 5개 구까지는 그래도 칸조 3구에 이어 정통 게이조로 보는 경향이 강하나, 이후 1940년에 편입된 게이진 지역은 기본적으로 이들과는 어느정도 이질적이다.

게이진지역은 1940년, 게이진(京仁)이라는 명칭으로 당시 교키도 게이조부에 편입된 지역이다. 게이진이라는 명칭은 게이조와 진센을 잇는 지역이기에 붙여졌다. 이 편입으로 전통적으로 내륙 도시였던 게이조시는 바다로 접했다.

이 목적은 당시 일본 제국이 물자 수송을 원할히 하기 위하여 내륙 도시인 게이조를 해양도시화 하려고 지나전쟁 때인 1939년 처음 입안했다.

광활한 평야를 가진 게이진 지역은 급격한 성장을 이뤄낼수가 있었고, 1960년대에 이미 게이진의 주요 도시는 일본에서 손꼽히는 대규모 번화가로 성장했다.

일본의 숙원 사업이었던 게이조항(京城港)또한 1967년 완공되었으며, 공영권에서 대부분의 물자가 게이조항을 통하는 수준으로 거대했었고 이는 현재도 도쿄만에 필적하는 거대 무역항이다.

게이조시 산하의 구는 총 23개이며, 모두 자치구가 아닌 행정구이다.

게이조시의 인구는 총합 6,885,398명으로 도쿄도 구부의 1,020만명에 이어 일본 제2의 도시이며, 게이조부 전체에서는 약 절반을 조금 넘게 차지하는 명실상부 게이조부의 중심지이다. 제3도시 요코하마시(3,944,956명), 제4도시 후산시(3,654,845명)에 비해도 월등하고, 또한 제5도시인 오사카시(3,080,091명)의 2배를 넘는다.


구명 인구 비고
쇼마치구 (鍾路区) 159,417명 [10]
니시몬구 (西門区) 336,231명
히가시몬구 (東門区) 371,149명
주오구 (中央区) 141,312명 [11]
에이호구 (永登浦区) 414,734명
타츠야마구 (竜山区) 243,608명
조토구 (城東区) 307,361명
마호구 (麻浦区) 213,697명
코메이구 (光明区) 290,197명
히가와구 (陽川区) 396,028명
미즈스미구 (水炭区) 152,321명
메이지구 (明治区) 523,058명
고토구 (吾丁区) 236,011명
타마야마구 (玉山区) 212,632명
스라이구 (蘇來区) 479,715명
카츠라히구 (桂陽区) 290,266명
후라이구 (府内区) 235,493명
마토스나구 (素砂区) 474,873명
아오아미구 (靑羅区) 452,945명
쿠로아카구 (黔丹区) 193,645명
토미히라구 (富平区) 414,138명
스무모노라구 (済物浦区) 182,619명
나가무네구 (永宗区) 163,948명

구명의 경우 음독과 훈독 중 발음이 더 자연스러운 쪽으로 읽는다. 원래는 열도와의 구분을 위하여 모두 음독으로만 읽었으나, 내지편입 이후 1953년에 바뀌었다.

미나미가와(南江) 지역

미나미가와

미나미가와는 게이조부의 남부에 해당하는 지역으로서, 1953년 당시 갯벌 지역이던 간가와 이남 지역을 재개발을 목표로 대규모 편입함으로서 최종적으로 부역 확장이 완료되었다.(간가와 이남 개발 사업)

애초부터 계획도시이자 신시가지로서 건설된 이곳은 매우 고도로 발전된 일본에서 손꼽히는 번화가이자 시가지다. 현재 게이조의 조테이쥬리 지역보다는 월등하게 유동인구가 많고 번화한 지역이다.

행정구역의 경우 총 11개의 시로 이루어진다. 초기에는 시가 9개였던 것이 1979년 게이조부 행정구역 개편을 통해 쪼개졌다.

미나미가와 지역의 팽창으로 가와미나미시가 단독 55만, 마츠사카시가 단독 65만을 찍는 등 너무 커지자 미나미가와 지역의 시들을 해체하고 세분화하는 조치가 취해졌다. 이는 미나미가와 지역의 재개발이 사실상 완전히 마무리지어 지면서 이루어진 행정개편이기도 했다. 또한 부(府) 휘하의 시가 정령지정도시에 이르지 않도록 조정한다는 관례적 원칙이기도 했다.

미나미가와시는 해체되고 각각 다이지(大峙)정과 아쿠라(開浦)정을 중심으로 다이지시, 아쿠라시로 나뉘어졌다. 마츠사카구는 동부 방면만 남고, 서부는 가이코츠마(蚕室)정을 중심으로 가이코츠마시로 분할되었다. 또한 가와히가시시도 해체하여 메이이치(明逸)정과 세나이(城內)정을 각각 메이이치시]와 세나이시로 분리시켰다. 미즈쿠사시는 동부 일각만을 남기고 가타시로시로, 칸가쿠시 또한 동부를 남기고 서부는 니오시로 분리했다.

인구는 3,472,828명.

시명 인구 비고
세나이시 (城內市) 301,116명
메이이치시 (明逸市) 218,050명
다이지시 (大峙市) 318,098명
아쿠라시 (開浦市) 286,685명
미즈쿠사시 (瑞草市) 263,425명
가타시로시 (方背市) 182,252명
마츠사카시 (松坡市) 383,958명
가이코츠마시 (蚕室市) 341,256명
아카가네시 (赤金市) 418,769명
칸가쿠시 (冠岳市) 278,712명
니오시 (新林市) 235,244명
에리가와시 (衿川市) 257,463명

히나미(広中道) 지역

미아세 지역

히로츠시 (広津市), 나카나미시 (中浪市), 미치미네시 (道峰市)의 앞 글자를 따와 미아세 지역이라고 부른다.

게이조부를 이루는 세 축의 마지막 지역으로, 고도로 개발되어 마천루와 주택으로 가득 찬 게이조시나 미나미가와 지역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번화가의 크기도 작고 녹지가 많다는 점이 특징이다.

그래서 게이조시나 미나미가와의 너무 높은 물가와 땅값을 감당하지 못한 시민들이 주변의 가이조현 등으로 이주하는 대신 미아세 지역으로 오는 경우가 많다. 특히 쇼와 버블경제 시기에는 게이조시와 미나미가와 땅값이 천정부지로 폭등하여 일부 저소득층이 다소 이주하기도 했다.

총 7개 시로 이루어져있다. 인구는 2,571,535명이 거주하여 게이조시나 미나미가와 지역보다는 적지만 상당한 수준이다.

시명 인구 비고
히로츠시 (広津市) 373,734명
나카나미시 (中浪市) 212,155명
미치미네시 (道峰市) 306,948명
아시하라시 (芦原市) 498,213명
세이호쿠시 (城北市) 425,602명
온헤이시 (恩平市) 466,770명
교도시 (教徒市) 288,113명

경제

게이조시의 경우 구 조테이쥬리가(조테이쥬리 8구) 1960년대까지 경제적 중심지의 역할을 해왔으나, 1947년 게이진 지역을 편입한대다가 1950년대부터 시작하여 간가와 이남 갯벌 지역이 대대적으로 매립되고 개발되고, 간가와 이남이 게이조부으로 편입되면서 경제적 중심지도 점차로 간가와 이남으로 이동했다. 간가와 이남의 마츠사카시 등 가와미나미는 도쿄에 비견될 정도로 일본 최대의 번화가로 개발되었다.

간가와의 폭이 1km에 달하여 양자강에 비견될 정도로 넓기 때문에 간가와 이북(기타가와)과 이남(미나미가와)의 경제가 분리되어있는 면이 있다. 다만 정부의 적극적인 대중교통 공사와 교각 건설, 특히 쇼와 버블경제 시기의 대규모 기타가와 재개발로 기타가와 지역과 미나미가와 지역의 격차는 1990년대~2000년대 이후부터는 많이 줄어들었다.

대기업 겐다이(現代), 센조(鮮京), 신세카이(新世界)의 본사가 위치해있기도 하다. 이들 그룹은 모두 경영 일가가 조선계이다. 본래 미쓰보시(三星)도 이곳에 소재했으나 2020년에 리노이에 아루 신임 회장[12]에 의해 도쿄로 이전하였다.

교육

교육 역시 매우 발달되어있다. 먼저 제국대학 중 하나이고 동양 문화의 권위로서 일본 3대 명문대의 하나인[13] 게이조제국대학(京城帝国大学)이 소재해있다.

사립 대학 중에서도 내로라하는 명문 대학들이 즐비하다. 대표적으로 엔세이대학(延世大学), 리카여자대학(梨花女子大学), 후세대학(普成大学), 메이리대학(明倫大学), 도코쿠대학(東国大学), 니시가와대학(西江大学), 칸요대학(漢陽大学) 등등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대학들이 있다.

이들은 식민지시대의 전문학교가 시초이며, 1946년 이전까지는 대학 승격이 허용되지 않았으나 조센과 다이완 의무교육이 실시되면서 모두 대학으로 승격 조치되었다.

게이조의 대학들은 열도에서도 취학할 정도로 수준이 높다. 실제로 게이조대학의 학생 중 약 30%가 열도, 10% 가량은 대만 출신이다.

게이조도 구상 (京城都構想)

게이조를 도쿄도와 동급의 도(都)로 승격하자는 구상이다. 오사카도 구상(大阪都構想)과도 맞물리는 측면이 있으며, 도로 승격됨으로서 게이조의 정치적 / 경제적 위상을 일신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도쿄를 비롯한 중앙에서는 게이조든 오사카든 도 긍격을 탐탁지 않아한다. 도(都)라는 행정구역 자체가 수도에 부여하는 유일한 지위라는 특수성을 가지는데 도가 2-3개가 될 경우 이것이 어려워지는데다 현재 안그래도 딱히 법에 명시되어있지 않는 도쿄의 수도로서의 지위가 더욱 근거를 잃어 혼란을 초래한다는 이유에서다.[14]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이조 지역 정치권에서는 활발해 이는 실제로도 여러번 진행된 바가 있었는데, 2011년 게이조도 전환 주민투표가 진행됐던 바가 있었다. 그러나 이는 부결되며 이것을 주도한 쿠레 세이쿤 부지사가 정계 은퇴를 선언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후에도 기노시타 에이코 부지사는 여러 번 게이조의 부 승격 필요성을 역설하고 게이조 지역정당 시민 리그는 아예 이것을 당론으로 걸어놓고 활동 중이다.

하지만 게이조 지방정부에서 어찌해서든 통과를 강행시킨다 한들, 국회의 의결이 필요하고 중의원과 참의원 절대의석을 가진 자민당은 이에 반대하는 입장이라 사실상 매우 어렵다.

실제로 2019년 마쓰시마 교다마가 첫 자민당 출신 부지사로 당선된 이후, 게이조부 차원에서의 주장도 폐기되었다.

그나마 2023년 8회 통일지방선거에선 기노시타 에이센이 다시 당선되었고 다시 추진하기 시작했으나 예전만큼 불이 붙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소득이 있다면 입헌민주당을 반대 입장에서는 설득해낸 것.

게이조 천도론 (京城遷都論)


  1. 게이조시의 17개 구를 분리한다면 총 42개(게이조시 1개는 제외)의 기초단위 행정구역이 있다.
  2. 추계 인구 2024년 1월 1일 기준
  3. 이중 게이조시의 인구는 약 6,885,398명 수준이다.
  4. 도쿄도는 1,510만명 가량.
  5. 도쿄(에도 막부 ~ 현재), 교토(헤이안 시대), 나라(나라 시대), 가마쿠라(가마쿠라 막부), 게이조(조선왕조의 수도), 게이슈(계림왕조의 수도), 가이조(고려왕조의 수도)
  6. 현직 마쓰시마 교다마는 35.43%을 기록했다. 입헌민주당은 하야시 모토아츠가 성추문으로 자살한 이후 노다 나가요시를 공천하였으나 역시 3위인 18.21%로 마감했다.
  7. 참고로 부의회는 자민 33 + 공명 2 + 보수 무소속 2 등 범보수가 37석을, 시민 59 + 사회 12 + 진보 무소속 5 등 범진보가 76석을 차지하여 여소야대이다.
  8. 쇼마치구, 세다이문구, 도다이문구, 추구, 에이호구, 타츠야마구, 마호구, 조토구
  9. 니시몬이 없는 이유는 1915년 정부가 게이조 개발 과정 전차 부설로에 세다이문이 걸리자 철거했기 때문이다.
  10. 게이조부청 소재지
  11. 게이조시청 소재지
  12. 아버지인 리노이에 다케시 회장이 2014년부터 쓰러져 직무를 못 봐서 실권은 이미 그에게 있었으나, 회장이 된건 2020년 리노이에 다케시 회장의 사망 시이다.
  13. 도쿄제국대학, 교토제국대학, 게이조제국대학을 꼽는다.
  14. 다만 수도권관리법 때문에 사실상 도쿄를 수도로 볼 성문법은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