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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조선 왕실이 가지고 있던 권위는 대한국 체제 및 대한 제국 시기의 초기까지도 그대로 이어졌다. 사족으로 양반을 개편하고 사농공상의 차별 철폐를 실시해 황실 아래 모두가 평등하다는 사상을 정착시켰으나, 대한제국 헌법에서도 명시하듯이 대한제국은 엄연히 황제가 통치하는 국가로서의 정체성이 명실상부했었다. 그러나 융희 시대부터는 황실 내에서 엄청난 카리스마를 자랑하던 흥선군과 고조가 승하한 뒤, 새로 황제로 즉위한 융희제가 권모술수에 능한 공신들을 고조만큼 능숙하게 컨트롤하지 못하게 됐고, 여기서 당시 한국에 유행하기 시작한 민권운동 정서가 겹치면서 세속정치의 주권이 왕실에서 신하 및 국민들에게로 넘어가게 되었다. 그래도 제국 체제가 지속된 기간 동안에는 파시즘 정권인 김창암 정권도 근본적으로 황제의 칙서와 재가를 받고 모든 일을 집행했듯이 어느정도의 위세는 남아있었으며, 본격적으로 황실의 권위가 떨어진 시기는 내전을 거쳐 헌정 정부가 들어선 뒤 급작스럽게 즉위한 태시제때부터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건 태시제가 원래 황제가 될 운명이 아니여서 미국 유학을 다녀온 뒤, 진보적 성향을 가진 상태에서 양자로서 입적된 뒤, 황제로서 황실의 입헌화 및 진보적인 정책에 본인이 사상적으로 동의한 것이라 그런 것도 있었으나, 사실 근본적으로 태시제의 성향만 반영됐다고 보기는 힘든 면이 있다. | 이렇게 조선 왕실이 가지고 있던 권위는 대한국 체제 및 대한 제국 시기의 초기까지도 그대로 이어졌다. 사족으로 양반을 개편하고 사농공상의 차별 철폐를 실시해 황실 아래 모두가 평등하다는 사상을 정착시켰으나, 대한제국 헌법에서도 명시하듯이 대한제국은 엄연히 황제가 통치하는 국가로서의 정체성이 명실상부했었다. 그러나 융희 시대부터는 황실 내에서 엄청난 카리스마를 자랑하던 흥선군과 고조가 승하한 뒤, 새로 황제로 즉위한 융희제가 권모술수에 능한 공신들을 고조만큼 능숙하게 컨트롤하지 못하게 됐고, 여기서 당시 한국에 유행하기 시작한 민권운동 정서가 겹치면서 세속정치의 주권이 왕실에서 신하 및 국민들에게로 넘어가게 되었다. 그래도 제국 체제가 지속된 기간 동안에는 파시즘 정권인 김창암 정권도 근본적으로 황제의 칙서와 재가를 받고 모든 일을 집행했듯이 어느정도의 위세는 남아있었으며, 본격적으로 황실의 권위가 떨어진 시기는 내전을 거쳐 헌정 정부가 들어선 뒤 급작스럽게 즉위한 태시제때부터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건 태시제가 원래 황제가 될 운명이 아니여서 미국 유학을 다녀온 뒤, 진보적 성향을 가진 상태에서 양자로서 입적된 뒤, 황제로서 황실의 입헌화 및 진보적인 정책에 본인이 사상적으로 동의한 것이라 그런 것도 있었으나, 사실 근본적으로 태시제의 성향만 반영됐다고 보기는 힘든 면이 있다. | ||
당시 한국의 다급한 교섭을 수락한 대신 한국의 추후 재폭주 가능성을 없애고 목줄을 채울 생각이었던 | 당시 막 헌정이 복귀하고, 연합국에게 적의가 없음을 알리며 추축국까지 탈퇴한 한국의 다급한 교섭을 수락한 대신, 한국의 추후 재폭주 가능성을 없애고 목줄을 채울 생각이었던 미 정부는 황실을 이용하기로 했다. 이 때 황실에게는 파시즘에 애매하게 협조하거나 방관했던 황실을 포섭하여 간섭을 쉽게하기 위해서 폼나는 상징으로 남거나, 공평하게 호국회의 파시스트들과 함께 전범으로 재판받고 사형당한뒤 공화국이 되는 선택지를 제시되었으며, 미 정부는 여기서 한국 황실에 대한 통제권을 잡아 차후 한국에서의 통제를 원활하게 할 생각이었다. | ||
이 요구를 받은 태시제가 아무리 진보적인 미국 유학파였어도, 황족이라는 그의 정체성은 뚜렷했다. 따라서 1946년 급히 열린 황족회의에서 태시제와 황족들과의 논의 후 전자자가 선택되었고, PRG가 엄중히 검열하는 가운데 집필되었다고 할 수 있는 신 대한국 헌법에서, 황제는 한국의 국가원수가 아닌 한국인의 지도자, 즉 정신적인 지주이자 통합의 상징이며, 이 또한 주권을 가진 한국인들의 동의 하에 집행되는 제도라는 구절이 맨 첫 줄에 적혀 있다. 이걸 단적으로 보여주는 증거가 한국의 국호인데, 대한제국이 아니라 대한국인 이유부터가 황제가 형식성 한국인의 지도자이기 때문이지, 군림하며 통치하는 한국의 지도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 |||
다만 이래도 아예 민족의 정신적 지주조차 아니고 상징으로 취급받는 일본 황실보다는 처지가 나아서, 민주주의를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는 권한들이 꽤 건재하다. 대표적인 예시로, 내각부로 궁내청이 편입된 일본과 달리 한국의 궁내부는 내각으로 대표되는 의정부와 분리된 별도의 기구로서 존재한다. | 다만 이래도 아예 민족의 정신적 지주조차 아니고 상징으로 취급받는 일본 황실보다는 처지가 나아서, 민주주의를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는 권한들이 꽤 건재하다. 대표적인 예시로, 내각부로 궁내청이 편입된 일본과 달리 한국의 궁내부는 내각으로 대표되는 의정부와 분리된 별도의 기구로서 존재한다. |
2024년 4월 24일 (수) 04:25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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