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타니아 제국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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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타니아 제국의 역사
History of Britan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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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제국
B.B. 1948~B.B. 1526
서로마 제국
B.B. 1526~B.B. 1445
신성 로마 제국
B.B. 959~B.B. 115
프랑스 제국
B.B. 117~15
오스트리아 제국
B.B. 117~14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B.B. 54~14
독일 제국
B.B. 50~16
대영제국
0~
동로마 제국
B.B. 1526~B.B. 468
불가리아 제1제국
B.B. 1240~B.B. 840
불가리아 제2제국
B.B. 736~B.B. 525
세르비아 제국
B.B. 575~B.B. 550
오스만 제국
B.B. 622~9
루스 차르국
B.B. 374~B.B. 200
러시아 제국
B.B. 200~B.B. 2
번외 제3의 로마

브리타니아 제국-대동아제국 상호방위조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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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타니아 제국
대영제국, 영국, 브리타니아
Empire of Britannia
Imperium Britanniae
황제 문장
황제기
정부 문장
GLORIA IMPERIO ET MAJESTATI IMPERATORI
제국과 황제 폐하께 영광이 있으라
국가 Imperial March
황실 찬가 God Save the King
국수 사자
국조 울새
지도
역사
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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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적 34,771,900km2 | 세계 1위
수도 임페리얼 캐피톨
최대 도시 뉴욕
식민지 호주, 뉴질랜드, 벨리즈, 수리남, 뉴기니, 남아프리카, 로디지아, 입스위치, 실론, 그린란드, 홍콩
제후국 해당 문단 참조
인문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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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609,062,166명
밀도 17.74명/km2
기대 수명 82세 (99년)
인구 구성 내지인 77.0%
외지인 23.0%
공용어 제국어 (영어, 라틴어)
공용 문자 라틴 문자
종교 국교 황제교 (브리타니아 불교)
분포 황제교 83.2%
기독교 7.8%
힌두교 1.1%
기타 종교 2.4%
무종교 6.6%
군대 황제 폐하의 제국군
군 지휘부 브리타니아 제국 기사단
정보부 브리타니아 제국 정보부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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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체제 전제군주제, 제국주의[1], 군국주의, 전체주의, 관료독재정, 군사독재정, 황권 파시즘
국성 화이트로이드 (Whitelloyd)
입법부 브리타니아 제국 참사원 (상원)
브리타니아 제국 귀족원 (하원)
브리타니아 제국 평민원 (기타)
국가 원수 브리타니아 제국 황제
조지 5세
군 지휘권자 브리타니아 제국 황제기사
헨리 게스코인세실
행정수반 브리타니아 제국 총리
뉴트 제이콥슨
재무장관 피트 더글러스
전쟁장관 제이슨 베일리해밀턴
국무장관 리처드 오언
내무장관 토머스 에시크로프트
여당 민주당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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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체제 자본주의적 시장경제
GDP
(PPP)
£50,247,628,695,000 | 세계 3위
1인당 £82,500
GDP
(명목)
£52,988,408,442,000 | 세계 1위
1인당 £87,000
신용 등급 무디스 Aaa
S&P AA+
Fitch AAA
통화 파운드 스털링 (BEP, £)
단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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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량형 SI 단위, 야드 파운드법 (혼용)
통행 방향 좌측통행
날짜 표시법 mm-dd-yyyy
법정 연호 브리타니아 제국 황력
ccTLD
.br
국가 코드
BR, BRE, 101

개요

Omnes homines mori i etiam post mortem suam anno regni sui LXII. Imperium autem aedificavi etiam post C vel M annos validum manebit.
인간은 모두 죽으며, 짐도 이제는 62년의 재위를 뒤로하고 죽는다. 그러나 내가 세운 제국만큼은 100년이 지나도, 1,000년이 지나도 건재할 것이다.

브리타니아 제국의 초대 황제인 프레더릭 3세의 유언
We are not interested in the possibilities of defeat; they do not exist.
[2]은 존재하지도 않는 패배 따위엔 관심도 없다.

브리타니아 제국의 제3대 황제인 에드워드 7세[3]

북아메리카, 남아메리카, 남아프리카, 동아시아, 오세아니아 대륙에 위치한 전제군주제 국가이다.

너무 길어서 읽기 불편한 사람들은 브리타니아 제국/요약판 문서를 참조할 것.

상세

브리타니아 식민 제국을 구성하는 국가중 최고 정점에 위치한 국가로, 보통 브리타니아 본국 혹은 브리타니아 본토라고 불리면 이 국가를 가리킨다. 명목상으로 브리타니아 식민제국에 속하는 국가와 브리타니아 제국 본토는 분리되어있지만, 실질적으로는 하나의 국가로 여겨지기에, 국가 자체가 식민제국의 "수도 국가"로서 작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브리타니아 제국의 수도는 임페리얼 캐피톨이고 최대 도시는 뉴욕이다.

공식적으로는 로마제국을 계승하고 있지만, 국가의 제도나 사회상, 황실 제도 등을 미루어볼때 역대 중화 황제국들을 계승했다는 평가도 있다. 어느 쪽이 되었던간에 인류 역사상 가장 융성한 국가였던 중화 황제국들과 로마제국을 동시에 계승했다는 점에서 브리타니아 제국의 위상을 감안할 수 있다.

영국의 국체는 10세기경부터 19세기 초까지 브리튼 제도에 존재했던 국가인 연합왕국을 모체로 한다. 연합왕국이 나폴레옹 전쟁트라팔가 해전에서 프랑스에 패전하고 런던이 프랑스 군에 의해 위협받자, 왕실과 주요 정치 인사들이 신대륙으로 천도하면서 현재의 영토를 가지게 되었다. 천도 초반의 영토도 넓었지만 이후 태평양 영토 확장 전쟁으로 텍사스(뉴 웨스트 레스터), 북멕시코, 칼리포르니아(솔즈버리 힐), 브리티시 컬럼비아 등의 영토를 얻고, 스페인과 러시아로부터 각각 카리브해 제도와 알래스카를 넘겨받으면서 영토가 전세계에서 가장 넓은 국가로 거듭났다. 현재의 영토가 확정된 것은 B.B. 9년 하와이를 합병하면서이다.

현재 브리타니아 제국은 GDP 규모 52조 파운드[4]로 세계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강성한 국가이다.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대륙 세력인 독일과 경쟁하였고 20세기 중반부터 현재까지 또다른 대륙 세력인 소련과 경쟁하고 있으나, 소련에 비해 배나 차이가 나는 국력 때문에[5] 세계 유일무이의 극초강대국으로 올라서면서 팍스 브리타니카라는 명칭의 패권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상징

국호

공식 국호는 브리타니아 제국 (Empire of Britannia)로, 국호가 길기 때문에 보통 브리타니아로 줄여서 부른다. 혹은 브리타니아의 한자식 표기인 영국[6] 또는 대영, 대영제국이라고도 부른다.

브리타니아 식민 제국에서 브리타니아 제국을 부를때는 보통 브리타니아 본토, 브리타니아 본국이라고 한다. 본국, 본토라고 하면 대부분은 브리타니아 제국을 일컫는다.

국가



God save our gracious king!
Long live our noble king!
God save the king!
Send him victorious,
Happy and glorious,
Long to reign over us;
God save the king!


2. Thy choicest gifts in store
On him be pleased to pour;
Long may he reign!
May he defend our laws,
And ever give us cause
To sing with heart and voice,
God save the king!

황실의 곡인 "God Save the King"과 제국 군대의 행진곡인 "Imperial March"가 공동 국가로 지정되어있다. God Save the King을 연주한 다음 Impreial March를 연주하는 것이 관례이다. Imperial March에는 지정된 가사가 없기 때문에 가사를 부르지 않고 보통 God Save the King도 가사를 부르지 않는다. 그러나 황실 행사 등 몇몇 행사에서는 God Save the King의 가사를 부르기도 한다.

Rule Britannia, Land of Hope and Glory, Jerusalem 등 국가로 지정되지 않은 곡들도 관례상 준 국가 취급을 받는다. 또한 I Want to Hold Your HandBorn in the British Empire 같은, 영국 대중음악을 상징하는 고전 명곡들이 거의 준 국가로 여겨져 여러 행사에서 불리곤 한다.

국기

유니언 잭
Union Jack | Union Flag
국가 영국
비율 1:2
채택 B.B. 120년

유니언 잭은 B.B. 120년 공식적인 국기로 채택된 이래, 현재까지 쓰이고 있다. 과거 브리타니아를 구성하였던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를 상징한다. 현재는 브리타니아 제국이 신대륙으로 천도한만큼, 국기 속의 국가들은 브리타니아 제국의 구성국이 아니지만 관례상으로 아직도 쓰고 있다.

이후 0년 칭제와 동시에 겉에 노란색 테두리가 추가되었고, 검붉은색 원과 국장이 국기에 추가되며 현재의 디자인이 되었다.

충성 맹세

Magnae Britanniae Imperatori subdito iuro me corpus et animam meam Imperatori devoveo, eique fidelitatem iuro.
나는 브리타니아 제국 황제의 신하로서 황제 폐하께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맹세한다.

12년 채택된 황제에 대한 충성 맹세로, 현재까지 공식 행사에서 국가 연주 직전에 황국신민의례의 한 부분으로 암송된다. 충성 맹세를 할 때에는 로마식 경례로 오른팔을 하늘을 향해 들어올린 채 경례하며, 이는 로마제국의 계승국으로서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충성 맹세는 라틴어로 되어있기 때문에 라틴어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라면 외우기 쉽지 않다. 이 때문에 브리타니아 제국 황제 즉위식, 브리타니아 제국 귀족원 또는 브리타니아 제국 평민원 개원식, 브리타니아 제국 황제기사 서임식 등 매우 엄숙한 행사에서만 통째로 낭독되며, 보통은 생략하거나 맨 첫줄만을 읽는다.

역사

틀:브리타니아 제국의 역사 (우)

천도 이전의 역사

신대륙에 인간이 언제 도달한 것인지는 정확히 알려져있지 않다. 그러나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도달하기 이전에 동아시아계에 속하는 시베리아 원주민들이 배링 육교를 건너 정착하였다. 서양 세력에게 처음으로 아메리카 대륙이 알려진 것은 10세기경 바이킹이 뉴펀들랜드 섬을 발견하고 정착촌을 건설하면서이다. 이 외에도 서아시아의 페니키아 상인들과 이베리아 반도의 바스크 상인들도 신대륙의 존재를 알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아메리카 대륙의 존재가 알려지게 된 것은 B.B. 429년 크리스토퍼 콜롬버스의 카리브해 연안 발견 이후이다. 콜롬버스는 자신이 도달한 땅을 인도라고 생각하였지만, 얼마 이후 아메리고 베스푸치라는 지리학자가 콜롬버스가 도달한 대륙이 인도가 아닌 신대륙이라는 사실을 발견하였고 신대륙에 자신의 이름을 따 아메리카 대륙이라고 명명하였다.

이후 프랑스, 영국, 스페인, 포르투갈 등 다양한 국가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손을 뻗었다. 그중에서 영국은 아메리카 대륙의 북부 지역을 차지하였다. B.B. 314년 13개 식민지가 건국되었고, 약 200년간 존속하였다. 하지만 식민지에 대한 가혹한 통치는 B.B. 145년 조지 워싱턴의 반란으로 이어졌고 간신히 반란을 진압한 이후 영국 정부는 식민지 통치 노선을 수정하였다.

나폴레옹 전쟁 패전과 신대륙 천도

B.B. 116년 10월 영국 함대가 트라팔가 해전에서 기록적인 패배를 기록한 이후, 프랑스군은 영국에 대한 전면 공격으로 수도 런던까지 위협하였다. 이에 영국의 국왕인 조지 3세와 그의 신하들은 영국을 떠나 신대륙으로의 천도를 결정하였고 B.B. 116년 12월 신대륙 식민지의 최대 도시였던 필라델피아에 망명 정부를 건국하게 되었다. 영국 왕실과 정부 인원 이외에도 약 150만명의 영국인들이 프랑스의 침공을 피해 신대륙으로 이주하면서 단숨에 13개 식민지는 영국의 중심지가 되었다.

본래 영국 왕실은 아메리카 식민지를 천시하였으므로 프랑스와 2차 전쟁을 일으켜 승리한다음 브리튼 제도로 복귀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으나 대서양의 드넓은 바다는 이를 어렵게하였다. 또한 프랑스가 러시아와 협상을 맺고 전쟁에서 승리해 유럽의 패권자가 되면서 영국 내에서도 최소 50년간은 브리튼 제도 복귀가 어렵다는 주장이 나와 결국 영국 정부는 제2차 프랑스-영국 전쟁 계획을 사실상 포기하였다.

천도 직후에는 영국으로부터 이주온 난민들과 식민지 원주민들이 갈등을 빚으며 극심한 정치적 혼란이 지속되었다. 또한 아메리카 식민지 독립파들도 활동하였다. 그러나 보수당자유당 양당 체제가 신대륙 내에서도 자리잡고 급격한 공업화와 경제 발전이 이루어지면서 이러한 사회 혼란은 잦아들었다. 19세기 초부터 말까지 영국의 공업화가 동부 중심 지역으로 일어나 경제가 비약적으로 성장하고 프랑스의 경제까지 따라잡는데 성공하였다.

한편으로는 이 시기 영국 내에서 반불감정이 매우 거세졌기 때문에 프랑스어 사용 금지 등 프랑스인에 대한 차별 정책이 시행되기도 하였다. 이에 대해 71년 정부가 공식적으로 사과하기도 하였다.

태평양 영토 확장 전쟁

B.B. 67년부터 B.B. 60년까지 지속된 멕시코 및 기타 원주민과의 전쟁을 뜻한다. 이 전쟁에서 승리함에 따라 영국의 국경은 기존의 루이지애나 지역에서 태평양 연안까지 넓혀졌고 남쪽으로도 멕시코의 북부 지역을 차지하였다.

이 외에도 영국은 영토를 지속적으로 확장시켰다. B.B. 51년에는 카리브해 연안 국가들을 스페인으로부터 사들였다. 얼마 이후에는 알래스카를 러시아로부터 구입하고, 하와이 왕국을 멸망시킨후 총독령을 설립한다. B.B. 9년 영국 정부가 총독령을 폐지하고 연합왕국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면서 현재의 영토가 이루어졌다.

공업화를 통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중 하나가 된 영국은 영토 확장을 통하여 더더욱 광활하고 비옥한 토지를 얻으면서 그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가 되었다. 오히려 천도 이전에 비해 국제적인 영향력과 경제력이 강해졌다는 말이 나왔다. 또 수많은 문화인과 지식인이 활동하면서 국가 역량도 크게 상승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는 식민정책을 추구하면서 우리가 아는 브리타니아 제국 체제가 완성되었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그치지 않고 카리브해에 위치한 모든 섬과 아프리카, 아시아, 오세아니아 등의 여러 지역들을 식민화하였다. 인도차이나 반도, 홍콩, 대만섬, 호주, 뉴질랜드, 나이지리아, 콩고, 남아프리카 등이 이 당시 영국의 대표적인 식민지였다. 각국의 식민지에서 황인과 흑인 이민자들이 쏟아져오면서 일부 도시에서는 19세기 말에 일찍이 모자이크 사회가 이뤄지기도 했다.

하지만 영국 정부의 인종차별적인 정책은 이민자들에게서 큰 반감을 샀다. 게다가 공업화로 인한 빈부격차 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영국 내에서 사회주의가 확산되었는데 이 시기 대표적인 사회주의 단체로는 시카고에서 결성된 전영국노동조합이 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영국 내에서는 노동자들의 파업이 끊이지 않았고 사회주의의 세가 가장 강력했던 매싱엄, 시카고, 토론토 등의 도시에서는 폭동이 빈발했다.

독일과의 경쟁과 세계전쟁

중국 전선에서 청나라군과 대치하는 제국군

19세기 중후반 프로이센은 비약적인 경제 성장을 이뤘다. 나폴레옹 제국이 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프랑스는 사치와 향락에 빠져들어 로마와 같은 길을 걷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프로이센의 빠른 공업화는 독일 경제가 프랑스 경제를 추월하고, 급기야는 B.B. 50년대 북독일연방이라는 이름으로 독일 전역을 통일하게하였다. 프랑스는 이런 프로이센의 성장에 위협을 느껴 전쟁을 선포했으나 도리어 프로이센에 패배하였고, 이후로는 독일 제국이라는 이름으로 칭제한 독일이 유럽의 신패권 국가로 발돋움하게 된다.

영국과 독일의 갈등이 고조되던 B.B. 7년 영국의 함선인 "프레저호"가 북해에서 의문의 사고로 침몰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영국 정부는 이를 프랑스와 독일의 협공으로 간주하고 러시아와 손을 잡아 독일과 프랑스에 전쟁을 선포했다. 이를 세계전쟁이라고 부른다.[7]

세계전쟁에서 영국은 아프리카 전역을 점령하고 피레네 산맥까지 프랑스-독일 동맹군을 몰아내면서 선전하였으나 소모적인 참호전에 돌입하면서 반전 여론이 높아졌다. 또한 러시아에서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나자 영국은 수세에 몰렸고 다시 북아프리카를 프랑스-독일 연합군에 빼앗겼다. 그러나 독일과 프랑스 역시 나라 사정이 안좋은 것은 마찬가지였고, 반전 시위가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에 이해 관계가 서로 맞아떨어진 영국과 프랑스-독일 연합은 B.B. 1년 3월 5일을 기해 전쟁을 종전시키기로 협의하였다.

영국은 이 전쟁에서 비록 절반뿐인 성공을 거두었지만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 대부분을 차지하였으며, 또 전선에서 멀리 떨어져있던 덕에 군수 물품이 불티나게 팔리며 전후 호황을 누리게 되었다. 반대로 영국을 막아내었다고 자부했던 프랑스와 독일은 전쟁으로 소모된 막대한 자원과 인구로 인해 사회 혼란이 가속화되더니 10년대 전부 혁명을 겪으며 공산화되는 과정을 밟았다.

공산권과의 냉전 체제

10년대는 혼란의 시기였다. 11년, 군수 경제로 지탱되던 영국은 버블경제가 붕괴되면서 경제 공황을 맞았다. 비슷한 시기 독일과 프랑스, 스페인 등 유럽의 주요 국가들도 경제 공황에 직면하였다. 그나마 영국은 식민지 블록 경제로 자국 경제를 지탱했고, 존 드레이퍼슨 총리의 적극적인 시장 개입 정책으로 점차 위기를 해결해나갔지만, 유럽 국가들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체 연이어 소련의 정치 공작과 사회 빈곤층의 불만 등이 원인이 된 공산주의 혁명을 겪고 공산화되었다.

21년에는 폭주하는 일본이 영국의 하와이를 공격하자 공산권 국가들과 협력하여 일본과 3년간의 전쟁을 치루기도 하였다. 하지만 공산권과의 협력은 그 뿐이었고 이후 공산권 국가들과 적대 관계로 돌아섰다. 그렇지만 영국과 소련의 동시 핵개발로 인해 전면전까지 이르지 못했고, 국공내전과 한국전쟁, 인도차이나 독립전쟁, 인도 혁명 등 대리전의 양상이 주로 나타났다. 국공내전과 한국전쟁은 영국의 지원을 받은 국민당군과 대한민국이 승리했지만 반대로 인도차이나 전독립전쟁과 인도 혁명은 소련과 유럽이 지원하는 혁명군이 승리하였다. 이러한 "평화적 적대 관계"는 이념 갈등의 양상으로 나타났다. 크게 봐서 제국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의 치열한 이익 갈등 싸움이었다.

공산권과 전면전을 치루지 않는 체제 경쟁은 또다른 한편으로는 지리적인 전쟁이기도 하였다. 신대륙과 구대륙의 싸움, 즉 오세아니아-아메리카-동아시아와 유라시아 대륙의 싸움이었던 것이다. 40년대에는 영국의 식민지였던 아프리카 국가들이 독립하면서 공산주의와 제국주의 진영간 대리전의 양상이 다시 일어나기도 하였다.

조용한 혁명

인도차이나 독립 전쟁에 반대하는 시위대의 모습

20년대 영국의 경제 성장은 정점에 다랐고 국민의 삶의 질 수준도 최고조에 올랐다. 하지만 청년들은 꽉 막힌 체제의 개혁을 요구했다. 국왕과 양당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정치판, 인종차별 정책[8] 등은 청년들의 주요 공격 대상이었다. 42년 보수당존 하트먼 총리가 실각하고 민주당빅터 피어슨이 총리 자리에 올랐다. 린든 B. 존슨은 "위대한 사회" 정책을 통해 인종차별 철폐 정책과 서민층 지원 정책을 펼쳤다. 하지만 빅터 피어슨 총리 역시 46년 인도차이나 독립 전쟁의 반전 여론으로 사퇴했고 이후 같은 정당의 리처드 윌리엄스가 총리직에 올랐다. 피에르 트루도 내각은 적극적인 사회 개혁 정책과 프랑스인, 동양인, 아프리카인 차별 정책 완전 철폐, 사회 보장 제도 실현, 인도차이나 식민지 즉각 제후국 전환 등으로 젊은 층에서 큰 호응을 얻었다.

윌리엄스 총리는 50년대 말까지 장기집권하였으며 57년 총선 패배로 실각한 이후 제국당헤이 헤빌랜드가 총리직에 올랐다. 기업인 출신의 헤빌랜드는 윌리엄스 내각의 진보적인 정책을 철폐할 것이라고 예상되었지만 오히려 사회 개혁 기조를 유지하였다. 이러한 제국당과 민주당 양당의 사회 개혁은 특별한 시위나 폭동 없이, 제국 내각이 스스로 이룬 "위로부터의 개혁"이었기 때문에 "조용한 혁명"(The Silent Revolution)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조용한 혁명을 통해 종교, 백인, 왕정 중심으로 돌아가던 보수적인 영국 사회는 차츰 세속적이고 진보적으로 바뀌었다. 60년대 이후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은 거의 사라졌고, 사회 고위층에도 유색인종이 오르는 일이 잦아졌다. 그 외에도 B.B. 116년 이후 시행되었던 프랑스어 사용금지법이 철폐되고 지방 자치 의회도 설립되는 등 영국의 사회는 크게 변하였다.

50-60년대의 다극화와 데탕트 체제

46년 니키타 흐루쇼프 서기장의 축출과 연이은 소련의 공격적 대외 정책에 반발한 유럽의 몇몇 국가는 손을 잡고 소련이 사회주의 노선을 배반하였다고 비난하면서 독자 노선을 걷기 시작했다.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베네룩스 3국 등이 그러한 국가들이었다. 소련의 영향을 받고 있던 동유럽의 몇몇 국가들은 친소련의 노선을 견지했다.

영국은 이러한 공산주의 국가들의 분열을 이용해 제빠르게 소련을 비난하고 유럽의 공산주의 국가들과 손을 잡았다. 유럽 공산주의 국가와 손을 잡는게 말이 되냐는 반공주의자들의 반발이 있었으나, 실용주의적 외교를 지지했던 당시 내각의 방침 덕분에 유럽과 영국은 손을 잡고 소련을 포위할 수 있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유럽은 여러 국가가 뭉친 것에 가까웠기 때문에 소련과 영국에 비해 체급이 낮을 수 밖에 없었으며, 결과적으로는 어떤 국가가 연합 내에서 우세를 점하냐에 따라 영국과의 관계는 변하였다. 또한 영국을 견제해야한다는 의견이 유럽 내에서도 나왔기에 때로는 사안별로 소련과 연합하기도 하였다.

데탕트 체제 속에서 영국은 구대륙 전체와의 대결을 피하면서 냉전에서의 주도권을 잡게 되었다. 또한 이 시기 유럽 공산주의자들과 영국 제국주의자들의 연합은 제2차 세계전쟁에 대한 위협을 완화시키는데에도 크게 일조하였다. 이러한 불완전한 평화 구도가 60년대 영국의 전성기를 꽃피우게 했다는 설이 있다. 다소 음울하거나 세기말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40년대의 문화에 비하여 60년대의 대중문화는 훨씬 상업적이고 밝은 분위기를 띈다는 것이 그에 대한 증거라는 것이다.

유럽 공산권의 붕괴와 신냉전 체제

70년대 초중반 공산주의 국가들은 계획경제의 한계로 인해 경제가 휘청였고, 또 경직된 정부 체제에 대한 국민들의 반발이 거셌다. 특히나 소련의 정치 공작과 영국으로부터의 자본주의 문물 도입이 일찍이 되었던 유럽에서 그러한 정치적 혼란이 더더욱 극심하였다. 그 결과, 70년 독일에서의 민주화 혁명을 시작으로 71년 프랑스, 72년 이탈리아와 터키, 73년 스페인 등이 차례대로 붕괴되면서 유럽 공산권은 해체되었다.

해체 과정 속에서 소련의 유럽 개입은 세계 정세를 긴장시켰다. 처음에 소련은 유럽의 민주화를 인정하는듯하였으나, 74년 유럽-소련 전쟁을 통해 유럽 국가의 대부분을 점령하였다. 즉 데탕트 체제로 어느정도 해체되었던 냉전 분위기가 유럽 패권을 장악한 소련으로 인하여 다시 경직된 것이다.

신냉전 체제로 인하여 조용한 혁명 당시 잠시 풀어졌던 사회 분위기는 냉각되었다. 정교 분리 운동이 어느정도 수그러들었고 한동안 꾸준히 재기되었던 중국-인도인의 1등 시민화, 제2계급에 대한 제한적 투표권 부여, 제3계급 축소 혹은 폐지론 등이 대부분 사회주의, 공산주의 사상으로 몰려 사장되어버렸다. 결과적으로 소련의 부상은 황실에게나 민중에게나 있어서 사회주의에 대한 위협을 재부각시켰으므로 조용한 혁명 당시의 민주주의 유입, 해빙 분위기는 자연스레 이적 사상으로 몰려 후퇴할 수 밖에 없었다.

황제기사의 난

프레더릭 5세의 뒤를 이어 즉위한 조지 4세의 치세에는 사용되지 않는 절대 권력, 군정경 유착의 심화, 신냉전 체제 속에서 가라앉은 해방 무드 등으로 인해 기존 체제에 대한 불만이 거세졌다. 정치는 귀족들의 암투가 주를 차지하게 되었고 평민원의 권한도 프레더릭 5세의 시대에 비해 퇴보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민중들은 물론 귀족과 황실 내부에서도 브리타니아 제국 내 정치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조지 4세가 붕어한 이후 조지 5세가 18세의 나이로 즉위하였다. 조지 5세는 조지 4세 치하의 "앙시앵 레짐" 처단 작전을 공표하고, 자신의 황제기사 헨리 게스코인세실에게 사실상 내각부터 제국은행까지 거의 모든 정부 고위 공무원들을 숙청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였다. 그렇게 황제기사 헨리 게스코인세실의 주도 속에서 대숙청 작업이 이루어졌으며, 브리타니아 제국 정보부 산하 5개 정보 기관의 활동을 통해 정부 수뇌부 인사들이 대거 갈려나가는 일이 발생하였다. 또한 강력한 군사 정책을 통하여 제3세계 국가들에 대한 강력한 내정 간섭, 소련에 대한 도발 행보 등이 이루어져, 브리타니아 제국의 정책은 다시 한번 변하게 되었다. 이러한 정책의 결과, 브리타니아 제국의 거의 모든 정부 기관들이 브리타니아 제국 황제기사의 명을 하달받는 기구 정도로 격하되었으며 황제기사의 권력은 황제를 넘어서게 되었다. 이 사건들을 한데 묶어 친위쿠데타나 다름이 없는 일이라 하여 황제기사의 난이라고 부른다.

내각을 비롯한 모든 정부 기구의 힘은 조용한 혁명 이후 가장 크게 퇴보되었고, 전제 군주 정치적인 면모(정확하는 브리타니아 제국 황제기사로의 권력 집중)이 강화된 가운데 공포 정치가 이뤄졌다. 따라서 현재의 브리타니아가 맞이하고 있는 시기는 브리타니아 제국 역사상 가장 일인 독재적인 면모가 강화된 시점으로 여겨진다.

역사적 정체성 : 제3의 로마

로마 제국과 그 계승국들의 정체성 비교
동로마제국 신성 로마 제국 불가리아 제국 러시아 제국 오스만 제국 브리타니아 제국
신성 신앙적 정통성 O O O O X X
사도 전승 O O O O X
로마 제국 수도 지배 O X X O X
로마 시민의 지지 O X X
제국 제국위 계승 O X X X
혈연적 계승 O X X X X
브리타니아 제국은 로마제국의 법통을 계승한다. 브리타니아 제국 국체는 로마의 계승 국체로 정의하며, 브리타니아 제국 황제는 로마제국의 황제의 계승자로 정의한다.
브리타니아 제국 제국기본법 제2조

공식적으로 제3의 로마를 표방하고 있다. 국호와 관공 문서, 즉위식, 미사에서도 전부 라틴어가 쓰이며, 제국어라는 이름으로 지칭된 브리타니아 제국의 공용어는 라틴어와 영어를 통칭하는 말이다. 브리타니아 제국의 추존 황제 1대조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올라와있기도 하다. 이와 같이 브리타니아 제국은 자신들이 로마의 계승자임을 뚜렷하게 밝히고 있다.

다만 제3의 로마라고 보기에는 정통성과 정체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브리타니아 제국을 제외한 다른 국가에서 많이 제기된다. 우선 로마가 과거 지배했던 영토중 현재 브리타니아 제국 본토와 제후국이 다스리고 있는 곳이 단 한곳도 없다. 신앙적 정통성에 있어서 브리타니아 제국은 황제교를 믿기 때문에 이 역시 성립하지 않는다. 혈연적 계승 역시 없고 제국위 계승도 없었기 때문에 제3의 로마라고 부를만한 점은 세계를 쥐고 있는 패권을 제외하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이 때문에 브리타니아 제국과 그 제후국을 제외한 다른 국가에서는 브리타니아 제국을 제3의 로마로 인정하지 않는다.

중국의 실질적 계승국

중화 황제국과 동아시아 황제국들의 정체성 비교
한·수·당·송·명 청나라 대한제국 일본제국 브리타니아 제국
종교 사상관 공유 O X O
중화 천자 칭제 O O X X O
중화 본토 지배 O O X O
한족의 지지 O X X X O
역대제왕묘 배향 O O X X O

오히려 역사학자들과 사회학자, 종교학자 등 여러 분야의 학자들에게 있어서 브리타니아 제국은 로마보다 한나라, 당나라, 송나라, 명나라, 청나라 등 중화 황제국으로서의 면모가 더 많다고 여겨진다.

브리타니아 제국의 국교인 황제교프레더릭 3세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이기도 하지만, 중국 혹은 중국 인근의 국가에서 유례한 종교인 유교(특히 성리학), 불교 그리고 도교의 특성들을 융합하여 만든 종교이며, 황제가 기독교에서 예수의 역할을 대신한다는 점 외에는 대부분의 면모가 동양 종교와 닮아있다. 브리타니아 내에서 도덕의 기본이 되는 것도 유교에서 유례한 것이 많다. 프레더릭 3세 뿐만 아니라 에드워드 7세도 동양의 삼강오륜을 본따 황제교에서의 윤리 사상관을 만들었다.

황실적으로, 다른 유럽 국가에서는 보기 힘든 "황태자" "황태손" 작위가 존재하는데 이 역시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또한 황제가 되기 위해서 끊임 없이 공부하고 수양하며, 경연을 통해 학자들과 토론하여 지식을 쌓고, 주기적으로 신하들과 만나 국정을 논의하는 것도 유교 정치 철학의 영향을 받은 부분이다. 또한 추존 황제가 있는 제도도 중국에서 수입한 것이다.

물론 성급한 단정은 안되겠지만 이러한 여러가지 면모를 보았을때 브리타니아, 특히 브리타니아 제국의 황실은 로마 제국을 계승한다기보다는 청나라와 송나라, 당나라, 명나라, 그리고 한나라를 계승하고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지리

영국의 영토는 북아메리카 대륙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총 넓이만 34,771,900km2에 달하며, 이는 세계 1위에 해당된다. 동서 가로로 길쭉한 모양인 소련과 달리 영국 본토는 동서남북으로 거의 정사각형에 가까운 모양이다. 이 때문에 영국의 자연 환경은 매우 다채롭다. 한대 기후의 특징을 띄는 알래스카와 캐나다 북부부터 건조 사막 기후인 멕시코, 온대기후인 중부 지역 그리고 열대기후인 카리브해 연안 등 다채로운 자연 환경은 관광 수익에 크게 공헌 하고 있다. 식민지까지 포함하면 더욱 다양한 자연 환경을 만날 수 있다.

제국 내에서 가장 큰 도시는 뉴욕으로 광역권 인구는 약 1,000만명에 이른다. 또한 뉴욕부터 볼티모어까지 이어지는, 아메리카 동부권의 도시들을 모두 합치면 그 인구가 4,000만명에 육박하여, 전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권을 형성하고 있다. 현재 제국의 수도인 임페리얼 캐피톨도 이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영국은 명목상으로의 수도로 런던을 내세우고 있으나 실질적으로 수도는 모든 제국 정부 기관들이 위치한 임페리얼 캐피톨이다. 본래 이름은 "필라델피아"였지만 천도 이후 현재의 이름으로 바꾸었다. 직역하면 "제국의 수도"라는 뜻이므로 제국 측에서도 사실상 런던 대신 필라델피아를 수도로 치고 있는 셈이다.

그 외의 주요 도시권으로는 아메리카시카고권, 애틀랜타권, 솔즈버리 힐포트 앤젤리스~세인트 프랜시스~세인트 제이콥스권, 뉴 웨스트 레스터댈러스-포트워스권, 캐나다몬트리올권과 토론토권, 벤쿠버권 등이 존재한다.

식민지 내에서는 호주시드니, 퍼스, 맬번, 브리즈번권, 남아프리카요하네스버그권과 케이프타운권, 중화제국홍콩, 난상권, 인도제국델리권, 봄베이권, 촐라캘커타권, 베트남사이공권, 시암방콕권, 벵골다카권, 일본도쿄권, 대한국서울권 등이 가장 크다.

도시권이 아닌 단일 도시로서 그 인구 순위를 따지자면 1위는 뉴욕(860만명), 2위는 홍콩(750만명), 3위는 요하네스버그(560만명) 그리고 4위는 포트 앤젤리스(401만명)이다. 그 뒤로 애틀랜타, 시카고, 토론토, 솔즈버리 등이 잇는다. 제후식민지까지 포함시킬시 1위는 도쿄(1,520만명)이다.

해외 식민지

영국은 세계의 거의 반을 차지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많은 식민지들을 차지하고 있다. 40년대에는 사회주의와 민족주의에서 영향을 받은 식민지 독립운동이 일어남에 따라 위기를 맞았지만 조용한 혁명 당시 많은 식민지들이 자치권을 보장하는 제후국으로 전환되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식민지의 제후국 전환은 대부분 주민투표에 의거한 것이었기에 주민투표에서 독립파가 우세를 점하지 못한 일부 국가는 자치권을 얻는 선에서 그치며 독립하지 못하고 있다. 그린란드, 벨리즈, 호주, 뉴질랜드는 독립 투표에서 독립 찬성 의견에 비해 반대 의견이 우세했기 때문에 영국의 식민지로 현재까지 잔존중인 대표적인 국가들이다.

현재는 영국 정부 측에서 공식적으로 "식민지"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않으며 대신 "외부영토"라고 부른다.

식민지 목록

국명 면적 인구수
내지 20,830,737km2 469,048,701명
호주 7,741,220km2 25,788,217명
뉴질랜드 268,021km2 4,860,642명
벨리즈 22,966km2 398,000명
수리남 163,821km2 591,798명
뉴기니 462,840km2 9,119,005명
남아프리카 1,251,392km2 50,041,996명
나미비아 825,615km2 2,587,344명
입스위치 581,730km2 2,397,240명
로디지아 390,757km2 15,092,171명
실론 65,610km2 21,509,270명
홍콩 1,105km2 7,571,777명
총합 34,771,900km2 609,062,166명

제후국

브리타니아 제국
제후 식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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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중화제국, 인도제국 등 역시 브리타니아 제국의 식민지이나 국왕이 직접 통치하는 외부영토와 달리 해당 지역의 국왕이 지배하기 때문에 제후국 혹은 제후식민지, 제후외부영토 등의 이름으로 불린다. 이들의 인구를 모두 총합하면 그 수는 44억명에 이른다. 본토와 외부영토, 제후외부영토의 인구를 합치면 총 50억명 정도이다.

독자 외교권과 상당한 수준의 자치권을 가지고 있기에 명목상으로는 독립국 같아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브리타니아 제국이 식민지 내에서의 반란을 막고 지나치게 비대한 중앙 정부를 두지 않게 하기위하여 겉모습만 독립국으로 꾸민 것이다. 제후국들중 대부분이 브리타니아 제국의 외교적 결정을 따라가며, 정치적으로도 브리타니아 제국 본토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제후국을 이끄는 행정 수반인 총독은 브리타니아 본국의 황제가 임명하며 총독이 제후국의 총리를 임명한다. 게다가 중화제국, 일본, 인도제국 등은 "제후국"임에도 불구하고 브리타니아 제국 황제가 왕위직을 겸직한다. 즉 제후국 역시 식민지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외교적으로 보았을때 제후국과 브리타니아 제국 본토는 다른 나라로 여겨진다. 정치적, 군사적, 외교적, 경제적으로 브리타니아 제국에 종속된 상태이긴하나, 독자적인 입법권과 자치권을 가지고 있고, 의회를 선출하지는 못하지만 자국 식민지 주민들의 의견을 대변하는 평민원을 구성할 권리를 가진다. 따라서 브리타니아 제국과 제후국의 관계는 브리타니아 식민 제국을 구성하는 연방제의 관계에 가깝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제후국은 통치 방식에 따라 브리타니아 황제가 제후를 겸하는 일반적인 제후국과, 해당 지역의 유력 가문이 왕위직을 차지하는 독립 제후국, 총독과 총리가 내치를 다스리는 일반 제후국과는 달리 황제가 직접 내정에 개입하는 황제 직할령, 그리고 제후 대신 보호자가 존재하는 황제 보호령 등 4가지로 분류된다.

제1급 제후국 (제국급)

중화제국

현재 중화제국인도제국이 유이한 제1급 제후국이다. 이 두 국가는 "제국"으로 국가 원수가 황제이며, 외교적으로 브리타니아 제국 본토 바로 아래 수준의 발언권을 가지고 있다.

중화제국과 인도제국은 전세계 국가중 단 유이하게 인구가 10억명을 넘어가는 국가로, 그 영향력은 단순히 국가 내에서만 끝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역사적으로도 인도제국과 중화제국이 가지는 정통성은 상당하다. 인도제국의 경우 세포이 항쟁을 통해 이름만 남아있던 무굴제국을 멸망시키고, 전 인도 대륙을 통일하여 세워진 국가이다. 중화제국은 B.B. 4년 영국의 국왕 프레더릭 3세청나라의 마지막 황제인 선통제로부터 옥새를 건내받아 청나라의 황제를 선위받았고, 이후 브리타니아 제국으로 칭제하며 세워진 국가이다.

제1급 제후국에 속하는 신민들은 사실상 브리타니아 제국 본토의 신민들과 같은 권한을 누린다고 봐도 된다. 인도제국과 중화제국의 많은 기업들이 브리타니아 제국 내에도 진출해있다. 브리타니아 제국과 중화제국, 인도제국 사이에 관세는 거의 없는 수준이고, 브리타니아 제국의 황제도 이 두 국가들을 배려해 1년중 1개월은 양국에서 거처한다.

특히나 중화제국은 중국 왕조 역사를 그대로 이어받은 국가인만큼 존재감이 상당하다. 브리타니아 제국 황제들은 중화식 이름을 가지며, 칸호가 존재하며(대청국 황제의 계승), 연호와 존호, 시호, 묘로를 가지고 있다. 또한 중국어를 의무적으로 공부해야하기도 하다. 브리타니아 제국 황실도 청나라, 명나라 황실의 전통을 상당수 수용하기도 하였다.

제2급 제후국 (왕국급)

일본국

국가의 규모가 크나 제국의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국가들은 왕국으로 분류된다. 브리타니아 제국의 황제가 아닌 사람들이 해당 왕국의 왕위 자리를 차지하기도 하는데, 가령 전주 이씨 왕공족이 왕위를 차지하고 있는 대한국이나 짜끄리 왕공족이 왕위를 이어받는 시암 등이 있다.

이 국가들은 브리타니아 제국 본토보다는 한등급이 아래로, 중화제국이나 인도제국 시민에 비해 신분제에 있어서 밀리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2등 시민 취급을 받는다. 그러나 이런 구분은 현재에 들어서는 사실상 유명무실하며, 조금 더 높은 관세 부과와 자치권 등 몇몇 분야를 제외하면 제2급 제후국과 제1급 제후국 그리고 본토 주민간의 차별은 거의 없어졌다고 봐도 된다.

양국간 자유 이동이 가능하고 자유 이동시 무제한으로 체류가 가능한 제1급 제후국 시민들과 달리, 제2급 제후국 시민들은 최대 730년(2년)간 체류가 가능하며 그 이상으로 체류하고 싶을 경우 개별적인 심사를 받아 체류 연장을 해야한다. 브리타니아 제국 황국신민권과 제2급 제후국 제후왕국신민권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제2급 제후국 국적의 신민은 1,461년(4년)으로 기간이 2배 정도 연장된다.

제3급 제후국 (공국급)

왕국보다 급이 낮지만 방백국에 비해 군사 전략적 가치가 떨어지는, 최하등급의 식민지라고 할 수 있다. 공국급에 속하는 식민지들은 대부분 인구가 5,000만명 이하로 적은 편이며 주민들의 삶의 질도 그렇게 좋지 않다. 멕시코는 예외인데, 이 경우에는 브리타니아 제국의 바로 아래에 위치한 지역인만큼 자치권을 부여하지 않고 브리타니아 제국 정부 측에서 직접 관리하기 위함인 것으로 보인다.

상당한 수준의 자치권이 보장되는 제1급 및 제2급 제후국과 달리 제3급 제후국의 경우에는 직할 식민지에 가깝다. 정부에서 보내는 총독이 행정 수반으로서 전권을 가지며, 제3급 제후국의 주민들은 제1-2급 제후국 주민들에게는 존재하는 자치평민원 투표권이 없다. 즉 제3급 제후국 주민들은 자신들의 의견을 브리타니아 제국 본토에 대변하지 못하는 완전한 종속의 관계이다.

다른 권리에 있어서도 차별을 받는다. 가령 제2급 제후국 신민들은 대영 본토가 아닌 다른 등급의 제후국으로 이동할 시 무기한 체류가 가능하지만, 제3급 제후국 주민들은 제1급에는 180일, 제2급에는 730일, 제4급에는 60일간의 체류만이 허가된다. 연장은 가능하지만 이 경우에는 심사를 받아야한다.

제4급 제후국 (방백급)

제3급 제후국보다 외교적으로 급은 더 높지만, 주민들의 권리만 따져봤을때는 그야말로 최하중의 최하라고 할 수 있다. 방백국은 신성로마제국 시대에 세워진, 이민족이나 이교도 등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고자 제국이나 왕국의 변두리에 설치하였던 군사 및 행정단위를 뜻한다. 이름의 기원에서 알 수 있듯이 제4급 제후국은 외국, 특히 소련과 공산주의 세력을 막기 위한 군사적 요충지이다.

군사적인 요충지인만큼 황제 폐하의 제국군이 상당수 주둔하고 있으며, 브리타니아 제국 군부대가 이곳 저곳 배치되어있다. 이 지역에 배치된 브리타니아 제국 제국군 수만 해도 200만명은 거뜬히 넘어간다.

당연히 군사적인 목적이 다분한 지역인만큼, 지역 주민들의 인권 수준은 매우 좋지 못하다. 자치권이 없는 것은 물론이요 방백국 내 모든 정치를 브리타니아 제국군이 대신한다. 즉 합법적 군사 정권이 들어섰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주민들이 이적 세력과 담합하여 브리타니아 제국을 전복시키려는 시도를 하는 것을 막기 위해, 모든 주민들은 260일마다 한번씩 브리타니아 제국군에 의해 수사를 받아야하며, 거주 이전의 자유 역시 없어 한번 이사를 신청하면 매우 번거로운 절차가 요구된다.

심지어 자유롭게 다른 제후국이나 대영 본토를 방문할 권리도 없다. 보통 60일로 제한되는 비자를 받아야 입출국이 가능하며, 그 외에 외교적인 목적으로 오래 체류할 경우에는 최대 730일로 연장되는 브리타니아 제국 황제기사의 특별체류증을 받아야한다. 특별체류증은 재갱신이 불가능하며 체류가 만료될 시, 해당 인물은 즉각 자신의 본국으로 귀환하여야하며 60일 이후에 재신청이 가능하다.

행정구역

브리타니아 제국
본토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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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타니아 제국은 북아메리카 대륙에 위치한 내지와 식민지인 외지로 구분된다. 북아메리카 내지는 총 8개의 구성국으로 나누어져있고 외지는 총 12개의 식민지로 구성된다.

명칭 문제

제국 정부 측에서 20세기 초에 스페인어, 광둥어 등 다양한 언어로 되어있던 지명을 영국식으로 번안해서 실제 주민들에게서 통용되는 지명과 행정상의 지명이 다른 경우가 상당히 많다. 대표적으로 제국 내 최대 도시중 하나인 포트 앤젤리스는 스페인어 지명이었던 "로스 앤젤레스" 또는 "로스 앙헬레스"를 영국식 지명으로 번안한 것인데, 스페인계 영국인이 인종적으로 다수인 포트 엔젤리스 내에서는 "포트 앤젤리스" 말고 "로스 앤젤레스"라는 이름이 더 많이 통용된다. 이는 솔즈버리힐 내 주요 도시들이 전반적으로 안고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정치

브리타니아 제국은 봉건제 전제군주정 국가이며 총리의 권한은 황제를 보좌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서 국가 업무가 늘어난만큼 황제가 모든 일을 할 수가 없어서, 브리타니아 제국은 전제군주제 국가라기보다는 황제의 칙명에 따르는 황제기사, 총리, 내각과 그 산하 관료들의 군사-관료형 독재 국가와 비슷하게 돌아가고 있다. 그러나 황제에게 의회해산권, 군대통솔권, 총리해임권, 내각 장관 해임권 등이 존재하며 이러한 해임건이 실제 발동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황제 휘하의 직속 신하인 브리타니아 제국 황제기사브리타니아 제국 총리가 각각 군정과 민정을 이끌고 있고, 이들이 거의 이원집정부제에 가까운 수준의 권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상관인 브리타니아 제국 황제는 이들을 해임하고, 임명할 권한을 가지기 때문에 전제군주제 국가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일단 말로는 의회민주주의이지만 실제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고 독재 국가에 조금 더 가깝다. 우선 황제에게 지나치게 많은 권력에 몰려있어서 공화주의자나 사회주의자는 집권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실제로 집권한적도 없다. 아예 의회 진입조차 어려운게 실정이다. "민주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선거를 시행하지만, 사회주의 또는 공화주의와 같은 황제 또는 귀족 중심 체제에 반발하는 움직임이 중앙 정계에 진입할 수 없도록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가지는 대상을 귀족으로 제한하고 있다. 이 때문에 브리타니아 제국의 정치는 좋게 말해 매우 안정적이지만 나쁘게 말해 지나치게 경직되고, 귀족과 황실 중심으로 흘러간다.

정치 체제 : 삼중 독재 체제

BBC, 100년 12월 11일
선호 정치 체제 여론 조사
계급 군사독재정 문민독재정 민주정 없음/기타
전체 75.9% 8.4% 11.5% 4.2%
계급별
제1계급 47% 44% 7% 2%
제2계급 78% 8% 10% 4%
제3계급 53% 2% 36% 9%

군사독재정과 관료독재정이 혼재된 복잡한 형태를 보이고 있다. 전제군주정 국가이며, 황제의 권력 역시 상당한 것이 특징이다. 그러면서 브리타니아 제국 황제를 보좌하는 브리타니아 제국 황제기사는 브리타니아 제국군을 이끌며, 동시에 브리타니아 제국 정보부를 직속으로 두고 있어 정계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한, 군사독재정의 모습을 보이는데, 귀족들을 대변하는 브리타니아 제국 총리가 내각을 주도하는 문민독재적 면모도 마찬가지로 존재한다. 즉 전제군주독재정, 군사독재정, 관료독재정이 삼중으로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황제기사, 총리는 서로를 견제하며 군정과 민정의 파워밸런스를 맞춰왔고, 여기에 황제가 특정한 쪽에 힘을 실어주면 그쪽으로 권력이 쏠리는 양상을 보여왔다. 에드워드 7세 이래 암묵적으로 민정의 권력이 강하였으나, 조지 5세 이후로는 군부로 권력이 확실하게 쏠렸다.

다만 현재는 황제-황제기사-총리의 파워밸런스가 무너진 상태로, 황제기사가 브리타니아 제국 내에서 일인 독재를 추구하고 있다. 현 황제인 조지 5세조차 브리타니아 제국 황제기사 헨리 게스코인세실의 막강한 권력에 손을 대지 못할 정도이다. 무자비한 귀족 숙청, 권력 장악 등을 통해 군대, 정보부, 사법부, 입법부가 전부 게스코인세실경의 손아귀 아래에 있고 내각은 최대한 저항하였으나 결국 정보부와 군대를 동원한 협박과 정보전에서 완전히 패전하여, 주요 장관들이 전부 숙청당하고 게스코인세실의 장기말 정도로 전락하는 수모를 겪었다. 더군다나 정보부를 동원해 황제기사가 선거에도 개입하고, 브리타니아 제국의 근본적인 체제부터 들어 엎으려는 모습을 보이며 귀족들이 반발하고 있다.

이와 반대로 제2계급 시민들은 게스코인세실 경을 매우 지지하는 모습을 보인다. 황제기사의 난을 통해 평민원의 발언권이 다소 축소되긴 했지만 장기적으로 보았을때 평민들이 누리는 권리는 올라갔고, 무엇보다 기존 브리타니아 제국의 사회적 문제였던 과도한 귀족 중심 체제와 귀족 기업인의 정계 개입, 부패한 귀족들의 농간 등이 한순간에 청산되었기 때문이다. 이를 반영하듯이 여론조사에서 군사독재정을 지지하는 여론이 압도적이다.

문민독재정을 구성하는 귀족들의 정당중에서도 진보파인 민주당과 급진당은 현재 군사독재정을 지지하고 있고, 보수파만이 기존의 문민독재정을 지지하고 있다. 현 내각은 민주당에게 넘어가있으므로 내각도 군사독재정을 지지하고 있으며, 따라서 군사독재정을 막을 수단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애초에 이런 판을 깔아준 것이 현 황제인 조지 5세이다. 조지 5세의 지지 하에 강력한 일인독재정이 실시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황제기사의 난을 통해 수입된 일인 독재 체제가 쉽게 저물것 같지는 않다.

다만 이에 대해 비판적인 여론도 적지 않다. 군사 독재는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으며 장기적으로는 평민들의 보통선거를 통한 내각이 정치를 이끌어야한다는 일부 자유주의자들의 급진적인 주장이 존재한다. 물론 이 개혁안은 헨리 게스코인세실의 개혁을 지지하는 제2계급 시민들로부터도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권력 서열

브리타니아 제국의 권력 서열
1위 브리타니아 제국 황제 조지 5세
2위 브리타니아 제국 황제기사 헨리 게스코인세실
3위 브리타니아 제국 총리 뉴트 제이콥슨
4위 중화제국 총독 크리스토퍼 폰 합스버그
5위 인도제국 총독 조지 허버트 화이트로이드
6위 제국은행장 레너드 에스페런드

권력 서열에 있어서 불변의 1위인 브리타니아 제국 황제 밑에 귀족들의 투표로 선출되는 브리타니아 제국 총리와, 브리타니아 제국 황제를 보호하고 브리타니아 제국 황제군을 통솔하는 브리타니아 제국 황제기사가 권력의 정점에 서있다. 나라의 정세에 따라 영향력은 바뀌곤 하지만 전제군주제 국가 하에서 황제의 신임을 받는 브리타니아 제국 황제기사가 2순위로, 브리타니아 제국 총리가 3순위로 여겨진다.

정치적으로 미치는 영향력에 따라 권력의 구도도 변한다. 중화제국의 총독, 인도제국의 총독은 두 나라의 방대한 넓이와 국력 때문에 보통 권력 서열에서 5위 안에 들어간다. 내각 내에서는 브리타니아 제국 전쟁부, 브리타니아 제국 국무부, 브리타니아 제국 재무부, 브리타니아 제국 내무부브리타니아 제국 국무조정실의 권한이 가장 강력하다.

현재는 3위부터 10위까지 전부 다 브리타니아 제국 황제기사의 명을 따르는 구도이기 때문에, 사실상 의미가 없는 정보이다. 실질적으로 브리타니아 제국 황제기사의 권력이 브리타니아 제국 황제보다 더 높다.

브리타니아 제국 황제


브리타니아 제국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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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타니아 제국의 황제 조지 5세

Imperator of the Empire of Britannia

브리타니아 제국 황제 폐하는 브리타니아 제국과 그 제후국을 이끄는 최고 국가 원수이자, 브리타니아 제국의 국체(國體)이시다. 황제 폐하는 브리타니아 제국의 정부와 군대를 통솔하시며, 황제 폐하의 대리자와 폐하의 신하인 브리타니아 제국 황국 신민은 황제 폐하께 절대적으로 복종한다.
브리타니아 제국 제국기본법 제1조

브리타니아 제국의 황제는 브리타니아 제국의 최고 국가원수로, 6억 본토의 신민과 44억 제후국 신민들을 통솔하는 제국의 중심이다. 또한 브리타니아의 국체이며, 브리타니아 제국 그 자체로 헌법에서 규정한다. 즉 황제는 제국 그 자체이며 제국이 곧 황제이다. 따라서 브리타니아 내에서 황제는 전제군주적인 권력을 누리며, 제국 권력의 최정점으로서 전세계적인 영향력을 발휘한다. 현재의 황제는 조지 5세이다.

황제는 제국 신민의 무한한 존경을 받으며, 그 존경의 바탕에는 황제교라는 종교가 존재하여 신앙적인 정점에 서있기도 하다. 국민 통합의 주체이자, 전제군주제 체제의 상징 그 자체로서 브리타니아 제국을 이끌어나가는, 하나의 국가체라고 봐도 될만큼의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또한 브리타니아 제국 동인도 회사를 소유하고 있기도 하여, 재산의 규모가 전세계의 모든 부호를 통틀어 가장 클 것이라고 추정된다. 동인도 회사에서 나오는 수익으로 엄청난 비용을 쓰고도 남아서 그 돈을 정부나 민간에게 나눠줄 정도이다.

왠만한 일이 없다면 황제의 임기는 종신이지만 황제가 조기 퇴위하는 일도 있다. 물론 이것은 극히 일부의 사례에 불구하고 대부분의 경우 장장 1~50년에 달하는 기간동안 한명의 황제가 종신의 재위 임기를 수행한다. 다른 황제국과 마찬가지로 보통 장남인 황태자가 브리타니아 제국의 황제 자리를 계승한다.

브리타니아 제국 황제는 작센코부르고타 왕조의 분가인 화이트로이드(Whitelloyd) 가문의 세습직이다. 본래 색스코버그고타(Sachen-Coburg Gotha) 황가였으나 세계 전쟁 당시 독일과 전쟁을 치루면서 화이트로이드 궁의 이름을 따서 화이트로이드 황가로 분가하였다.

특이한점은 다른 서양권 왕실에 비해 브리타니아 제국의 황실은 유독 중국 황실의 영향을 받은 부분이 많이 보인다는 점이다. 예를 들자면 브리타니아 제국 내에서 독자적으로 황제의 행보를 다룬 저서가 편찬되고, 총리와의 독대가 아닌 내각 구성원 전체와 회의하며 황제로서 갖춰야할 덕목, 지식을 배우는 경연 시간을 가진다. 또한 황제가 생전에 퇴위할시 상황의 자리에 올라서는 것 역시 다른 나라의 왕실에서 보기 힘든 일이다. 이는 중국 황실에 큰 호감을 보이고 있던 프레더릭 3세가 도입한 제도들이다.

역대 황제

대수 제호 즉위년일 퇴위년일 재위기간
초대 프레더릭 3세 0년 1월 1일 8년 9월 10일 8년 8월 1주 2일
제2대 프레더릭 4세 8년 9월 11일 16년 10월 17일 8년 1월 6일
제3대 에드워드 7세 16년 10월 18일 56년 10월 18일 40년
제4대 프레더릭 5세 56년 10월 19일 79년 7월 30일 22년 9월 1주 4일
제5대 조지 4세 79년 7월 31일 98년 7월 10일 18년 11월 1주 3일
제6대 조지 5세 98년 7월 11일 2년 5월 3주

총리


브리타니아 제국 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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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1세
초대
로버트 월폴
조지 2세
초대
로버트 월폴
제2대
스펜서 컴프턴
제3대
헨리 펠럼
제4대
토머스 펠럼홀리스
제5대
윌리엄 캐번디시
제6대
토머스 펠럼홀리스
조지 3세
제6대
토머스 펠럼홀리스
제7대
존 스튜어트
제8대
조지 그렌빌
제9대
찰스 왓슨 웬트워스
제10대
대 윌리엄 피트
제11대
오거스트 피츠로이
제12대
프레더릭 노스
제13대
찰스 왓슨 웬트워스
제14대
윌리엄 페티
제15대
윌리엄 캐번디시벤딩크
제16대
윌리엄 피트
제17대
헨리 에딩턴
제18대
윌리엄 피트
제19대
윌리엄 그렌빌
프레더릭 1세
제19대
윌리엄 그렌빌
제20대
리처드 앳킨스
제21대
제임스 와일드
제22대
조지 프리먼
프레더릭 2세
제22대
그레이엄 스튜어트
제23대
존 트리켓
제24대
클레어 로
제25대
캐런 브레들리
제26대
밴 브래드쇼
제27대
케너스 길럼
제28대
롭 노먼
제29대
케네스 길럼
제30대
배리 가디너
제31대
이언 솔론
제32대
로버트 린지
제33대
리처드 존스
윌리엄 4세
제33대
맷 커버데일
제34대
제러미 로
제35대
에덤 로이드모이스
제36대
도미닉 그레이엄
윌리엄 5세
제36대
도미닉 그레이엄
프레더릭 3세
제36대
도미닉 그레이엄
제37대
폴 브리스토
제38대
앤디 밀러
제40대
매티 리치먼드
제41대
조지 위버
제42대
키어 모리슨
제43대
키스 워너컨
제44대
필 윌슨
제45대
이언 레이버리
제46대
닉 리처
프레더릭 4세
제46대
닉 리처
제47대
존 드레이퍼슨
에드워드 7세
제47대
존 드레이퍼슨
제48대
그레그 클라크
제49대
데미언 헨더슨
제50대
어윈 유진 롬멜
제51대
매튜 패니쿡
제52대
해리엇 허먼
제53대
존 하트먼
제54대
빅터 피어슨
제55대
리처드 윌리엄스
프레더릭 5세
제55대
리처드 버르너도트
제56대
헤이 헤빌랜드
제57대
에드 고든레녹스
제58대
닉 웨이클링
제59대
크리스 히튼해리스
제60대
테리 에넌
제61대
니콜러스 어린지나소
조지 4세
제61대
니콜러스 어린지나소
제62대
데릭 코번트리
제63대
에드 하워드
제64대
브라이언 허버트클린턴
제65대
피터 어린지나소
조지 5세
제65대
피터 어린지나소
제66대
뉴트 제이콥슨
황제 · 총리

Prime Minister of the Empire of Britannia

브리타니아 제국 황제를 보조하는 브리타니아 제국의 행정수반이자, 6억 대영 신민들을 대표하는 최고위 공무원이다. 황제가 임명하지 않는 직위중에서는 가장 큰 권력을 가지고 있다. 예외적으로 전시에는 전쟁장관이 큰 힘을 가지지만, 이때는 전쟁장관이 총리직을 겸직하는 것이 관례이기 때문에 사실상 총리는 모든 때에 있어서 비황제임명직 공무원중 가장 높은 자리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 봤을때에는 브리타니아 제국 황제브리타니아 제국 황제기사에 이은 권력 서열 3위이다. 브리타니아 제국 황제기사와 경쟁하며 파워밸런스를 맞추는 자리에 있는데, 최근에는 총리의 권한이 약화되고 황제기사 쪽의 권력이 높아져가는 추세이므로 총리의 위신은 상당히 추락했다.

다수당의 당수가 브리타니아 제국의 총리로 선출된다. 소수당 출신이라고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대게 가장 많은 의석수를 차지하는 정당의 당수가 총리가 되는 일이 많다. 그러나 양당 모두가 과반을 얻지 못할 경우 제3지대 정당이 어디에 투표하느냐에 대한 여부에 따라 총리가 제2당으로 넘어갈 수도 있다. 지난 100년간 브리타니아 제국 총리직은 제국당민주당이 주고받아왔다. 현재는 민주당이 다수당인만큼 총리는 민주당의 당수인 뉴트 제이콥슨이다.

브리타니아 제국 총리의 임기는 딱히 정해져있지 않으며 짧으면 1년에서 길면 15년까지 역대 총리들은 국회와 국민들의 신임을 받는 한에서 브리타니아 제국을 이끌어왔다. 브리타니아 제국 총리는 브리타니아 제국 뿐만 아니라 제후국의 총리들의 상관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브리타니아 제국 총리는 브리타니아 제국을 구성하는 제후국과 구성국들의 수장이라는 점에 있어서 그 권한이 남다르다.

현 총리는 99년에 취임한 뉴트 제이콥슨이다. 소속 정당은 민주당.

내각과 제정회의


브리타니아 제국 제정회의 구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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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장
제국 황제
조지 5세
제국황무직
황제기사 황부장관
헨리 게스코인세실 앤드루 오길비
중대국무공직
총리
뉴트 제이콥슨
재무장관 국무장관 전쟁장관 내무장관
피터 더글러스 제이슨 베일리해밀턴 리처드 오언 토머스 에시크로프트
내각 장관
국정조정장관 법무장관 귀족장관 사회장관
스펜서 위틀스버크 줄리언 리어본 베스 블레이크 조너선 엘모어
복지장관 기술장관 교육장관 보건장관
사이먼 워버튼 이언 리치 피터 오스틴 로버트 핵스모건
안보장관 치안장관 무역장관 상공장관
퍼거스 노플러 앨린 스미스 개러스 오브라이언 올리버 페리어존스
자원장관 문화장관 통신장관 건설장관
대니스 버니어모건 피터 호언촐런 리처드 프라이스 덩컨 메이엄
교통장관 노동장관 농무장관 환경장관
루스 맥페이든 어널드 허드슨 그레이엄 코긴스 코널 트레벌라이언
비내각 제정회의 참석자
참사원장 귀족원장 평민원장 사법원장
리처드 버스위슬 토머스 엘런존스 필 레퍼드 레이너드 블런
제국은행장 중화제국 총독 인도제국 총독 캔터베리 대주교
레너드 에스페런드 크리스토퍼 폰 합스버그 조지 허버트 화이트로이드 윌리엄 로저튼
브리타니아 제국 황제 · 브리타니아 제국 총리 · 브리타니아 제국 황제기사 · 브리타니아 제국 황부장관

총리가 지명하는 정부 부처의 장관들로 구성된다.

크게 봤을때 총리, 재무부장관, 국무부장관, 전쟁부장관, 내무부장관으로 구성되는 중대국무공직과 20개직의 일반 내각장관으로 내각이 구성된다. 내각의 구성원은 여기에 군과 황실을 대변하는 인사들까지 모인 제정회의에도 참석한다.

브리타니아 제국을 이끌어가는 수뇌부라고 할 수 있으며 각 장관이 지니는 권한은 브리타니아 제국이라는 나라의 위상을 감안하였을때 거의 한 국가의 수장과 다름 없다고 평가받는다. 브리타니아 제국 내각 구성원은 브리타니아 제국 뿐만 아니라 브리타니아 제국 산하의 제후국의 장관들을 그 산하에 두고 있기 때문에 그 권한이 다른 나라의 내각 구성원에 비해 매우 비대하다.

중대공무 정부 부처

브리타니아는 총 24개의 정부 부처로 나뉘어져있는데, 그중 4개의 정부 부처는 그 역할이 다른 정부 부처에 비해 월등히 중요하여 "중대공무 정부 부처"라고 불리고 있다. 이 부처의 장관들은 "중대국무공직"이라고 불리며 중대공무공직의 인원수에는 총리까지 포함되어 총 5명이 중대국무공직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이 중대공무 정부 부처 산하에 나머지 20개 일반 정부 부처가 나뉘어져있으며, 이 19개 정부 부처[9]는 각 부처의 업무와 관련된 중대공부 정부 부처의 지도 하에 공무를 수행하고, 정책을 수립하게 된다.

  • 브리타니아 제국 재무부 (Britannian Ministry of Finance) : 브리타니아의 모든 부처중 가장 그 직급이 높아, 사실상 브리타니아 제국 내각의 2인자라고 할 수 있는 부처이다. 의전 서열과 권력 서열 등에서 브리타니아 제국 재무부장관은 모든 장관을 통틀어 가장 높은 서열을 차지하고 있다. 재무부의 역할은 다른 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다. 브리타니아 제국의 경제정책과 재정 및 예산, 세금 등에 관련된 업무를 담당하는 국가행정조직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재무부는 제국은행의 회의에도 참석하여 통화 유통량을 협의한다.

  산하 부처 : 복지부, 상공부, 자원부, 건설부, 농무부

  • 브리타니아 제국 전쟁부 (Britannian Ministry of War) : 전쟁부는 이름과는 달리 전쟁에서 실제 지휘를 하지는 않는다. 브리타니아에서 전시든 평시든 주도권을 잡고 있는 것은 브리타니아 제국 황제기사이다. 황제기사 휘하의 기사단과 정보부가 전쟁에서 지휘를 맡는다. 전쟁부에서는 전쟁 수행이 아니라 보조의 역할을 맡으며, 지휘가 아닌 대부분의 국방 업무를 맡는다. 전쟁의 계획과 작전을 수립하고 선전포고를 내리는 것은 기사단과 황제기사의 역할이지만, 병사를 징집하고 훈련시키는 것은 전쟁부의 일이다. 전쟁부에서는 또한 휘하에 브리타니아 제국 기술부를 두어 전쟁에 필요한 기술을 개발하는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브리타니아가 군국주의적인 면모가 강한 나라인만큼, 전쟁부 장관의 스피커는 재무부 장관에 못지 않게 강력하다. 특히나 전시 상황에서 브리타니아 제국 전쟁장관은 총리의 역할을 겸하면서 전쟁시 내각을 통솔하는 역할을 맡기에, 그 권력이 더더욱 강력하다.

  산하 부처 : 기술부, 안보부, 치안부, 교통부, 통신부

  • 브리타니아 제국 국무부 (Britannian Ministry of State) : 다른 국가에서 외무부에 해당되는 역할을 브리타니아에서는 국무부가 맡고 있다. 국무부는 전쟁부와 브리타니아 제국 기사단이 수행하는 전쟁 선포의 역할을 제외한 나머지 외교 업무를 담당한다. 다른 국가와 통상수교하고 각종 조약을 맺는 것이 국무부의 역할이다. 또한 전쟁에 관련된 조약이라도 국무부의 손을 거쳐야하기 때문에, 국무부의 역할은 보통 재무부와 전쟁부에 이은 3위 수준의 파워로 간주된다. 헨리 게스코인세실 경의 황제기사 서임 이후, 국무부는 외교 업무에까지 손을 뻗는 브리타니아 제국 기사단의 월권 행위로 인해 기사단과 갈등을 빚었다. 그러나 이는 국무부의 주요 인사들이 전부 물갈이되며 해결되었다.

  산하 부처 : 무역부

  • 브리타니아 제국 내무부 (Britannian Ministry of Interior) : 일반적인 사회 문제들은 모두 내무부의 처리 사항이다. 재무부, 전쟁부, 국무부와 같이 중요한 일을 맡는 것은 아니지만, 브리타니아라는 하나의 봉건제 전제군주국이 정상적으로 굴러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모두 내무부 덕분이다. 내무부는 사회 문제를 처리하고, 정부 업무 지원, 신분제 조정, 행정사무 일반을 맡는다. 이 때문에 내무부는 중대공무조직 부처중 가장 서열이 낮지만 알게모르게 대영제국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 많아, 실질적인 브리타니아의 문제 해결사라고 불리기도 한다.

  산하 부처 : 법무부, 귀족부, 사회부, 교육부, 문화부, 보건부, 노동부, 환경부

참사원(상원)과 귀족원(하원)

브리타니아 제국 국회의사당의 모습
브리타니아 제국 참사·귀족원
원내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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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왕 폐하의 여당 국왕 폐하의 야당

민주당
376석 407석

제국당
320석 246석
기타 야당

급진당
14석 52석

녹색당
5석 9석

확장당
7석 8석

노동당
0석 5석
브리타니아 제국 황제교 주교 50석 1석
무소속 28석 3석
좌측은 참사원(상원) 의석 수, 우측은 귀족원(하원) 의석 수

House of Councillors
House of Lords

브리타니아 제국의 의회는 상원인 참사원과 하원인 귀족원으로 나뉘어져있다. 명목상으로 참사원은 상원이지만 현재는 사실상 명예직에 가까운 직책이다. 총리 선출, 법안 발의와 통과 등 중요한 입법 활동은 대부분 귀족원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영국은 사실상의 단원제 국가이다. 참사원은 황제의 자문기구에 가까운 형태를 띄며, 보통 전직 총리나 장관 혹은 귀족경 등의 최고위 귀족들로 이뤄진 명예직이다.

참사원에는 정원이 정해져있지 않고, 귀족원은 총 730석을 정원으로 하고 있다. 황제교 주교중 한명이 의장으로 선출되기에 사실상 731명이 정원이다. 730명의 귀족원 의원들은 전원 중선거구제의 지역구 의원으로 선출된다. 이 때문에 제국당과 자유당 양당을 제외한 제3의 정당이 치고 올라오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참사원과 귀족원 의원들은 무봉급으로 근무한다. 귀족들이 가지는 특혜와, 가지고 있는 재산의 양이 정말 어마어마하여 추가적인 세금을 의회에 써서는 안되고 그럴 필요도 없다는 여론이 크기 때문이다.

평민원

브리타니아 제국 평민원 5대 파벌 (99년 선거 이후 구성)
파벌 이름 성향 의석수
주권파
Sovereigntists
진보주의
자유주의
중도좌파
353 / 760 (46%)
신민파
Subjectists
보수주의
근황주의
우파
103 / 760 (14%)
노동파
Labourists
사민주의
자유주의
좌파
93 / 760 (12%)
연방파
Federalists
연방주의
중도주의
중도좌파
55 / 760 (7%)
제국파
Imperialists
제국주의
강성 근황주의
극우파
26 / 760 (3%)
기타/무파벌
130 / 760 (17%)

House of Commons

철저하게 귀족 중심의 정치판인 브리타니아 제국 내에서 그나마 평민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지는 것은 바로 평민원이라는 강력한 권력 기구의 존재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귀족원과 참사원 밑에 제2계급 시민들의 보통 선거로 구성되는 평민원이 존재한다. 평민원은 29년 에드워드 7세의 칙령에 의하여 브리타니아 제국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제2계급 시민들을 대변해야할 기구가 있어야한다는 목적으로 세워졌다. 실질적인 입법 권한은 없지만 평민들을 대변한다는 면에서 스피커는 매우 크다. 단순한 황제 및 귀족원 조언 기관 이상의 역할을 할때도 있다. 귀족원도 평민원의 요구를 대놓고 뒤집지는 못하며 일정부분 수용하여 타협안을 낼 정도이다.

브리타니아 제국 총리브리타니아 제국 황제기사가 직접 평민원에 출석하여 정책 브리핑을 하며 평민원 의원들과 정책 방향성에 대해 토론한다. 의원들은 정책에 대해 가결과 부결을 결정할 권한이 없으나, 조언 기관의 일원으로서 정책의 수정을 요구한다. 이들의 요구가 무시받을 때도 있지만 보통은 여론을 의식해 정책의 피드백이 여기서 많이 이뤄지는 편이다. 출석의 주기는 정해져있지 않지만 보통 총리는 1주에 한번, 황제기사는 2주에 한번 출석하는 것이 관례이다.

조지 4세 시대에는 귀족들과 권신들의 견제로 인해 발언권이 축소되었으며, 황제기사의 난 도중에는 의원 20여명이 체포되어 많이 움츠러든 상태이다. 그러나 헨리 게스코인세실 황제기사는 전반적으로 평민원에 호의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고 2주에 한번 출석하는 것을 1주에 한번 출석하는 것으로 바꾸었다. 따라서 장기적으로 보았을때 평민원의 권한은 높아질 가능성이 높고, 아예 입법 권한을 귀족원으로부터 이전받을 수도 있다는 전망도 있다.

의원의 수는 딱히 정해져있지 않고 인구비례에 따라[10], 전 제2계급 신민들이 참여하는 보통선거를 통해 평민원 의원이 선출된다. 제2계급 시민들에게는 정치 활동이 금지되어있기에, 평민원 내에서는 정당이 활동하지 못하며 모든 의원은 무소속으로 활동한다. 물론 인간의 본성인 당파성까지는 막지 못하기에 원내 진보파, 원내 보수파 등 여러 파벌이 존재한다.

참사원, 귀족원과는 달리 평민원들에게는 봉급이 주어진다. 봉급은 일년에 대략 152,500 파운드 스털링 상당이나 국가의 재정 상태에 따라 어느정도의 수준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정당

진보를 대변하는 민주당과 보수를 대변하는 제국당의 양당구도가 대략 100년 가량 이어지고 있는 강력한 양당제 국가이다. 초기에는 자유당은 자유무역을 지지했고, 보수당은 보호무역을 지지했으나 점차 영국의 규모가 커짐에 따라 양당이 표방하는 가치 역시 넓어졌다. 양당은 B.B. 20년대에 이합집산을 하며 혼란을 겪다가 보수를 대변하는 제국당과 진보를 대변하는 민주당으로 각각 개편된다.

현재 민주당은 사회민주주의, 사회자유주의, 신제국주의, 고전적 자유주의, 현대자유주의 등 진보주의의 전반을 포괄하며 제국당은 반대로 사회보수주의, 영국 민족주의, 제국주의, 자유보수주의 등 보수주의의 전반을 포괄한다. 이 때문에 제국당과 민주당은 각각 우파와 좌파 내에서 빅텐트나 다름 없다는 평이 있다.

황제기사의 난 정국 당시, 민주당은 군사독재를 지지하였으며, 제국당은 본래의 민정독재를 지지하는 입장으로 갈라지며 민주당과 제국당의 골이 커지고 있다.

이 외에 귀족 내 좌파들이 결성한 급진당과, 근래에 들어 치고 올라온 녹색당, 팽창당 그리고 진보적인 노동당이 존재하지만 군소정당에 불과하다.

반정부 시위

당연히 전제군주정과 군사독재, 관료독재, 신분제 등에 반발하는 시위도 있으나 시위의 규모는 보통 작다. 게다가 시위에 대한 매우 잔혹한 진압으로 인하여 시위 자체가 일어나는 일도 드물며, 정말 가끔 있다가 일어나는 해프닝 정도로만 받아들여진다. 브리타니아 제국 군부에서 권력 유지와 군국주의 체제 강화를 위하여 일부러 반정부 시위 공작을 일으키기도 한다.

시위의 주체는 대부분 급진적 자유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공화주의 등 이적 사상을 추종하는 이들이며 가끔은 식민지 독립을 요구하는 시위가 발생하기도 한다.

브리타니아 제국에서 반정부 시위는 기본적으로 국체(國體) 그 자체인 황제의 권위를 존중하지 않는 반역 행위로 간주하여, 반정부 시위의 참여자들이 반란을 일으키고 브리타니아 제국에 전쟁을 선포한 것으로 취급하고 있다. 따라서 브리타니아 제국에서 반정부 시위가 일어나면 보통 반란을 진압하는 도시 주둔군이 투입되어 실탄을 사용한 무력 진압이 일반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는 시위의 방법이 평화적 시위든 무력 시위이든 상관이 없으며, 보통 시위 진압 때에는 도시 전체를 봉쇄하고 정보를 차단한 다음 군의 입맛에 맞게 기사가 편집되어 타 지역으로 알려진다. 또한 이 시기에는 시위가 진압되는 도시 내의 모든 인터넷과 정보 통신망이 차단되어, 시위 진압에 대한 정보가 밖으로 세어나가지 않도록 하고 있다.

제국의 신민들 절대 다수는 반정부 시위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며 보통 "신성한 황제 폐하와 제국에 반역을 저지르려는 패배자, 공산주의자들" 정도로 반응한다. 물론 폭력 진압을 반대하는 신민들도 있지만 절대적 소수에 불과하며, 대다수의 제국 신민들은 제국에 직접적 위해를 가하는 반정부 시위에 대한 무력 진압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식민지 독립 운동

브리타니아의 식민 지배에서 벗어나 민족 국가를 세우려는 움직임을 뜻한다. 브리타니아 제국 정부는 이를 반란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과는 오랜 전쟁을 치루고 있다. 브리타니아의 행정 조직이 군국주의 시스템의 영향으로 군대에 의해 통제되는 면이 강하기에, 이들은 군부의 힘이 거의 닫지 않는 유일한 지역인 히말라야 산간이나 북아프리카 사하라 사막 지대에서 활동한다.

대표적인 조직들로는 인도 국민회의, 중국 국민당, 몽골 인민당, 대한민국 임시정부, 일본제국 지하정부,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 아프리카 국민회의 등이 존재한다. 이중 가장 조직이 큰 것은 인도 국민회의로, 현재까지 히말라야 산간 지대에서 브리타니아 군과 유격전을 벌이고 있으며, 무려 13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유서 깊은 테러 조직이다. 중국 국민당도 매우 큰 규모를 자랑했으나 51년 수뇌부가 궤멸된 이후 티베트 고원으로 도피하여 현재는 중국 전체에서 영향력을 잃었다.

일본제국 지하정부는 60년대까지 일본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했으나, 현재는 스위스 본부를 제외하고 일본에는 극소수의 게릴라를 제외하고 세력이 전멸하였다. 이 때문에 일본제국 지하정부는 현재 브리타니아에 의해서 왜곡될대로 왜곡된 일본 역사와, 소멸 위기에 처한 일본어를 보존하기 위한 연구 단체 정도로 전락한 상태이다.

사실 브리타니아 제국군의 규모를 볼때, 이들을 쓸어버리는건 일도 아니나, 그저 자신들의 군국주의적 체제를 강화하기 위해 외부의 적을 만들어두는 것일 뿐이라는 음모론도 있다. 더 나아가 대부분의 무장 독립 조직들이 브리타니아 제국군의 지원을 받아간다는 소문도 있다.

국방

황제 폐하의 제국군

황제 폐하의 제국군
His Majesty's Imperial Armed Forces
표어 Sumus servite Imperator
우리는 황제 폐하께 봉사한다
군종 브리타니아 제국 육군
브리타니아 제국 해군
브리타니아 제국 공군
브리타니아 제국 우주군
통수권자 브리타니아 제국 황제 (조지 5세)
지휘·감독권자 브리타니아 제국 황제기사 (헨리 게스코인세실)
군령권자 브리타니아 제국 기사단
상비군 2,679,873명 (본토)
20,314,560명 (제국 전체)
예비군 85,877,765명 (본토)
758,079,942명 (제국 전체)
병역 제도 모병제 (평시)
징병제 (전시)
[ 병력 ]
전차
4.5세대 MBT 131,783대 (+272,000대)
4세대 MBT 124,037대 (-50,383대)
3세대 MBT 56,730대 (-56,700대)
다목적 고기동장비
4세대 8,000대 (+100,000대)
3세대 440,900대 (-5,000대)
2세대 123,200대 (-60,000대)
1세대 45,700대 (-1,000대)
전투기
6세대 스텔스 2,474기 (+3,500기)
5세대 스텔스 6,435기 (+300기)
4.5세대 10,000기 (-1,303기)
4세대 5,300기 (-3,300기)

세계적으로 가장 군사력이 강한 국가이다. 소련을 제외하고는 자국에 거의 피해를 받지 않은채 국가들을 삭제해버릴 수 있는 수준이다.

제국 정부의 주도로 가히 다목적 고기동장비와 같은 오버테크놀로지에 가까운 군사 기술들이 발명되었고, 9년대에 핵 분열을 이용한 기초 형태의 원자 폭탄이 발명되었으며 10년 이후에는 수소 폭탄도 개발되었다. 이때도 다른 국가와 군사 기술이 크게 차이났지만 70년대 이후 소련을 제외한 경쟁 강대국들을 전부 제거한 현재 상태에는 제2의 군사 기술력을 지닌 소련과도 그 군사력이 크게 차이가 나는 편이다.

브리타니아 제국의 상비군은 전 인구의 0.44%인 2,679,873명이며, 전시에 영국군의 지휘 하에 놓이게 되는 제후국들의 상비군까지 모두 합칠시 규모는 전체 제국 신민의 0.41%인 20,314,560명이다. 전시에 브리타니아 제국이 동원 가능한 병력은 브리타니아 제국 본토 내에서 전 인구의 14.1%인 85,877,765명, 전 제국에서 인구의 15.3%인 758,079,942명이다.

브리타니아 제국의 성인 남성들은 20세가 지나면 반드시 3주간의 기초 군사훈련을 받아야하며, 여성들은 1주간의 기초 군사훈련 혹은 2주간의 실무 훈련을 받아야한다. 이후 40세가 될때까지 1년에 최소 1주간 의무 군사훈련을 다시 받아야하고 41세부터 65세까지는 비전투 인력으로 간주해, 여성들과 남성들 모두 비전투 실무에 투입된다. 징병제적인 요소가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모병제이기 때문에, 예비군 제도가 조금 빡빡한 것을 제외하면 브리타니아 제국 신민들의 불만은 적다.

현재까지 기병이 존재하는데, 기병은 다목적 고기동장비를 운용하는 군인을 뜻한다.

장비

본래 브리타니아 제국 육군의 주력 장비는 3세대 MBT였으나, 80년대 이후, 보병의 일종인[11] 다목적 고기동장비를 개발하여 운용중에 있다. 또한 공군의 중요성 역시 나날이 커져감에 따라 공군 개발도 활성화되는 추세이다.

헨리 게스코인세실의 황제기사 취임 이후 군사 장비 개발이 더욱 촉진되고 있다. 4.5세대 MBT인 갤러해드 3이 개발되었고 현재까지 존재하는 다목적 고기동장비중 가장 성능이 뛰어난 것으로 여겨지는 랜슬롯 C의 양산형이 생산되었다. 현재 브리타니아 제국군에서 운용하는 전차의 수는 총 324,335대, 다목적 고기동장비는 총 572,100대이다. 그 외에 7세대 스텔스기 7,250기와 항공모함 158대를 운용하고 있다.

핵무기의 경우, 5년 중화제국에서 시행된 핵실험에 따라 원자폭탄 거플릿-A가 개발되어, 브리타니아 제국-일본 전쟁 당시 고베, 가마야마, 다이호쿠, 가고시마, 니가타, 기타큐슈에 투하되었다. 이 당시 일본이 입은 엄청난 피해로 인해 일본 뿐만 아니라 브리타니아 제국 본토 내에서까지 핵무기 사용 반대 여론이 커져서 핵무기는 현재까지 개발되기만 할 뿐 실제 사용되지는 않고 있다. 31년 수소폭탄이 개발되었고, 이후 원자폭탄 뿐만 아니라 수소폭탄도 개발되었다. 현재 브리타니아 제국 내에서 가장 강력한 수준의 폭탄은 120MT급 수소폭탄 칼로그레난트 B로, 총 15기가 개발되었으나 실제 발사 시 브리타니아 제국 본토까지 안전하지 않다는 연구가 있어[12] 사실상 위협용이나 다름이 없다. 브리타니아 제국 내에서 가장 주된 폭탄은 30MT급 수소폭탄인 칼로그레난트 C이다. 브리타니아 제국은 현재 원자폭탄 17,600기와 수소폭탄 5,100기를 보유하고 있다.

다목적 고기동장비

Multi-purpose Higher Mobility Equipment; MHME

다목적 고기동장비는 64년부터 72년까지 연구되어, 74년부터 실전배치된 브리타니아 제국의 이족보행병기를 뜻한다. 다목적 고기동장비는 탈출용 콕핏에 다리를 달자는 개념으로 출발하였다. 이때는 브리타니아 제국 내에서 주된 에너지원이 석유였기 때문에, 보행 시간이 한정적이었고 당연히 다목적 고기동장비는 어디까지나 탈출용 콕핏의 개념정도에 머물러있었다. 그런데 석유 파동이 터지고 에너지의 패러다임이 석유에서 원자력으로 바뀌고, 비슷한 시기 소형 원자력 전지가 발전됨에 따라, 탈출용 콕핏을 사용할 수 있는 여유가 늘어났다. 이에 따라 콕핏에 아예 무기를 달아 적군을 공격하게 하자는 취지로 64년부터 개발된 것이 현재의 다목적 고기동장비이다.

현재의 주력 다목적 고기동장비는 3세대로, 랜슬롯 B펠리노어 C 등이 속해있다. 1세대 고기동장비는 그저 탈출용에다가 조잡한 기관총을 추가한 것이기에 현재는 사용되지 않으며 예비군의 용도로 사용된다. 2세대 고기동장비에 들어 대대적인 전투용 병기로서 개발되기 시작했고, 이후 3세대에 들어 최신형 전장망 등이 추가되어 더욱 성능이 강화되었다. 98년 조지 5세 즉위 이후에는 4세대 다목적 고기동장비가 개발되어, 실전에 투입되고 있다. 현재 4세대 고기동장비로는 랜슬롯 C가 유일하다.

2세대 다목적 고기동장비는 총 123,200대가 존재하며, 3세대 다목적 고기동장비는 440,900대, 4세대 다목적 고기동장비는 8,000대이다. 1세대 고기동장비는 카운트하지 않으며, 이는 예비군에 총 45,700대가 배치되어있다. 현재 브리타니아 제국 정부는 제4세대 다목적 고기동장비를 110년까지 총 100,000대로 늘릴 계획을 세우고 있다.

주로 기병에 속하는 브리타니아 제국 기사들이[13] 고기동장비를 이용하기 때문에, 기사들의 애마라는 뜻의 나이트메어 프레임(Knight's Mare Frame)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원래 이름이 꽤나 길어서 이쪽 별명으로 더 자주 불린다. 민간에서는 에반게리온(Evangelion / 어반젤라이언)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린다.[14]

기사

아직까지 기사 작위가 잔존하고 있는 국가이다. 평민 출신의 기사는 평기사(The Commoner Knight)로, 귀족 출신의 기사는 기사경 (The Lord Knight)로 칭해진다. 평기사(150,000명)와 기사경(7,500명)의 수를 합치면 약 16만여명에 달한다.

중세 때의 기사와는 많이 다르다. 영지도 가지지 않으며, 시대가 시대인만큼 말을 타고 싸우지도 않는다. 그러나 법적으로 이들은 잉글랜드 왕국 시대 기사와 크게 다른 권한을 가지고 있지는 않기 때문에, 일부 귀족들은 자신의 땅을 편의상 기사에게 임대해주기도 한다.

평민기사의 경우 평시에 귀족들의 신변을 보호해야하며 전시에는 군대 최고위 인사로서 군사작전을 지휘한다. 기사경은 귀족 신변 보호의 의무는 없으며 평민기사보다 급이 높기 때문에 이들을 통솔하는 상급자의 역할을 맡는다.

평민기사는 계급상 제2계급에 속하지만, 상술하듯이 "제1.5계급"이라는 별칭이 있는 만큼 귀족에 준하는 대우를 받는다.

황제기사

브리타니아 제국 황제기사
Britannian Imperial Knight of the Emper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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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타니아 제국의 황제기사 헨리 게스코인세실

사실상 현재 브리타니아 제국 내에서 권력 서열 1순위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직책 자체가 1순위인 것은 아니며, 헨리 게스코인세실 중심이라고 보는게 더 맞을 것이다.

브리타니아 제국 황제기사는 브리타니아 제국 황제의 직속 기사로서, 브리타니아 제국 기사들의 총책임자이며 동시에 황제의 호위를 맡는다. 즉 브리타니아 제국 황제 폐하의 제국군의 실질적인 최고 원수라고 할 수 있다. 황제가 임명하는 기사라는 특수성 때문에 황제 및 황실 일원들에 이은 권력 서열 2위로 여겨진다. 특히나 헨리 게스코인세실 경의 황제기사 임명 이후에는 정보부를 활용한 정권 장악이 이뤄짐에 따라, 기존의 내각과의 파워 밸런스가 무너지고 기사단 중심의 독재 체제로 돌입하고 있는 중이다.

황제 기사의 직속으로 브리타니아 제국 정보부가 존재하며, 브리타니아 제국 기사단 역시 황제기사 휘하의 조직이다. 그리고 기사단 휘하에 황제 폐하의 제국군이 있고 정보부 밑에는 5개의 정보국이 존재한다.

브리타니아 제국 황제가 직접 임명하도록 되어있으나, 보통 브리타니아 제국 황제 기사가 은퇴하는 일은 거의 15~20년에 한번 있는 일이고, 브리타니아 제국 내에서 황태자가 브리타니아 제국 황제로 즉위할 시 황태자 기사도 브리타니아 제국 기사로 자동적으로 진급이 되기 때문에, 브리타니아 제국 황제가 완전히 새로 황제기사를 뽑는 일은 드물다.

그러나 황제 기사가 스스로 은퇴했을때에는 얘기가 달라진다. 황제기사직은 자신이 은퇴하기 전까지는 계속 황제기사직을 맡을 수 있는 영원직이다. 대체로 황제기사의 나이가 60세가 넘었을때 은퇴하는 편이다. 이때에는 황제기사 교체식을 진행하는데 그야말로 황제 즉위식 다음가는 대규모 이벤트라고 볼 수 있을정도로 규모가 크다. 총 40년간 재위했던 에드워드 7세의 치세에 2번, 23년간 재위했던 프레더릭 5세의 치세에 1번 황제기사 교체식이 진행되었다.

기사경

100년 인구조사 기준으로 총 7,604명이 기사경으로 집계되고 있다.

평기사를 거느리는 상급의 기사이다. 귀족의 호위 의무가 있는 평기사와 달리, 기사경들은 애초에 그 스스로가 귀족이기 때문에 귀족에 대한 경호 의무가 없다. 대신 자신의 영지를 스스로 지키거나 전쟁시 사령관과 같은 고위직을 맡게 된다.

평기사들은 귀족들에 의해 임명되지만, 기사경들은 황실 일원이 직접 임명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과정이 매우 까다롭다. 보통은 세인트 조지 군사학교, 해밀턴 군사학교 등 귀족 군사학교에서 기사 교육을 받고, 졸업식 겸 기사 임명식에서 황실 일원에게 기사 임명을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귀족중에서도 기사경들은 꽤 높은 자리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브리타니아 제국을 지탱하는 세개의 기둥, 즉 제계, 정계, 군사계에서 군사계열은 기사경들이 꽉 잡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기사경이 된 이후 정계에 진출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데, 대표적으로 현 총리인 뉴트 제이콥슨도 본래는 학교에서 전쟁군사학을 공부하고 기사경으로 임명받은 기사 출신의 정치인이다.

평기사

100년 인구조사 기준으로 총 153,028명이 평기사로 집계되고 있다.

평기사는 기사경 휘하의 기사로 분류된다. 브리타니아 제국군의 평민 출신의 군인중 가장 계급이 높은 사람들로, 귀족은 아니지만 사실상 귀족 취급을 받는다. 이들은 평시에는 귀족들의 경호를 맡다가 전시에는 전쟁 수행도 병행한다. 기사중에서도 계급이 있는데, 가장 계급이 높은 평기사는 브리타니아 제국 황제기사로 브리타니아 제국 황제의 경호를 맡는다. 다만 보통 황제기사로는 기사경이 주로 임명된다.

귀족적인 특혜가 많기 때문에 평민에게 있어서는 선망의 대상이다. 그러나 이런 귀족들도 태생적인 한계가 있기 때문에, 정치적 개입은 철저히 차단된다. 물론 전쟁에서 공을 세우거나 직급이 높은 귀족의 배려가 있다면 귀족으로 임명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평기사를 목표로 입대하는 평민들도 상당하다.

정보부

브리타니아 제국의 정보 부처는 소련의 KGB와 더불어 세계 최강이라고 평가받는다. 과거 독일의 슈타지정도만이 브리타니아 제국 정보부에 대적할 수 있는 수준이다. 공식적으로는 Imperial Security Service가 명칭이지만, 보통 ISS라고 줄여 부른다.

브리타니아 제국 정보부는 하나의 기구가 아니다. 5개의 기구를 통칭하는 말이며, 5개의 기구에는 브리타니아 제국 비밀안보부, 브리타니아 제국 통신안보부, 브리타니아 제국 보안정보국, 브리타니아 제국 국가치안국, 브리타니아 제국 국방보안국이 속한다. 5개의 기구 모두가 브리타니아 제국 황제기사의 직속기구에 속하며, 동시에 브리타니아 제국 기사단과 협조하는 관계이므로 정보는 황제기사 및 기사단에게 제공된다. 또한 원활한 정보 업무 처리를 위하여, 브리타니아 제국 국무부, 브리타니아 제국 재무부, 브리타니아 제국 전쟁부, 브리타니아 제국 내무부에도 정보 공유가 이뤄진다.

제국군과 전쟁 범죄

브리타니아 제국 황제 폐하의 제국군은 전시에 자비 없는 대학살과 전쟁범죄 행보로 악명이 높다. 전쟁 뿐만이 아니라 독립 운동과 같은 반란도 같은 무자비한 진압으로 반란 세력을 궤멸시키는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 인도차이나 독립 전쟁 당시, 인도차이나의 독립을 막기 위해 브리타니아 제국군이 저지른 학살은 상상을 초월한다. 브리타니아 제국군에 의한 점령지 주민 학살은 현재 진행형이며 이는 브리타니아 제국군이 외부로부터는 두려움을, 내부 일부 세력으로부터는 불신을 일으키는 이유가 되고 있다.

그러나 제국군이 무작정 학살만 한다고 보는 것은 무리가 있는 시각이다. 브리타니아 제국은 극단적인 결과지상주의, 효율주의 사회이기에 점령지의 모든 주민들을 적으로 돌리면서까지 전쟁을 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라고 여기고, 무작정 학살부터 하는 태도는 지양하고 있다. 게다가 쾌락을 목적으로 한 전쟁 범죄는 기본적으로 혐오의 대상이 되고 있다. 어디까지나 통치에 있어서 효율적이라고 여겨질때만 학살과 같은 전쟁 범죄가 이루어지는 것이고, 쾌락 목적의 전쟁 범죄는 본국에서 군 형법으로 처벌을 받게된다.

오히려 이 점 때문에 제국군을 더욱 싫어하는 외국인들도 많다. 인간으로서의 동정심이 전혀 없이, 철저하게 자국에 이익이 되는 수단으로 채찍과 당근을 휘두르며 점령지 주민들을 물건 대우한다는 것이다.

경제

브리타니아 제국의 총 GDP는 명목 52조 파운드, PPP 51조 파운드에 이르러 독보적인 세계 1위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인도제국, 중화제국과 같은 타 식민지까지 전부 합칠시 브리타니아 제국이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부분은 세계 GDP 규모의 80%대를 넘어간다. 냉전 시기에도 브리타니아 제국의 경제는 공산권 전체를 합친것보다 더 컸으며, 유럽 공산권이 붕괴한 이후로는 그야말로 극초강대국에 걸맞는 강성한 경제 규모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브리타니아 제국의 경제 우위 체제를 팍스 브리타니카라고 부른다. 정치, 외교, 경제적으로 브리타니아 제국이 다른 나라에 비해 압도적 우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나온 말이지만 경제 부분에서의 우위는 다른 분야에서의 우위에 비해 확연하다. 사실상 현재 상태에서, 브리타니아 제국으로부터 독립된 개별적 경제 구조를 가지고 있는 나라는 일부 3세계 국가밖에 없다고 해도 될 정도로 브리타니아 제국의 경제적 파워는 막강하다. 소련, 유럽 공동체 역시 브리타니아 제국의 경제에 일부 종속된 모습을 보인다.

핵심 산업

과거에는 제조업이 융성하였으나, 51년부터 53년까지 일어난 브리타니아 제국 내의 석유 파동은 브리타니아 제국 제조업에 치명타를 안겼다. 이후 브리타니아 제국은 50년대 들어 제조업을 정리하고 금융업과 서비스업에 치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시기 수많은 제조업 공장들이 문을 닫고, 제조업이 중심이 된 몇몇 도시들이 몰락하기도 하였지만, 결론적으로 이런 산업의 전환은 브리타니아 제국의 경제 발전에 크게 공헌하였다. 이후 제조업은 70년대 유럽의 공산주의 정권들이 몰락한 이후 유럽으로 주도권이 건너가 유럽이 "세계의 공장"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되는 배경을 마련했다.

현재 브리타니아 제국에서 가장 큰 파이를 차지하는 산업은 금융업이다. 브리타니아 제국 내 최대 도시인 뉴욕은 세계 금융의 수도라고 불린다. 뱅크 오브 브리타니아, 골드만삭스, 시티 뱅크, 모건 스탠리, 리먼 브라더스 등 세계의 주요 투자 은행들이 뉴욕의 월스트리트에 모여있다.

세계에서 가장 큰 회사들은 대부분 브리타니아 제국에 모여있다. 브리타니아 제국 국적의 회사가 아니더라도 대부분은 브리타니아 제국 제후국 국적의 회사들이다. 세계 매출액 순위 1위부터 4위까지 전부 브리타니아 제국 국적의 회사이며, 5위인 중화전신회사 역시 브리타니아 제국의 제후국인 중화제국 국적의 회사다. 이렇게 브리타니아 제국과 그 제후국 국적의 회사들은 세계 기업 매출액 1위부터 20위를 모두 차지하고 있다.

주요 기업

브리타니아 제국은 세계 경제의 중심으로, 주요 대기업들이 거의 대부분 브리타니아 제국에 본사를 두고 있다. 현재 시가 총액 혹은 매출액 기준으로 1위의 자리에 올라서있는 것은 브리타니아 제국 동인도회사이다. 동인도회사는 황실이 운영하는 황립 기업으로, 과거 인도제국 이전에 존재했던 브리타니아 제국령 동인도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세포이 항쟁으로 인도제국이 수립되며 동인도회사는 해체되었으나, 중화제국의 설립 이후 순식간에 인구가 불어난 브리타니아 제국의 동방 영토와 브리타니아 제국 본토의 무역을 위하여 재설치되었다. 동남아시아 관구와 동북아시아 관구의 막대한 경제 규모 때문에 여전히 1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브리타니아 제국 내 부동의 최대 기업이다. 매출이 그야말로 어마어마해서, 브리타니아 제국 황실브리타니아 제국 동인도회사에서 나오는 돈을 정말 펑펑 써도 엄청난 흑자가 나온다. 이 때문에 브리타니아 제국 황실은 매년 천문학적인 자금을 국가나 자선 단체에 기부하고 있다.

그 뒤로 굴지의 최대 민간 독일계 재벌 기업인 지멘스와, 금융 회사인 HSBC가 잇는다. 마이크로소프트, 알파벳(구글), 애플, 페이스북 등 60년대의 인터넷 발달로 인하여 생겨난 비교적 신생 기업들 역시 10위권 안에 포함되어있다. 아스트라제네카와 같은 제약회사와 록히드 마틴, 보잉 등 항공기/군수 업체들도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본래부터 영국에서 자리잡은 대기업과, 외국에서 성장했다가 10년대 공산화를 피해 영국으로 이주해온 외국계 대기업들이 상위권을 주로 차지하고 있는 양상이다. 후자의 대표적인 예시로는 지멘스, 메르세데스, 바이에른 모터 컴퍼니(개명 전에는 BMW), 보쉬, 얼라이언스(개명 전에는 알리안츠) 등이 존재한다. 세계 전쟁 휴전 직후 전세계 최대 기업들이 주로 독일에 모여있었기에, 영국에서 잘나가는 외국계 대기업들은 주로 독일계이다. 디오르 등 프랑스계 기업들과 람보르기니와 같은 이탈리아계 기업들도 존재하지만 그 영향력은 독일계 기업에 비해 미미하다.

투자 은행으로는 브리타니아 제국 내 6대 투자 은행이라고 불리우는 모건 스탠리, 골드만삭스, 시티 뱅크, 뱅크 오브 브리튼, 리먼 브라더스, JP 모건의 규모가 가장 크다.

통화

제국은행의 로고

브리타니아 제국의 통화인 파운드스털링은 브리타니아 제국과 그 제후국 내에서 공식적인 화폐 단위로 사용되고 있다. 대한국 역시 파운드 스털링을 화폐로 사용한다.

파운드 스털링은 세계 경제의 통화이다. 소련의 루블, 독일의 마르크화의 파워도 강하지만 가장 강한 것은 브리타니아 제국의 파운드 스털링이다. 파운드 스털링 우위는 20세기 초반에 확립되어 현재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10년대의 대공황 당시 파운드화의 가치가 출렁거렸으나 현재는 특별한 위기 없이 세계 공용 화폐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파운드 스털링은 브리타니아 제국의 중앙 은행인 제국은행에서 발행하고 있다. 그러나 제국은행만이 파운드 스털링을 발행하는 것은 아니다. 실질적으로 파운드 스털링을 발행하는 것은 민간은행이다. 그러나 각 민간은행들은 제국은행의 통제하에 파3운드 스털링을 발행하며, 통화 정책 수립을 위해 통화발행권을 가진 민간은행들은 제국은행의 통화발행이사회에서 제국은행의 환율 정책 집행에 따라 파운드화를 발행한다.

통화 발행이 복잡해진 것은 10년대 초중반 일시적으로 일어난 브리타니아 제국의 경제 혼란 때문이었다. 당시까지 브리타니아 제국의 화폐 발행은 제국은행의 감독 하에 민간은행에 의하여 이뤄졌는데, 대공황으로 인해 경제가 혼란해짐에 따라 민간은행들의 통화 발행도 들쭉날쭉해졌다.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프레더릭 4세 황제의 칙령을 받아 제국은행이의 직속 산하 기구로서 통화발행이사회를 설치한 것이다. 이 때문에 말이 민간은행의 발행이지 실질적으로는 통화발행이사회의 지시를 받아 통화발행을 제국은행이 한다고 봐도 괜찮은 통화정책이 시행되는 중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통화 발행 "지시"는 제국은행이 하고, 통화발행 그 자체는 각 은행이 맡는다.

에너지

브리타니아 제국 내에서는 원자력 발전이 압도적인 우세를 점하고 있다. 전체 전기 발전량 중 54.3%를 원자력으로 충당하고 있다. 그 뒤는 39.4%의 재생 에너지와 6.3%의 화석 에너지가 잇는다. 현재 핵재생 발전의 연구가 이어지고 있고 상용화도 머지 않았지만, 아직까지는 미완성 단계이므로 대중화되지는 않은 발전 방식이다. 핵융합 발전이 개발된다면 거의 모든 발전이 핵융합 발전으로 대체될 것으로 예상된다.

재생 에너지는 대체로 태양광을 이용한 태양광 발전과, 풍력 발전이 주를 이루고 있다. 전체 재생에너지 발전량중 90% 가량을 태양광 발전이 차지하고 있다. 다만 태양광 발전은 태양이 쨍쨍하게 비추는 일이 드문 북부 냉대기후 지역이나, 동북부 지역 등에서는 사용하기 부적절한 발전의 형태이다. 또한 뉴기니와 같이 열대우림이 울창한 지역에서도 사용하기 곤란하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태양광 발전은 현재 뉴 웨스트 레스터호주와 같이 일년 365일 태양이 내리쬐는 사막 지역에서 활발히 사용되고 있다. 뉴 웨스트 레스터 지역의 경우, 지역에서 소비되는 전기의 98.3%가 태양광으로 발전된다고 한다. 초기에 태양광 발전은 효율이 높지 않았지만, 지난 50년간의 꾸준한 개량을 통해 현재는 매우 값 싸고 효율이 높은 에너지 발전 방법이 되었다.

원자력의 경우 재생 에너지에 비해 값이 매우 비싸고 효율성도 그렇게 좋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일단 주위에 물가만 있다면 언제 어디서나 발전할 수 있기에 태양이 잘 비추어지지도 않고 바닷 바람도 강하지 않은 아메리카 지역 등지에서 애용되고 있다. 게다가 휴대용 원자력 발전기까지 개발되어 랜슬롯 시리즈와 같은, 고출력을 필요로 하는 다목적 고기동장비와 같은 군사장비는 물론 비행기 같은 교통 수단에도 애용되고 있다. 과거에는 원자력 발전은 스리마일 원자력 발전소 사고와 같이 일단 폭발하면 걷잡을 수 없어 리스크가 큰 발전으로 여겨졌지만 현재는 사실상 폭발의 가능성이 없고, 폭발하더라도 피해가 최소화되도록 개량되었다.

다만 문제는 폐기된 원자력 전지의 처리이다. 원자력 전지를 사용하면 방사능 폐기물이 나오는데, 이는 원자력의 단가가 매우 비싼 원인이 되고 있다. 그나마 방사능 폐기물의 처리 자체가 땅 속에 묻는 것 외에는 존재하지 않던 30년 전과 달리, 요즘에는 핵 폐기물을 분해할 수 있는 기술이 발전되어 이 문제는 어느정도 해결되었다. 그러나 핵 폐기물 분해는 매우 값이 비싸서 운이 없다면 원자력 전지를 만드는 비용만큼이나 핵 폐기물 분해 비용이 나온다고 한다. 그래서 여건이 된다면 보통 언제 어디서나 발전이 가능하지는 않지만 값이 싼 재생 에너지가 선호되며, 원자력 발전은 고출력 에너지가 필요로되거나 군사 장비와 같은 장소가 민감한 곳에서 사용되는 기구의 발전 시스템으로 자주 사용된다.

한편 화력 발전은 오랜 기간동안 브리타니아 제국 내에서 주류를 차지해왔던 발전 방식이지만, 30년대 이후 환경 파괴의 위험성이 부각되며 대중적으로 화력 발전을 꺼리는 풍조가 생겨났다. 뿐만 아니라 재생 에너지와 원자력 에너지의 개량을 통해, 재생 에너지의 단가가 폭발적으로 줄어들고 전기 효율성 면에서도 원자력이 화력을 앞서자, 현재는 부득이하게 재생 에너지와 원자력 에너지를 둘 다 사용할 수 없는 지역에서만 화력 에너지가 제한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화력 발전은 50년대까지 사용량이 줄어들긴 했어도 여전히 주류를 차지해왔지만 이런 추세를 뒤엎은 것은 58년 이란의 혁명과 영국의 중동 정세 개입, 소련의 아프간 병합 등등 갖가지 복합적인 이유로 발생한 중동발 석유 파동 때문이었다. 현재 세시로, 이 당시 평균적인 유가는 배럴당 64 파운드 정도에 불과했으나 59년 연초 유가가 배럴당 274 파운드까지 폭증하였다. 전국적으로 공장이 멈춰서고, 비행기가 이륙하지 못하며 사회적인 혼란이 발생했다. 다행히 영국의 동맹국이었던 베네수엘라와 뉴 웨스트 레스터 남부 지역, 캐나다 지역의 유전을 이용해 급한 불을 끄는 것은 성공하였으나, 이때의 극심한 혼란은 브리타니아 제국 정부와 황실, 신민들 모두에게 화석 연료 중심 발전의 리스크가 얼마나 큰지를 뼈저리게 느끼게 해줬다. 결국 이후로 화력 발전은 사양의 길을 걷고 원자력과 재생 에너지가 주된 에너지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인터넷

인터넷은 22년경, 브리타니아 제국과 일본간의 전쟁이 터졌을때 개발된 기술이다. 브리타니아 제국의 전쟁 장비 생산을 총감독하는 브리타니아 제국 전쟁부는 효율적인 전시 배치를 위하여 각 컴퓨터의 정보를 무선으로 연결할 수 있는 시스템을 고안하였고, 이것이 기초적인 형태로 등장한 것이 22년의 임페리얼 인트라넷(Imerial Intranet, 속칭 II)이다.

II는 초기에는 군사적인 목적으로만 쓰였지만, 브리타니아 제국-일본 전쟁의 종료 이후에는 민간용으로도 연구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32년, 브리타니아 제국 전쟁부에 의하여 민간용 인트라넷이 개발되었으니 이것을 인터넷(Internet)이라고 한다. 이때의 인터넷은 속도도 매우 느렸고 오직 텍스트만을 올리는 것이 가능했기에 매우 불편하였다. 본격적으로 현재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 것은 47년의 일로, 이때 이후 우리가 알고 있는 인터넷이라는게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인터넷 혁명이 있은 것은 50년대였다. 인터넷의 특징을 이용한 검색창, 동영상 및 사진 공유 시스템 등이 만들어지며 인터넷은 단순한 정보 처리 뿐만이 아니라 유흥의 수단이 되기 시작하였다. 인터넷 붐이 터진건 61년, 컴퓨터 회사 애플에 의해 인터넷이 가능하고 손으로 직접 편리하게 조종이 가능한 아이폰이 출시된 이후이다. 아이폰의 출시 이후 전세계의 휴대폰 생산 회사에서 너도 나도 인터넷 터치폰을 개발하기 시작했고 이후 전세계적인 인터넷 붐이 일어났다.

인터넷 혁명은 여러가지 이점과 부작용을 가져왔다. 인터넷을 통해 예전에는 복사와 배포가 어려웠던 문서들과 정보를 순식간에 전세계적으로 공유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지구 반대편이 떨어져있는 사람이라도 1초도 안되어 연락이 가능해지며, 브리타니아 제국 영토 전역이 순식간에 하나로 규합되며 다문화의 양상도 드러났다. 하지만 부작용도 컸는데, 인터넷에만 빠져서 인생을 망친 사람도 있었고 인터넷 해킹으로 전재산을 빼앗긴 사람도 있었다. 이러한 문제가 반복되자, 91년 브리타니아 제국 정보부는 인터넷 악성 이용자들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인터넷 해커들을 대거 체포한 이후, 제3계급으로 강등시키거나 사형하는 강수를 두었다. 이런 강경 정책으로 인해 인터넷 해커들은 대부분 모습을 감추었지만 여전히 자기 통제의 영역에 있는 인터넷 중독 문제는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주요 인터넷 플랫폼

  • 구글 (Google) : 현재 전세계에서 가장 큰 인터넷 플랫폼이다. 구글은 다른 인터넷 플랫폼과는 달리, 직접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다른 플랫폼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다. 하얀 바탕 화면에 검색창만이 있는 것이 구글의 시작 화면 모습이다. 이 검색창에 아무 검색어나 치면, 그 검색어와 관련된 목록이 주르륵 떠서 이용자들이 링크를 통해 접속할 수 있게하고 있다. 매우 편리한 시스템이기 때문에 사실상 브리타니아 제국 신민이라면 누구나 이 플랫폼을 매일 사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 브리태니커 대백과사전 (Encyclopædia Britannica) :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나폴레옹 전쟁으로 인한 신대륙 천도 이전부터 존재해왔던 유서깊은 백과 사전이었다. 인터넷이 발명된 이후, 시대에 맞춰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인터넷에 백과사전의 내용을 올리는 결정을 하였고, 이 결정이 큰 빛을 발하여 현재 브리태니커 대백과사전은 누구나 이용이 가능한, 최고 수준의 정보량과 신뢰도를 자랑하는 인터넷 백과 사전이 되었다. 이 백과사전에는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이 집필진으로 있으며, 인터넷 사용자들은 내용 수정을 건의할 수 있다. 거의 매달 문서의 업데이트가 진행될 정도로 정보의 추가도 빠른 편이다.
  • 넷플릭스 (Netflix) : 넷플릭스는 75년 솔즈버리 힐의 두 사업가가 시작한 영화 공유 플랫폼에서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불법 공유 사이트였지만 이후 영화 제작업체와 공식적으로 계약을 맺고 영화를 올리게 되었다. 영화관에 가는것에 비해 훨씬 간편한데다가, 한달에 몇 파운드만 내도 영화를 무제한으로 볼 수 있어 점점 인기가 커지더니 이후 완전히 영화관을 몰아내고 인터넷 영화 개봉의 시대를 열었다. 넷플릭스에 도전하는 몇몇 플랫폼도 있었으나 현재는 넷플릭스의 완전 독점 체제이다. 독점의 폐혜를 막기 위해, 넷플릭스는 97년 브리타니아 제국 문화부가 직접 돈을 주고 사들여, 30%의 주식을 문화부가, 11%의 주식을 브리타니아 제국 황실이, 5%의 주식을 브리타니아 제국 동인도 회사가 소유하게 하여 국영 기업으로 전환되었다.
  • 페이스북 (Facebook) : 자신의 일상 생활을 공유할 수 있는 앱으로, 글을 써도 되고 사진을 올려도 된다. 사용자들은 페이스북을 통해 일상 사진에 여러가지 감정을 표현할 수도 있고 다른 사용자들과 1대 1로 대화하기도 한다. 이러한 다양한 기능 지원 때문에 페이스북은 현재 브리타니아 제국 내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플랫폼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다른 플랫폼에 비해 압도적으로 부작용이 많기도 한데, 주로 대두되는 문제점은 지나치게 페이스북의 공감 수에 열중하여 거짓말을 하거나 자극적인 범법 행위를 저지르는 것 등이 있다.

사법

브리타니아 제국 황제교 국교회는 자유로우며, 그 권리는 온전히 유지되고, 자유 또한 침해될 수 없음을 브리타니아 제국 황제 및 황제의 대리인에게 영구히 신의 이름으로 허용하며 특허장으로써 확인한다.
브리타니아 제국 제국기본법 제1조

오랜 기간 불문 헌법을 지켜왔으나, 26년 에드워드 7세에 의해 단지 법의 전례만을 두고서 사람의 죄질을 판단할 수 없다는 주장 하에 마그나카르타를 포함한 이전의 모든 법례들을 모아서 29년 제국기본법을 제정하였다. 그러나 기본법 외에 형법, 상법 등 구체적인 법에 관해서는 여전히 불문법이 유지되고 있다.

사법부

브리타니아 제국의 사법부는 따로 존재하지 않으며 브리타니아 제국 법무부 산하의 기관으로 존재한다. 따라서 사법부 자체가 내각에 속한다. 그러나 정치적 중립성을 위하여 고위 공무원을 수사하는 기관은 따로 존재한다. 브리타니아 제국 황제의 직속 기관인 브리타니아 제국 공무수사청이 정치중립성의 의무를 가지고 공무원들을 수사한다. 나머지 업무는 법무부에서 처리한다.

범죄자 처우

딱히 교도소가 없는 대신, 경범죄는 벌금형 또는 집행유예, 중범죄는 계급 격하[15]로 처리한다. 제3계급 시민들은 제2계급 시민과 함께 생활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따로 도시를 이루어 살기 때문에 사실상 감옥이나 다름이 없다. 또한 제2계급 시민중 그 죄질이 특별히 나쁘다고 판단된 경우라면 아예 수용소에 갇혀 강제 노동을 해야하거나 혹은 사형을 선고받을 수도 있다.

브리타니아 제국 내에서 범죄자의 인권은 기대하기 힘들다. 애시당초에 일반 신민들조차 국가를 위한 장기말정도로 여겨지는 형편에, 능력도 실력도 없고 사회에 도움도 안되는 범죄자들은 가혹하게 굴려야한다는 인식이 사회적으로 퍼져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범죄자들은 무죄 판정의 원칙을 받아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는 제법 사람 대접을 받아도, 일단 유죄가 확정되면 절대로 인권을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제3계급 시민들에게는 그 어떠한 복지와 치안 서비스도 제공되지 않으며, 사형수는 공식적으로 사형이 집행되기 전에 교도관들이 알아서 다뤄도 좋기 때문에 사형 전에도 죽는 사형수들이 많다.

사형의 경우 보통 약물형으로 치뤄진다. 군형법을 위반했을 경우에만 총살형이 치뤄지며, 일반인에게는 총알이 아깝다는 이유로 약물형을 내리고 있다. 약물형을 받은 사형수의 경우 빠르게는 5초만에, 길어도 3분만에 목숨을 잃는다.

법정 연호

브리타니아 제국은 서력 기원이 아닌 황력 기원이라는 독자적 연호를 사용한다. 서력 1921년이 브리타니아 제국 황력의 기점으로, 서력 1921년이 황력 0년이 된다. 따라서 올해는 101년이 된다.

A.B.와 B.B.는 각각 "After Britannia"와 "Before Britannia"를 뜻한다. After / Before를 나누는 기준점은 서력 1921년 프레더릭 3세의 칭제건원이다.

서력 기원도 연호로서 가끔 사용되지만, 현재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브리타니아 제국 외에 중화제국과 대한국, 일본 등의 제후국에서는 청나라 시대의 전례에 따라 브리타니아 제국 황력기원이 아닌 중화제국 연호를 사용한다. 101년은 태륭 3년이다.

사회

기본적으로 현재까지 존속하는 완고한 신분제도, 황실 중심의 전제군주정, 귀족들의 입맛에 따라 움직이는 정치, 철저하게 중앙 정치 개입이 배제되어있는 제2~3계급 때문에 사회의 분위기는 대단히 보수적이고 경직되어있다.

브리타니아 제국의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브리타니아 제국이 자국의 신민들을 취급하는 태도를 알 필요가 있다. 브리타니아 제국은 철저한 능력주의와 효율 우선주의 사회로, 신민들을 한명의 인간이 아닌 장기말 또는 도구 정도로만 여기고, 대부분의 신민들도 자신의 존재 가치를 그정도로 여긴다. 즉 전체주의적인 면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브리타니아 제국 내에서 신민의 수는 곧 국력이라는 가치 하에 무의미한 희생도 강요되지 않지만, 동시에 효율을 위해서라면 계급에 따른 차등과 인권의 희생 역시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인간은 곧 도구라는 기본적인 전제 하에 인권의 개념은 매우 희미하고, 동시에 봉건제 사회를 옹호하는 수단으로서 사용된다.

다만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가 언제나 유지되어온 것은 아니다. 조용한 혁명이 일어나면서 점차 브리타니아 제국의 사회 분위기는 풀려나가기 시작했고, 이후 세속적이고 진보적인 사회로 발돋움했다. 소련의 유럽 합병 직전까지 제3계급 폐지론, 중국 및 인도인 1등 신민화 등이 활발히 논의되었을 정도였고 황실도 이에 대해 부정적이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70년대에는 소련의 영향력이 어느정도 복구됨에 따라 사회주의와 같은 이적사상에 대한 경계감이 황실, 중앙 정치계, 민중에게 있어서 부각되었고, 황실의 영향력 축소 및 민주화를 외치는 사람들은 사회주의자로 몰려 탄압당하였다.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조용한 혁명 시대에 이뤄진 개혁안들을 제외하면 인권, 민주주의 부분에서 나아진 부분은 거의 없고 오히려 더 폐쇄적으로 변한 부분이 존재한다. 헨리 게스코인세실 주도의 황제기사의 난이 이뤄지긴 했지만 평민원의 권한 확대를 제외하면 인권 부분에서의 진전은 없고, 반대로 군사 독재정권의 수립으로 인하여 인권이 더 후퇴했다는 분석도 있다.

20년대에 비하면 확실히 나아진 부분은 존재한다. 브리타니아 제국 내에서 여성 차별, 인종 차별 등은 거의 없어졌고 종교가 정치에 미치는 영향도 축소되어 세속적인 사회가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민주주의 국가라고 보기 어려운 부분이 너무나도 많다. 투표권은 오직 900만명에 달하는 1계급에서 미치고 있으며, 황실이 정치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귀족에 의해 선출되어, 귀족으로 구성되는 내각은 그저 귀족의 이익만을 대변할 뿐이고 복지 체제는 제2계급의 중산층들을 달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될 뿐이다. 그나마 브리타니아 제국의 경제적 수준이 높아 제2계급 신민 뿐만 아니라 제3계급 신민도 소련의 중산층정도의 생활을 영위할 수 있기에 현 체제에 대한 큰 불만은 없으나, 여전히 민중의 뜻에 의한 민주주의와 공화제 전환을 외치는 목소리가 존재한다. 물론 브리타니아 제국 정부에서 이를 무력진압하고 있기에 시위가 확산되지는 않고 있다.

언론의 자유, 집회 및 정당 결사의 자유 등의 기초적인 인권과 정치적 자유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 수준이다. 언론과 정당 등 사회를 구성하는 핵심적인 요소들이 대부분 귀족 계층에 귀속되어있다. 노동조합과 같은 것을 만드는 것은 자유이지만, 어디까지나 황실의 허가가 있어야한다. 즉 정부에 대항할 수 있는 수단은 거의 없는 셈이다. 뿐만 아니라 브리타니아 제국 본토 주민들이 아닌, 제후국에서 온 2등 신민(중화, 인도 신민)과 3등 신민(그 이외 지역의 제후국 신민) 출신의 이민자들은 철저하게 신분제에 따라 차별받는다. 그나마 인종차별주의가 사라졌기에 표면적으로 차별이 크게 드러나는 편은 아니긴 하지만 이들은 관공서 업무와 같은 곳에서 본토 주민에 비해 확실히 차별받는 점이 많다.

이러한 비민주주의적인 요소와 별개로 낙태 합법화, 동성혼 합법화가 일찍이 시행된 것 등 의외로 진보적인 면이 있다.

신분제

신분제가 강력한 국가인만큼, 각 계급의 비율은 큰 변수가 없는 이상은 일정하게 유지되고 있다. 또한 신분 상승과 하락도 상당히 어렵다. 제1계급에서 2계급이나 3계급으로 떨어지는 경우는 손에 꼽으며, 50년대 이후로는 2계급에서 3계급으로 추락하는 사례도 줄어들고 있다. 반대로 2계급에서 1계급으로 올라가거나 3계급에서 2계급으로 올라가는 것 역시 매우 힘들다.

제0계급 : 화이트로이드 황가

화이트로이드궁

제1계급에 속해있지만, 법적으로 이들은 제1계급보다도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다. 조사상으로 543명이 제0계급에 속한다.

이들은 브리타니아 제국 황제의 적법한 계승자들로, 가족 관계에 따라 왕위 계승 서열을 1위부터 543위까지 매긴다. 황제의 8촌 조카부터는 황위 계승 자격이 없는 것으로 취급된다.

브리타니아 제국 정부와 경찰, 군대로부터 특수한 지위를 인정받아 의전의 자격이 자동으로 주어지며, 이들에 대한 비난과 같은 공격적 행보는 즉시 사상불온으로 취급되어 처벌받게 된다.

제1계급 : 귀족

100년 인구조사 기준으로 총 9,196,838명(1.51%)이 귀족으로 집계되고 있다.

귀족들중에서 1억 파운드 스털링 이상의 재산을 가진 초부호는 전체 귀족 비중에서 47.32%를 차지하며, 1백만 파운드 스털링 이하의 재산을 가진 귀족은 극소수중에 극소수일정도로 브리타니아 제국의 부와 명예, 권력이 몰려있는 특권 계층이다.

제1계급은 브리타니아 제국 내에서 모든 권력과 경제의 중심을 맡고 있으므로, 그에 대한 특혜와 특권도 어마어마하다. 귀족들은 세금에서 자동으로 면제되며 다른 계층과 달리 의회 의원을 선출할 투표권도 가진다. 대신 사회적인 책임이 크게 요구되는 편이다. 귀족들은 제2계급의 인심을 얻기 위하여 자선 사업에 참여하며, 매년 상당한 액수를 기부금으로 내고 있기도 하다.

신대륙 천도 이전부터 귀족 가문이었던 성골들도 있지만, 전쟁에서 공을 세우는 등의 특수 사례의 경우 제2계급 평민들도 제1계급 귀족으로 상승할 수 있다. 본래 귀족들은 전부 백인들로 이루어지는 암묵적인 규칙이 있었지만 브리타니아 제국의 규모가 커진 이후에는 아이신기오로 가문(Aisin Gioro)와 같은 타민족 계열의 귀족들도 생겨나고 있다.

평민에서 귀족으로 올라간 대표적인 가문들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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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작위 서임 연도
어윈 조헌네스 유진 롬멜
(Erwin Johannes Eugene Rommel)
일본 공작
(Duke of Japan)
24년
쑨원
(Sun Wen)
캔튼 공작
(Duke of Canton)
오토 모리츠 월터 모들
(Otto Moritz Walter Model)
한국 공작
(Duke of Korea)
드와이드 데이비드 아이젠하워
(Dwight David Eisenhower)
힐링던 후작
(Marquess of Hillingdon)
프레더릭 윌리엄 어니스트 펄러스
(Frederick William Ernest Paulus)
에저먼트 백작
(Earl of Egerment)
윌리엄 프레더릭 홀시
(William Frederick Halsey)
램버튼 백작
(Earl of Lamberton)
장제스
(Chiang Kai-shek)
난징 자작
(Viscount of Nanjing)
더글러스 맥아더
(Douglas MacArthur)
필리핀 자작
(Viscount of Philippines)
조지 스미스 패튼
(George Smith Patton)
그리즈데일 남작
(Baron of Grizdale)
리쭝런
(Li Zongren)
상하이 남작
(Baron of Shanghai)
27년
헤인즈 윌리엄 구데리언
(Heinz William Guderian)
얼포트 자작
(Viscount of Earlport)
퍼티넌드 포르셰
(Ferdinand Porsche)
포르셰 후작
(Marquess of Porsche)
29년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Frank Lloyd Wright)
레빙턴 자작
(Viscount of Levington)
30년
조지 케틀럿 마셜
(George Catlett Marshall)
베들링스버러 백작
(Earl of Bedlingsborough)
32년
존 에드거 후버
(John Edgar Hoover)
매닝트리 백작
(Earl of Manningtree)
49년
제임스 스튜어트
(James Stewart)
맥닐 남작
(Baron of MacNeil)
49년
존 마틴 피니
(John Martin Feeney)
포드 남작
(Baron of Ford)
프랭크 앨버트 시나트라
(Francis Albert Sinatra)
애스토리아 백작
(Earl of Astoria)
71년
제임스 폴 매카트니
(James Paul McCartney)
매카트니 백작
(Earl of McCartney)
로버트 노직
(Robert Nozick)
워드워스 남작
(Baron of Wardworth)
73년
존 보들리 롤스
(John Bordley Rawls)
리치필드 남작
(Baron of Richfield)
76년
특수 왕공족 (제0.5계급)

브리타니아 제국 내에서 제후국의 국왕 또는 명목상으로 그러한 작위를 가지고 있는 가문은 귀족중에서도 특수한 귀족 가문으로 취급받기 때문에 브리타니아 제국 황제와의 정략결혼 기회 등 사회적으로 여러가지 혜택을 받는다. 왕공족이 급격하게 많아진 것은 10년대 유럽 혁명으로 유럽의 왕정들이 대부분 붕괴되면서이다. 이때 브리타니아 제국은 유럽 왕실 구출 작전을 통하여 거의 대부분의 유럽 왕실 가문을 스위스와 그리스를 통해 탈출시켰으며, 이들중 일부가 브리타니아 제국으로 국적을 바꾸고 브리타니아 제국 황제의 신하가 되면서 가문을 이어나갔다. 이들은 명목상으로 유럽 군주국들의 왕위를 가지고 있지만, 유럽이 다시 브리타니아 제국의 영향력 하에 군주정으로 복귀될 경우 이들은 브리타니아 제국의 제후로서 그 왕위권과 영토 지배를 인정받기 때문에 권한이 어느정도 크다고 할 수 있다. 전주 이씨와 같은 몇몇 왕공족들은 실제로 재위하고 있기도 하다.

호엔촐레른 가문, 보나파르트 가문 등 일부 왕조들은 세계 전쟁에서 브리타니아 제국과 크게 싸운 경험도 있고, 원래부터 숙적 관계였던만큼 다른 왕공족의 대우에 비해 약간 격이 낮다. 둘다 각각 독일 황제, 프랑스 황제 직을 잃고[16] 다른 왕공족에 비해 겉도는 느낌이 있다. 그러나 공산주의라는 큰 위험 때문에 이들에 대한 처우는 점차 나아지고 있다.

특수 왕공족의 명단은 다음과 같다.

원어명 영어명 작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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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itelloyd (화이트로이드) 화이트로이드 브리타니아 제국 황제
중화제국 황제 실제 재위
인도제국 황제 실제 재위
독일 제국 황제
일본국 천황 실제 재위
포르투갈 국왕 실제 재위
아르헨티나 국왕 실제 재위
나이지리아 국왕 실제 재위
버마 국왕 실제 재위
필리핀 국왕 실제 재위
멕시코 대공 실제 재위
라오스 대공 실제 재위
캄푸치아 대공 실제 재위
아프리카의 보호자 실제 재위
남아메리카의 보호자 실제 재위
중앙 아프리카 변경백 실제 재위
이베리아 변경백 실제 재위
콘스탄티노플 변경백 실제 재위
튀니지 변경백 실제 재위
알제리 변경백 실제 재위
Habsburg (합스부르크) 합스버그 오스트리아 국왕
헝가리 국왕
Oranje-Nassau (오라녜-나사우) 어린지나소 네덜란드 국왕
동인도 국왕 실제 재위
Saxe-Coburg Gotha (작센코부르크고타) 색스코버그고타 벨기에 국왕
콩고 국왕 실제 재위
Wittelsbach (비텔스바흐) 위틀스버크 바이에른 국왕
Bourgogne (부르봉) 버르건 프랑스 국왕
스페인 국왕
Savoia (사보이아) 서보이아 이탈리아 국왕
나폴리 변경백 실제 재위
Glücksburg (글뤽스부르크) 글뤽스버그 노르웨이 국왕
덴마크 국왕
그리스 변경백 실제 재위
Bernadotte (베르나도테) 버르너도트 스웨덴 국왕
Bonaparte (보나파르트) 보너퍼트 코르시카 대공
Hohenzollern (호엔촐레른) 호언촐런 프로이센 대공
루마니아 국왕
ᠠᡳᠰᡳᠨ ᡤᡳᠣᡵᠣ / Aisin Gioro (아이신기오로) 아이신교로 청나라 황제 폐위
李 / Lee (이) 대한국 국왕 실제 재위
尙 / Sho (쇼) 류큐국 국왕 실제 재위
阮 / Nguyễn (응우옌) 응우옌 베트남 국왕 실제 재위
จักรี / Chakkri (짜끄리) 차크리 시암 국왕 실제 재위

제2계급 : 평민

100년 인구조사 기준으로 총 567,767,752명(92.22%)이 평민으로 집계되고 있다.

귀족에 버금갈정도로 부유한 평민도 일부 있지만 대부분의 평민들은 경제적으로 중산층 계층이 속한다. 브리타니아 제국의 높은 경제적 수준 때문에 중산층이라고 하더라도 경제적인 수준은 매우 높다. 하지만 평민중의 20%정도는 일정하게 경제 하류층으로 분류된다. 상류층, 중류층, 하류층의 비율은 1970년대 이후 10% : 70% : 20%정도로 유지된다.

브리타니아 제국 신민들의 대다수가 이쪽 계급에 속하는만큼, 제1계급도 제2계급보다 신분제상으로 위에 있을지언정 대놓고 무시하지는 못한다. 어디까지나 귀족의 특권이나 황실 중심의 전제군주정이 유지되는것도 2계급이 체제에 큰 불만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정부는 제2계급의 체제 지지를 유지하기 위하여 강력한 복지 정책을 운영하고 있다.

50년대 이후로는 제2계급 신민이라고 해서 특별히 인권을 탄압받는 것은 아니나, 투표권과 피선거권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세금도 소득의 수준에 따라 내야한다. 제국의 제2계급 남성들은 20대에 반드시 3주간의 기초 군사훈련을 받고 이후로는 40세까지 1년에 1주 이상은 의무적으로 군사 훈련을 받아야한다.

제3계급 : 비신민

100년 인구조사 기준으로 총 32,097,576명(5.27%)이 비신민으로 집계되고 있다.

브리타니아 제국에서는 교도소라는 것이 딱히 없는 대신, 죄질이 매우 크지 않은 이상은 대부분 제3계급 신민으로 신분 계급을 떨어트리는 편이다. 2건 이상의 살인, 존속 살해 등의 강력 범죄는 그린란드에 위치한 특별 수용소에 수용시킨다.[17] 민주주의자, 급진적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 공화주의자, 식민지 독립론자(민족주의자) 등 브리타니아 제국의 황실과 체제에 위협될만한 세력들도 이쪽으로 분류하고 있다.

그야말로 브리타니아 제국의 최하위 계층이자 적대 계층 그 자체로, 거주 이전의 자유, 신체의 자유 등 인간으로서 가져야할 기본적 인권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외진 곳에 집단으로 격리 수용된다. 수용소보다는 그래도 신체가 자유롭고, 강제 노역도 하지 않는 등 보다 인간적인 대우를 받지만 브리타니아 제국의 최정예 경찰들이 삼엄히 감시하는 수용소와 달리 제3계급 신민들은 적성 행위를 하는지 감시하기만할 뿐이지, 탈옥을 제외한 거의 모든 행위에 대해 경찰이 개입하지 않는다. 즉 제3계급 신민들 사이에서는 다툼이 일어나 사람이 죽건 말건, 보호할 가치도 없으므로 치안 관리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제3계급 신민중 5.3% 가량이 매년 자연사 이외의 방법으로 사망한다.

과거에는 벌금형 또는 집행유예 정도로만 해도 괜찮을 제2계급 신민들을 아무나 비신민으로 분류하고 집어넣어 비신민의 비율이 전체 인구의 10%에 달하는 등 사회적 문제가 되었으나, 1980년대 법이 바뀐 이후 경범죄자들은 비신민으로 지정하는 것이 어려워졌다. 또한 비신민의 자식들 뿐만 아니라 비신민 자신들도 자진하여 교육을 받고 시험을 통과하면 비신민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제3계급에서 2계급으로 올라섰음에도 제국을 위협하는 행위를 자행했거나, 혹은 제3계급 신민인 와중에 그렇게 하였을 경우에는 대부분의 경우 사형 선고를 받게 된다.

인종과 민족

브리타니아 제국 내에서는 인종차별이 사실상 사라진지 오래이나, 국적에 따른 차별은 여전하다. 브리타니아 제국이 원래부터 인종차별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조용한 혁명 이전까지는 흑백 인종차별, 황백인 인종차별이 극심하였으나, 위로부터의 개혁이 이뤄진 이후 사실상 인종 차별주의는 모습을 감추게 되었다. 또한 브리타니아 제국 대중문화의 전성기였던 60년대, 스티비 원더, 마이클 잭슨, 프린스 등 여러 흑인 출신 아티스트들이 활동하였기 때문에 현재 브리타니아 제국 내에서 흑인이나 황인과 같은 비주류 인종을 차별하는 것은 매우 비상식적이며 고품스럽지 못한, 야만인의 태도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러한 것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브리타니아 제국의 신민들이 브리타니아 제국 황제 단 한명을 위해 봉사하는데에 있어서는 흑인과 황인, 백인이 모두 같은 신하라고 바라보기 때문이다. 이런 극단적인 봉건주의적인 사상이 역설적으로 브리타니아 제국 황제 앞에서는 모두 한명의 신하일 뿐이라며 인종차별을 없애는데 큰 역할을 한 것이다.

그러나 국적에 따른 차별은 여전하다. 브리타니아 제국의 제후국 등급중 3등급이나 4등급에 속하는 제후국 시민들은 브리타니아 제국 본토에서 무수한 차별을 겪는다. 본토인들도 인권의 개념이 희박하지만 3~4등급 출신의 국가에서 온 시민들은 경찰이나 군인들로부터 자주 검문을 받고 온갖 자유권을 침해당하는 등 차별을 받고 있다. 그러나 브리타니아 제국은 그 방대한 영토 때문에 제후국 출신의 시민들이 겉모습만으로는 거의 구분이 안되기에, 민간에서의 차별은 없고 대신 공권력에 의한 차별만이 남아있다.

주요 인종

뉴욕 맨해튼의 차이나타운
  • 중국계 영국인

브리타니아 제국의 비 백인 인종중 가장 많은 수를 자랑하며, 솔즈버리 힐에 많이 거주하고 있다. 솔즈버리 힐 내에서 가장 큰 대도시중 하나인 세인트 프랜시스는 전 인구의 60%가 중국인이며, 솔즈버리 힐 전체로 확장해도 중국인의 비율은 25%에 육박한다. 인도계 영국인들이 브리타니아 제국 사회 내에 흡수되어 독립적인 정체성을 상실한것과는 달리 중국계 영국인들은 모여 살면서 차이나타운을 형성하는 경향이 있다. 차이나타운에서는 영어도 통하지만 대부분의 주민들이 중국어로만 대화하며, 식문화부터 간판까지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이 중국식 문화의 영향을 받아 홍콩이나 중화제국에 온 것 같은 착각을 준다. 브리타니아 제국 내에서 최대의 차이나타운이 있는 세인트 프랜시스의 경우, 아예 학교에서 중국어만을 사용하고 황제의 이름도 조지 5세의 중국식 이름인 "태륭제" "태륭 황제"라고 부를 정도이다.

그러나 차이나타운을 만들고 주류 영국 문화와 떨어진, 자신들만의 문화를 형성하고 중국인들만이 있는건 아니다. 리사 수와 같은 몇몇 중국인들은 브리타니아 제국 사회 내에 편입되어 경제, 문화적으로 그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아이신기오로 가문 등으로 대표되는 중국계 귀족가문도 존재해서 정치계에 미치는 영향력도 어느정도 크다. 이렇듯 브리타니아 제국의 문화에 동화된 중국인들은 중국만의 문화를 브리타니아 제국 사회 내에 전파하여, 제3의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현재 브리타니아 제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중국 요리나 연등제 등의 중국 기원 행사들이 브리타니아 제국 본토인들에게도 별 무리 없는, 평범한 문화로 받아들여진 것이 그 예시라고 할 수 있다.

종교적으로 이들은 무종교로 분류되는 유교를 믿기 때문에, 무종교인의 비율이 높지만 황제교나 불교, 도교를 믿는 사람들도 많다. 이 때문에 세인트 프랜시스, 포트 앤젤리스솔즈버리 힐의 대도시에서는 거의 20분에 한번꼴로 절이나 도교 사원을 볼 수 있다.

영국 내에서는 중국인들이 드세고 성격이 과격하며, 천박하다는 편견이 있다. 그래서 영국인들은 중국인들을 두고 "싸움 닭" "칭챙총"이라고 놀린다. 이에 대해 진지하게 화내는 중국인들도 있지만 브리타니아 제국 내에서 인종차별은 거의 없어졌기 때문에 이런 몰상식한 발언을 하는 사람들의 수도 적고 그저 친한 친구들끼리 하는 농담 정도의 수준밖에 안되어, 사회적인 문제는 되지 않고 있다.

  • 인도계 영국인

중국계 영국인에 이어 2위를 차지하고 있는 인종이다. 인도계 영국인은 특정한 거주지 없이 브리타니아 제국 본토 전역에 널리 퍼져 살고 있으며, 독자적 커뮤니티 생활을 하는 중국인들과는 달리 독자적인 문화권을 형성하고 있지는 않다. 대신 브리타니아 제국의 사회에 자연스럽게 편입됨에 따라 그들의 문화적 정체성을 브리타니아 제국 문화의 결합하여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냈다.

인도계 영국인들은 경제 쪽에서 매우 큰 영향을 행사한다. 영국인들은 인도인이라면 누구나 똑똑하고, 특히 수학에 있어서 천재적인 능력을 발휘한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는데, 이런 편견이 형성되는데에는 인도계 영국인들이 IT 기업에 진출하여 인지도를 높인 것이 한 몫을 하였다. 브리타니아 제국에서 가장 큰 30개의 IT 기업중, 고위 임원이나 CEO 중 인도계 영국인이 없는 기업은 단 한개로 없으며, IT 기업 뿐만 아니라 수많은 직종에 인도계 영국인들이 진출하여 경제적으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중에 있다.

중국계 영국인들을 규합하는 것이 차이나타운이라면, 이들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것은 힌두교이다. 최근에는 인도제국 본토에서조차 힌두교의 세가 떨어지는만큼, 황제교를 믿거나 무종교로 개종하는 힌두교도들도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소수에 불과할 뿐이며 브리타니아 제국 내에서 힌두교는 인도제국 출신의 이민자들을 규합하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이들을 의식하여 소고기는 물론 고기를 일절 판매하지 않는 채식 식당이 생겨났는데, 이런 힌두교 전용 채식 식당이 브리타니아 제국의 채식주의 문화의 시작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대표적인 남아프리카계 영국인 음악가인 가수 마이클 잭슨(左)과 헤비 메탈 기타리스트 슬래시(右)
  • 남아프리카계 영국인

브리타니아 제국의 남아프리카 식민지화를 통해 영국으로 건너온 남아프리카 출신의 영국인들을 뜻한다. 이들은 주로 본토 남부 지역에 거주하고 있으며, 피부 색이 다른 인종들에 비해 짙은 것이 특징이다. 또한 아프리칸스어의 영향을 받아 독일어와 네덜란드어 어휘가 섞인 특이한 방언을 구사하는 주민들도 있다. 남아프리카계 영국인들은 정치적, 경제적으로는 인도계나 중국계 영국인에 비해 수적으로 밀리는지라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문화 부분에서 점유율이 매우 압도적인데, 대표적으로 음악이 있다.

이들의 대표적인 문화로는 로큰롤과 재즈 등의 음악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브리타니아 제국 내에서 주류를 차지하는 음악 장르의 대부분이 아프리카계 영국인에게서 나왔다고 할 수 있다. 록 음악, 재즈, 힙합 등 주요 대중 음악의 장르들이 남아프리카계 영국인의 문화인 블루스 음악에서 나왔다. 뿐만 아니라 지미 헨드릭스, 프린스, 휘트니 휴스턴, 마이클 잭슨, 스티비 원더 등 남아프리카계 영국인들이 직접 대중음악 퍼포먼스에 뛰어들어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이러한 남아프리카계 영국인들의 문화적 성공은 브리타니아 제국 내에서 인종주의가 퇴출되는데 큰 공헌을 하였다.

종교적으로는 황제교의 세가 매우 압도적이다. 남아프리카계 영국인들중 90% 이상이 황제교의 신도일 정도이다. 보통 "흑인"이라고 하지만, 이는 인종의 피부 색을 나타내는 어휘로, 인종 차별이라는 지적 속에 현재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 독일계 영국인

브리타니아 내에서 경제, 사회, 문화, 정치적 중심에 있는 민족이다. 유럽 혁명 당시 독일에서 브리타니아 제국으로 호엔촐레른 가문, 합스부르크 가문 등 귀족들 뿐만 아니라 자본가와 기술자, 고위층 150만명이 이민을 가면서, 독일 출신의 경제인, 수학자, 과학자들이 대거 브리타니아에 편입되었고 이들은 이민을 온 이후 즉시 사회의 고위층이 되었다. 어윈 유진 롬멜 등 군인부터 브리타니아 제국 동인도 회사 다음으로 회사 규모가 큰 브리타니아 최대 재벌 기업인 지멘스사까지 독일계 영국인들은 70년 이상 영국 내에서 고위층의 자리를 차지하였다.

이들은 독일어를 쓰기도 하지만, 대부분 영국 사회에 동화되어 영어를 사용한다. 종교적으로는 기독교의 비율이 높은것도 특징. 이는 황제교의 국교 발표 이후 영국으로 이민을 온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또한 독일이 과거 통일된 국가가 아니라서 어려웠던 시절에 신대륙으로 이민온 독일인들도 많은데[18] 이들은 사실상 영국인들과 거의 차이가 없을정도로 동화되었다.

독일계 영국인에 대한 비하 표현으로는 제리 (Jerry)가 있다.

  • 아일랜드계 영국인

아일랜드에서 영국으로 이민을 온 사람들이다. 백인 중에서 가장 많은 파이를 차지하고 있다. 그 수가 너무나도 많아, 아일랜드 섬에 사는 인구수보다 아일랜드계 영국인의 수가 10배 가량 많다. 이들은 보통 이름에 맥(Mc), 오(O') 등이 붙는 특징이 있다. McCartney, McCarthy, McArthur 등이 대표적인 아일랜드계 성씨이다.

아일랜드계 영국인들은 본래 아일랜드가 영국의 식민지였다가, 나폴레옹 전쟁때 프랑스에게 빼앗긴만큼 대우가 좋지 못했다. 아일랜드계 영국인들이 주로 가난한 노동자 계층인데다가 어투도 주류 영국인들과 달라서, "감자나 먹는 빈곤한 노동자들" "피부 하얀 중국 놈" 등의 멸칭을 들어야했다. 하지만 인종 차별이 거의 사라진 현재, 브리타니아 제국 내에서 아일랜드인들은 백인중에서 가장 많은 인구수를 차지하는 이점을 노려 브리타니아 제국 사회 곳곳에서 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대중문화적으로 아일랜드계 영국인으로 구성된 비틀즈가 활동하기도 했고, 군인으로는 필리핀의 총독이었던 더글러스 맥아더 등이 유명하다.

세인트 패트릭스 데이는 아일랜드계 영국인들이 모이는 최대의 행사이다. 상징으로 네잎 클로버를 쓰는 것도 특징. 다른 백인들에 비해, 민족적인 자부심이 매우 강하여, 일부러 아일랜드어를 쓰는 아일랜드계 영국인들도 종종 볼 수 있다.

  • 아메리카 원주민

영국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도달하기 이전까지, 신대륙은 영국인들의 땅이 아니었으며 흔히 "인디언"이라고 불리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땅이었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수는 매우 많았지만 브리타니아 제국의 태평양 영토 확장 전쟁 당시 60%가 넘는 원주민들이 사망했고, 살아남은 원주민들도 사막으로 내쫓기며 살기 어려워졌다. 이 때문에 현재 브리타니아 제국의 신민중 아메리카 원주민의 비율은 단 2%도 되지 않는다. 원주민들의 삶은 매우 비참하여 경제적인 수준도 낮고 평균 수명도 50~60세 정도로 영국인들에 비해 20~30세가량 낮은 편이다.

종교

브리타니아 제국의 국교는 황제교이다. 황제교는 0년 제정되어, 현재까지 국교로서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황제교가 국교가 되기 전의 국교는 영국 성공회였으나 현재 영국 성공회를 비롯한 기독교는 전반적으로 비주류 종교에 머물고 있다. 그 외에 불교, 이슬람교, 힌두교 등 외국 계통의 군소 종교도 존재하고 무종교인도 있지만 모두 소수에 불과하다. 현재 본토 주민의 절대 다수가 황제교의 신도이며, 제국 전체로 넓혀도 60% 이상이 황제교의 신자이다.

황제교는 국교로서 황실 및 정부 차원의 대대적인 지원을 받는다. 반면 다른 종교들은 국교의 지위를 누리지 못하고, 정부 측에서 지속적으로 종교 활동을 방해하고 있는 만큼 인도계 영국인의 정체성인 힌두교 등 일부 특수 종교를 빼면 황제교를 제외한 다른 종교들은 쇠퇴의 길을 걷고 있다. 무종교를 지지하는 것 역시 "황제를 믿지 않는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신민들이 매우 많아, 점차적으로 그 파이가 줄어들고 있다.

무엇보다 브리타니아 제국 황제의 권위를 드높여주는 것이 황제교인만큼, 브리타니아 기사단브리타니아 황제기사 등 군부 세력의 황권의 극단적 강화 정책에 따라 앞으로 황제교의 세는 더더욱 커질 전망이다.

황제교

황제교
Emperorianiaty
이명 브리타니아 불교 (Britannian Buddhism)
창시 0년
브리타니아 제국
창시자 프레더릭 3세
교세 약 32억 6,500만명 | 세계 1위
교주 브리타니아 제국 황제
조지 5세 / 제6대

황제교는 본토 인구의 83%, 제국 전체의 65%가 믿는 세계 최대 규모의 종교이다.

기존에 브리타니아의 국교는 영국 성공회였다. 약 300년간 성공회는 영국 국교의 자리를 지켜왔으나, 20세기로 넘어가면서 황제교가 성공회를 대체하고 새로운 국교로 지정되었다. 국교로 지정된 것은 0년의 일로, 초대 교주이자 창시자인 황제 프레더릭 3세칭제건원을 하면서 국교로 선포했다. 처음에는 300년 이상 유지해온 국교를 바꾼다는 것에 반발이 거셌으나 기존 성공회 성직자에 대한 민중들의 불신과, 브리타니아 황실의 적극적인 황제교 홍보로 인하여 20년만에 그 규모는 매우 커졌다. 현재 황제교는 본토에서만 5억명 가까이가 믿는 제국 최대의 종교가 되었다. 성공회나 힌두교 등 다른 종교도 교세가 존재하나, 황제교에 비하면 미약하다.

황제교는 유교, 불교, 도교 등 동아시아 종교의 영향을 받았으며, 특히 중국 종교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았다. 황제교는 천국과 신의 존재를 부정하지는 않으나 그것이 기독교처럼 신앙의 중심에 있는 것이 아니다. 황제교에서는 인간은 하나의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끊임 없이 자기 수련을 통해 정진해나가야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정진과 수련의 끝에 다다르면 해탈의 과정이 이르게 되는데 이 해탈이 곧 황제교에서 말하는 최종적인 목표이다. 황제교에서는 이 해탈에 이른 인간을 "성인"이라고 표현하며, 인간의 진보와 제국의 발전을 이끌어나갈 멘토로 여긴다.

그러나 이 해탈의 경지에 이른 사람이 신이 되는 것은 아니다. 심지어 황제도 신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황제교에서의 신은 이 세상 만물의 법칙, 즉 범신론적 관점에서의 신이며, 교주인 황제는 신의 입장을 대변하고 황제교 전체를 하나로 규합하는 신도 결집의 중심이라는 상징적인 위치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오히려 황제교는 신에만 기대어 구원을 바라는 기존 기독교의 교리를 부정적으로 해석한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인데, 신에게만 기대다보면 자연스레 존재하지도 않는 기적에만 목매게되고, 따라서 더더욱 불완전한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황제교는 이러한 이유로 정진과 수련은 철저히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며, 신과 해탈자는 그저 그런 정진에 자극을 주는 존재로만 여겨야한다고 한다.

전체적으로 보았을때 무신론과는 거리가 멀지만 무종교에 가까운 범신론, 이신론적인 교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 때문에 종교 색이 강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믿을 수 있고, 몇몇 극단적 무신론자들을 제외하면 무종교적 색체를 가진 사람까지 황제교에 종교적 기반을 두기도 한다. 이 때문에 황제교는 종교라기보다는 브리타니아라는 하나의 거대한 제국의 철학과 사회를 지탱하는 일종의 사상 또는 생활에서의 윤리와 비슷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또한 "황제교"라는 이름답게 황권신수설을 뒷받침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황제는 신은 아니지만, 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서 제국 신민 전체를 이끌어나갈 정신적 멘토의 위치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신은 아니지만, 숭배의 대상으로 자주 여겨지며, 이는 기독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위치를 생각하면 편하다. 그렇기에 실제 교리와 상관 없이 현재 브리타니아 및 브리타니아 식민 제국 전역에서 신성화되는 브리타니아 제국 황제의 위치는 황제교에 상당 부분을 의지하고 있다.

교육

브리타니아 제국의 교육은 5년동안의 초등학교, 5년간의 중등학교, 2년간의 준비학교, 3년간의 석사 과정, 2년간의 학사 과정, 그리고 2년간의 박사 과정으로 구성되어있다. 중등학교는 한국의 중학교와 고등학교 과정을 합친것과 같은 학교이다. 대한국에 외국어 고등학교, 특수목적사립고등학교, 예술고등학교 등 여러 형태의 고등학교가 존재하듯이, 브리타니아 제국의 중등학교도 Grammer School이나 Art Colledge 등 다양한 과정이 존재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한국으로 치면 일반고등학교에 속하는 Secondary School에 진학한다.

중등학교에서 졸업한 학생들은 2년간의 준비학교를 거치면서 바로 취업 전선에 나갈것인지 혹은 대학교에 진학할것인지를 선택하게 된다. 대학교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들은 중등학교 과정의 심화 과정을 배우게 되며,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들은 실업 교육을 받는다. 실업 교육 쟁점 학교로는 크게 공업 학교, 사무 학교 그리고 군사 학교가 있지만 그 외에도 실업 학교는 다양하다. 이중 군사학교는 예외적으로 2년간의 이론 교육과, 2년간의 실전 교육을 받아 총 2년간 재학하는 다른 실업 학교와 달리 4년간 재학하게 된다.

대학 진학반이 끝난 학생들은 졸업 시험을 치루고, 시험 성적과 학교에서의 성적을 합친 최종 대학 입학 성적을 부여받는다. 대학 입학 성적에 따라 어느 대학교에 갈것인지가 정해진다. 상위 대학교와 하위 대학교의 수준 차이가 큰 것은 아니지만, 상위 대학교가 유명한 것도 있고 학과도 더 다양하며, 교수들의 수준 역시 높아 보통은 상위권 대학을 더 희망하는 학생들의 수가 압도적이다.

대학은 입학보다 졸업이 더 어려운 구조라서 약 30%정도의 재학생이 학/석사 과정에서 탈락한다. 이 과정을 통과한 학생의 80%도 박사학위에서 탈락하거나 박사 학위로 가지 않는다. 영국에서 박사학위를 따는 것은 매우 어렵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박사 학위자를 존경하는 분위기가 있다.

언어

브리타니아 제국의 공용어는 제국어이다. 제국어는 영어라틴어를 일컫는 말인데, 두 언어는 브리타니아 제국의 법상 동등한 지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민간에는 영어가 압도적으로 많이 사용되고 라틴어는 일부 귀족 혹은 성직자 계층에서만 쓰이는 언어이다. 현 황제인 조지 5세, 황제기사인 헨리 게스코인세실, 총리인 뉴트 제이콥슨 중 라틴어 구사자는 헨리 게스코인세실 단 한명에 불과하다. 라틴어가 공용어가 된 것은 단지 로마의 계승국이라는 정체성을 형성하기 위함일 뿐이다.

그러나 사법에서는 전적으로 라틴어가 사용된다. 이 때문에 브리타니아 제국에서 법을 배우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라틴어를 배워야한다. 판결문도 라틴어로 낭독되며, 이후 번역을 통해 피고인과 원고에게 영어나 기타 사용 언어로 전달된다. 전국적으로 라틴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5%정도 되는데, 라틴어 사용자의 30%정도는 사법인이라고 하니 얼마나 라틴어가 법에 있어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또다른 라틴어의 수요층은 고대 역사학자들이다. 이들은 주로 로마 제국의 역사에 대해 연구하며, 로마의 공용어가 라틴어였던만큼 라틴어의 실력이 상당해야한다. 이쪽은 라틴어 뿐만 아니라 그리스어도 요구되어 난이도가 높다.

영어가 현재 제국 내에서는 주류 언어이며 그 외에 스페인어, 프랑스어, 아프리칸스어, 독일어 등도 사용된다. 다만 프랑스어는 거의 150년 가까이 이어져온 프랑스어 사용 금지법 때문에 사실상 본토 내에서는 멸절당했고 식민지에서만 사용된다. 원주민들의 언어도 간혹 사용되지만 대부분 영어로 대체되었다.

방언


용인 발음이 사용된 노래 "Bike" (Pink Floyd, 46)

브리타니아 제국은 약 6억 신민과 44억 제후신민들의 조국인만큼, 영어에 있어서도 하나의 방언만이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수십개의 방언과 사투리가 사용된다. 각 사투리는 한 언어에 뿌리를 두고 있기에 억양 차이만 빼면 알아들을 수 있지만, 몇몇 사투리는 아예 알아들을 수 없을정도로 심하게 변형되어있기도 하다. 이 경우에는 보통 필담을 나누거나, 혹은 라틴어를 할 줄 아는 고학력자들은 라틴어로 대화하곤 한다.

  • 아메리카 방언 (용인 발음) : 흔히 "영국식 영어"라고 한다면 보통 이쪽을 가리킨다. 딱딱하고 딱부러지는 발음으로 인하여 매우 멋지다는 인상을 주며, 특유의 고급짐 때문에 귀족들의 언어로 사용된다. 또한 브리타니아 제국 황실도 이 방언을 사용하기에, "Emperor's English"라는 멋진 별명도 가지고 있다. 아메리카 방언은 아메리카와 캐나다 동부 지역에서 자주 사용된다.
  • 솔즈버리 방언 : 서부 솔즈버리 힐에서 사용된다. 솔즈버리 방언은 발음이 딱부러지는 아메리카 방언과 달리, 모음과 자음, 특히 r의 발음이 매우 굴려지는 것이 특징이다. 예를 들자면 "Water"라는 단어의 경우 아메리카 방언에서는 "오터" 혹은 "워터" 등으로 발음하지만, 솔즈버리 방언에서는 "워러"로 발음한다. 태평양에 가까울수록 점점 혀가 굴려지는 것도 특징이다. 또한 솔즈버리 힐은 중국계 이민자들의 메카이기도 했던만큼, 솔즈버리 방언을 사용하는 사람들중 대다수의 말은 중국어의 영향을 받아 속사포처럼 빠르다. 이 때문에 아메리카에 거주하는 사람들과 귀족들에게는 매우 천박하고 고품이 없는 하층민들의 언어라는 이미지가 있다. 철자법에 있어서도 다른데, 가령 "Programme"을 "Program"으로, "Labour"를 "Labor"로 적는 식이다.
  • 레스터 방언 : 뉴 웨스트 레스터 지역에서 사용된다. 뉴 웨스트 레스터 지역은 나폴레옹 전쟁 이후 스코틀랜드 및 아일랜드 이민자들이 가장 많이 정착한 지역이었다. 이 때문에 이 지역의 방언은 아메리카 방언과 솔즈버리 방언을 합친, 딱딱하면서도 굴려지는듯하고 매우 거친 발음이 특징이다. ~ing으로 끝나는 단어를 ~in으로 발음하며, e나 t 등 끝에 오는 말이나 맨 처음 모음까지도 전부 ing에서 g와 같이 묵음으로 처리하여 발음하는 경향이 있다. 이 때문에 다른 지역에 사는 영국 사람들은 "Ain't Talking About Love"를 "Ain' Talkin' 'bout Lov'"라며 레스터 주민들을 놀리기도 한다.
  • 라틴 방언 : 라틴 방언은 라틴어가 아니라, 멕시코나 컬럼비안 아일랜드 등 스페인의 통치를 받았던 지역들에서 쓰이는 영어를 의미한다. 이 지역은 스페인의 식민지배를 받은 역사가 있던만큼, 스페인어 화자들이 많다. 게다가 멕시코인들과 쿠바인 등 이 지역에 사는 주민들은 영국 내에서 성미가 급하다는 편견이 있다. 이러한 것이 반영된것인지는 몰라도, 라틴 방언은 솔즈버리 방언 못지 않게 엄청난 속도를 자랑하며, 스페인어의 어휘를 마구 섞어서 쓰는 특징이 있다.
  • 남아프리카 방언 : 토착 언어와 아프리칸스어, 독일어 등이 혼합된, 남아프리카 지역에서 쓰이는 영어이다. 이 지역은 네덜란드어의 영향을 받은 아프리칸스어가 쓰이는 지역이기도 했고 동시에 아프리카 원주민들이 아프리카 토착 언어를 쓰기도 하였다. 이러한 것들의 영향을 받아 남아프리카 방언은 영어도, 독일어도, 네덜란드어, 남아프리카 토착 언어도 아닌 기묘한 발음과 어휘를 자랑한다. 예를 들자면 "Water"는 "Wasser"로 쓰고, "Father"는 "Vater"로, "Room"은 "Raum"이라고 쓰는데, 문법은 전부 영국식이며, 여기다가 흡착음을 넣어 "쯧"하는 특유의 발음도 난다. 이 때문에 남아프리카 방언을 사용하는 사람과 아메리카 방언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대화하기 쉽지 않다.

황국신민증

황국신민증의 예시

브리타니아 제국은 모든 계급의 시민들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하여 황국신민증을 발급하고 있으며, 15세 이상의 브리타니아 제국 황국신민이라면 반드시 발급받아야한다. 귀족의 경우 이름과 성 뿐만 아니라 공작/후작/백작/자작(부백작)/남작 작위도 3번째 칸에 나타내도록 되어있다.

인식번호의 경우 1은 1계급을, 2는 2계급을, 3은 3계급을 나타낸다. 지역의 경우에는 1부터 9까지 있으며, 1~8은 내지, 9는 식민지를 뜻한다. 그 외에 브리타니아 제국의 제후국에서 거주하는 경우, 브리타니아 제국 제후왕국시민증이 따로 발급되며, 제후국과 브리타니아 제국 본국의 복수 국적을 가지고 있을 시 양쪽을 다 발급받도록 하고 있다.

제2계급 시민에서 제3계급 시민으로 강등된 경우, 범죄 유무 칸이 따로 생긴다. 제3계급에서 모범적인 생활을 하여 제2계급으로 올라선 경우에도 이 칸은 없어지지 않는다. 다만 제3계급 시민의 자녀로 태어난 사람들은 범죄 유무에 상관 없이 제3계급이 된 것이기에 제2계급으로 올라서면 이 칸은 사라지게 된다.

인권

브리타니아 제국의 모든 황국신민은 황제 폐하의 신하로서, 황제 폐하 및 황제 폐하의 대리자의 명령에 절대적인 복종과 충성을 다한다.
황제 폐하의 대리자는 황제 폐하와 제국의 안녕을 위하여 신민들의 귄리를 제약할 권리를 가지며, 황국신민은 명령으로서 제한되는 권리를 영위하고 절대복종할 의무를 진다.

브리타니아 제국 제국기본법 제17조

브리타니아 제국 내에서 인권의 개념은 매우 희박하다. 브리타니아 제국의 모든 황국신민은 브리타니아 제국 황제의 신하로서, 황제와 황제 폐하의 대리인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할 의무를 지니고 있으며, 따라서 황제의 대리자라고 할 수 있는 군대나 정부가 제약하는 인권에 반항할 권리가 없다. 제약된 권리에 대한 불복종은 곧 군대에서의 명령 불복종으로 여겨지며 이는 제3계급으로의 주된 강등 사유중 하나이다. 브리타니아 제국인들도 굳이 인권의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고 있으며, 인권 침해에 대해서는 "침해받을만하니 침해받는 것"이라며 군대와 정부의 인권 침해를 긍정하는 모습을 보인다. 브리타니아 제국 내에서는 황제 폐하의 신하로서, 정부와 군대의 명은 설령 자신에게 피해를 입히는 것이 있더라도 황제와 제국 그리고 공동체의 안정을 위해서는 어느정도 희생할 필요가 있다는 인식이 매우 당연시되고 있다.

애초에 브리타니아 제국 내에서 한 사람을 여기는 시각은, 인간 대 인간이 아닌 국가 대 장기말의 시각이다. 제1계급 귀족들조차 국가를 위한 도구로 취급되며 능력주의와 효율성이 최대 미덕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만약 제국에 이익이 된다면 인간의 희생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진다. 물론 무의미한 도구의 남용이 미덕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다시피, 브리타니아 제국에서는 인명이 곧 국력이라는 가치관 하에 무의미한 인명 희생을 부추기지는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 일본제국에서 자행되었던 자살 공격의 형태는 잘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인간은 제국을 위한 장기말이며 제국을 구성하는 하나의 구성 뿐이지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지지는 않는다는 인식이 있어서 인권의 소중함은 브리타니아 제국 내에서 매우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것으로 여겨진다.

특히나 범죄자, 전쟁 포로의 인권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브리타니아 제국 내에서 정치 범죄자에 대한 고문은 불법이 아닐 뿐더러 효율적인 취조 수단으로 오히려 적극 권장되고 있다. 전쟁 포로는 기본적으로 강제노역의 의무를 맡으며, 상급 전쟁 포로는 그 가치가 전혀 없어졌다고 판단될 시 즉결 처분된다. 당연히 전쟁 범죄에 대한 문제 의식도 없어서 한번 전쟁이 터지면 각종 대학살과 약탈이 일어나는 일이 빈번하다.

다만 인권은 온정주의적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있기 때문에, "사람이 어떻게 사람에게 저럴 수 있느냐" 등의 여론이 나오곤 한다. 이에 따라 브리타니아 제국군 측에서도 전쟁범죄나 불필요한 민간인 권리 탄압은 최대한 피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다만 전쟁 범죄나 비전시 즉결 처분은 비난의 대상일 뿐이지 처벌의 대상은 아니다.

문화

비틀즈

철저하게 귀족 중심 문화와 평민 문화로 나뉘어져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귀족 문화가 평민에 의해 모방되기도 하고 귀족들이 평민 문화를 즐기기도 하는 등 귀족 문화과 평민 문화가 혼재되어가는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정치적으로 전제군주제와 관료독재정이 시행되는 것과 별개로, 문화적으로는 자유가 어느정도 보장되어있다. 황실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은 절대로 안되지만, 선을 넘지 않는 선에서는 정부의 정책에 대한 비판도 허용된다. 이 때문에 문화가 소련에 비해 융성해있다.

50년대 이후 인종차별 정책의 폐지로 인하여 흑인, 황인, 백인의 문화가 고루 섞여 융합된 모습을 보인다. 재즈, 록 음악 등 흑인 음악이 평민 음악 문화의 주류를 차지하고 있으며, 귀족 계층에서는 중국, 일본, 한국, 베트남 문화에 대한 선호 양상이 나타난다.

공휴일

공휴일은 일요일과 토요일을 제외하고 보통 1년에 15일 정도 주어진다. 크게 보았을때 크리스마스와 부활절, 그리고 황제의 생일이 가장 큰 휴일이자 명절이다. 크리스마스는 12월 25일, 부활절은 예수가 십자가형을 선고받고 나무 십자가에 못 박힌 날로부터 3일째 되는 일요일이며, 황제의 생일은 황제에 따라서 다른데 현 황제인 조지 5세12월 17일 생이므로 현재는 12월 17일에 쉰다. 보통 이 세개의 명절이 있을때에는 모든 제국 신민들이 일주일 전부터 축제의 준비를한다. 현재 조지 5세의 생일인 황제탄신일과 크리스마스가 불과 8일정도의 격차만을 가지고 있으므로, 아예 한 주를 비워놓고 통째로 축제로 보내는 사람들도 있다. 이 세개의 명절은 당일만 쉬는 것이 아니라, 다음날도 똑같이 쉬는 것을 관례로 한다.

그 외의 공휴일로는 5월 1일의 노동 총파업을 기억하고, 브리타니아 제국 내 노동자들의 노고를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노동절(메이데이)와, 황제의 즉위일(현재는 7월 17일), 새해 첫날도 성대하게 치뤄지는 공휴일이다. 다만 이때는 딱 하루만 쉰다.

일부 기업들은 주 4일제를 시행하면서 금요일이나 월요일을 아예 쉬는 날로 만들기도 하지만, 이는 의무 사항이 아니다. 브리타니아 제국 내에서는 일주일 최대 근무일이 40시간으로 많은 편에 속한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최대인 것이지 최소가 아니기 때문에, 32시간이나 28시간만 일하는 기업들도 많다. 그렇기 때문에 공휴일의 수와 상관 없이 브리타니아 제국은 신분을 막론하고 노는날이 많고, 여가 시간도 그만큼 많이 가진다.

스포츠

크리켓, 축구가 최대 인기 종목이며, 그 외에 야구도 인기있다.

소련, 독일과 더불어 전통적인 올림픽 강국으로, 크리켓과 축구는 거의 모든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차지했다. 하계에서는 독일, 소련, 인도 등 올림픽 강국들과 언제나 1위 종목을 다투고 동계 종목에서는 소련에 이은 세계 2위의 성적을 보이고 있다.

지역별로 캐나다는 아이스 하키를, 남부 카리브 해 연안에서는 야구가 인기를 얻는것과 같이 지역별로 선호하는 스포츠 종목이 어느정도 차이가 나는 점도 특징이다. 하지만 축구와 크리켓은 전국을 통틀어 세대와 성별에 가리지 않고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브리타니아 제국 로열 프리미어 리그는 현재 전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축구 리그이기도 하다.

영화

브리타니아에서 가장 인기있는 문화 매체중 하나이다.

본래 브리타니아에서는 영화관이라는 시설이 존재했지만, 인터넷 혁명 이후 넷플릭스를 필두로 영화 스트리밍 서비스가 늘어나면서 영화관은 사양세를 걷게 되었고, 현재에는 극히 일부의 영화관을 존재하면 영화관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거의 모든 영화 제작사들이 넷플릭스를 통해 자신들의 영화를 공개해 수익을 얻어간다. 게다가 넷플릭스는 브리타니아 제국 동인도 회사브리타니아 제국 문화부 소유의 국영 기업이기 때문에, 넷플릭스는 수익을 챙겨갈 뿐만 아니라 수익중 일부를 영화인들에게 지원하여 상업성이 높지 않아도 예술성이 높은 영화도 만들어질 수 있도록 돕는다. 이러한 국가 주도의 영화 육성 정책은 브리타니아를 세계 최고의 영화 강국으로 만드는데 일조하였다.

브리타니아 출신의 영화 감독으로 유명한 사람들로는 스티븐 스필버그, 마틴 스콜세지, 퀜틴 타란티노 등이 있다. 브리타니아 내에서는 하나의 영화로 끝나지 않고, 특정한 세계관을 바탕으로 여러가지 영화들을 만드는 시리즈물도 유행을 끌고 있다. 대표적으로 조지 루카스 감독의 스타워즈 시리즈, 007 시리즈 등이 존재한다. 이 시리즈들은 영국을 넘어 전세계적으로 가장 인기있는 박스오피스 프렌차이즈로 꼽힌다. 70년대에는 J. R. R. 톨킨의 소설을 영화화한 레젠다리움 시리즈가 등장해, 상업적으로 뿐만 아니라 비평적으로 정말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두기도 하였다.

TV 연속극

TV 연속극은 한국에서는 "영드"로 불리며, 역시나 상당히 인기있다. 가장 인기있는 시리즈로는 프레더릭 3세 시대의 영국 왕/황실의 역사를 드라마화한 <더 크라운>과, 범죄 수사 드라마인 <라이프 온 마스> <셜론> 등이 있다.

대영제국에서도 자국 드라마의 인기는 대단한데 특히나 최근에는 넷플릭스를 통해 상당히 많은 TV 연속극이 공개됨에 따라, TV 연속극이 전례없이 호황을 누리는 중이다. 단순히 브리타니아 내에서 만들어지는 연속극 뿐만 아니라, <진격의 거인> <코드 기아스> <데스노트>와 같은 일본의 애니메이션 연속극 등도 유행하며 브리타니아의 TV 연속극 환경은 점차 레드오션화되어가고 있다.

음악





브리타니아 제국의 대표적인 대중 음악

귀족 계층에서는 클래식과 재즈가 강세를 보인다. 다른 지역에서 클래식 음악이 다소 퇴조한것과 달리, 브리타니아 제국은 유럽과 소련의 공산화 당시 유능한 작곡가, 지휘가들의 망명을 받아들여 클래식의 수명을 연장하였다. 클래식 음악은 50년대 자유로운 사회 분위기의 물결을 타고, 록 음악, 재즈와 융합되어 더욱 음악적으로 발전하였고[19], 평민 문화로도 확장되어 대중적 인기를 유지하고 있다.

평민 문화에서는 재즈와 록 음악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 그 외에 R&B가 인기있고 클래식 음악도 상당한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 70년대 힙합이라는 장르가 등장하기도 하였으나 과격성과 폭력성으로 인하여 대중들의 외면, 정부의 탄압을 받았기 때문에 아직까지 언더그라운드 문화 신세이다.

재즈와 록 음악은 나온지 꽤 오래된 장르인만큼 그 갈래도 다양하여, 현재는 각 분파가 거의 같은 장르라고 볼 수 없을정도로 특징이 다양해져 메인스트림을 형성한지 정말 오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정상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재즈와 록 음악의 융합 형태인 재즈 록도 인기이다. 두 장르들은 50년대 세계의 다양한 음악에서 음악성을 받아들여 그 갈래를 넓히고, 60년대에는 보다 대중적인 노선을 추구하여 대중음악의 황금기를 열었다.

최근에는 동양의 전통 음악과 록 음악이 융합된 형태인 오리엔탈 록오리엔탈 메탈이 등장하며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식문화

브리타니아 제국의 식문화는 매우 끔찍하며, 인류 역사를 통틀어 가장 음식을 맛이 없게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이는 오해에 가깝다. 브리타니아 제국의 가정식은 실제 통념과 그리 멀리 떨어져있는 것은 아니지만 요식업에 있어서는 장족의 발전을 이뤄, 최근에는 제법 먹을만한 식당들이 대도시를 중심으로 많아지고 있다.

브리타니아 제국에서는 브리튼 섬에서 건너온 요리와, 아메리카 원주민으로부터 전수받은 요리, 아프리카 흑인들의 소울 푸드, 인도와 중국 식민지에서 건너온 음식 등이 뭉쳐 매우 다양한 식문화를 이루고 있다. 이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피시 앤드 칩스로, 튀긴 물고기와 튀긴 감자를 내놓은 음식이다. 평가는 극과 극으로 갈리는데 제대로 만들면 맛있지만 가정식에서 그만큼의 퀄리티를 기대하기 힘드므로 눅눅하고 느끼하다는 평도 있다. 그 외에는 고기를 통째로 구워서 내놓는 로스트 비프와, 계란 프라이와 베이컨 등 여러 재료들을 내놓은 영국식 아침식사가 유명하다.

그러나 민간인들에게는 브리타니아 제국의 전통요리보다는 외국의 여러 요리들이 더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중국에서 건너온 새서미 치킨, 제너럴 쏘 치킨, 치킨 누들 수프, 찹 수이, 그리고 인도에서 건너온 커리나 탄두리 치킨 등이 브리타니아 제국인들에게 매우 큰 인기를 얻는 식품이다. 특히나 중국 음식들은 값도 싼데다가 왠만한 영국 요리들보다 훨씬 맛있기 때문에, 영국인들이 매우 애용하고 있다. 그 외에 영국으로 이민온 아프리카계 영국인들이 전파한 닭튀김 등의 음식도 유명하다.

한편 빵류는 영국이 제법 고평가를 받는 부분이며, 영국 음식의 체면을 높여주고 있다. 에그타르트, 토스트 등 여러 종류의 빵이 만들어지고 있으며 특히나 10년대 독일의 공산화 이후 독일의 여러 명제빵사들이 영국으로 망명하면서 독일의 제빵 문화가 영국의 제빵 문화를 밀어버리고 주류를 차지하여 브리타니아 제국 내의 제빵 산업은 더더욱 발전하였다.

브리타니아 제국인들은 패스트푸드를 그야말로 혐오하며, 빠르게 먹는 음식을 지양한다. 이는 기본적으로 브리타니아 제국의 노동시간이 40시간이지만 공휴일도 많고 점심 시간도 널럴하게 주기 때문에, 점심 식사를 할 여유가 많기 때문에 주식 등 특정 업계에 재직하는게 아닌 이상 패스트 푸드를 먹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과거 산업혁명 시기 브리타니아 제국의 노동자들은 밀가루와 양배추를 넣고 끓인 죽이나, 강가에서 건져올린[20] 장어를 토막내고 배춧국에 넣고 끓인 장어수프 등 매우 끔찍한 음식들로 떼웠으므로 자연스럽게 미식이 아닌, 배를 채우기 위해 빠르게 먹는 음식은 이런 끔찍한 수준의 음식을 뜻하는 것으로 브리타니아 제국인들의 뇌리에 남게 되었다.

그럼에도 정 시간이 없다면, 토스트에다가 계란 프라이와 베이컨을 올린 영국식 샌드위치를 먹거나, 혹은 중국식 국수 요리를 배달시켜 먹는 것이 브리타니아 제국의 일반적인 식문화이다.

차(茶)는 브리타니아 제국의 기호식품중 가장 대중적인 음료이다.

브리타니아 제국에 차가 유입되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후반의 일이다. 18세기 후반 이전에는 영국의 국민 음료는 커피였다. 그런데 커피 나무 전염병으로 인하여 커피가 전멸해버리면서 커피의 값이 치솟자, 그 대응품으로 실론과 인도 식민지에서 재배되는 차가 떠올랐으며 이후 차는 200여년간 영국인들의 필수 기호품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브리타니아 제국 내에서의 차는 동양에서의 그것과는 많이 다르다. 브리타니아 제국 본토 주민들의 입맛에 맞게 변형된 것이다. 보통 홍차를 연하게 우려낸 다음, 우유를 부어 밀크티를 만들어 먹는다. 우유와 홍차의 비율은 1:1이 가장 이상적이다. 뜨겁게 먹기도 하고 차갑게 먹기도 하는데 대체로는 뜨겁게 해서 먹는다. 이 밀크티의 범용성은 매우 뛰어나, 중국과 베트남 식민지에서 주로 나오는 타피오카 펄을 넣어 차게 먹기도 한다.

그러나 밀크티만이 브리타니아 제국 내에서 주류인 것은 아니다. 중국과 한국, 일본이 식민지화됨에 따라, 보이차나 녹차 등 동북아시아 문화권의 차들도 브리타니아 제국에 소개되었으며, 이에 따라 수많은 브리타니아 제국 신민들이 동북아시아식으로 우유를 넣지 않고 진하게 우려낸 차를 마시기 시작하였다. 밀크티에 비해서는 이런 방식으로 마시는 사람들이 드물지만 그럼에도 이 방식 역시 매우 대중화되어있다. 또한 홍차의 경우에도 인도식 짜이, 시암식 차옌 등이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져있다.

차만 따로 빠르게 마시기도 하지만, 여유가 있을때는 스콘이나 비스킷 등을 곁들여 먹기도 한다. 이렇게 제빵류를 곁들여 먹는 간단한 간식을 티타임이라고 부른다. 티타임은 4시나 5시 경에 이뤄지며, 이 시간이 되면 모든 회사들이 10~20분동안 휴식하여 잠깐 차를 마신다. 티타임 때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를 대접할때는 아무때나 티타임을 가지기도 한다.

브리타니아 제국 내에서 차의 주요 산지는 실론, 인도제국, 중화제국, 일본, 대한국, 베트남 등 다양하다. 자국 내인 뉴 웨스트 레스터솔즈버리 힐의 드넓게 펼쳐진 농장을 활용하여 공장식으로 찻잎을 제배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다수의 신민들은 인도제국의 다즐링과 아삼 지역에서 나는 홍차를 최고급으로 여기고 있다. 녹차의 경우 일본산과 한국산이 우수한 품질로 인정받는다. 이 지역의 찻잎들은 브리타니아 제국 황실에도 공식 인증받아, 브리타니아 제국 동인도회사를 통해 독점 수입되고 있다.

교통

항공

국영 항공인 임페리얼 항공이 브리타니아 제국 내에서 가장 규모가 크며, 민간 항공 기업중에서는 델타 항공, 유나이티드 항공, 사우스웨스트 항공, 팬 아메리칸 항공, 아프리카 항공, 아틀라스 항공(화물용), 그리고 캐세이 퍼시픽 항공이 가장 크다. 이중 케세이 퍼시픽 항공은 브리타니아 제국 동인도 회사가 최대 지주이기 때문에 황실 기업이라고도 할 수 있다.

공항중에서는 뉴욕에 위치한 뉴욕 스태튼 아일랜드 국제공항의 규모가 가장 크다. 스태튼 아일랜드는 조지 워싱턴의 반란 당시 영국군과 아메리카 반란군이 격돌한 곳으로, 이후 민간인 거주지로 사용되다가, 3년 뉴욕 내 항공의 수요가 폭증함에 따라 주민들을 이주시키고 섬 전체를 하나의 공항으로 만들었다. 임페리얼 캐피톨 필라델피아 국제공항, 홍콩 국제공항, 애틀랜타 스콧데일 국제공항도 매우 큰 규모를 자랑한다. 이 공항들은 전세계에서 가장 큰 공항의 순위권을 다투고 있다. 브리타니아 제국의 공항은 군용 공항으로도 사용되며, 전시 상황에서는 공항이 징발당할 수 있다. 그러나 평시에 민간 공항이 군용 공항으로 사용되는 일은 드물다.

브리타니아 제국에서는 보잉, 록히드 마틴, 더글러스 사 등 다양한 항공기 제조업체에 의해 여러가지 기종의 비행기들이 개발되었다. 그중 가장 큰 것은 보잉 747(보잉 747-8 기종)로, 길이는 총 76.4m에 달하며 최대 좌석 수는 605석이다. 이런 거대한 비행기는 승객들이 다 타지 않고 출발하면 손해가 크기에, 도쿄-임페리얼 캐피톨 등 주요 노선에서만 쓰이고 있다.

브리타니아 제국의 모든 항공 기종을 통틀어, 가장 빠르고 인기가 많은 비행기는 초음속 비행기인 허더스필드 기종이다. 허더스필드는 록히드 마틴사가 개발한 항공기로, 과거 취역했다가 58년 석유파동으로 인한 적자로 퇴역한 셔널 리처드슨 시리즈를 잇고 있다. 셔널 리처드슨이 개발될 당시에는 비행기가 주로 석유를 사용했기에 초음속 비행기의 개발이 한정적이었다. 그러나 60년대 이후, 원자력 기술이 대대적으로 발전하며 원자력 전지가 비행기의 주요 동력워으로 사용되었고, 이에 따라 가벼우면서도 빠른 초음속 비행기가 개발될 수 있었다. 최대 속도는 마하 2.30(2817.6km/h), 운항 속도는 마하 2.25(2756.3km/h)이다. 가장 최근의 기종인 허더스필드 007을 이용하면 도쿄의 도쿄 어널즈버러 국제공항임페리얼 캐피톨 필라델피아 국제공항을 단 3시간 56분만에 주파할 수 있으며, 포트 엔젤리스 국제공항부터 뉴욕 스태튼 아일랜드 국제공항까지는 1시간 25분, 베이징 취저우 국제공항부터 홍콩 국제공항까지는 단 43분만이 소요된다.

물론 이런 어마어마한 속도를 누리기 위해서는 엄청난 돈을 써야하며, 허더스필드 기종을 타기 위해서는 일반 비행기의 3배에서 5배에 달하는 돈을 지불해야한다. 그러나 브리타니아 제국 안에서는 소형 원자력 전지의 발전으로 항공 여행의 단가가 매우 싸진 상태이기 때문에, 허더스필드 기종의 비행기는 서민들까지 큰 부담 없이 탈 수 있는 가격으로 제공되고 있다. 일반 비행기의 운임 비용은 도쿄 어널즈버러 국제공항-뉴욕 스태튼 아일랜드 국제공항을 기준으로 총 90 파운드 스털링, 초음속 비행기 기준으로 450 파운드 스털링이다.

기차와 도시철도

기차는 항공기의 저가화로 인해 사양세를 걷는 중이나, 여전히 화물 면에서 매우 압도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비행기로 이동하기 어려운 가까운 거리의 지역간에는 여객용 기차도 활성화되어있다. 임페리얼 캐피톨볼티모어, 뉴욕을 오가는 고속 기차는 언제나 만원이다. 이 고속 기차는 한 좌석당 단 20 파운드 스털링만 내도 탈 수 있는데, 임페리얼 캐피톨과 뉴욕을 무려 20분만에 연결해준다. 이는 자기 부상의 원리를 이용했기 때문인데, 아직까지는 안전성 문제에서 논란이 있기 때문에 시범적으로만 운영되고있지만 점차 상용화될 것으로 보인다.

도시 철도의 경우, 브리타니아에서 가장 인기있는 대중교통 시설이라고 할 수 있다. 가격도 저렴하며, 대도시의 주요 지점들을 연결해줘 특히 서민들에게 인기가 높다. 브리타니아에는 뉴욕 도시철도, 시카고 도시철도, 포트 앤젤레스 도시철도, 시드니 도시철도 등 수많은 지하철과 도시철도가 존재하며, 세인트 프랜시스와 같이 여전히 노면 전철이 남아있는 곳도 있다. 노면 전철은 50년대에 도로 교통의 방해를 이유로 대부분 철거되었지만 여전히 주요 도심의 구시가지에는 많이 남아있다.

그러나 도시 철도의 전반적인 상태는 장담하기 힘들다. 특히나 시카고 도시철도의 악명은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수준이다. 도심 구간이 모두 지상인데다가, 고층 건물 사이를 위태롭게 오가는지라 운행 속도가 20km를 넘지 못한다. 게다가 수십년도 더 된 낡은 시설 때문에 한번 전철이 운행하면 소음이 크게 난다. 여름이 되면 각종 벌레와 비둘기, 쥐들이 몰려 마치 동물의 왕국을 방불케하며, 도심의 노숙자까지 몰린다. 이 때문에 시카고 시민들은 시카고 전철을 도시의 흉물로 여기고 몹시 부끄러워한다고 한다. 그러나 모든 도시철도가 이런 것은 아니며, 임페리얼 캐피톨이나 뉴욕, 애틀랜타 등 도시철도의 시설이 일본만큼이나 훌륭한 도시들도 많다.

대중매체에서

  • 일본에서 85년 방영된 애니메이션 "코드 기아스 반역의 를르슈"는 나폴레옹 전쟁에서 영국이 승리하여 브리튼 제도를 붙들고 있는 브리타니아 제국(신성 브리타니아 제국)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여담

  • 제이위키 내에서 무지막지한 국력과 무지성 인플레이션 설정으로 컬트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제이위키 내에서 또다른 무지성 초인플레, 극초강대국 설정 국가인 신조선 연방과의 환핀대전급 비교가 주요 밈으로 사용된다. 봉건제, 전제군주제, 군사 독재를 표방하는 브리타니아 제국과 달리 신조선 연방은 민주제 국가이기에 더욱 비교되곤 한다. 개인적인 생각이긴 하지만 기술력 면에서는 브리타니아 제국이 앞서더라도, 신조선 연방 내 수많은 기계인간들의 존재와 전제군주정-봉건제 국가의 근본적 결함 때문에 실제로 대전을 하면 신조선연방 측이 약우위에 있게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

각주

  1. 조용한 혁명 이전의 제국주의와 구분하기 위해 신제국주의(Neo-Imperialism)라고 부르기도 하다.
  2. 다른 서구의 군주와 마찬가지로 브리타니아의 황제도 자신을 "We"라고 표현했다.
  3. 브리타니아 제국-일본 전쟁 승전 연설의 마지막 부분으로 현재도 회자되는 명연설로 꼽힌다.
  4. 기타 제후국까지 다 합칠시 220조 파운드에 달한다.
  5. 군사력을 제외한 거의 모든 부분에서 영국이 소련을 압도한다. 인구, 경제력 모두 그 격차가 10배 이상이다.
  6. 어원은 잉글랜드이다.
  7. World War(영어), Weltkrieg(독일어). 영국과 독일의 치열한 싸움을 통틀어 영독전쟁이라고 하기도 하지만 러시아, 프랑스 등은 이 명칭을 달갑지 않게 여긴다.
  8. 사실 0년대 들어 정치 개혁을 통해 영국 내에서 인종차별적인 법안은 대부분 철폐되었고 북부 대도시들에는 이미 황인종, 흑인종, 백인종 가릴 것 없이 모자이크 사회의 양상이 나타나곤 했었다. 그러나 한국에서도 일제강점기 시기 신분이 철폐된지 오래임에도 백정에 대한 차별로 인해 형평운동이 일어났듯이, 40년대까지 흑인종과 황인종은 극히 일부의 대도시들을 제외하면 뿌리박힌 인종차별 의식으로 차별을 받는 일이 많았다.
  9. 브리타니아 제국 국정조정실은 독립된 부처이다.
  10. 평민원 의원 한명이 약 75만명의 제2계급 시민들을 대변하도록 되어있다.
  11. 만화영화에 나오는 메카닉 로봇을 생각하면 된다.
  12. 이론상 제국 최대의 도시인 도쿄에 칼로그레난트 B가 떨어졌다고 가정할 시, 사망자 23,979,000명과 부상 및 피폭자 104,489,120명이 발생한다. 사실상 나라 하나를 없앨 수 있는 수준의 폭탄이다.
  13. 보통은 평기사들이 주로 탑승하지만, 현장에 투입되는 기사경들도 모두 고기동장비에 탑승하여 전투를 이끈다.
  14. 74년 방영된 일본 애니메이션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방영과 동시에 다목적 고기동장비의 실전배치가 이뤄졌기에 이런 별명을 얻었다.
  15. 1계급 신민은 2계급으로, 2계급 신민은 3계급으로 한계급씩 계급이 낮아진다. 다만 귀족이 2계급이 되는 경우는 드물다.
  16. 독일 황위는 화이트로이드 황조에, 프랑스 왕위는 부르봉 가문에 넘어갔다.
  17. 제1계급 귀족들도 큰 죄를 저질렀을시, 신분을 강등시키는 경우는 매우 드물고 보통 특별 수용소로 보내진다.
  18. 대표적으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황제기사가 있다.
  19. 쿨 재즈, 프로그레시브 록 등이 대표적이다.
  20. 당시에는 임페리얼 캐피톨, 뉴욕, 시카고, 피츠버그, 보스턴 등 주요 대도시들의 강가가 모두 오염되어 장어와 미꾸라지 등을 제외한 물고기들은 전혀 살 수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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