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국/황실 (아침해의 원유관)

커피와 사탕 (토론 | 기여)님의 2024년 4월 24일 (수) 04:11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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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해의 원유관
아침해의 원유관은 임진왜란 축소로 인해 뒤바뀐 한국의 근현대사를 다룬 세계관입니다.
청화대에 이화문이 꽂혀있는 이 세계의 국가, 사회, 정치 및 문화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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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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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국 황실
국가 대한국
창립일 1392년 8월 13일
창립자 태조 고황제
당주 대한국 대황제(이순)

개요

海:ᄒᆡᆼ東도ᇰ 六·륙龍료ᇰ·이 ᄂᆞᄅᆞ·샤 :일:마다 天텬福·복·이시·니。
해동의 여섯 용이 날으사, 일마다 하늘의 복이시니.
- 《용비어천가(1447)》 제1장 중

대한국황실(皇室)은 한국의 황제와 황족을 이르며, 구 조선왕조 시절의 전주 이씨로부터 총 500년간 계승되어온다.

한국 내에서의 입지

역사적으로 한국 황실의 기원인 조선왕조는 국학으로 지정된 성리학에 대해서 한국 내에서 가장 정통한 학자이자 나라의 근본, 백성의 어버이로 여겨져 왔다. 그에 따라 전통적으로 군주의 권한과 그 군주의 일족인 황실의 권력도 막강한 편이었었고, 근대 이전 시대 중에서 권력의 약화가 절정에 달했던 세도정치 시기에도 왕권이 전면으로 침해당하거나, 역성혁명을 논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경우는 빈곤으로 인해 절망감이 극에 달한 민란에서 나오는 구호가 아닌 이상 드물었다.

또한 약 500년간 지속되어오다보니 자연스럽게 명나라, 순나라 및 송나라보다 긴 역사적 전통이 자리잡으면서 한민족이 세운 왕조들 중 가장 오래, 안정적으로 유지된 왕실 중 하나가 됐으며, 근세에 들어서는 일본 황실에 이어 아시아에서 두번째로 오래된 왕실로서의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거기다가 이 기간동안 수도가 함락당할 수준의 전쟁위기도 없었다보니 후계자 대역설도 상대적으로 적었다.

이렇게 조선 왕실이 가지고 있던 권위는 대한국 체제 및 대한 제국 시기의 초기까지도 그대로 이어졌다. 사족으로 양반을 개편하고 사농공상의 차별 철폐를 실시해 황실 아래 모두가 평등하다는 사상을 정착시켰으나, 대한제국 헌법에서도 명시하듯이 대한제국은 엄연히 황제가 통치하는 국가로서의 정체성이 명실상부했었다. 그러나 융희 시대부터는 황실 내에서 엄청난 카리스마를 자랑하던 흥선군과 고조가 승하한 뒤, 새로 황제로 즉위한 융희제가 권모술수에 능한 공신들을 고조만큼 능숙하게 컨트롤하지 못하게 됐고, 여기서 당시 한국에 유행하기 시작한 민권운동 정서가 겹치면서 세속정치의 주권이 왕실에서 신하 및 국민들에게로 넘어가게 되었다. 그래도 제국 체제가 지속된 기간 동안에는 파시즘 정권인 김창암 정권도 근본적으로 황제의 칙서와 재가를 받고 모든 일을 집행했듯이 어느정도의 위세는 남아있었으며, 본격적으로 황실의 권위가 떨어진 시기는 내전을 거쳐 헌정 정부가 들어선 뒤 급작스럽게 즉위한 태시제때부터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건 태시제가 원래 황제가 될 운명이 아니여서 미국 유학을 다녀온 뒤, 진보적 성향을 가진 상태에서 양자로서 입적된 뒤, 황제로서 황실의 입헌화 및 진보적인 정책에 본인이 사상적으로 동의한 것이라 그런 것도 있었으나, 사실 근본적으로 태시제의 성향만 반영됐다고 보기는 힘든 면이 있다.

당시 한국의 다급한 교섭을 수락한 대신 한국의 추후 재폭주 가능성을 없애고 목줄을 채울 생각이었던 미국은 파시즘에 애매하게 협조하거나 방관했던 황실을 포섭하여 간섭을 쉽게하기 위해서 폼나는 상징으로 남거나, 공평하게 호국회의 파시스트들과 함께 전범으로 재판받고 사형당한뒤 공화국이 되는 선택지를 제시했다. 아무리 태시제가 미국 유학파였어도 황족이라는 정체성은 뚜렷했기 때문에 그는 황족들과의 논의 후 전자를 택했고, PRG가 엄중히 검열하는 가운데 집필되었다고 할 수 있는 신 대한국 헌법에서, 황제는 한국의 국가원수가 아닌 한국인의 지도자, 즉 정신적인 지주이자 통합의 상징이며, 이 또한 주권을 가진 한국인들의 동의 하에 집행되는 제도라는 구절이 맨 첫 줄에 적혀 있다. 이걸 단적으로 보여주는 증거가 한국의 국호인데, 대한제국이 아니라 대한국인 이유부터가 황제가 형식성 한국인의 지도자이기 때문이지, 군림하며 통치하는 한국의 지도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이래도 아예 민족의 정신적 지주조차 아니고 상징으로 취급받는 일본 황실보다는 처지가 나아서, 민주주의를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는 권한들이 꽤 건재하다. 대표적인 예시로, 내각부로 궁내청이 편입된 일본과 달리 한국의 궁내부는 내각으로 대표되는 의정부와 분리된 별도의 기구로서 존재한다.

또한 헌법상으로는 국가원수도 아니고 단지 한국인의 대표자지만, 올림픽 같은 국제 행사를 개최할때는 총리가 아닌 황제가 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다른 나라들의 왕족이나 황족이 한국을 방문하거나, 황실 내외가 방문할때 다른 나라의 왕족 및 황족들이 맞이하는 것이 기본이기에 왕족으로의 대우는 당연하게 받고 있는 중이다.

호칭

황실은 황제와 황족으로 구성된다. 황족은 궁실(宮室)과 궁가(宮家)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중 궁실은 황제와 궁궐 안에 거주하는 황실 가족을, 궁가는 분가하여 별도의 공간에서 생활하는 이들을 뜻한다.

  • 황제(皇帝)
  • 황후(皇后)
  • 황태후(皇太后)
  • 태황태후(太皇太后)
  • 상황(上皇)
  • 상황후(上皇后)
  • 황사(皇嗣)

-황태자(皇太子) -황태손(皇太孫)

  • 황사비(皇嗣妃): 황사의 아내이다.

-황태자비(皇太子妃) -황태손비(皇太孫妃)

  • 친왕(親王)/공주(公主)
  • 친왕비(親王妃)
  • 옹주(翁主)
  • 군(君)/현주(縣主)
  • 군부인(郡夫人)

성씨

대한국의 황실은 전주 이씨(全州 李氏)를 국성으로 하고, 태조 고황제를 시조로서 삼는다. 상징 문장은 오얏꽃 문양을 그려낸 이화문이다.

생활

주거

교육

궁가

황제의 자손들 중 궁호를 받은 이가 분가하여 창설한 한국 황실의 궁가이다. 황태자가 아닌 황제의 아들은 결혼 등으로 분가할 시 궁과 궁에 맞는 궁호를 새로이 하사받고, 그 궁가의 당주가 되는 방식으로 궁가 제도가 이루어지며, 궁주의 아들 중 장남은 후일 장성하면 국지황실범례에 명시된 방식에 따라 궁호를 세습한다. 차남 이하의 아들은 새로 궁호를 받고 다시 분가한다.

여계는 궁주가 될 수 없다고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 현재까지 여성 궁주가 등장한 적은 없다. 다만 최근들어 제국 시절에 요절하거나 자식을 못 남기고 사망했던 친왕들의 경력이 스노우볼이 되면서, 비상용으로 순화궁가를 부활시킨 현 대에서도 황족의 인원수가 적을 경우 후계자 위기가 불 보듯 뻔히 예상되는지라 간간히 여성 궁가 창설에 대한 의견도 보이는 편. 하지만 보수적인 한국 황실의 특성상 잘 받아들여지지는 않고 있다. 기

2024년 기준, 현재 유지되고 있는 대한 황조의 궁가들은 다음과 같다.

사동궁가

공친왕가. 현 궁주는 풍양군 이인황이다.

흥인궁가

순화궁가

예친왕가. 현 궁주는 흥순군 이석연이다.

계동궁가

초대 대황제의 본가이자 경친왕가. 현 궁주는 함녕군 이정연이다.

태정궁가

영친왕가. 현 궁주는 해문군 이재영이다.

도정궁가

흥완궁가

아래부터는 현재 단절되어 사라졌거나, 세대가 넘어가 각하된 궁가들의 목록.

누동궁가

은전궁가

은언궁가

구황족

1947년에 황적이탈령으로 단절된 이들을 뜻한다. 이들이 속한 궁가를 폐궁가라고 부르며, 상당수는 현재 단절된 상태.

황실몸기

기타

만주한치시기 만주에는 대한 제국 정부가 합병한 구 대청제국 황실을 '애신각라 왕가'로 개명시키고, 한국 황실의 일원에 준하는 만주 왕공족이라는 신분을 창설해 대우했다. 이 외의 왕공족으로는 송나라 혁명 당시 홍콩을 통해 가까스로 피난하여 한국에 잔류한 송나라 조씨 왕가가 존재했다. 종전 후에도 이 지위는 남아 있었지만, 직후 1947년에 상술된 미국 PRG의 황적이탈 조치에 포함되어 그 신분이 폐지, 박탈되었다. 다만, 자국으로 돌아갈 수 없던 이들의 처지가 반영되어 한국 내에서 해당 왕가들의 조상들에게 올리는 제사에 대한 주도권을 계속 쥘 수 있었고, 현재는 이들의 생전 거주지였던 거주지들의 박물관장 및 소유주 자리를 암묵적으로 대를 거쳐 세습하고 있다. 사실 이들이 본토인 만주나 중국으로 돌아가봐야 친한반민족행위자나 한간 취급을 가능성이 더 크다보니, 한국에 머무르는것이 구 왕공족 가문들의 입장에서는 이득이다.

대한제국군이 대한 국방군으로 개편된 이후에는 황족 출신 군입대자가 한명도 나오지 않고 있으며, 비슷하게 입헌군주국가인 영국의 윈저 왕조와의 차이로 보면 굉장히 특이하다. 오히려 군대가 없는 일본의 자위대에 일본 황실 인원들이 들어가지 않는 것과 더 비슷하다고 여겨지는 중.

일본 황실, 러시아 차르국 황실과 달리 현 황실에 남계 후계자가 많고, 아직 자식이 없는 황족들은 대부분 젊은지라 그나마 세계 왕가들 중에서 후계자 문제는 적어도 향후 몇십년간은 걱정이 없을 예정이다. 다만, 만약 다음대에서 남계가 많이 나오지 않을 경우엔 어떡하냐는 목소리도 간간히 나오는 상황.

별다른 이유는 없지만 현재 차세대 황족들이 '가짜'라거나 '대역'이라는 떡밥이 종종 올라오기도 한다. 그들이 성인이 되고 나서 혹은 성장하는 중에 조금이라도 다른 느낌의 얼굴로 사진이 찍히면 이런 떡밥이 돈다. 물론 진지하게 나오는 말이라기보다는 그냥 이런 일에 들러붙기 마련인 음모론자들의 허황된 주장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애초에 현 한국 황실이 누군가를 대역으로 내세워서 몰래 입적시킬 수준으로 후손이 적은 게 아니기도 하고 말이다.

대금민국에서의 인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