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연방
고려인민연방공화국
高麗人民聯邦共和國
국기 국장
표어 弘益人間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
强盛大國 (비공식 표어)
국가 애국가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가 고려인민연방공화국, 대만 및 그 부속도서가 대만 공화국이다.
수도 서울자유시漢城自由市
정치
공용어 한국어
정부 형태 연방제, 이원집정부제
연방 주석聯邦主席 초대 이승만
연방 국무위원장聯邦國務委員長 초대 박헌영
입법 최고민족연방회의
最高民族聯邦會議
역사
 • 연방 통일 1947년 9월 9일
 • 연방 내전 발발 1950년 - 1952년
 • 광명회 결성 1954년 6월 11일
지리
면적 222,300㎢
내수면 비율 2.8%
인구
2020년 어림 7,900 만 명
기타
통화 원 (圓, ₩)


고려인민연방공화국(중국어: 高麗人民聯邦共和國)은 동북아시아에 위치한 연방제 공화국으로서 한반도(韓半島)와 그 부속도서를 영토로 하고 있다. 수도는 서울자유시(漢城自由市)이며, 북쪽으로는 중화인민공화국(中華人民共和國)과 러시아가 있으며, 동해를 사이에 두고 일본(日本)에 접하고 있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 이후 한반도 이북과 한반도 이남에 각각 소련군미군이 주둔하였으나, 한반도에 대한 이남, 이북 협치 및 신탁 통치 등을 논의하기 위해 통일조선임시위원회(統一朝鮮臨時委員會)가 조직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소련 군정인사들이 김일성(金日成)을 새로운 혁명 지도자로 내세우려 하던 중, 김형집(金亨集)의 폭탄 테러로 암살되었고, 한반도 외부에서는 국공내전(國共內傳)이 격화되자 소련미국이 개입을 시도함에 따라 한반도 정세에 대해 관심이 약해지자 조선 노동당(朝鮮勞動黨)과 한국 독립당(韓國獨立黨)의 양당제를 주축으로 이남, 이북의 지지에 근거한 연방 국가 설립이 진행되었으며, 1947년 9월 9일을 기점으로 '고려 연방'이 건국되었다.

그러나 이북을 중심으로 한 조선 노동당과 이남을 중심으로 한 한국 독립당 간의 이해관계 및 사상 차이로 인하여 판이한 대립 구도가 성립되었고, 결국에는 1950년 6월 25일, 조선 노동당고려연방 북군(高麗聯邦北軍)의 남진을 기점으로 연방 내전(1950-1952)가 발발하나, 이를 주도한 박헌영(朴憲永)이 방학세(方學世)를 비롯한 반(反) 연안파의 내부 분란으로 사살됨에 따라 당시 이승만(李承晩) 고려연방 남군(高麗聯邦 南軍) 지도자 및 연방 주석과 임시 조선 국무위원장이었던 최용건(崔庸健) 간의 내전 종결 선언(內傳終決宣言)에 따라 연방 내전은 마무리 되었다.

1959년, 대만 인민 공화국(臺灣人民共和國)[1]이 내부 대립에 따른 소요사태가 발생하자 이에 개입함에 따라 무단으로 대만 일대에 대한 점유를 시도하였으며, 미국의 암묵적 동의에 따라 고려연방령 대만(高麗聯邦領 臺灣)을 수립하였다.[2] 한편으로는 한중 국경 분쟁(韓中國境紛爭, 1959-1960)으로 중화인민공화국과 첨예한 대립 구도를 형성하여 냉전 구도를 격화시켰다.

동아시아 대립(東亞細亞 對立)[3]이 만연한 현재에서도 일본(日本)과 함께 안정적인 내부 사정과 상당한 경제 성장을 거치면서 아시아의 주요 선진국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강해졌다. 그럼에도 광명회(光明會)와 같은 정치 비밀결사 조직의 활성화, 소극적 군국주의(軍國主義), 부분적 폐쇄주의(閉鎖主義)로 동북아시아에서 가장 비밀스러운 국가로 알려지고도 있다.

각주

  1. 1949년까지만 하더라도 중화민국(中華民國)의 관리하에 놓여 있었으나, 이등휘(李登輝, 리덩후이) 및 본성인(本省人)을 중심으로 하여 건국된 국가로서 당시 중화민국중화인민공화국 간 국공 대립에 갈등의 중심 소요를 일으키기도 했다.
  2. 현재는 고려연방 내 소속국으로서 대만 공화국(臺灣 共和國)으로 독립하여 유사 주권국으로서 성장하게 되나, 내부의 본성인외성인의 대립, 고려연방한민족, 대만 원주민을 포함한 민족 대립으로 큰 혼란을 안고 있다.
  3. 국공 분쟁, 대만 분쟁, 티베트 분쟁, 동투르키스탄 분쟁, 몽골 분쟁을 포함하여 동아시아 내 첨예한 갈등 양상을 통틀어 일컫는 말