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르마니아 내전

게르마니아 내전
Germanic Civil War
Germanische Bürgerkrieg
날짜
2030년 11월 30일 - 2032년 1월 12일
종전 102년(2032년) 4월 15일 (상수시 강화 회의)
장소
게르마니아 제국 영토와 유럽 대륙 전역
원인
게르마니아 합중국 선포에 대한 구 기득권층의 반발
대영제국의 패권 확장
교전국
합중국 제국 브리타니아
게르마니아 합중국
폴란드 공화국군
제국 복벽파
오스트리아 황군
스페인
브리타니아 제국
지휘관
라인하르트 2세
마테우시 비에비츠키
로베르트 폰 호엔촐레른
카를 폰 합스부르크
아돌포 7세
조지 5세
뉴트 제이콥슨
리처드 파머
병력
1,560,000명
240,000명
1,450,300명
134,700명
420,000명
3,837,000명
피해
845,000명 사상
110,000명 사상
778,000명 사상
41,200명 사상
53,000명 사상
150,000명 사상
민간인 사망자 4,637,000명
결과
대영제국의 승리
상수시 강화 회의 체결
영향
게르마니아의 대영 식민지화
대영제국 초우위 체제의 도래

개요

100년부터 102년까지 게르마니아 합중국과 유럽 전역에서 일어난 라인하르트 2세 지지파 및 공화파게르마니아 제국 복벽파간의 내전이다.

약 1년 2개월에 불과한 내전동안 브리타니아를 제외하고 가장 경제적, 문화적으로 융성해있던 게르마니아 제국은 잿더미로 변했으며, 민간인 450만여명을 포함해 총 600만명 이상이 희생되었다. 이 전쟁으로 인하여 대영제국에 대항하던 유일한 세력이었던 게르마니아는 대영제국의 식민지가 되었고, 사실상 대영제국에 맞설 수 있는 세력이 그 어떠한것도 없어짐에 따라 대영제국의 초우위 체제가 도래하게 되었다.

발단

전개

합중국군의 초기 우세

내전 개시 직후 (2030년 11월 30일)의 판도 내전 개시 2개월 후 (2031년 1월 12일)의 판도
● 게르마니아 합중국
● 게르마니아 제국 복벽파
● 무장 독립군
● 주민투표를 통해 독립한 지역

점점 장기화되는 내전

대영제국의 개입

복벽파와 합중국 정부의 항복

상수시 강화 회의 체결

빌레필트 군사 재판

여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